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을 잘 감상하셨나요?
제목에는 거창하게 해설이라 썼지만, 그냥 제가 느낀점과 하고싶은 얘기 조금하겠습니다ㅎㅎ
메인포스터와 극 전체를
관통하는 보라색
[넥스트 투 노멀의 메인포스터]
저는 이 보라색이야 말로 극의 모든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조증일때 들뜬 기분을 붉은색으로, 울증일때 가라앉는 기분을 푸른색으로 본다면,
두색이 혼합된 보라색은 다이애나의 조울증을 잘 표현하는 색이라 볼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을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본다면 그 둘의 중심을 잘 잡으라는 얘기도
되겠지요.
극의
3층 무대장치
[무의식-의식을 3층 구조로 표현한 무대장치]
극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게이브는 1~3층을 모두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이브 외에 다른 등장 인물들은 기껏해야 2층까지 밖에 못가죠. 무의식이 의식에 영향을
미침을 표현한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무의식-의식을 층을 나눠 표현한 무대장치만으로도 넥스트 투 노멀을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다이애나의
환영, 게이브
다이애나는 16년 전(라이센스 버전 18년)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여파로 인해
조울증이 발병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극의 초반부의 후반부의 게이브의 모습입니다.
[극의 초반부의 게이브]
회원님들께는 먼저 게이브가 죽었고, 다이애나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렸지만,
극의 초반부에서 게이브는 환영이라기엔 상당히 자연스럽습니다.
"Just Another Day(그저 또 다른 날)"에서 게이브는 여느 집의 아들과 같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아침을 먹고, 엄마와 잠시 말다툼을 하다 엄마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댄이 게이브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극의 "살아있는" 등장인물들과 같아
보입니다.
이는 망상이 그 당사자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임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의 후반부의 게이브]
극의 후반부에서 댄은 게이브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에게 이름을 불러줍니다.
"게이브. 가브리엘. 내 아들."
여기서 관객들이 가지는 의문은 두가지 입니다.
1. 댄은 게이브가 보이면서도 그를 무시했나?
2. 1번이 아니라면 게이브는 왜 댄에게 모습이 보이나?
(부가적으로, 게이브가 다이애나의 환영이 아니라 유령이 아니냐는 의문도 생깁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모호한데, 제 개인적으로는 게이브는 다이애나의 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이브가 다이애나의 환영이기 때문에 댄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게이브는 댄에게 "아빤
절대 날 몰라"라고 소리칩니다.
또 다이애나가 게이브를 보는 시선이 환영이라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다이애나는 게이브를 "슈퍼보이"이자 자신을 "편히 쉴 그곳"으로 이끌어 줄 구원자로 보니까요.
이는 다이애나가 자신이 믿고 따를 만한 사람으로 게이브를 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정신질환을 다루는 이 극에서 게이브가 나탈리에게 약병을 갖다주고, 댄이 게이브를 보는
장면을 집어넣은 것은 설정면에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망상이 아니라 유령이 되어버리니까요.
우리나라 재연 연출을 담당하신 변정주 연출가님은 게이브를 유령으로 생각하시네요.
극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487&contents_id=27995
의사,
환자 그리고 가족
넥스트 투 노멀의 제작자인 톰 킷과 브라이언 요키는 이 극을 첫 구상한 후 무대에 올리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습니다.
제작자들은 환자들과 그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극을 만들었으면 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로 "살다보면 살아진다"식이 아닌 통찰력 있는 극이 나오게 되었구요.
[그때 그때 약을 바꿔가며 처방하는 파인 박사]
"Who's Crazy / My Psychopharmacologist And I(미친 건
누굴까? / 내 신경정신과 의사와 나)"에서 파인박사가 다이애나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파란색 동그란 알약은 음식과 함께 드시면 되지만 길쭉한 흰 알약과는 함께 드시면 안됩니다.
흰색 알약은 동그란 노란색과 함께 드시면 되지만 사다리꼴 모양의 녹색은 피해주시고요. 초록색 알약은 작은 끌을 이용해 삼등분으로
나눠주시고요......"
이 다음의 대사는 "달려오는 기차가......"로 이어집니다. 즉 아무 의미 없는 말이라는
거지요.
상당히 많은 종류의 약을 고용량으로 처방하는 것은 2015년 지금도 흔합니다.
이를 넥스트 투 노멀은 부작용을 읊는 가사로 비꼽니다. "죽을 수 있음!"
[파인 박사와 춤을 추는 다이애나]
다이애나는 "Who's Crazy / My Psychopharmacologist And
I(미친 건 누굴까? / 내 신경정신과 의사와 나)"에서 파인 박사와 끈적한 춤을 춥니다.
