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지공카드’를 발급받았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카드이다. 공식명칭은 어르신 교통카드이다. 카드 색깔도 밝은 청색이다. 공짜로 지하철을 탈 권리를 주니 많이 다니면서 젊게 살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천안․아산도 가고 춘천도 다니면서 무료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노인들을 위해 이런 좋은 배려를 해주니 새삼 대한민국이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많은 권리와 의무를 감당해 왔지만 이런 혜택을 받고 보니 애국심까지 높아지는 것 같다. 카드를 사용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첫째, 이제는 더 건강하게 살아야 하겠다. 노인들에게 지공카드를 주는 이유는 건강하게 살면서 가급적 건강보험의 혜택을 적게 보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노인의 건강은 이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전체 인구의 10%가 좀 넘는 노인들이 건강보험 재정의 30% 이상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인의 건강문제는 이제 국가적인 대과제이다. 병약한 노인이 많아져 건강보험 재정이 더 악화된다면 젊은이와의 갈등관계가 심각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근로자가 낸 보험료로 보험료를 내지 않는 노인들이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 맞는 건강 습관을 길들이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들어갈 때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자. 어깨를 쭉 펴고 팔을 크게 흔들면서 걷자.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 뇌를 자극해 치매에 덜 걸리고 창의적인 생각도 더 잘 나온다고 한다. 둘째, 이제는 어르신으로서의 책임감을 더 느껴야 하겠다. 어르신이란 뜻은 젊은이로부터 존경받을만한 행실을 하고,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심이 있어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젊은이와 후학․후손들에게 언행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는 어르신, 친절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는 어르신, 그리고 예의를 차리고 중용을 지켜 젊은이의 표상이 되는 어르신이 되어야 하겠다. 몸의 움직임은 항상 가볍고, 얼굴에는 곧 신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도 필요하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외모를 가꾸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다. 한 노인의 단정하고 단아한 모습은 노인 전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추레하고 너절한 모습은 대한민국 노인 전체의 이미지를 상하게 한다. 이런 모습은 ‘나는 당신과 교제하고 싶지 않다’라는 인상을 줘 노인의 고독과 우울을 가중시킨다.셋째, 이제는 자유롭게 살아야 하겠다. 몸을 움직이는 자유의 폭이 넓어졌으니 이제 마음도 어느 한 곳에 가두어 두지 말고 자유롭게 놔두어야 하겠다. 마음을 부자유하게 만드는 속박들, 예를 들면 미움, 원망, 완고함, 불안, 우울 등 마음이 좁은 노인의 특성으로 보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항상 경계해야 하겠다. 노인이 되면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또 귀찮게 느껴져 뭔가 적극적인 개선을 시도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외향적이었던 사람도 내향적으로 변하기 쉽다. 미래지향적이기보다 과거지향적인 경향이 높아진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지하철 타고 온양에 가서 몸과 마음의 찌든 때를 벗겨 버리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혼자서 혹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훌쩍 떠나버릴 수 있을 것이다. 고령이 되면 십중팔구는 찾아오는 질병의 고통,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야 하겠다.지공카드는 지하철 공사에는 손해나는 일일지 몰라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유익한 일이다. 혹시 손해 보는 부분이 있다면 적절히 보완해서 지속시킬 일이다. 노인들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쓰는 돈도 적지 않을 것이며, 여러 교육 혹은 복지 관련 단체들을 다니면서 배우고, 사귀고, 봉사하는 일은 많은 예산을 들여 노인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카드는 대한민국 노인의 신체적‧심리적 영양소이며,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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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