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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뜻으로, 사물은 한껏 차면 자만심이 생기므로 손실을 초래하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말이다. 즉 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滿 : 찰 만(氵/11)
招 : 부를 초(扌/5)
損 : 덜 손(扌/10)
謙 : 겸할 겸(八/5)
受 : 받을 수(又/6)
益 : 더할 익(皿/5)
출전 : 서경(書經) 대우모편(大禹謨篇)
무슨 일이든지 가득 차면 이지러지기 마련이고 좌우를 잘 살펴 행동하면 득이 돌아온다. 사람에게도 똑 같이 해당된다. 가득한데도 욕심을 부려 거만한 행동을 보인다면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지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다면 이익을 얻게 된다. 덕을 말하는데도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것이 얕은 비유일지 모르지만 넘보지 않고 만족함을 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고 많은 선인들이 가르쳤다.
가득하면 손실을 초래하고(滿招損),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謙受益)는 이 성어는 가장 역사가 깊다. 중국 고대 문화의 원류를 담고 있다는 서경(書經)에 나오기 때문이다. 본래는 書(서)라고 하다 한(漢)나라 이후에는 상서(尙書)라고도 한 책이다.
유교에서 삼경(三經)이나 오경(五經)에 물론 빠지지 않는 이 책은 하은주(夏殷周) 시대의 정치문서를 편집한 것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국가통치의 규범이 됐다고도 한다. 요순(堯舜) 임금의 뒤를 이어 현군 우(禹) 임금이 등장하는 虞書(우서) 대우모(大禹謨) 편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임금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한 것을 적은 글이다.
순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남부지역에 살던 묘족(苗族)이 잘 다스려지지 않자 우에게 정벌하도록 임무를 내렸다. 우는 제후들과 함께 정복하러 나가면서 묘족의 우두머리가 몽매하고 무도하니 수적으로 우세한 우리가 쉽게 승리를 거둬 공을 이룰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출병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묘족의 반항은 거셀 뿐 진압은 하세월이었다.
그때 함께 간 익(益)이란 사람이 간언했다. "자만하는 자는 손해를 부르고 겸손한 자가 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입니다(滿招損, 謙受益, 時乃天道)"라며 철군하도록 했다. 우는 간언에 따라 철수한 뒤 덕과 교육으로 70일 만에 묘족들을 감화시켰다. 치수(治水)를 해결한 우임금도 초기엔 자만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성어는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비슷한 명언들과 함께 실려 있다. 그 중 '넉넉함을 알고 만족하면 평생 욕되지 않고, 족함을 모르면 부귀에도 근심만 따른다(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도 있다.
현재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낮추면 다른 사람의 존중은 따라온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일수록 절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참고]
* 명심보감 06 안분편(安分篇)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
만족할 줄을 알아 늘상 만족해 하면 종신토록(몸을 마칠 때까지) 욕되지 않을 것이요, 그칠 줄 알아 늘상 적당한 선에서 그치면 종신토록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 노자 46장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에 도가 있으면, 병마는 거름 내는 농마로 바뀌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농마도 징발되어 병마가 된다.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은 없고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故知足之足, 常足矣.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를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부족함이란 없다.
명심보감은 위의 구절에서 근거해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상호 존중과 배려가 아쉬운 세상이다. 개인 간 교류든 기업 간 거래든, 국가 간 외교든 간에 힘 있는 쪽과 약한 쪽 사이에 절실히 요구되는 명제다. 물론 서로가 잘 해야 할 것이다. 위가 아래를 업신여기는 '침하(侵下)'나 아래가 위를 깔보고 치받는 '오상(傲上)'은 모두 경계할 대목이다. 그래도 어느 쪽의 책임이 클까. 당연히 크고 힘 있는 쪽에서 먼저 배려하고 위해주는 게 순리다. 그래야 공생을 넘어 공영이 가능하다. 세상의 공의도 구현될 것이다. 결국 모두 스스로 낮아지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상서(尙書)는 '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이 더해진다(滿招損 謙受益)'고 가르치고 있다. 또 있다. 노자 도덕경은 피부에 닿는 교훈을 주고 있다. '대국은 하류이므로 세상의 교착점이요, 세상의 모성 즉 부드러움이다(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부드러움이 항상 고요함으로 부성 즉 강함을 제압하는 것은, 고요함으로 아래에 처하기 때문이다(牝常以靜勝牡以靜爲下). 그러므로 대국은 소국에 낮춤으로써 곧 소국을 취하여 따르게 하고, 소국은 대국에 낮춤으로써 곧 대국을 취하여 지지를 얻는다(故大國以下小國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則取大國).'
크고 작음의 기준은 덩치가 아니라, 내적 성숙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도리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터이다.
