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독실한 불자로 생활하였는데 매일 경전을 읽고 관세음보살 염불을 해도 저의 답답한 마음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도반의 소개로 백성욱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백성욱(1897-1981): 시대의 활불(活佛)이라 불렸던 수행자이자 교육가, 정치가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 내무부장관,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
옛날 육조혜능 대사가 신분을 숨기고 지내다가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을 때 인종법사가 찬탄하여 말하기를 "당신의 법문은 황금과 같고, 나의 법문은 기왓장 같소." 하였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에 백박사님 말씀을 듣고 바로 그 인종법사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법문을 들었지만 백박사님 말씀은 그야말로 황금 같았습니다. 깊이 빠져들어 법문을 듣다가 제대를 하자마자 결국 출가를 하였는데 그분 가르침의 골자는 금강경에 있었습니다.
"금강경을 아침, 저녁으로 독송하라. 그리고 뜻을 알려고 하면서 독송하라.
그리고 그 실천의 구체적 핵심은 "무슨 생각이든지 부처님께 바쳐라."
그렇게 실천하다보면 분별이 사라지고, 분별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올 것이다. 이것을 선지식에게 내놓고 검증을 받아라. 이것이 금강경의 신해행증(信解行證)이다.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 문중으로 갔더니 조용하게 참선이나 하는 도량이 아니라 지저분한 소똥 치우는 목장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 읽고, 아침에 법문 듣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하루 종일 목장 일을 해야 했습니다. 참 지저분하고, 힘들고, 어렵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참'인줄 알았는데, 그게 참이 아닌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치라는 거예요. '어렵다'는 생각도 참이 아닌 줄 알고 부처님께 바치라는 겁니다. 안 믿어지지만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중노동을 하니까 오후가 되면 무척이나 배가 고팠는데 이 배 고픈 거 어떡하죠? 빵이라도 사 먹을까요? 그 생각도 바치래요. 저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잠이 쏟아집니다. 그 잠도 바치래요. 이런 식이었습니다. 바친다고 해결될까요? 처음에는 도저히 안 믿어졌지만 자꾸 하다보니까 차츰차츰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를 했고 수행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고, 때로는 회의감도 많이 들었지만 스승님의 워낙 여여부동한 모습에서 믿음과 위안을 찾으며 버텨 가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출가할 때만 해도 백박사님은 청정비구요,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로서 단신으로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셨고 거기에서 큰 깨달음을 얻으셨고 해방 전에 이미 우리나라 해방을 정확히 예측하셨을 정도의 도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분이 청정비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출가를 결심하였던 것인데 그분은 상좌를 두지 않으시고 손수 연탄을 가시고, 손수 양말을 빠시고, 우리 오기 전에는 손수 공양을 지으시고 장관을 거치시고 총장을 하셨던 분이 손수 그렇게 생활하셨습니다. 70대 노인이 상좌를 두지 않으시다니 참으로 훌륭한 분이로구나. 그런데 가끔 어떤 여자가 들락날락해요.
어느 날 밤 도반이 둘 있었는데 저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둘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여자 누구지?"
"그 여자 동국대학교 있을 때 선생님 비서로 있었는데, 선생님 부인이래."
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도반이 누구냐 하면 백박사님이 청정비구라고 나한테 소개했던 사람이고, 저는 그 말만 믿고 어찌 보면 그 말에 속아서 출가를 했는지도 모르는데 그 젊은 여자가, 딸보다도 젊은 그 여자가 부인이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야, 속았다!' 잠이 오지를 않아요.
그 이튿날 아침에 보통 때처럼 우유를 식히려고 우유통을 들고 아래로 내려오는데 백선생님하고 그 문제의 여자가 나란히 서 있는 거예요. 밤새도록 고민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불쾌감을 느꼈는데 하필이면 그 여자하고 나란히 서 있어요.
'에이, 더러운 것!' 하면서 졸도할 거 같았습니다.
저는 아마 그 때 별일 없었으면 며칠 내로 백박사 문중을 떠났을 겁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10미터 정도 먼 거리였는데, 백박사님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이, 이 사람! 엊저녁에 큰일 치렀네!"
그 말씀에 법력이 있나봅니다. 그토록 불쾌하고 졸도할 것 같던 마음에 청량제 같은 안정감을 턱 안겨주었습니다.
'어, 엊저녁에 큰일 치렀네? 뭘 아시나?' 놀랐습니다.
'에이, 그냥 해본 소리겠지' 삭~ 의심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법문 들으러 들어갔더니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녀석은 지껄이고, 너는 잠이 오든 안 오든?"
무슨 선 법문 같지만 저는 딱 알아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상황을 다 알고 계셨던 겁니다.
저한테 주시는 대기설법이었어요.
이렇게 다 아시는 분이 젊은 여자 탐냈을 거 같습니까 안 냈을 거 같습니까?
순간 저의 의심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렇게 물으셨어요.
"그럴 때 그 생각을 바쳤냐 안 바쳤냐?"
ㅎㅎ 바치긴 뭘 바쳐요?
정신이 쑥 빠져서 지 나름대로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그럴 때 바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변명 안 하세요. 도인은 그래요. 백은대사처럼.
저도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아, 우리 스승은 백은대사 못지않은 그런 훌륭한 분일 것이다. 변명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견디는 것.. 도인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이렇게 불신의 씨가 사라진 뒤에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누구 행동이 마음에 안 들 때, '사람 잘못 보았네~' 의심이 들 때 그 의심은 그 사람이 잘못한 행동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믿음직하게 행동하다가,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의심하고 내치게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백박사님이 그 여자하고 같이 있지만 않아도 나는 끝까지 믿었을 것이다.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나처럼 불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서 제가 깨친 게 있었습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백박사님이 여자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신을 한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제 속에는 본래 불신의 씨앗이 있었어요.
그 불신의 씨가 그러한 사건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사건'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 속에 있던 불신의 씨앗 때문에 그렇다는 거 즉 그이가 잘못했기 때문에 제가 불신했던 게 아니라 제 속의 불신의 씨가 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만일 제 마음속에 불신의 씨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스승에 대한 믿음이 청정했더라면 그런 것을 보고도 여여부동 했을 겁니다. 마음이 먼저이고 결과가 나중이로구나. 저는 이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을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피동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내 마음이 바깥의 현상을 만든다는 것을..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새롭게 알았습니다. 그 일로 저의 사고방식은 많이 변하였고 저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 출처 : 김원수 법사 생활속의 금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