總督府 日本 明治四十四年 六月三日 朝鮮佛敎를 保存 名稱下에서 寺刹令을 頒布엿도다 此에 對야 或者 曰 朝鮮佛敎 歷史上으로던지 古蹟上으로던지 人民의 感化上으로던지 何方面으로 見지라도 朝鮮과 分離치 못 宗敎임으로 佛敎를 利用야 民心을 誘引코져 이라고 다 此 實地 內容을 觀察치 못 談論이라 適當게 말자면 朝鮮佛敎를 保存코져 이 아니라 朝鮮 寺刹을 保存코져 이라 것이 可도다 佛敎와 寺刹과는 一塊物로 看做 것은 아니니 朝鮮僧侶가 永久히 寺刹을 保有케 되면 此를 朝鮮佛敎의 寺刹이라 려니와 朝鮮僧侶가 永久히 保有케 되지 못 以上에는 朝鮮佛敎의 寺刹이 아님으로 因야 設使 朝鮮佛敎 滅亡지라도 寺刹은 保存을 得니 由是로 寺刹令은 朝鮮佛敎를 爲야 制定 것이 아니고 다만 寺刹을 爲야 規定 것이니 是故로 次에 寺刹令의 眞相을 記錄지니라 寺刹令의 眞相을 知코져 진대 寺刹令의 現文을 解釋키 前에 先야 寺刹令을 議定 當時 彼等의 議論如何에 就야 觀察치 아니치 못지라 寺刹令을 議定 當時에 彼等의 議論이 三派에 分야 不一엿다 第一論者曰 朝鮮佛敎 現今狀態된 것이 三層屋上에셔 墜落 鷄卵과 同樣으로 衰殘엿스니 此에 對야 保管 餘地가 無니 自盡自滅토록 放棄 것이 良策이라 고 第二論者曰 設使 佛敎 衰敗다 지라도 寺刹의 現有財産은 不少지라 此를 放棄 것은 不相當 事이니 此를 日本各宗에 分屬야 管理케 이 可타 고 第三論者曰 衰退 佛敎僧侶일지라도 自上繼承야 來 法脉(僧譜)이 有거늘 此를 一朝에 中斷야 日本 各宗에 分屬 時 朝鮮僧侶의 不平을 抱 것은 定 事이니 僧侶로 여곰 不平을 抱케 야 萬一의 不測之事가 生케 은 此非手段이니 特別히 法令을 定야 寺刹을 保管이 良策이라 여스니 此를 觀면 萬一 寺刹에 由來財産이 無얏스면 第一論者의 意見이 採用되엿슬지오 또 萬一 僧侶의 自上繼承 法脉이 無얏스면 第二論者의 意見이 採用될 것은 分明 事이라 그럼으로 第一論者의 意見이 不採用될 時 財産을 重視 思量이 반시 生얏슬터이오 第二論者의 意見이 不採用될 時는 반시 僧侶를 不必要 物로 憎視엿슬터이라 財産을 重視고 僧侶를 憎視은 卽 財産은 保管고 僧侶 自亡케 고져 것이라 此가 卽 第三論者의 意見으로셔 採用된 寺刹令의 目的이라 지니라 次에 寺刹令의 現文에 就야 解釋노라
一. 不許寺剎의 新建 寺刹令 第一條에 寺刹를 廢止 移轉 倂合 方法은 規定엿스되 寺刹을 新建 方法은 規定치 아니엿스니 此 寺刹까지도 滅亡코져 것이라 世界上에 何物을 勿論고 故者의 謝滅 代에 新者의 繼生이 無면 其物의 一種은 此世上에 永滅될 것은 決定 事이니 假使 一年에 一寺刹이 廢止되고 一寺刹이 新建된다 지라도 此 朝鮮寺刹이 如前保管이라고 거시나 比前 發展이라고 稱키 難거늘 寺刹令 頒布後 九年之間에 廢止된 寺刹數 五十所에 不下나 新建寺刹은 法令의 不許를 因야 一個所도 無얏스니 如上比例로 計算면 二百年 以內에 반다시 朝鮮寺刹은 盡滅되리라 지로다