세상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 하마스 군 지도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표적 암살로 촉발된 분쟁이 참사를 키우고 있다. 안타깝게 양측 희생자의 상당수는 임신부, 신생아를 포함한 민간인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해결 노력이 시급하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의 자제도 긴요하다.
건방지면 큰코다친다는 태공망의 충고다. "자기가 귀하다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자기가 크다고 해서 작은 사람을 우습게 보지 말며, 자기가 힘이 세다고 해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勿以貴己而賤人, 勿以自大而蔑小, 勿以恃勇而輕敵)."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부른다
옛날 순(舜)임금 때, 중국 남쪽의 묘족(苗族)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임금은 신하 우(禹)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게 했다. 30여일 동안 작전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때 우(禹)를 보좌하던 익(益)이 이렇게 말했다. "오직 덕(德)만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도 회유(懷柔)할 수 있습니다. 자만(自滿)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謙遜)하면 이익을 받는것이 하늘의 도(道)입니다. 지극한 정성은 신(神)도 감동시키거늘 하물며 묘족이겠습니까?"
우가 그 말을 듣고 절을 하며 "그렇소"라고 하고는 군사를 철수시켜 돌아왔다. 순임금이 문교(文敎)와 덕(德)을 크게 펼치자, 묘족이 70일만에 감화를 받아 굴복해왔다.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에 있어서 무력충돌보다는 대화로 감화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한 나라의 정치도 가혹한 법을 만들어 강압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숭상하는 덕치(德治)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기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여겨, 조금만 기분 나빠도 눈을 부라리고, 한 마디 말도 남에게 지지 않고 대응하고, 한 푼도 손해 안 보고 반드시 따져 찾아내지만, 그런 사람은 사람들이 상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또 자기보다 더한 사람에게 당하게 되어 있다. 푸근하게 덕으로 남을 감싸주고 남의 입장을 이해해 주면, 다른 사람들이 그런 사람에게 감동을 받게 되고, 또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國務總理)라면. 옛날 같으면 영의정(領議政)에 해당된다. 영의정 자리를 흔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한 사람의 아래고, 만 사람의 위라)'이라 했다. 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이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임 역시 막중(莫重)하다. 공식적인 책임 뿐만 아니라 그 한 마디 말, 한 가지 행동이 모두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장래 희망이 국무총리인 청소년이 많은데, 총리의 행동은 그들이 본받을 만 해야 한다.
얼마전 물러난 국무총리는 총리 자리에 앉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언행이 영 총리답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싸늘한 눈을 부라리고 말도 표독스럽게 했다. 국회 대정부 질문하는 장소를 말싸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생활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獻身)하겠다는 사명감도 없는 것 같았다. 대통령의 전적인 신임을 받아 상당히 총리의 권한을 누렸건만 자신의 오만한 태도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갔다.
청(淸)나라 속담에, '정승된 사람은 배(腹) 속에서 배(舟)를 저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겸손한 도량을 갖춘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나라가 도덕적으로 좀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교만은 손해를 부른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이자 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書經)에는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이라는 성어가 실려 있다. '교만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은 이익을 받는다'라는 뜻인데, 이 성어를 자신의 일생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준 인물이 있다. 바로 초한전쟁의 영웅 한신(韓信)이다.
초한전쟁은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천하쟁패전이다. 치열한 전쟁에서 이 두사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군이 한신인데, 유방은 한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의 변두리 회음현의 건달이었던 한신은 진나라의 폭정에 대항하는 혁명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항우의 숙부인 항량 휘하에 있었고, 항량이 패해 죽은 후 항우 밑으로 들어갔다. 항우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해 다시 유방을 찾았고, 거기서 법을 어겨 참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방의 심복이었던 하후영과 소하의 추천을 받아 유방 휘하에서 대장군에 중용될 수 있었다. 대장군에 임명되며 올렸던 계책이 유방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함께 천하를 통일한 후 제나라와 초나라의 왕에 봉해졌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이라 할 만 하다.
한신이 회음현의 건달이었을 때의 고사이다. 회음현 지역에서 백정 일을 하던 한 청년이 한신을 깔보며 말했다. "너는 몸집이 크고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네가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나를 찔러라. 죽음이 두렵다면 내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라."
아무리 겁쟁이 비겁자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모욕이다. 하지만 한신은 한참 그를 쳐다보다가 몸을 굽혀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갔다. 이것을 본 저잣거리 사람들 가운데 한신을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빨래터의 아낙네에게 밥을 얻어먹던 한신이 "꼭 은혜에 보답하겠소"라는 말을 하자,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보답을 바라겠소?"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한신은 훗날 초나라 왕이 됐을 때 가장 먼저 저잣거리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겼던 건달을 호위무사로 삼았고, 수모를 주었던 아낙에게 천금의 상을 내렸다. 여기서 '천금으로 어려운 시절의 한끼 은혜를 갚다(一飯千金)'의 고사와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통해 더 큰 꿈을 키우다(跨下之辱)'의 고사가 나왔다.
