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과 춘천 경계의 산, 몽가북계를 종주하며 억새와 햇살에 취하다
1. 일자 : 2010. 9. 25(토)
2.
장소 : 몽덕산(690m), 가덕산(858m), 북배산(867m), 계관산(736m)
3.
행로 및 시간
[홍적고개(09:30) -> 몽덕산(10:32, 690m) -> 납실고개(10:55, 가덕산 1.5km) -> 740삼거리(11:12) -> 가덕산(11:30, 858m, 북배산 2.5km) -> 삿갓봉 갈림(11:32) -> 전명골재(12:00) -> 퇴골고개(12:12) -> 헬기장(12:25) -> 북배산(12:42, 857m, 계관산 4km) -> 갈밭재(13:26, 계관산 2.5km) -> 자라바위(13:43) -> 고목나무(13:51) -> 싸리재(13:56, 계관산 1.2km) -> 이정표(14:20, 계관산 400m) -> 계관산(14:36) -> (험로, 가파른 능선) -> 싸리재 마을회관(14:50]
4. 동행 : 홀로, 안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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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가북계 산행을 준비하며 >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일주일여를 원없이 편히 쉬고 그 마지막 날에 다시 산을 찾으려 한다. 행선지는
가평과 춘천의 경계에 있는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종주하는 코스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니 산은 두 시도만을
경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와 경기도를 구분한다. 산이 인간이 사는 경계를 나누는 현장을 다시금
경험한다. 4개 산의 종주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북배산 말고는 듣도 보고 못한 산들이다. 북배산도 언젠가 잡지에서 다른 산을 연구하다 우연히 얻어 들은
이름으로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간의 내 산행 패턴은 가고픈 행선지를 정하고, 그곳을 안내하는 산악회를 찾아 나서거나 없으면 차를 몰아 가는 것이거나 혹은 안내산악회가 추천하는 100대 명산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금주는 추석 명절 탓인지
안내산악회가 추천하는 산은 설악산, 지리산 일색이다. 오랜
연휴에 장거리 산행에 사람이 몰리는 당연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산행 코스를 점검해 보니, 화악산의 지맥인 이 산들은 대부분 방화선(防火線)을 따라 길이 나 있고, 억새로 유명한 코스인데, 특히 억새가 한창인 가을에 걷기에 좋은 산이라 한다. 산행의 거리는
몽덕산 2.5km, 가덕산 4.8km, 북배산 7.3km, 마지막 계관산까지는 11.3km. 하산길을 포함하면 15km 거리이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이다.
<
희망사항
>
생소한 산을 행선지로 정하고
보니, 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걱정이 앞선다. 한 번에
4곳의 산을 경험한다는 것은 행운이고 쉽게 오지 않을 기회다. 지난 5년간 기껏해야 100여개의 산을 다녀온 것과 비교해 보변 파격적인
숫자의 더함이다.
계절은 어느덧 억새가 멋드러진 계절을 향해 나아 가고 있다. 몽가북계
종주는 억새로 유명한 코스인데 계절이 아직 일러, 억새의 흔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이 많은 동네의(참고는 가평에는
52개의 산이 있다 한다.) 4개의 서로 다른 산에서 저마다의 산의 개성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홍적고개 가는 길 >
새벽, 나서는 길의 공기가 서늘하다. 여름의 무더운 기세도 계절의 변화에는
맥을 못 추나 보다. 7시 30분 복정역에서 버스에 올랐다. 45인승 버스도 모자라 봉고차 한 대가 추가로 따라 붙었다. 스마트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는다. 살 때는 망설였는데 갈수록 스마트폰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요즈음 실감하고 있다.
한참을 졸다 가평 초입 상천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안전산악회 만의
고객 서비스이다. 주차장 한켠에서 식사를 준비하는데 관리인의 제지가 심하다. 상천휴게소는 기독교 분파의 하나인 ‘에덴성회’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외진 곳에 위치한 것을 생각하면 제법
큰 규모로 고속도로 휴게소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스포츠 센터까지 있는 것으로 보면 규모가 더 커 보인다. 에덴성회란
곳은 일반인들이 말하는 이단이든 아니든 교세가 상당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완장찬 관리인의 기세도
등등하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뚝딱 아침을 먹고 잠시 주위를 살피다 보니, 오늘
등산의 들머리 홍적고개에 도착했다(09:30). 중간에 식사시간 30분을
포함해도 체 2시가이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오르막 등산로에
올라 붙는다.
<
홍적고개에서 가덕산 >
홍적고개에서 종주 산행의
첫 목표인 몽덕산까지는 2.5km이다. 몽덕산의 고도가 690m이니 약 400m를 치고 올라야하는 만만치 않은 행로다. 작은 고개를 넘자 맞은편 산허리에 구름이 몰려든다. 장관이다. 전문 사진가들이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있는 것을 보니 아는 사람은 아는 명소인가 보다. 길이 방화선을 따라 길게 나 있다. 길가에 쑥부쟁이인지 구절초인지
흰 꽃이 보이더니 그 옆에는 며느리밥풀꽃처럼 보이는 분홍빛 꽃이 만발해 있다. 기대치 않은 야생화 잔치에
잠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길은 넓어 걷기에 편한데 곳곳에 오르막이 있어 힘에 껍다. 공기는 서늘한데
햇살은 따갑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시기이다. 1시간 동안의 오르내림 끝에 몽덕산 정상에 도착했다(10:32).