가사에도 정신과의사를 친밀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신경정신과 의사와 나/이건 묘한 로맨스/친밀하고도 뜨거운 춤을 추지/내 신경정신과 의사와
나/연인들의 게임/그는 내 비밀 다 알고 난 이름만/안아주진 않아도 늘 전환 받아줘/의사선생님 말씀/어느 발레리나도 혼자는 날지
못-해"
이는 환자들이 환자-치료자 관계보다는 치료자를 친구 등으로 생각하길 좋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이애나를 설득하는 댄]
댄은 정신질환자 가족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다이애나가 처음 발병했을 때 평생 다이애나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오랜 세월에 지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예로 다이애나가 전기충격요법(ECT)를 받고 기억을 잃어 버리자, 좋은 기억만 이야기
해주는 것 등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지친 그의 심정은 가사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실은 너무 지쳤어/네가 하늘을 날 때도 난 늘 땅을 딛고 있어/오, 난 쉬고픈데 기댈 곳이
없어"
"NEXT
TO" Normal, 제목에 대하여
[우리나라 초연 포스터]
영어로 "Next to"는 "그 바로 옆"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극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바로 제목에 있었네요.
다이애나 : "너한테만은 평범한 삶을 살게해주고 싶었는데/나는 그게 뭐인지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
나탈리 : "'평범' 같은 건 안 바래 그건 너무 멀어/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평범함 그 주변 어디 거긴 가보고 싶어/그
근처 어디라면/견딜게"
그동안 강박적으로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살아오려 했던 굿맨가족.
이제는 다이애나의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신에 "평범함 그 주변 어디-NEXT TO
Normal"을 택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참 눈물 나더라구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살다보면 살아지더라"라고만 말하면서 얼른 정상의
범주에 속하기를 강요했는데 말입니다.
뭐 저 말들이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부분이긴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기다리기엔 "지금"이
너무 괴롭잖아요.
결말에
대해서-다이애나의 재기
사실 전 사라의 열쇠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재기"라는 개념을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말 부분이 이해가 잘 안갔지요.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다이애나가 가족을 떠나 스스로 살아 보겠다 선언한 게
"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번도 못 가 본 혼자만의 이 길/두렵지만 갈게 자유롭게 (중략) 내
광기를 낭만이라 믿고만 싶었고/절망 위에 무지개를 그려도
봤지만/운명이 날 잡기 전에 나 가볼게/나 모험을 해볼래 이대론 못 죽어"
"행복만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살아있어야 행복해(할 수 있다는 기회가
온다)"
"긴 밤이 끝내 기나고/먼동이 트면 알게
돼/얼마나 멀리 어둠 속 헤맸던지/안다고 믿던 세상을
저 빛이 새롭게 하니"
"남편, 아들, 딸, 아내/다들 힘겹게
버텨 싸워야 올/한줄기 빛"
여담으로, 넥스트 투 노멀이 올해 연말에 다시 공연한다고 하네요~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보았습니다. 영화로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감사합니다~저도 영화화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영화는 이런주제를 다룬 영화가 많아서 그런지 안됐더라구요
지금에야 이 글을 읽었네요. 제 컴으로는 왠 일인지 화면이 뜨질 않아서 글만 읽었습니다. [Next to Normal]이 "평범함 그 주변 어디"라는 뜻이었군요. 아주 적절한 제목이네요. 우리는 Normal을 추구하기보다 Next to Normal을 추구해야겠지요. 엄청난 철학이 담겨있는 제목이군요. 그건 원작자들의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그만큼 심오하다는 걸 알려주는 거지요. 거기에 비하자면 우리나라 버전의 연출자가 베이브를 유령으로 해석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로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작품해석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의심되네요. 눈누난나님! 너무나 감사해요. 너무나 좋은 정보(뮤지컬)를 알려주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연출가가 유령으로 해석한 게 참 아쉽지만, 스토리의 구조나 설정 등을 고민해야 하는 연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연출가가 극을 다루면서 사전 조사를 좀 덜한게 아닐까...그런 생각도 들구요ㅎㅎ개인적으로는 댄이 다이애나를 지킬 거란 자신과의 약속을 더이상 지킬 수 없음을, 다이애나의 조울증을-정신질환-진정으로 받아들임을 게이브가 댄에게 모습을 드러낸 장면으로 나타냈다 생각합니다. 촛불님의 '우리는 Normal을 추구하기보다 Next to Normal을 추구해야겠지요'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참 촛불님 댓글 읽고 폰으로 게시물을 봤더니 사진이 저도 안뜨네요. 사진 보이게 게시물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 한거죠? 감사합니다. 이제 보이네요. 잘 봤습니다.
사진을 그냥 복사-붙여넣기 했더니 안뜨네요; 사진을 다운받아서 업로드했습니다ㅎㅎ
눈누난나님! 지금까지 쭉 올려주신 게시글들과 이 해설글을 모두 읽고 저 나름대로의 의견을 정리해서 답글 형식으로 올렸습니다. 꼭 읽어봐 주세요. 그리고 제 답글에 제가 댓글을 달아둔게 있는데 눈누난나님께 우리나라에서 공연한 이 작품의 동영상을 모두 갖고 계시는지 여쭤보는 내용이에요. 꼭 읽어봐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