한신은 그 건달을 만난 후 이렇게 말했다. "이자가 그 당시 나를 욕보일 때 내가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여도 나에게 아무 이름이 따르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참았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신이 가졌던 진정한 겸손의 모습이며,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 크게 높이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한신은 초나라 백성으로부터도 큰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최고의 성공을 거둔 후 청년시절의 겸손함을 잃고 만다. "장군의 공적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고, 지략은 세상에서 더 뛰어난 자가 없다"는 책사 괴통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스스로 유방보다 더 뛰어나다는 교만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한고조(유방)의 의심을 샀고, 뒤늦게 반란을 꾀하다가 자신은 물론 일족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한신이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보여준 '만초손 겸수익'의 결말, 더 높은 지위와 큰 성공을 거둘수록 반드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滿招損, 謙受益
교만하면 손해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휴일이면 가끔 청주 우암산 순환도로를 일주한다. 일주하는 동안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고, 수목 울창한 우암산의 자태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순회도로를 걷다보면 청주대학교 뒤편에 제법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소나무가 쭉 뻗어 있다.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당당하게 살아가라는듯 두 팔 벌려 활개 친다.
한바탕 큰 눈이 내렸다. 눈 내린 우암산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길은 미끄럽고, 바람이 불어 춥지만 휘황찬란한 설경은 나를 빨리 우암산으로 오라고 유혹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 우암산으로 향했다. 렌즈에 들어온 청주의 설경은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반겨주던 그 울창한 소나무가 밤새 내린 눈을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찢어지고 말았다.
호방하던 풍모는 반쪽으로 쪼그라졌고, 활개치던 모습은 초라한 물에 젖은 새처럼 볼품이 없었다. 나는 사진기를 꺼내 그 모습을 담았다. 순간 '아! 자신을 지나치게 뽐냈기에 하늘이 내린 벌인가?'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상서(尙書) 대우모(大禹謨)의 '滿招損, 謙受益' 고사가 떠올랐다.
상고시대(上古時代), 황제(皇帝) 우순(虞舜)이 묘인(苗人)들이 귀순하지 않자 우(禹)를 보내 정복하도록 지시하였다. 우(禹)가 출정 전에 군대를 모아 놓고, "현재 묘족의 통치자가 현자(賢者)를 경시(輕視)하고 소인배들을 중용(重用)해 몽매(蒙昧)하고 무도(無道)하다. 내가 순제(舜帝)의 명을 받들어 너희들과 함께 나가 저들을 토벌할 것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우리가 행동만 통일한다면 쉽게 승리를 거두어 큰 공을 이룰 것이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출병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묘족(苗族)의 반항이 더욱 거세졌을 뿐이었다. 이름을 익(益)이라 하는 사람이 우(禹)에게 "교만하면 손해가 있을 뿐이요, 겸손하면 이익이 많은 법(滿招損, 謙受益)" 반드시 덕(德)으로 사람을 복종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禹)가 이 말을 듣고 대오를 정리해 철군하였다.
우(禹)는 순제(舜帝)를 이어 중국을 다스렸던 현군이었다. 그런 우(禹)도 겸손의 미덕을 깨우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일까? 자신의 위용, 무력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없음을 간파하고 원정을 포기했던 우(禹)는 정말 현명한 인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처신하였던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혹여라도 겸손의 미덕을 상실하고 살지는 않았는가? 아마 더러는 그리했을 것이다. 우암산 순환도로의 소나무처럼. 늘 울울창창(鬱鬱蒼蒼) 멋진 모습으로만 있을 줄 알았던 그 소나무의 쇄락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겸손의 참 의미와 진정한 용기
주역(周易)은 주나라의 역서이면서 동양철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주역에서는 인과의 법칙을 밝히며, 드러나 있는 현상보다 원인이 되는 인(因)의 종자를 소중하게 여긴다.
역의 철학은 태극으로부터 음과 양이 분리되는데, 양(陽)의 괘에는 음이 많다. 가령 '진(震)'괘는 양이 밑에 하나 음이 그 위에 두 개 놓여진다. 단순히 다수로 보면 음이 더 많지만 양괘로 분류한다.
주역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종자, 곧 드러나기 이전의 상태를 주목하고 있다. 밑에 있는 양이 차츰 올라오면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마침내 양으로 변할 것 이라는 해석이다. 음괘도 마찬가지로 다양(多陽)하다. '손'괘를 보면 밑에 음효가 하나, 그 위에 양표가 2개 놓여진다. 양이 많지만 음괘다.