二. 財産의 監檢 寺刹令第五條에 屬 土地, 建物, 佛像, 石物 其他 貴重品은 朝鮮總督의 許可를 受치 아니면 處分을 不得이라 엿스니 從今으로 비록 寺刹 財産이라도 僧侶의게 少分權利도 無 官有財産과 同樣으로 成엿도다 彼等은 朝鮮僧侶의 任意費用 弊端을 豫防기 爲이라 飭言나 此는 杞憂에 不過도다 朝鮮寺刹의 財産은 何寺를 勿論고 其寺의 周密 規模的으로 集合 僧侶의 祭位畓 佛粮畓 等으로 成立 것이라 總督府의 監檢을 不待야도 自己들이 誠心으로 積立 財産을 自己가 無端히 濫費 理가 엇지 有리오 此 다못 寺刹財産 管理權을 掌握코져 奸計에셔 起因 것이오 此財産管理權이 總督府로 歸 同時에 僧侶의게 歸來 것 이 有도다 同令 第六條에 前條의 規定 違反 者 三年 以下의 懲役 又 三百圓 以下 罰金에 處다 엿스니 僧侶 自己가 集合 財産으로 因야 一生의 身分을 亡케 되 處罰이 卽 이것이라 또한 各本寺 寺法中에 罰金 百圓 以上에 處이 된 者 僧侶된 分을 褫奪다 엿스니 財産處分으로 因야 僧侶를 處罰고 處罰된 後에 僧侶의 分을 奪 것은 卽 財産은 保管고 僧侶는 滅亡케 精神點이니라
三. 統轄分의 減滅 日本佛敎 各宗이 分立야 宗派數가 五十餘種인 故로 僧侶를 統轄 管長도 五十餘人이오 宗務院도 五十餘個所이라 此를 統治 最大 一機關은 無며 設使 五十餘管長을 代表 一機管이 잇다 지라도 此 聯合制度에 不過거니와 朝鮮은 不然야 新羅時에 大書省과 大國統이 各本寺 住持 以上에 有야 全國僧侶와 全國寺刹을 統轄엿고 高麗時에 兩街僧錄司와 都僧統 都國統이 有엿고 李朝 初에 兩宗都會所와 兩宗判事가 有야 寺刹 及 僧侶를 統轄엿스니 朝鮮佛敎 數十宗派가 分立되엿던 羅麗時代에도 尙히 統轄制度를 用고 聯合制度 用치 아니엿거늘 寺刹令 施行規則에 三十本寺를 分定야 朝鮮僧侶로 하여곰 團結力을 減無케 엿도다 此 李朝初 儒生의 佛敎에 對여 減宗歸一을 主張과 方法은 비록 反對方向을 取여슬지라도 佛敎를 滅亡코져 目的은 同一도다 李朝初에 在야 佛敎가 아직 盛 時代라 各宗派가 分立야 眞理를 爭硏며 敎化를 互宣 것이 佛敎의 勝進 原因이라 야 此를 憂慮 儒生들은 문득 佛敎減宗을 主張엿고 今에 朝鮮佛敎 相對 爭進力이 絶乏 單純 宗派로셔 萬一 日本으로 渡來 各宗佛敎를 對 時에 儼然 大團體를 成 것은 何人이던지 斷定 事이라 此를 念慮 總督府에셔 宗旨도 同一고 制度 儀式 法脉이다 同一 純然 一宗內에셔 强作야 三十本山이라 것을 定야 僧侶로 하여곰 分諍을 惹起케 하엿도다
四. 寺刹住持의 相續 日本寺院의 住持相續法은 師資相續과 法類相續과 招待相續이라 三種方法이 잇스니 師資相續이라 것은 後任住持를 定 時에 前住持된 者의 法子 卽 弟資로써 반다시 定 法이오 法類相續이라 것은 前住持된 者의 門旅 卽 法類로 반다시 定 法이오 招待相續이라 것은 他人의 弟資를 招來야 前住持의 弟資를 成 後에 住持가 되 法이라 如上 三種法中에셔 師資相續 寺院이면 其寺院 廢止기까지 師資相續法을 用고 法類相續과 招待相續으로 寺院도 亦然야 不易典之方法이어니와 朝鮮寺刹住持의 相續法은 此와 大不同야 一宗僧侶中에셔 相當 資格이면 選用 故로 一寺刹 住持로셔 或 師資相續될 時도 有며 或 法類相續될 時도 有야 一定之法에 局치 아니야 所謂 師資相續이니 法類相續이니 名詞도 朝鮮寺刹에 無거늘 寺刹令 後에 住持를 選定 際에 日本에셔 行는 三種法을 朝鮮寺刹에 施行으로 僧侶의 不平를 永息 日을 見키 難 形勢로다
日本이 韓國佛敎에 對 壓迫
金剛山 僧侶
申尙玩1. 大韓僧侶의 勢力
大韓
佛敎가 李朝時代에 入
야 儒敎勢力의 壓迫으로 羅麗時代와 如
全盛을 減
엿스나 然이나 一般社會에 對
