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편네라고 해도 된다
《⑥물색없는 것들》#260627
by여유시간
Jun 27. 2026
남편(男便)과 여편(女便).
같은 시대에 태어난 말이다.
남자 쪽 사람, 여자 쪽 사람. 구조도 같고 무게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둘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다.
남편은 멀쩡히 살아 표준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여편네는 "여편네 같은 놈"이라는 모욕어로 굴러다닌다.
계집과 사내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그냥 여자,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금 사내는 멀쩡하지만 계집은 입에 올리기도 껄끄러운 말이 됐다.
말이 나빠진 게 아니다. 그 말을 써온 사람들의 시선이 말 속에 침착된 것이다.
바른 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종종 "나는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다"라고 한다.
맞다.
틀리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이 옳고 그름만으로 작동하던가.
같은 말도 누가, 언제, 어떤 얼굴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의사에게 듣는 "많이 힘드셨겠어요"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듣는 "많이 힘드셨겠어요"는 같은 문장이지만 무게가 다르다.
한쪽은 위로고 한쪽은 불쾌하다.
말은 내용만이 아니라 맥락과 관계를 함께 실어 나른다.
정치판을 보면 안다.
정청래 대표가 부산 구포시장 유세 현장에서 초등학생에게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오빠라는 단어 자체는 아무 죄가 없다.
문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자리에서 썼느냐다.
공적인 유세 현장에서 아이에게 오빠를 외치게 하는 순간, 그 말은 친근함이 아니라 격을 무너뜨리는 말이 됐다.
본인은 편하게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이 놓인 자리가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그걸 모르고 쓰는 말을 우리는 뭐라고 부를까. 물색없다고 한다. 앞뒤 분간 못 한다는 뜻이다.
바른 말을 물색없이 쓰면 — 그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바른 말이 아니다.
여편네도, 계집도 처음엔 바른 말이었다.
쓰는 사람들이 망가뜨렸다.
그러니 지금은 아무리 원래 뜻이 바르다 해도
가족이 아닌 자리, 집 밖에서는 꺼내들 말이 아니다.
말은 태어날 때의 뜻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쓰여온 역사를 함께 달고 다닌다.
당신의 말은 지금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
남에게도 경어체를 쓰는 세상이다.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어떤가.
아내에게 경어체 쯤은 써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 사람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좋은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이다.
- 브런치 작가 여유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