64개의 괘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방편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역의 철학이다. 모든 괘에는 나름대로의 길흉화복이 있다. 시비, 이해, 대소, 유무 등 일장일단이 있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그 상대성이 역철학의 원리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62괘 중에서 제일 좋은 괘를 '태(泰)'괘라고 얘기한다. 이 괘는 '지천태(地天泰)'라고 하는데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상이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정상인데, 반대로 천지가 뒤집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제일 좋은 괘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땅은 아래에 있어도 몸은 위로 올라가서 하늘을 생각하고, 몸은 위에 있어도 마음은 아래로 내려와서 땅을 생각해 준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태괘에서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으니, 지나치게 형상을 드러내면 오히려 평화가 훼손된다. 늘 삼가면서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괘마다 절대선 완전무결한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단점이나 그늘 위험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독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절대선은 겸손
그런데 아니다. 64개의 괘 중에 절대선인 괘가 꼭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겸(謙)'괘다. 겸괘에는 아무리 강조하고 드러내도 그늘이나 해독이 없는 유일 최상의 괘다. 겸손은 형통하니 군자의 지극함이 있다(謙亨 君子有終). 겸손은 높은 지위에서도 빛나고 아래에 있어도 아무리 함부로 여기지 아니하니 군자의 지극함으로 최후의 승리자다(尊而고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겸은 땅 속에 산이 있는 형상(地中有山)으로 '지산겸(地山謙)'괘라 부른다. 이는 산은 산인데 독점하지 않고 많은 것을 덜어 작은 데 보태어 수평을 유지한다. 그리고 수평 곧 땅의 밑에 산이 숨어버리는 것이 지산겸이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 하여 무조건 남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다. 밑으로 숨을 때 아무런 준비 없이 실력 없이 숨는 것은 어쩌면 비굴함일지도 모른다. 실력을 갖춘 이후에 자신을 낮추는 것, 도력이나 학덕 권세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숨어 버리는 그것이 곧 겸손인 것이다.
명심보감에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의 가르침이 있다. 지나치게 많아 넘치면 손해를 입게 되고 겸손한 곳에는 언제나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실력을 갖추고서 자신을 낮추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덕이다. 그러니 한량 없이 겸양을 실천할수록 더욱 빛나는 성취가 따를 것이다.
지산의 위 아래 괘를 바꾸면 산지(山地)가 되어 산이 평지 밑으로 숨는 게 아니고 반대로 평지 위에 돌출되어 '박(剝)'괘가 된다. 박락이란 새봄에 올라오는 새싹을 베어버리는 것이요, 박탈이란 빼앗아버리는 것이고 독점하면서 대중 앞에서 과시하는 것이다.
겸손은 진정한 용기이다.
겸이란 한량 없는 낮춤이요 숨김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조심하고 근신하며 몸을 도사리라는 것만은 아니다. 주역은 때로 과감한 추진력과 용기와 결단을 가르치기도 한다. '화풍정, 택화혁, 수풍정'괘는 혁신, 혁명을 의미한다.
공자께서 노나라 사구의 직에 있을 때 소정묘를 사형에 처한 바 있다. 불법의 인과보응에 비추어 볼 때 업보를 받을까? 당연히 인과가 있다. 그렇다면 공자와 같은 성현이 왜 그런 취사를 했을까 생각해본다.
'인과가 무서워서 옳은 일을 못하는 사람은 인과를 전혀 모르는 사람만도 못하다.' 그렇다. 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 나아가 천하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아무리 무거운 벌을 받을지언정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과가 무서워 결행하지 못하면 오히려 소인배인 것이다.
세상이 겸손을 알고 보다 겸손해 졌으면 싶다. 그리고 진정한 용기를 갖추고 늘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더욱 '지천'으로 태평한 날이 왔으면 싶다.