潛勢力은 依然히 維持
얏
니 上으로 皇室, 下로 庶民에 及
기까지 佛陀의 自體와 其敎理와 僧侶의 言行을 崇信
엿도다 故로 僧侶
時代的 精神을 能히 左右
야 一般社會의 精神을 支配
엿스며 數千年來로 皇室의 護法과 人民의 崇奉으로 因
야 全國의 獨步的 大地主될 만
財産을 所持
얏
니 半島江山에 何處를 勿論
고 高山廣野의 蓊鬱
森木과 肥沃
土地
皆是 寺刹의 所有이며 其土地內에 居住
人民 等은 寺刹에 屬
小作人이니 此를 數로 示
진대 三十餘萬名이라 寺刹은 如斯히 巨大의 富源이 有
으로 國家艱難과 人民의 饑凶이 有
時에
物質上 供給을 施
야 救國活民으로 敎是를 作
며 百萬信徒의 精神을 操縱
야 信仰을 博
뿐 아니라 一面으로 社會에 對
萬能的 潛勢力을 揮
야 世道人心을 指導
며 或 有時
輿論을 起
야 改變을 生케
이 僧侶 勢力의 眞相이라
노라
2. 西山大師와 僧侶의 愛國熱
大韓僧侶
羅·麗 以來로 國을 爲
야 外로 文明을 輸入
며 內로 社會發展과 向上을 企
야 忘軀活動
얏스나 十六世紀末頃에 至
야
僧侶의 思想이 漸變
야 精神에 偏務
며 事實界를 幾乎 無視
에 至
엿더니 近世
佛敎의 中興祖인
西山大師라는 高僧이 出
야 當時에 靡弛不振
僧侶의 思想을 革新改揭
엿더라
西山大師 精神界와 事實界를 分
야 曰 吾人은 精神上으로 天堂과 極樂을 求
며 湼槃을 證
것이오 事實界에 在
야
事實의 不可離
國家를 爲
이 眞俗無二의 法이라 覺悟
後 此를 實現코져
야 當時의 囂囂多端
佛敎 各派를 合宗
야 近世
佛敎를 統一
엿스며 其後
壬辰倭亂에 際
야 僧兵制를 設
고 倭兵과 戰
야 大勝을 捷
엿스며 其高足인
泗溟大師 國家의 使命을 帶
고 日本에 渡
야 戰局의 解決을 告
고 平和聲裡에 忠과 功을 國에 獻
엿스며
西山大師 逝後 約三十一年에 至
야 胡亂이 又有
얏
대 此時에도 僧兵 等이 抗敵擊退
얏
니 此
西山大師의 眞俗無二라
主義에셔 産出된 愛國熱을 承襲
에 由
이라 故로 大韓僧侶
此等 祖國精神의 系統이 特有
뿐 아니라 數千年間 傳來
佛殿高樓의 建物과 石物 等을 朝夕으로 對
時마다 祖國에 對
愛國의 淚를 咽
니 此等 建物과 石物 等은 歷代 諸皇室과 人民이 國家의 福祉를 祈코져
야 建
者이며 古人의 愛國熱誠 等을 記錄
거시라 故로 僧侶 等은 有形無形 兩方面으로 祖國의 精神을 感受 遺傳
야 今日에 及토록 古祖師의 愛國誠을 不變
고 祖國을 爲
야 每日 四回以上의 祈禱를 行
을 見
지라도 僧侶 等의 愛國 精神이 如何
을 可證
겟도다
3. 獨立에 對 僧侶의 覺悟
大韓僧侶 等이 餘敎徒와 一致
意志下에셔 絶對로 韓國의 獨立을 主唱
은 神聖
精神을 意味
엿스니 正義 人道를 遵
야 世를 和平케
은 諸聖의 切願이오 此를 反
야 世를 攪亂케
은 諸聖의 憎魔라 謂
지라 日本은 東洋平和를 稱托
고 世界를 詐
며 韓國을 欺
야 强制的 合邦을 行
後 韓國民族의 享有
던바 一切의 利權과 自由를 强奪
야 肉身과 精神을 苦痛케
니 此로 因
야 將來의 世界的 禍因을 作코져
이라 然則 正義를 無視
며 人道를 破壞
世界的 惡魔인 日本을 罪
야 棄惡歸善케
은 十方之世 一切 諸聖의 不變할 公通的 精神이라 故로 日本을 憐
야 彼의 罪를 問
며 韓國을 愛
야 此의 弱를 救
고 彼此의 未來를 和平安樂케
은 佛子의 道理요 究竟的 眞理라 覺悟
