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보성 旌忠祠에 배향된 중기 유학자 안중묵(安重默) 선생 관련 자료인 [동애안선생가장등본(桐厓安先生家狀謄本)] 정서본 單冊(29張 57面)과 [동애안선생추향시제집사기(桐厓安先生追享時諸執事記] 등 일괄 자료로 일부 얼룩 외 기타 상태 모두 양호하다. <크기> 家狀 15.5×23/執事記 179×36cm <참고> 안중묵(安重黙. 1556년(명종 11)∼1607년(선조 40))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기현(基賢), 호는 동애(桐崖). 본관은 죽산(竹山[新])이다. 부친은 종사랑(從仕郞) 안의(安艤)이며, 모친은 상주박씨(尙州朴氏)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나, 7세에는 호남오현(湖南五賢)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의 문하에 들어갔다. 8세에 부친을 여읜 이후 성리학에 몰두하여, 천문‧지리‧병법‧추수에까지 정통하였다. 11세에는 「심학도(心學圖)」와 「위학변의(爲學辨義)」를 저술하여 퇴계 이황(李滉)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죽천 박광전이 퇴계 이황의 문하에 들자, 동애는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문하로 옮겨 학문을 닦았다. 병법(兵法)에도 능하여 정유재란 중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찾아오자 병론(兵論)을 전수해 주었으며, 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군량을 비축하였다. 한강(寒崗) 정구(鄭述: 1543∼1620) 등이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여 소격서참봉(昭格署參奉)‧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 등에 제수(除授)되었고, 세마(洗馬)‧직장(直長) 등의 관직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장흥(長興) 양강사(楊江祠)에 1830년(순조 30) 배향되었다가, 뒤에 보성(寶城) 정충사(旌忠祠)에 안홍강(安弘國: 1555∼1597)‧최대성(崔大晟: 1553∼1598)‧정사제(鄭思悌: 1556∼1594)와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