▶️ 滿(찰 만)은 ❶형성문자로 満(만)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만; 좌우가 같은 모양이며 평평함, 물건이 많음을 나타냄)로 이루어졌다. 滿(만)은 물이 구석구석에 가득하다, 가득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滿자는 '가득 차다'나 '가득하다', '풍족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滿자는 水(물 수)자와 㒼(평평할 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㒼자는 물이 가득 찬 두 개의 항아리를 끈으로 묶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滿자는 이렇게 물을 가득 채운 항아리를 그린 㒼자에 水자를 더해 물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滿(만)은 제 돌이 꼭 찬 것을 나타내는 말로 ①차다 ②가득 차 있다 ③가득하다 ④그득하다 ⑤풍족하다 ⑥만족하다 ⑦흡족하다 ⑧일정한 한도에 이르다, 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⑨꽉 채우다 ⑩교만하다 ⑪만주(滿洲)의 준말 ⑫모두의 ⑬아주 ⑭전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채울 충(充)이다. 용례로는 마음에 모자람이 없어 흐뭇함을 만족(滿足), 어떤 대상을 마음껏 즐기거나 누리는 것을 만끽(滿喫), 기한이 다 차서 끝남을 만료(滿了), 기한이 다 참 또는 그 기한을 만기(滿期), 가득하거나 넉넉함을 만만(滿滿), 규정한 점수에 이른 점수를 만점(滿點), 밀물로 해면이 가장 높을 때의 물을 만조(滿潮), 가슴 속에 가득 참을 만강(滿腔), 꽃이 활짝 다 핌을 만발(滿發), 가득 실은 배를 만선(滿船), 꽃이 활짝 다 핌을 만개(滿開), 보름달로 가장 완전하게 둥근 달을 만월(滿月), 해산할 달이 다참을 만삭(滿朔), 사람들로 가득 찬 온 회장을 만장(滿場), 일의 맨 나중이나 결과를 만미(滿尾),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정한 수효나 정도에 차지 못함을 미만(未滿), 살찌고 뚱뚱함을 비만(肥滿), 일이 되어감이 순조로움을 원만(圓滿), 가득 참을 충만(充滿), 어떤 현상이 어느 곳에 널리 가득 찬 상태에 있음을 미만(彌滿), 썰물과 밀물을 간만(干滿), 물이 넘칠 만큼 가득 참을 창만(漲滿), 무엇이나 그 용량에 충분히 참을 포만(飽滿), 온몸이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라는 뜻으로 아주 형편없이 엉망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만신창이(滿身瘡痍), 회장에 모인 사람의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말을 만장일치(滿場一致), 눈에 뜨이는 것이 모두 시름겹고 참혹하다는 말을 만목수참(滿目愁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쓸쓸하다는 말을 만목소연(滿目蕭然), 단풍이 들어 온 산의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만산홍엽(滿山紅葉), 마음에 차서 한껏 기뻐한다는 말을 만심환희(滿心歡喜), 던진 과일이 수레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함을 이르는 말을 척과만거(擲果滿車), 많은 사람이 다 의심을 품고 있다는 말을 군의만복(群疑滿腹), 아주 자신이 있다는 말을 자신만만(自信滿滿),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즉휴(月滿則虧), 뜻한 바를 이루어서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는 말을 득의만면(得意滿面) 등에 쓰인다.
▶️ 招(부를 초, 지적할 교, 풍류이름 소)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召(소, 초)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召(소, 초)는 신령(神靈)을 부르다, 사람을 부르는 일, 招(초)는 손짓으로 사람을 불러 오게 하는 일을 말한다. 본디 召(소)와 招(초)는 같은 글자였으나 나중에 나누어 쓰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招자는 '부르다'나 '손짓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招자는 手(손 수)자와 召(부를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召자에는 이미 ‘부르다’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다시 手자를 더한 것은 손짓하며 누군가를 부른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招(초, 교, 소)는 먼저 부를 초의 경우는 ①부르다, 손짓하다(초) ②묶다, 결박(結縛)하다(초) ③얽어매다, 속박(束縛)하다(초) ④구하다(초) ⑤나타내다, 밝히다(초) ⑥흔들리다(초) ⑦몸을 움직이다(초) ⑧과녁(초) ⑨별의 이름(초) 그리고 지적할 교의 경우는 ⓐ지적하다(교) ⓑ걸다, 게시하다(교) ⓒ들다, 들어 올리다(교) ⓓ높다, 높이 오르다(교) 그리고 풍류이름 소의 경우는 ㉠풍류(風流)의 이름(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를 소(召), 읊을 음(吟), 부를 호(呼), 부를 창(唱), 부를 환(喚), 부를 징(徵), 맞을 요(邀), 부를 빙(聘), 읊을 영(詠)이다. 