얏
니 僧侶 等은 如斯히 超世間的 圓融無碍
慈悲等觀으로 四百萬 敎徒와
치 敎不同 派不同한 餘敎徒와 純潔
意思로 握手幷起
야 大韓國은 完全無缺의 獨立國됨를 世界에 宣言함이라
4. 倭僧의 野心失敗
倭僧等은 大韓 寺刹의 寺有財産이 豊饒
을 耽耽凝視
고 十數年前부터 大韓의 各寺刹 僧侶 等을 遊說 誘引코쟈
야 巨大의 運動金을 消費
얏스나 大韓僧侶 等은 自立의 精神과 祖師의 法統的 祖國熱이 堅固
者이라 故로 南北兩派에 有志 高僧侶 等이 互呼相應
야 彼의게 被誘치 아니
얏스며 反動的 影響으로 倭僧排斥熱이 高潮에 達
야 從來의 一時的 使役
든 倭僧까지 逐出
에 至할뿐 아니라 大韓의 寺刹 全部난
韓日合倂 以後로 今日까지 日本總督의 政治勢力圈에 陷
얏스나 僧侶 等은 倭僧 等의게 野心的手段을 演
期會를 寸毫도 許與치 아니
며 一步를 進
야 僧侶等의 團結力은 從前에 比
야 一層 强固不折
며 布敎熱이 大熾
야 到處 愛國熱을 鼓吹
으로 倭僧等 野心을 貫徹치 못
고 滿腔의 野心은 水泡에 歸
야 縮首失敗
이라
5. 佛敎를 弄活코저 난 總督의 奸策
倭
十數年 前부터 寺刹의 富와 僧侶의 潛勢力과 思想을 看破
고 其富를 耽
며 其勢를 利用코자
야
寺刹令을 發布
고 寺有財産을 半官的 所有로 制定
며 僧侶의 潛勢力과 思想을 拘束利用코자
야 寺刹專務係를 設
고 僧侶의 內政을 干涉
며 僧侶學校에 官吏顧問을 置하고 僧侶를 拘束
니 其奸計를 詳論
진대 一은
寺刹令이라
奸狡
法律을 制定
야 寺有財産을 半官的으로 看做
며 或은 此를 無償으로 收用
며 二
僧侶의 勢力을 借
야 耶蘇敎徒의 勢力을 減殺코자
며 三은 僧侶를 傀儡로 使役
야 日本은 韓國과 同根一軆라난 虛僞無根의 歷史를 宣傳케
이며 四
僧侶敎育의 內政을 露骨的으로 于涉코쟈
야 官吏顧問을 僧侶學校에 置
며 五
各僧侶學校에셔 志望
난 英語와 歷史 等을 嚴禁
야 日本의 奴隷될 만
僧侶를 養成케
난 等이라
6. 賣國黨과 總督府의 暗中活躍
倭總督은 西曆一九一四年부터 今日까지 僧侶의 獅子吼的 行動을 抵制코자
야 巧猾한 手段으로 大韓의 賣國賊인
宋秉畯黨을 使嗾
야 僧俗混成으로
佛敎振興會라
一會를 創起케
고 結局에
宋秉畯을
佛敎會會長으로 選擧
에 至
얏더라 然이나 全國 僧侶 等은 此에 對
야 反對의 幟를 擧
얏슴으로 鬼幕의
佛敎振興會난 仍히 解散되얏더니 未幾에 倭總督은 大韓 僧侶 等의 祖國熱이 堅固
을 深慮
야 賣國賊
李完用을 慫慂
야
佛敎擁護會라
一會를 再起케
고 韓·日 兩國人을 入會케
며 陽으로 佛法振興을 標榜
고 陰으로 日僧의 野心을 貫徹
만
機會를 與코자
야 僧侶의 內政을 駸駸히 干涉
으로 僧侶 等은
佛敎擁護會를 蛇蝎과 如히 視
며 絶對로 排斥
뿐이라 然이나 賣國黨인
李完用輩
秘密히 警察力을 濫借
야
佛敎擁護會의 地盤을 鞏固함에 沒頭
얏도다
7. 住持選擧의 拘束과 干涉
倭總督은
佛敎를 拘束 利用코자
야
寺刹令을 布
지라 故로 僧侶 等은 面從腹背로 不得已 此法律에 依
야 寺刹政治를 行
얏
니 故로 大本山 住持를 選
야도 總督의 認可를 得치 아니
면 不可境遇에 在
지라 僧侶 等은 僧侶 德行이 圓滿
高僧을 選擧
야 總督의게 認可를 求
면 總督은 當選된 人物을 秘密히 地方官廳으로 調査
야 若其人物이 新進의 思想을 抱
