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장흥군 청은정(淸隱亭), 장흥읍 이우당(二憂堂) 이만원(李萬元 1651 ~ 1709)이 지어 지냈던 장자다.
김급(金汲)이 지은 시문이 19660년에 편찬한 장흥읍지에 전하고 있다.
이만원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6년(숙종 15)에 정언(正言) 1700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참판, 이조참판등을 역임하였던 문신이다.
요즘에는 싹아지(예의 범절. 버릇) 없다는 말도 사라졌다. 그것은 그 기준을 말하는 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맹자는 “우산(牛山)의 나무가 아름다웠었다. 그러나 큰 나라 읍 밖에 있어 도끼로 벌목하니 어찌 전과 같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나무가 밤낮으로 비와 이슬을 받아 새싹을 틔우지만 소와 양을 끌어다가 먹이기 때문에 저렇게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나무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本性)이겠는가. 사람의 본성에 어찌 인의(仁義)가 없겠는가. 자기의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도끼로 나무를 베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매일 도끼로 찍어 내는데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는가. 수목도 밤낮으로 자라고 아침 공기를 흡수하여 기운이 깨끗해질 때는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그 본능이 사람과 서로 비슷하여 차이가 많지 않다. 그러나 대낮의 행위가 구속하여 잃어버리게 하며, 이것이 반복되면 밤사이에 길러진 맑은 기운(夜氣)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밤사이에 길러졌던 맑은 기운을 보존할 수 없게 되면 짐승과 다름이 없게 된다. 사람들은 그 짐승과 같은 자를 보고서 그에게 본래부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사람이 가진 본래의 성정(性情)이겠는가. 공자가 ‘꼭 잡고 있으면 간직되고 놓아버리면 없어진다. 드나드는 데에 때가 없고 그 향방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孟子 ; 告子上
一敗塗地(일패도지)라는 말이 있다. 싸움에 한 번 패하여 간(肝)과 뇌(腦)가 땅바닥에 으깨어진다는 뜻으로, 여지 없이 패하여 재기불능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를 무겁게 새길대가 왔다.
'만약 절개를 굽힌다면 어찌 너를 의지하랴 苟屈其節 焉用爾倚'라고 강변했던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유배지에 가서 교살당한 절인 복재(服齋) 기준(奇遵 1492 ~ 1521)이 말하는 그 기준의 한 부분으로 또다른 정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齒)는 본래 흰 것이로되 齒之本白
물이 들면 희지 않나니 染則不白
희지 않은 것을 희게 할 수 있는 건 不白者可白
본래의 흰빛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本白者猶在
너를 닦아 이롭게 하고 利爾刮
너를 양치질을 청결히 하여 潔爾漱
본래 흰빛을 회복하고 復厥白
묵은 때를 아까워 말라 毋吝舊
頤木/德陽遺稿
문화.오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