용례로는 불러 옴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을 초래(招來), 청하여 불러 들임을 초청(招請), 예를 갖춰 불러 맞아 들임을 초빙(招聘), 사람을 불러서 대접함을 초대(招待), 혼을 부름을 초혼(招魂), 불러서 위로함을 초안(招安), 불러서 이르게 함을 초치(招致), 적을 타일러서 항복하도록 함을 초항(招降), 자꾸 흔들림이나 이리저리 헤맴을 초요(招搖), 불러서 권유함을 초유(招誘), 재판 사건에 관계자를 불러 들이던 서류를 초체(招帖), 여럿 속에서 뛰어남을 초군(招軍), 빈객을 부름을 초빈(招賓), 사위를 맞음을 초서(招壻), 죄인을 불러 들여 심문함을 초문(招問), 남을 자기 집에 불러 들여 함께 삶을 초접(招接), 인재를 불러 들여 뽑아 씀을 초탁(招擢), 스스로 그러한 결과가 오게 함을 자초(自招),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사실을 진술하도록 하는 심문을 문초(問招), 검시관이 받은 죄인의 진술을 검초(檢招), 죄인이 신문에 대하여 함부로 꾸며서 아무렇게나 횡설수설 대답하는 진술을 난초(亂招), 다시 문초함을 갱초(更招), 임금의 명령으로 신하를 부름을 명초(命招), 문초에 복종하여 죄상을 털어 놓음을 복초(服招), 역적의 진술 조서를 역초(逆招), 예를 갖춰 불러 맞아 들임을 빙초(聘招), 어떤 모임에 오기를 청하는 문권을 초대권(招待券), 손님을 초대하여 베푸는 잔치를 초대연(招待宴), 초대하는 뜻을 적어서 초대받을 사람에게 보내는 글발 또는 초대하는 뜻을 적은 편지를 초대장(招待狀),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초청하는 뜻을 담은 서신을 초청장(招請狀), 사람을 부르는 신호로 울리는 종을 초인종(招人鐘), 전사 또는 순직한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초혼제(招魂祭), 정원 외의 사람으로서 외부에서 초청된 교수를 일켣는 말을 초빙교수(招聘敎授), 외부의 강사를 불러서 학술이나 기술 따위를 설명하여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초청강의(招請講義), 남의 이목을 끌도록 요란스럽게 하며 저자거리를 지나간다는 뜻으로 허풍을 떨며 요란하게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초요과시(招搖過市), 죄상을 낱낱이 자백함을 일컫는 말을 개개복초(個個服招), 불러 오고 불러 감을 일컫는 말을 호래초거(呼來招去), 심중의 슬픈 것은 없어지고 즐거움만 부른 듯이 오게 됨을 이르는 말을 척사환초(慼謝歡招) 등에 쓰인다.
▶️ 損(덜 손)은 ❶형성문자로 损(손)은 간자(簡字), 扻(손)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員(원, 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員(원, 손)은 물건의 수, 혹은 둥근 것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損자는 '덜다'나 '줄이다', '감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損자는 手(손 수)자와 員(수효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員자는 '인원'이나 '수효'라는 뜻을 갖고 있다. 損자는 이렇게 '수효'를 뜻하는 員자에 手자를 결합한 것으로 손으로 인원을 덜어낸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수량이 감소했다는 것은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損자는 '잃다'나 '손해를 보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損(손)은 손해(損害)의 뜻으로 ①덜다, 줄이다 ②줄다, 감소(減少)하다 ③잃다, 손해(損害)를 보다 ④해(害)치다, 상하게 하다 ⑤헐뜯다, 비난하다 ⑥낮추다, 겸손(謙遜)하다 ⑦64괘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덜 감(減), 덜 제(除), 덜 생(省),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할 가(加), 더할 증(增), 얻을 득(得), 더할 첨(添), 오를 척(陟), 오를 등(登), 더할 익(益)이다. 용례로는 가지고 있거나 누릴 수 있는 물질이나 행복 등을 잃거나 빼앗겨 좋지 않게 된 상태를 손해(損害), 축나서 없어짐이나 손해를 봄을 손실(損失), 충돌하거나 떨어지거나 깨지거나 상하거나 하여 손실이 되거나 손실이 되게 함을 손상(損傷), 손실과 이익으로 재산의 덜림과 더해짐을 손익(損益), 손상하고 파괴함을 손괴(損壞), 손해난 돈을 손금(損金), 자연의 재앙으로 인한 농작물의 손실에 따라서 전세의 율을 낮추어 매기는 일을 손분(損分), 군사가 규율이나 명령을 위반하였을 경우에 근무 일수를 삭감하는 일을 손도(損到), 기력이나 원기가 감손함을 손섭(損攝), 잘 되고 못된 농작물의 작황을 손실(損實), 심한 자극으로 기운이 상함을 손기(損氣), 남의 명예를 떨어뜨림을 손명(損名), 사귀어서 이롭지 못하고 해가 되는 벗을 손우(損友), 헐거나 깨뜨리어 못 쓰게 만듦을 훼손(毁損), 깨어져 못 쓰게 됨을 파손(破損), 부족이나 손실을 휴손(虧損), 더럽히고 손상함을 오손(汚損), 온통 당하는 손해를 전손(全損), 축이 나거나 손해가 남을 결손(缺損), 매매의 결산을 할 때의 차액의 손실을 차손(差損), 집안 명예의 손상이나 치욕을 가손(家損),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듦을 모손(耗損), 텅 비고 상함을 허손(虛損), 무너뜨려 손해를 입힘을 괴손(壞損), 가뭄으로 말미암아 입는 손해를 한손(旱損), 덜리어 손해가 됨을 감손(減損), 손톱으로 긁어서 상처를 냄을 조손(抓損), 사귀면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친구라는 뜻으로 무슨 일에나 안이한 길만을 취하는 사람과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과 입에 발린 말 뿐이고 성의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손자삼우(損者三友), 좋아해서 해로운 일 세 가지로서 교만하고 사치함을 좋아하는 일과 편안하게 놀기를 즐기는 일과 잔치를 베풀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을 손자삼요(損者三樂), 윗사람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아랫사람을 이롭게 함을 이르는 말을 손상익하(損上益下), 아랫사람에게 해를 입혀서 윗사람을 이롭게 함을 이르는 말을 손하익상(損下益上),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의 제물을 강제로 빼앗음을 이르는 말을 손상박하(損上剝下), 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깎는 일을 이르는 말을 명예훼손(名譽毁損) 등에 쓰인다.
