詩
달항아리
박제천
항아리를 보면 붕어 불러들이던 된장항아리 생각난다
항아리를 보면
잡은 붕어 내보이던 투명한 달항아리 생각난다
항아리를 보면
그 안에 들어가 숨죽이고 잠자던 관항아리 생각난다
그러다 문득 비를 생각하면,
항아리 또한 비가 된다
개여울 속 하늘 속 땅 속 어느 곳이든
내가 만든 비들은 하나같이
항아리같은 추억,
항아리같은 사랑,
항아리같은 죽음을 만든다
그런 항아리 가득 볼펜을 꽂아놓고
나는 문득 비의 자서전, 항아리의 자서전을 구상한다
청개구리가 된 부처를 받아들이는 비의 일생,
살도 정도 불에게 내어주고,
사리와 뼈만 남은 부처를
그 안에 쉬게 하는 사리 항아리의 일생
그러다 문득, 붕어라고 쓰면 붕어가 뛰어나오고
된장이라고 쓰면 된장내 구수해지는 입체 볼펜으로
항아리 하나를 그린다, 그 안에 전생의 메모리칩이 내장된
내 항아리 하나를 하늘에 띄워놓고 흥얼거린다
달아 달아 천년만년 나랑 놀던 달아.
詩
나무 사리舍利 / 박제천
백년생의 자연목에 서툰 도끼질을 해대다본즉 여기저기 도끼 입이 벌어졌다 전기톱을 갖다대기만 하면 날이 날아갔는데 도낏날 역시 마찬가지여ᅟᅭᆻ다 나무 살 속에 총알들이 수없이 박혀 쇠이빨인양 날을 잘라먹었다 강원도 심산. 구름을 밟으며 올라탄 산정의 나무들은 아름이 넘었다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톱이며 도끼를 몇 자루 날리는 하루품 끝에 나무 하나를 넘기면 온 산이 쩌렁쩌렁 울었다 그 울음 소리에서 시경詩經의 벌목쟁쟁伐木丁丁, 정지용의 장수산長壽山이 떠올랐다 산이 사내처럼 우는 소리, 나무가 사내처럼 나뒹그러지는 소리에 사내들의 몸에 박혔던 총알들이 반짝이며 튀어나왔다 발자국 하나 거리의 수풀이지만 지뢰탐지기를 들이대고서야 아기손가락만한 총알을 주웠다 나무 하나에 왜 그리 총알이 많이 들었는지 큰스님 몸을 태우면 쏟아져 나온다는 사리들도 나무의 사리와 같아 산 세상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레이저 총알을 받았던 거겠지 어느 조각가(정관모)의 온통 붉고 검은 원주圓柱들을 보다가 6.25나무의 아가리가 생각났다 그 아가리가 덥썩 베어문 입자국이 내 안 어디에 있나부다.
詩
새와 함께 / 박제천
나무에 돋아나는 새 잎을 보면
작은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회중시계의 문자판인양
나무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 보여주는
초침의 숫자를 지켜보면
언제라도 나무를 떠나 하늘로 날아오를 자세이다
나 역시 그 나무의 문자판을 지켜본다
아마도 그 숫자들은 나무가 커갈수록 결 속으로 숨어들어가
마침내는 잘린 널의 무늬로 남아
그때도 누군가 새처럼 날아갈 시간을 알려줄 것이다
흙의 뿌리에서
눈처럼
잎처럼 돋아나는 것들은
언제나 첨음부터
저와 같은 비행을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