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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나 형제를 늘 위해 523장 ♬. 빌4:8-9
523장 "나 형제를 늘 위해 "의 찬송 시는 미국의 '하월드 아놀드 왈터'(H.A.Walter;1833-1918)목사가 일본에 선교사 자격으로 파송되어 와세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던 1907년 정월 초하루를 맞아 '신년각오'로 쓴 것입니다.
찬송가 1절에서는 언제나 믿음의 형제들에게 늘 진실하게 대하며, 세상 불의에 대하여서는 언제나 담대하게 살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찬송가 2절에서는 악한 원수라 할지라도 항상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친구처럼 섬기며 늘 기쁨으로 살리라는 고백이 담겨있으며, 마지막 3절에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처럼 여기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처럼 나도 주님 가신 그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왈터 목사님은 이 같은 신년각오를 고국에 계시는 어머니 왈터 여사에게 보내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신년각오에 큰 감동을 받고 이 같은 왈터 목사의 고백이 아들 혼자만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고백으로 되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하퍼스의 자선 시」에 '나의 신조'라는 제목으로 투고하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찬송 곡은 화초재배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던 평신도 지도자 '죠셉 예잇츠 피이크 (J.Y.
Peek;1843-1911)가 당시 유명한 작곡가요 올겐 연주자였던 튤라(Tullar)의 도움을 받아 1909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사실 피이크는 평신도 지도자로 음악에는 문해한 이었지만 왈터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나의 신조'의 시에 감명을 받고 영감을 받아 흥얼거리는 소리를 튤라가 듣고 오선지에 옮겨놓으므로 오늘의 곡이 완성된 것입니다.
1절 나 형제를 늘 위해 진실하고 날 보는 자 늘 위해 정결코
담대하여 이 세상 환난 중에 나 용감히 늘 승리하리라
나 용감히 늘 승리하리라
1절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하여서는 늘 진실하고 정결하게 대하며 살겠다는 고백과 세상 환난과 불의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용감하게 대적하며 살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일 3:18-19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실제로는 행하지 않는 믿음을 질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같은 믿음에 대하여 약2:14-17에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우리에게 아에 도울 힘이 없다면 그저 도와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할 뿐 떠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조금 선한 일은 해놓고는 내가 뭐했네 우리교회가 이렇게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구제를 베풀고 있다며 온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디 그렇습니까?
교회끼리 서로 경쟁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경쟁적으로 효도관광을 하고 경쟁적으로 구제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지 못하고 꼭 보육원 아이들을 그 추위에 벌벌 떨게 세워놓고 원장님과 원생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가지고 광고지에 뿌리며 자랑하느냐? 는 것입니다.
형제를 이웃을 믿음 안에서 진실함으로 거짓없이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초점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 20: 35)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 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잠3:27)고.....
이런 자세로 믿음의 형제들과 이웃사람들에게 행할 때 우리는 결코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요일3:21에서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늘찬양교회 성도여러분!
이제라도 겉치레의 신앙과 위선과 과욕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양심 앞에 진실하며 바르게 행할 수 있는 2003년 계미년 새해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2절 저 원수도 내 참된 친구 삼고 남 주면서 그 일을 잊으리
연약한 나 늘 온유 겸손하여 늘 섬기며 기쁘게 살리라
늘 섬기며 기쁘게 살리라
2절에서는 악한 원수라 할지라도 친구처럼 섬기며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살자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몇 년 전 지방회 학생 연합집회로 학생들을 이끌고 전남 고흥의 소록도와 여수의 애양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성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살아있지 않고 오래 전에 고인이 된 손양원 목사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 반란 사건 때 공산당원에게 두 아들 동신과 동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는 차원 높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의 영결식에서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의 감사 문을 발표하였습니다.
①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②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내게 맡겨 주셨는지 감사하며
③ 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④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해 주심을 감사하고
⑤ 예수 믿다가 누워서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함이리요.
⑥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함이며
⑦ 내 사랑하는 두 아들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⑧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⑨ 이와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얼마 후에 손 목사님도 자녀들의 뒤를 따라 순교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죽음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일 뿐이다.」는 믿음을 직접 삶으로 실천해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 같은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되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들은 '악한 원수라 할지라도 친구처럼 섬기며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대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5:38-48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또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또 오늘 본문 빌 4:8-9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하였습니다.
요한일서 4:10-1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강한 무기는 없습니다. 원수도 사랑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요한 복음 15:12-14에 있는 것처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말씀처럼 위로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며 아래로는 이웃과 원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갚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좋은 증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몸을 보호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미움은 하나님의 성령에 반대가 됩니다. 미움은 우리 속에 고통을 일으켜서 결국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암 세균이 퍼져 죽음으로 이끌어 가듯 우리를 병들어 죽게 합니다.
이렇듯 미움의 정신은 파괴적인 요소로서 남을 파괴시킬 뿐더러 우리까지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의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행복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003년 새해에 별같이 빛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몰아내고 감사와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원수라도 친구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보다 더 풍성해지고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3절 늘 바빠도 나 힘써 기도하며 주와 함께 늘 교통하리라
주 가신 길 그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늘 살게 하소서
믿음으로 늘 살게 하소서 아멘
찬송가 1절과 2절에서 조건 없는 진실함의 사랑과 악한 원수라 할지라도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끝없이 사랑해야 함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런 반면 3절에서는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겠다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빌립보서 4:4-7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작정하고 나섰지만 그 길은 눈물 없이는 고통과 아픔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험난한 파도와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어내며 믿음 안에 살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없이는 내 자신도 내가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 이 말은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남은 십자가를 우리가 지고 주님 가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홀로 그 십자가를 지고 가려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맡길 때 우리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질 수가 있습니다.
내 죄를 내 놓으면 됩니다. 내 욕심, 내 자아, 내 정욕을 내어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내 자아, 내 욕심이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므로 주님지신 십자가의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내 속에 살아서 주의 영광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벧전 2:20-21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아멘.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저와 여러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짐만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아니면 뒷발을 들고 몸부림치는 야생마의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가 있으며, 배 안에 있는 돛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할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맙시다. 시련과 비바람의 폭풍이 몰아 쳐와도 이 귀한 시련과 훈련과 믿음을 통하여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리라는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주님가신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달려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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