▶️ 謙(겸손할 겸, 혐의 혐)은 ❶형성문자로 谦(겸)은 간자(簡字), 嗛(겸), 嫌(겸), 慊(겸)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자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兼(겸)으로 이루어졌다. 자기를 미흡한 자라고 말하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謙자는 '겸손하다'나 '겸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謙자는 言(말씀 언)자와 兼(겸할 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兼자는 벼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아우르다'나 '겸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격과 소양이 두루 갖춰진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말을 공손하게 한다. 그래서 謙자는 이렇게 '겸하다'라는 뜻을 가진 兼자와 言자를 결합해 '말에 인격과 소양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라는 의미에서 '겸손하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그래서 謙(겸, 혐)은 ①겸손(謙遜)하다 ②겸허(謙虛)하다 ③사양(辭讓)하다 ④공경(恭敬)하다 ⑤육십사괘(六十四卦)의 하나, 그리고 ⓐ혐의(혐) ⓑ의심하다(혐) ⓒ꺼리다(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겸손할 손(遜),사양할 양(讓)이다. 용례로는 겸손하고 공경하는 모양을 겸겸(謙謙),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춤을 뜻하는 말을 겸공(謙恭), 육십사괘의 하나인 겸괘(謙卦), 겸손하고 조심성이 많음을 겸근(謙謹), 겸손한 덕을 겸덕(謙德), 겸손하고 청렴함 겸렴(謙廉), 자신을 겸손하여 낮춤을 겸비(謙卑), 겸손하게 삼감을 겸신(謙愼), 겸손한 태도로 사양함을 겸양(謙讓), 겸손한 말을 겸어(謙語), 겸손히 일컬음을 겸칭(謙稱), 겸손한 태도로 어려워함을 겸탄(謙憚),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을 겸하(謙下),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 겸허(謙虛), 겸손하고 온화함을 겸화(謙和), 겸손하고 말이 없음을 겸묵(謙默), 겸손한 말을 겸사(謙辭), 남을 대할 때에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제 몸을 낮춤을 겸손(謙遜), 겸손하게 사양하고 물러감을 겸퇴(謙退), 지나치게 격렬함을 과경(過謙), 스스로 자기를 겸손하여 사양함을 자경(自謙), 공로가 있으면서 겸손함을 노경(勞謙), 공경하고 겸양함을 공경(恭謙), 근로하고 겸손하며 삼가고 신칙하면 중용의 도에 이른다는 말을 노겸근칙(勞謙謹勅), 겸손하게 사양하는 미덕을 이르는 말을 겸양지덕(謙讓之德), 언제나 거만하면 손해를 보며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만초손겸수익(慢招損謙受益) 등에 쓰인다.
▶️ 受(받을 수)는 ❶회의문자로 또 우(又; 오른손, 또, 다시)部와 爪(조; 손), 민갓머리(冖; 덮개, 덮다)部의 합자(合字)이다.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주고 받는 모양으로, 주는 것도 받는 것도 受(수)였으나 나중에 授(주다)와 受(받다)로 나누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受자는 '받다'나 '얻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受자는 爫(손톱 조)자와 冖(덮을 멱)자,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受자를 보면 舟(배 주)자 위아래로 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에서 물건을 건네주거나 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갑골문에서의 受자는 '받다'나 '주다'의 구별이 없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受자는 '받다'라는 뜻으로 扌(손 수)자가 더해진 授(줄 수)자는 '주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受(수)는 ①받다 ②거두어 들이다, 회수하다 ③받아들이다, 받아들여 쓰다, 배우다 ④얻다, 이익을 누리다 ⑤주다, 내려 주다, 수여하다 ⑥담보하다 ⑦응하다, 들어주다 ⑧이루다 ⑨잇다, 이어받다 ⑩등용하다 ⑪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느릴 령/영(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울 필(拂), 줄 수(授), 보낼 송(送), 줄 급(給), 줄 여(與)이다. 용례로는 남의 문물이나 의견 등을 인정하거나 용납하여 받아 들이는 것을 수용(受容), 요구를 받아 들여 승낙함을 수락(受諾), 우편이나 전보 따위의 통신을 받음을 수신(受信),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음을 수령(受領), 상을 받음을 수상(受賞), 남으로부터 움직임을 받음이나 작용을 받음을 수동(受動), 강습이나 강의를 받음을 수강(受講), 남에게 모멸을 당함을 수모(受侮), 학업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음을 수업(受業), 은혜를 입음을 수혜(受惠), 암수의 생식 세포가 서로 하나로 합치는 현상을 수정(受精), 요구를 받아들여 승낙함을 수낙(受諾), 받음과 치름을 수불(受拂), 재난을 당함이나 어려운 일을 당함을 수난(受難), 정권을 이어받는 것을 수권(受權), 물건이나 권리를 넘기어 받음을 인수(引受), 받아 들임을 접수(接受), 군말 없이 달게 받음을 감수(甘受), 입은 은혜가 그지없음을 일컫는 말을 수은망극(受恩罔極), 왕위에 오름을 일컫는 말을 수명어천(受命於天),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업무 따위를 넘겨받고 물려줌을 이르는 말을 인수인계(引受引繼),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일컫는 말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본분의 임무를 어기고 부정한 청탁을 받으며 뇌물을 받아 재산 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일컫는 말을 배임수뢰(背任受賂), 장물을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둘 다 죄가 같다는 말을 여수동죄(與受同罪) 등에 쓰인다.
