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새로운 국제질서와 인류의 미래
제1장 냉전의 종식과 국제 질서의 개편
제1절 공산주의 세계의 몰락
Ⅰ. 소련 체제의 모순
1. 1980년대의 소련 정치 상황
가. 소수에 집중된 권력과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 구조의 비효율성
나. 사회 전반에 부패 만연(蔓延. 蔓衍)
다. 검열과 사회에 대한 언론에 대한 엄격한 통제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변화 촉구 불가능
2. 계획경제의 한계 노정
가. 생산현장은 낡은 설비와 비효율적인 작업 방식
나. 생산성 극저 및 실질적 경제성장률 감소
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
라. 1970년대 미국과 군비경쟁 및 1979년 12월 소련의 Afghanistan 침공에 따른 믹대한 군사비 지출과 서방국가들의 경제 제제 등으로 소련 경제 더울 악화(尤惡)
3. 노쇠한 지도층
공산당 지도자들이 노쇠하여 혁신과 변화 기대가능성 전무
후루쇼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고르바쵸프
Ⅱ. 고르바쵸프((Mikhail Sergeyevich Gorbachev. 1931.3.2~)의 개혁
1. 정치와 경제의 개혁 필요성 절감
가. 행정부와 당간부조직 개편 : 공산당, 행정부, 군에서 무능한 보수적 인물 퇴진, 젊고 유능하고 참신한 인물 기용
2. glasnost 추진
가. 언론의 자유와 정치 민주화 학대하는 개방정책
나. 언론 출판 종교의 자유와 함께 정치적 자유 확산(擴散, spread)
다. Afghanistan에서 소련군 철수(Soviet withdrawal from Afghanistan)
1979년 12월 27일 Afghanistan에 침공한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자발적 귀환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그 정착에 상관하지 않을 것을 그 골자로 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3개 조항에 걸친 상호 관계 원칙에 합의한 1988년 4월 15일 제네바 합의에 따라 1988년 5월 15일 시작되어 1989년 2월 15일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책임 지휘자는 보리스 그로모프 상장이었다.
3. perestroika 실시
가. 경제 개혁정책
나. 시장경제원리 도입
다. 사유제산과 기업 이윤추구 보장
다. 소규모 가내 생산과 개인 이윤 획득 인정
Ⅲ. 소련의 해체
1. 개혁속의 혼돈
가. 저이민주화와 경제 자유화 진행 중 공산주의 보수 세력의 개혁 노선 반발
나.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보족 지속
다. 민족주의 대두로 소연방 구성국들의 독립 추구
라. 위성국들의 자유화 움직임과 탈소련 추구
2. 강경파의 쿠데타
가. 1991년 고련 공산당의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쵸프를 감금하고 개혁이전 환원 요구를 고르바쵸프 승인 거부
나.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 옐친이 수만의 모스크바 시민과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와 총파업 주도
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반 쿠데타 시위
라. 공산당 쿠데타 실패
3. 엘친의 부상
고르바쵸프 영향력 상실과 엘친 부상
4. 소련의 분열과 해체
가. 소수 민족과 국가들이 독립 요구
나. 발트 3국(Estonia, Latvia. Lithuania) 독립선언과 승인
다. 소련 15개 국가로 분열과 독립국가연합 창설
1981년 12월 18일 Russia, Ukraine 및 Belarus 대통령들은 구소련의 해체를 선언하고 그 대신에 독립국가연합(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의 설립하는 Belavezha 협정(Belavezha Accords)을 서명하여 구 소련은 Armenia, Azerbaijan, Belarus, Georgia, Kazakhstan, Kyrgyzstan, Moldova, Russia, Tajikistan, Turkmenistan, Ukraine, Uzbekistan, Estonia, Latvia 및 Lithuania 등 15개국으로 분열하였다.
라. 고르바쵸프의 대통령 사임과 옐친의 대통령 취임
Ⅳ. 동유럽의 자유화
1. 민주화와 시장경제 도입의 필요성
기술 낙후, 노동 생산성 저하, 자본과 생활필수품 부족 등 경제문제 심각
2. 소련의 개혁개방정책
perestroika와 glasnost
3. 고르바쵸프의 사회 정치 제도 선택권 존중과 불간섭 천명
사회 정치제도의 선택은 국민의 몫이며 소련은 불간섭을 천명하고 선린관계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유 보장이 중요하다.
