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위화도회군
역사에서 가정은 헛된 일이지만, 역사의 한 순간을 다른 결정으로 대체하고 가정하여 논쟁을 해보는 것도 재미는 있다. 그 '부질
논쟁의 결론은 '요동 정벌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려의 군대는 元과의 싸움을 통해 철령위를 회복할 만큼 강군이었고, 원(북원)은 그 세력이 급속히 위축되어 장성 이북으로 퇴각한 상태였으며, 남에서부터 일취월장하며 북진하는 明도 장성이북까지 강고한 세력을 확대하지는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요동은 세력 공백 지대 즉 무주공산의 성격이 강했기에 고려의 실력으로 충분히 정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요동이 고려에 의해 정벌되었다 해도 지속적으로 고려의 영토로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두 번째 주제 역시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영토로 유지된다는 것은 중원세력(즉, 漢族)으로부터 독립적 운용이 가능했겠는가는 문제인데, 요동은 고조선을 멸한 漢나라가 잠시 들어왔던 시절을 제외하고 사실상 漢族과는 무관한 영토였고, 요나라의 거란족은 이미 몽골의 원나라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후금의 여진은 세력을 형성하기에는 아직도 먼 훗날 얘기이기에 고려의 점령 및 유지는 충분히 가능했다는 주장이었다.
만주 땅의 주인들
시각에 따라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논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타당성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럼 역사적으로 요동을 비롯한 만주 땅의 역사적 주인공은 누구였나?를 생각해 보았다. (만주의 정의는 http://blog.naver.com/aromatics?Redirect=Log&logNo=80184515949&from=postView 참고)
그러던 중 인터넷상 어느 분의 글을 읽다가, 만주 땅의 역사를 아주 간단 명료하게 기술한 글을 보았다. 서기 이후 2000년 중에 상반기 1000년은 우리민족의 역사이고 하반기 1000년은 여진족(청나라 이후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꾼다)의 역사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쏙~ 되는 설명이라 생각되었기에 이참에 만주 땅에 명멸한 나라들을 찾아 보았다.
고조선(우리역사) : BC2333 ~ BC108
부여 (우리역사) : BC2세기 ~ 494
고구려(우리역사) : BC37 ~ 668
발해(우리역사) : 698 ~ 926
요(북방민족, 거란) : 916 ~ 1125
위화도 회군이 없었다면 요동정벌은 성공했을까
며칠 전 조선왕조실록을 풀어 설명하는 라디오 프로를 들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었다. 프로의 말미에 사족 비슷한 토론에서 만일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고 압록강을 건넜다면, 요동은 정벌되었을 것인가? 그리고 만일 요동이 점령되었다면, 그 후 지속적으로 우리 땅으로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금(북방민족, 여진) : 1115 ~ 1234
원(북방민족, 몽골) : 1271 ~ 1368
후금(북방민족, 여진) : 1616 ~ 1636
청(북방민족, 여진(만주족)) : 1636 ~ 1912
만주국(북방민족, 여진(만주족), 일제괴뢰국) : 1932 ~ 1945
중화인민공화국(한족) : 1949 ~
즉,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 의해 멸망됨으로써, 유사이래 우리 민족의 역사 무대였던 만주는 영원히 타민족에게 넘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실이지만, 냉정히 따지고 보면 漢族이 정식으로 만주 땅의 주인이 된 것은 불과 반세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특이하기는 하다..................주말 밤, 아무도 없는 삼실에 혼자 앉아 역사적 망상에 젖어 보는 청도 常山
식민사관에 쩔어 있는 역사학자들을 소탕 하지 않고는
우리의 역사는 신화로만 남는다
첫댓글 이상하게 제 민족 제 이웃에 칼을 들이대고 내분을 일으키는 우리네 속성이 오늘날 반도 남쪽의 보잘 것 없는 땅덩어리에 몰려있게 만들었지요. 대륙을 호령하고 휘몰아치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오늘날 남북의 대립이나 남쪽내 동서의 대립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지요 손바닥만한 땅덩어리서 남북이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고담 대구에서는 또 우리가 남이가!! 참 희안한 용어도 생산이 되면서 몰표가 쏟아지는 행태들 참 부끄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