▶️ 益(더할 익, 넘칠 일)은 ❶회의문자로 물 수(水=氵, 氺; 물)部와 皿(명)의 합자(合字)이다. 그릇 위로 물이 넘치고 있는 모양으로, 넘침의 뜻에서 더함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益자는 '더하다'나 '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益자는 '더하다'나 '유익하다'라고 할 때는 '익'이라 하고 '넘치다'라고 할 때는 '일'로 발음한다. 益자는 皿(그릇 명)자와 水(물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지금은 水자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갑골문에 나온 益자를 보면 皿자 위로 水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물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益자의 본래 의미도 '(물이)넘치다'였다. 그러나 넘치는 것은 풍부함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후에 '더하다'나 '유익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益자가 이렇게 '더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다시 水자를 더한 溢(넘칠 일)자가 '넘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益(익, 일)은 (1)익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더하다 ②이롭다, 유익하다 ③돕다, 보조하다 ④많다 ⑤넉넉해지다, 풍부해지다 ⑥진보(進步)하다, 향상(向上)되다 ⑦상으로 주다 ⑧가로막다 ⑨이익(利益) ⑩괘(卦)의 이름 ⑪성(姓)의 하나 ⑫더욱, 한결 ⑬점점, 차츰차츰, 그리고 ⓐ넘치다(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로울 리(利), 더할 가(加), 더할 증(增), 더할 첨(沾), 더할 첨(添),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다. 용례로는 갈수록 더욱 심함을 익심(益甚),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된 것을 이익(利益),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이익을 거두어 들임을 수익(收益),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실제의 이익을 실익(實益), 사회 공중의 이익을 공익(公益), 뺄 것을 빼고 난 나머지의 이익을 차익(差益), 더하여 늘게 함을 증익(增益), 이익을 얻음을 수익(受益), 편리하고 유익함을 편익(便益), 갈수록 더욱을 거익(去益), 이롭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음을 무익(無益), 보태고 늘여 도움이 되게 함을 보익(補益), 중생을 도의 길로 이끌어 이롭게 함을 화익(化益), 덧붙이거나 보탬을 부익(附益), 이익을 골고루 나누어 받음을 향익(享益), 이익이 되지 않음을 불이익(不利益), 총이익 중에서 영업비나 잡비 등 총비용을 빼고 남은 순전한 이익을 순이익(純利益),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겸수익(謙受益),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 짐을 빈익빈(貧益貧),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됨을 부익부(富益富), 이익을 얻은 사람을 수익자(受益者), 수익한 돈을 수익금(收益金), 이익으로 남은 돈을 이익금(利益金), 환율이 변동할 때 생기는 이익을 환차익(換差益),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노익장(老益壯), 사람이 좋아하여 유익한 세 가지 곧 예악을 적당히 좋아하고 남의 착함을 좋아하고 착한 벗이 많음을 좋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익자삼요(益者三樂), 사귀어 자기에게 유익한 세 부류의 벗이라는 뜻으로 정직한 사람 친구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익자삼우(益者三友),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을 이르는 말을 노당익장(老當益壯), 책을 펴서 읽으면 반드시 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개권은 책을 펴서 읽는 것으로 독서를 권장하는 말을 개권유익(開卷有益),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을 노익장(老益壯), 곤궁해 질수록 그 지조는 더욱 굳어짐을 이르는 말 또는 나이가 들었어도 결코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이르는 말을 궁당익견(窮當益堅),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건국 시조인 단군의 건국 이념을 이르는 말을 홍익인간(弘益人間), 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백해무익(百害無益), 말을 하여 보아야 소용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언지무익(言之無益), 윗사람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아랫사람을 이롭게 함을 일컫는 말을 손상익하(損上益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