얏던지 或은 將來의 社會를 向上케
만
事業을 建設
者이던지 古來의 歷史를 通曉
며 祖國의 熱이 堅固
者이면 危險人物 卽 排日家라 稱托
고 認可願을 却下
며 更選
을 命
야 沒常識
愚僧으로 住持됨이 常例이라 故로 僧侶 等은 本山 住持의 選擧
官涉的이오 非宗敎的이라
야 非法選擧로 看做
고 宗派의 眞正
代表로 認치 아니할뿐 아니라 總督의 傀儡로 認할뿐이며 排日의 惡感은 千有寺刹에 充滿
얏도다
8. 寺刹階級과 本·末寺의 關係
大韓 寺刹의 寺格은 本寺(本山)와 末寺의 二種으로 分
야 本山은 末寺를 統轄
며 末寺
本山의 指揮를 受
며 本山에 關
事
總督과 直接關係가 有
며 末寺의 關
事
地方長官과 直接關係가 有
대 本山의 寺格을 有
寺刹은 全國에 三十個寺뿐이며 其餘의 寺
大小를 勿論
고 各本山에 屬
末寺이라
9. 寺刹令 明治四十四年 六月三日 朝鮮總督 伯爵 寺內正毅
寺刹令을 明治四十四年 法律 第三十號 第一條와 第二條에 依
야 勅裁를 得
고 玆에 公布
노라
制令第七號
寺刹令
第一條 寺刹을 倂合 移轉커나 廢止코자 時 朝鮮總督의 許可를 受이 可 其基址나 又 名稱을 變更코자 時도 亦同
第二條 寺刹의 基址와 及 伽藍은 地方長官의 許可를 受이 아니면 傳法布敎法要執行과 及 僧尼止住의 目的 以外에 使用케 을 得지 못
第三條 寺刹의 本·末關係 僧規法과 其他의 必要 寺法은 各本寺에서 定야 朝鮮總督의 認可를 受이 可
第四條 寺刹에 住持를 置을 要 住持 其寺刹에 屬 一切의 財産을 管理야 寺務와 及 法要執行의 責任에 任야 寺刹을 代表함
第五條 寺刹에 屬 土地, 森林, 建物, 佛像, 古文書, 古書畵, 其他의 貴重品은 朝鮮總督의 許可를 受치 아니면 此를 處分을 得치 못
第六條 前條의 規定에 違反 者 二年 以下의 懲役이나 又 五百元 以下의 罰金에 處
第七條 本令에 規定 것 外에 寺刹에 關야 必要 事項은 朝鮮總督이 定
(備考) 住持라
은 寺刹을 主張
僧侶의 職名
大韓人 設立 寺刹 及 僧尼 並 信徒數表(現在) |
道別 | 京畿 | 忠北 | 忠南 | 全北 | 全南 | 慶北 | 慶南 | 黃海 | 平南 | 平北 | 江原 | 咸南 | 咸北 | 總計 |
寺刹數 | 205 | 45 | 78 | 118 | 65 | 242 | 168 | 65 | 50 | 130 | 132 | 82 | 32 | 1,412 |
僧 | 1,178 | 141 | 331 | 325 | 856 | 1,359 | 1,383 | 136 | 59 | 148 | 702 | 266 | 36 | 6,920 |
尼 | 443 | 53 | 270 | 72 | 87 | 90 | 104 | 27 | 5 | 7 | 142 | 120 | 0 | 1,420 |
計 | 1,621 | 194 | 601 | 397 | 943 | 1,449 | 1,487 | 163 | 64 | 155 | 844 | 386 | 36 | 8,340 |
信徒 | 122,458 | 18,185 | 26,990 | 48,990 | 22,900 | 116,452 | 63,840 | 16,188 | 24,509 | 44,735 | 79,386 | 29,978 | 11,064 | 625,5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