4. 민족주의와 민주화 운동 자극 성공
가. Poland
폴란드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부와 공산당의 통제에서 벗어난 ‘연대(solidarity)’라는 비합법 조직을 만들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후 조선소 전기공 출신의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 조직이 합법화되면서 1989년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으며, 1990년 바웬사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나. Hungary
헝가리에서는 1989년 민주 포럼이 중심이 되어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폐지하고 새헌법과 다당제 정당법와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헝가리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In the summer of 1989, Hungary decided to dismantle the Iron Curtain and open its border with Austria, causing the emigration of thousands of East Germans to West Germany via Hungary and Austria.
다. Czechoslovakia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공산당 정권이 붕괴하였다. 그리고 ‘시민 포럼’의 대표였던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하는 연립 내각이 수립되었다(벨벳 혁명. 신사혁명). 이후 실시된 자유 총선거에서 ‘시민 포럼’이 압승을 거두고 적극적으로 서방 국가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공업화를 시도하였다.
라. Bulgaria
1988년 11월, 소피아대학에 모인 지식인 100명으로 구성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지지하는 토론 클럽'이 결성되었다. 1989년 8월 인민의회에 청원서를 보내어 지프코프 정부의 터키계 주민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고 11월 10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지프코프는 서기장과 국가평의희 회장직에서 추방되었다. 후임 무라데노프는 '법의 지배에 의한 근대적 민주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동시에 '사회주의의 강화'와 '당의 지도적 역할의 유지'를 강조하면서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의 도입을 지지하지 않았다. 11월 18일 수도 소피아에서 비공개 시민단체들의 호소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5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여 인민의회의 해산과 복수정당제에 의한 자유선거 시행, '당의 지도적 역할'의 포기를 요구했다. 이 정부로부터 공인이 안 된 불법집회는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마. Roumania
루마니아에서는 1965년 이래 차우셰스쿠가 당 서기장의 지위를 장악하고, 개인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그는 부인을 제1부 수상에 임명하는 등 연고주의체제를 유지했다. 그는 1998년 민주화 혁명 와중에서 사살될 때까지 독재 권력을 유지했다.
바. Albania
알바니아는 엔베르 호자가 1944년 권력을 장악하여 1985년 죽을 때까지 독재 권력을 유지했다. 1985년 그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은 아리아 정권은 쇄국정책을 수정하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서독 등과 국교를 수립했다.
Ⅴ. 독일의 통일
1. 독일의 분단
2차대전후 서쪽은 영미프, 동족은 소련이 분할 점령하였다.
2.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
가.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BRD))
나. 1949년 10월 7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DDR))
3. 서독의 동방정책
가. 교류 확대
나. 민족적 동질성 확인. 상호 신뢰 조성. 동독인의 서독 체제의 우수성 인식
다. 도서도 문화협정. 도시간 자매결연,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 장려 정책
4. 동독의 자유화 확대와 개혁 요구
가. 개혁과 개방의 물결속에서 자유확대와 개혁 요구 시위, 공산당 무력 진압 위협, 자유화 요구 시위 확산
나. 향 서독 탈출 주민수 증가
다. 1989년 11월 동독 정부 외국여행 자유 인정하는 통행자유화 조치
라. 1989년 11월 9일 Berlin 장벽 붕괴
마. 자유총선거 실시
5. 동서독 통일 합의
가. 동서독 통일 적극적
나. 통일 합의
6. 이해 관계를 가진 국제사회의 동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국제사회의 동의
7. 통일 조약 발효
가. 통일조약
1990년 9월 12일 Two Plus Four Treaty
나. 1990.10.3. 통일조약 발효(German Unity Day) (German: Tag der deutschen Einheit)
Tensions between East and West Germany were reduced in the early 1970s by Chancellor Willy Brandt's Ostpolitik. In the summer of 1989, Hungary decided to dismantle the Iron Curtain and open its border with Austria, causing the emigration of thousands of East Germans to West Germany via Hungary and Austria. This had devastating effects on the GDR, where regular mass demonstrations received increasing support. The East German authorities eased the border restrictions, allowing East German citizens to travel to the West; originally intended to help retain East Germany as a state, the opening of the border actually led to an acceleration of the Wende reform process. This culminated in the Two Plus Four Treaty a year later on 12 September 1990, under which the four occupying powers renounced their rights under the Instrument of Surrender, and Germany regained full sovereignty. This permitted German reunification on 3 October 1990, with the accession of the five re-established states of the former GDR.
독일 통일조약(Two Plus Four Treaty)의 주요내용
1. 현재의 국경선을 최종적인 국경선으로 확정한다.
2. 독일 통일은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포기를 약속한다.
3. 독일 통일의 군대는 37만명으로 제한한다.
4. 소련군은 동독과 동베를린에서 철수한다.
5.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대 승전국은 독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종료한다.
5. 통일 독일의 완전한 주권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