몽덕산 정상은 널찍한 평지다. ‘덕’이란 말은 본디 ‘언덕’이란
말이니 몽덕산은 꿈을 꾸는 언덕이란 뜻일 것이다. 지나온 북쪽 하늘 저편으로 화악산과 굽이진 주변 산세가
아득하다. 소나무 뒤로 구름이 떠다니는 음영이 짙은 산을 바라다 보는 기분이 그만이다.
< 몽덕산에서 >
몽덕산에서 또다른 언덕의 산 가덕산까지는 2.3km, 약 200m의 고도를 이겨야하는 1시간 거리의 길이다.
< 며느리밥풀꽃 / 산부추 / 꽃과 나비 >
방화선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억새밭의 키가 훌쩍 자라 있다. 내 키를 넘는 곳도 많다. 아직은 푸른 억새가 대다수이지만 간혹 누렇게 익은 억새의 모습도 보인다. 햇살을
받아 넘실대는 억새의 춤사위는 낭만 그 자체이다. 햇살이란 놈이 끝없이 나를 쏘아보며 앞서 가고 있다. 눌러 쓴 모자 틈으로 햇살의 기세가 거세게 피부에 와 닿는다.
< 억새의 전경 / 구름과 산 >
11시가 조금 못미처 납실고개에 도착했다(10:55). 오르내막이 반복되는
길에 억새는 점점 더 밀도가 쫌쫌해진다. 길가에 보랏빛 둥근 꽃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산부추꽃이다. 언덕에 올라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군부대 통신탑이 선명한 화악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화악지맥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숲에 가려 있던 동쪽의 전망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산 아래 마을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11시 30분 가덕산에 도착했다. 정상은 역시 넓다란 공지다. 햇살이 피할곳이 없어 사진만 찍고 이내 자리를 뜬다. 2번째 산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 가덕산에서 / 억새밭 >
<
가덕산에서 계관산 >
가덕산에서 북배산까지의 거리는 2.5km, 초입 흰 꽃 위로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말 그대로
꽃과 나비의 어울림이다. 좌측으로 춘천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다. 호수들
뒤편으로 시가지로 펼쳐져 있고 다시 그 뒤편으로 산들의 파노라마, 햇살과 구름의 어울림도 근사하다.
삿갓봉 갈림을 지나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 한동안 계속된다. 12시 전명골재를 지난다. 북배산까지는 아직 1.5km가 남았다. 멋진 고목이 서 있는 퇴골고개를 지난다. 여전히 길은 오름내리막의
반복이다. 좌측 춘천 방향의 전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 가덕산에서 북배산 가는 길의 전경 >
힘겹게 북배산에 도착했다(12:42). 산행전 오늘 오르는 4개 산 중 유일하게 사전에 이름을 알고 있는 산이었는데 정상의 표지석은 제일 초라하다. 게다가 그늘이 없다. 정상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서 산악회 일행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나는 억새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조금
더 내려가 과일로 간식을 먹는다. 길을 갈수록 춘천 방향의 전경은 더욱 선명하고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의
빛깔도 점점 더 노랗게 물들어 간다. 북배산에서 계관산까지는 4km 체력의
고갈을 고려하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중간의 싸리재가
긴 산행의 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 북배산 전경 >
< 계관산 가는 길의 춘천 전경과 억새 >
너무나 맑은 날씨에 싱그러운 공기, 반겨주는 들풀, 들꽃이
있기에 긴 산행길이 지루하지 않다. 1시 43분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바위지대를 지난다. 자라바위란 곳이다. 제법 가파르다. 거기서 머지 않은 곳에 고목나무 한 그루가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끝을 다해 가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2시가 다 되어 싸리재에 도착했다(13:56). 계관산까지는 1.2km 거리가 남았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다시 언덕을 올라서자 전방에
가야할 계관산의 모습이 보인다. 자그마한 봉우리를 3-4개는
넘어야겠다.
< 싸리재에서 / 화악능선 전경 >
계관산 가는 길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굽이를 서너개 넘아야 했고 오르막의 길이도 유난히 길어 보였다. 계관산까지 400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다 왔다 했는데 거기서도 길이 멀었다. 게다가
정상을 그냥 지나쳐 다시 돌아와서야 계관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14:36). 계관산, 닭의 벼슬 모양을 닮아 명명된 산일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다 보는
춘천 방향의 전경이 일품이다. 마치 바로 눈 아래 마을이 있는 듯했다.
이제까지 5시간의 긴 여정이 헛되지 않음을 풍관은 말해 주고 있다.
< 계관산에서의
풍경 >
<
계관산에서 싸리재 마을 >
하산 길 초입 10여분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된비알이다. 습기찬 길에 돌도
많아 주의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듯하다. 정상에서 보다 하산길에 왜 이산의 이름이 계관인지 알
수 있겠다. 닭의 버슬 모양으로 길의 울퉁불퉁함이 매우 심하다. 이러한
길 사정은 중간에 잠시 순해지더니 계곡을 만나는 곳까지 1시간여 변하지 않고 거칠게 내닿고 있다. 지난 주 설악산에서 마등령 하산 길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뭐 이런 길이 다 있어 하고 욕이 나올 정도로 거칠
길이다.
긴 하산길 끝에 계곡을 만난다. 세면도 하고 머리도 하고 옷도 갈아 입는다. 나름 집으로 향하는 꽃단장을 한다. 6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4개의 산을 하루에 종주하고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를 벗삼아, 쫓아오는
햇살과 싸워가며 내 발은 오늘도 큰 일을 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