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2.5.1
오, 나까무라 상!
오, 나까무라 상! 오늘도 넌 나를 째려보았지. 한 쪽 다리에 다른 한 쪽 다리를 가로로 걸쳐 놓고는 담배연기를 내 뿜어 게슴츠레하게 눈동자를 굴리면서 말야.
미안하다. 나까무라상! 너의 그 날쌈하게 달라진 몸매에 대하여, 누구처럼 개기름 쳐 바른 칭송을 늘어놓지 못해서 말야. 사나운 심성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A가 그토록 코맹맹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난 너의 달라진 몸매를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나까무라상!
그렇게 무서운 속도와 집념으로 살빼기 작전에 임하고 있는 줄, 난 꿈에도 눈치 채지 못했었단 말야. 날마다 새벽같이 수영장에 가서 첨벙거리고, 밥도 간식도 믹스된 커피도 끊고 오로지 그 뭐더라? 꼬꼬 가슴살법?
오 나까무라 상, 착각하지 마!
그러니까, 한 사 개월 전이었니? 그 날 내가 네 뱃살에 대해 언급했던 건 순전히 네가 내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었어.
사실 넌 그다지 밉상도 아닌 얼굴에 적당한 체격이었잖아? 요즘 젊은 애들 중에 과체중이 얼마나 많은데? 사십대 초중반에 그 정도면 대단히 훌륭했잖아?
다만 그 날, 일을 도와준다며 맨 앞쪽에서 박스를 받아 넘겨주던 도중에 잠시 쉬었다 하자는 너의 제안이 나를 짜증나게 했던 거였어.
너는 오로지 너만 생각하는 존재잖아? 너야 급할 게 없는 사람이지만 말야, 나는 마음이 급했거던? 무엇보다도 말야, 그 거대한 차량가득 물건을 싣고 온 사람들은 일정이 빡빡하단 말야? 얼른 물건을 내려놓아야만 그들도 갈 길을 가는 거 아니겠어? 나 또한 받은 물건들 정리 체크해야 하는 등등의 여러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말야?
그런데 네가 맨 앞쪽, 벨트 앞에 끼어들어서는 겨우 박스 몇 십 개 받아 넘겨주다가 헉헉대다가 결국은 중단을 요구하니까 급 신경질이 치솟은 거야. 그런데다 대고 그 순간에 -그리 흉한 건 아니었거던? - 약간 튀어 나온 네 뱃살이 내 시야에 잡혔을 뿐이야. 그래서 툭 내뱉은 말이 “그 뱃살이 문제네요!”
그래, 나까무라상!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걸 보면서 말야,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은 들었었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말야.
네가 갑자기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건 보았지. 하지만 난 전혀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저 ‘어, 저 인간이 왜 저렇게 옷에 신경 쓰는 거야? 바람이라도 났나?’했었지.
얼마 전 A의 입에서 그 코맹맹이 칭송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단 말씀이야? 자기에게 조금만 기분 상하게 하면 돌아서서는 왼갖 쌍욕을 해대면서.
그런데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그 얼굴, 그 심성에 도저히 와 닿지도 안게스리!- 두 손 모아 비굴과 겸손과 아양을 비벼대는지 말야. “아우, 대리님~너무 멋지셔요. 양복 입은 모습이 십 년은 젊어 보이세요? 더 이상 뺄 살도 없으시겠어요. 정말 멋져지셨어요.”
어디 그 뿐이니? 그토록 목매달던 K가 떠나고 나서는 오로지 너를 바라보면서 좋아 죽을지경이 된 C가 너를 해바라기 하고 있잖냐? 저 쪽에 너만 나타나면 그 얌체 같은 심성과 능구렁이과 최고득점자인 그녀 얼굴에 환한 햇살이 가득 넘치잖아? 입사할 당시는 그저 펑퍼짐한 아줌마였던 C. 짙은 향수와 일 패션니스타적 의상과 화장발이 이젠 너를 향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잖아? 너처럼 커피도 블랙으로 바꾸고 밥 대신 과자로 때우면서,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하고 말야. 그러니까 그녀가 흠모하는 건 오로지, 사람이 아니라 권력인거지. 안 그래?
나까무라상!
넌 정말 대책 없는 인물인 거, 아니? 내가 너에게 사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모르겠니? 오로지 공적인 입장에서 바라는 게 있긴 했었지만 말야, 그건 옛날에 포기했다는 거야.
내가 왜 너를 개무시하는지, 정말 모르겠니? 넌 여러 번에 걸쳐서 아주 중대한 거짓말을 했어. 지극히 네 개인의 입장을 위해서 말야. 단지 거짓말에서 그친 것도 아냐. 네가 한 잘못을 K가 했다고 덮어 씌웠지. 그러고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덧붙였지.
그래, 네가 한 짓이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았다는 거, 그것까지는 그래도 내가 봐 줄 수 있었어.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잘못을 잘못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교육과 사회적 환경말야.
나의 단호한 지적에 네가 일순간 몹시 당황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장황하게 여러 가지 거짓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어. 잘못을 잘못이라 생각지 못했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가면 되었던 거야. 그리고 혹여나 다음에 또다시 그런 짓을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였어.
살상 보다 더 나쁜 게 사기질이고 이간질이야. 살상으로 따지자면 말야, 인간만큼 야만적인 동물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니? 동물은 생명이 아냐? 수많은 동물들을 비육해서 잡아먹는 게 인간 아냐?
나까무라상!
내게 한 인간으로써, 존중받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말야. 날쌈하게 외모 가꾸는데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을 게 아냐. (네 뱃살을 들여놓든 내 놓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일을 똑바로 해내면 돼.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나까무라 상, 내가 왜 너를 나까무라로 명명하는 지 알아?
얼마 전이었어. 등 뒤에서 네가 목소리를 높이는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렸었지.
그런데, 그런데 말야.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 색 구두가 시야에 번쩍 와 닿았지. 그 숱 많은 검은 머리에 냄새 지독한 뭔가를 쳐발라 올백으로 넘겨놓은 것도.
쫘~악 빼어 입은 옷차림, 그야말로 더 빼고 더 할 것도 없었단 말씀야? 그리고 그 순간 문득 그 옛날, Japan의 대리인이 되어 그놈들 흉내를 내며 자기네 동족에게, 자기 조국을 점령한 침략국의 전쟁동원에 앞장서서, 재산과 재물을 빼앗았던 Japan순사들.
눈독들인 여자의 남편을 징발해서 전쟁에 내보내고, 그 뒤에 남겨진 아내와 딸들을 농락했던, 야만인들. 허리춤에 장도 하나 매달아 놓으면 영락없는, 그 놈의 모습이었어, 너는.
그래. 지금까지 반 세기가 넘도록 너네들이 하는 짓이 그런 놈들과 다를 것도 없잖아? 공공부문이라는 탈을 쓰고 대기업보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짓을 공공연하게, 서슴지 않는 게 너네들이 하는 짓이잖아? 털끝만한 죄의식은커녕, 오히려 너무나도 위풍당당하게 말야.
나까무라 상!
제발 착각하지 마!
내게 넌 그저 직장상사일 뿐이라고!
기왕이면 네가 개과천선해서 제발 본분으로 돌아가 업무진행을 해 준다면, 그런 날이 혹여나 온다면 말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너를 한 인간으로써 존중해줄 순 있어.
알겠냐? 내 말 알아먹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