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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머슴살이 같은 자극적 단어보다 매니저 처우 현실을 봐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갑질', '머슴살이'라는 단어들은 너무나 자극적이다. 그런데 단어가 이순재라는 배우를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자극적이다. 지난 29일 방영된 SBS <8시뉴스>에 이순재의 매니저로 일했다는 김모씨가 폭로한 내용이다. 그는 '머슴살이'에 비유해 평균 주 55시간 넘게 일했고 추가 수당 없이 기본급 18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회사는 4대 보험도 들어주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없었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호소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고용 두 달 만의 해고였다는 것.
이에 대해 이순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내가 몇 차례 잘못한 것이 맞다"며 이미 전 매니저와 만나 사과를 했다고 했다. 또 매니저는 자신이 채용한 게 아니라 소속사가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들을 잘 몰랐고 4대 보험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사실 머슴살이 같은 말이 너무 자극적이라 이 사안의 핵심적인 논점들이 오히려 이런 말에 가려지는 것만 같다. 연일 매체에서 이 단어들만 전면에 내세워 보도를 하고 있어서 이 문제가 지목하는 지금까지 관행처럼 굳어져 왔던 매니저의 처우 현실에 대한 부분들은 슬쩍 밀려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순재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가족의 허드렛일까지 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악의적으로 의도했다기보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들조차 관행처럼 별 문제시되지 않고 해왔던 데서 생겨난 문제라고 보인다.
실제로 지난 4월까지 약 1년 6개월간 이순재의 매니저로 일했다는 백씨가 올린 SNS의 글을 보면 이번 논란으로 인해 매도되고 있는 이순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며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연로하신 두 분만 생활하시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인터넷 주문은 전혀 못하셔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드리고 현금을 받았고, 무거운 물건은 제가 당연히 옮겨드렸다. 집을 오가며 분리수거를 가끔 해드린 것도 사실이지만, 전혀 노동착취라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들은 도와드리고 싶었다."
즉 이 내용 속에는 매니저라는 직무가 가진 특이한 지점이 들어가 있다. 즉 어디까지가 일의 영역이고 일 바깥의 영역인지가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늘 연예인과 함께 붙어 다녀야 하는 직업이고, 그러다 보니 사적인 영역까지도 수시로 드나드는 게 매니저의 직무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건 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떤 건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
물론 잘잘못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이번 사안으로 우리가 진짜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은 매니저라는 직업이 지금껏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던 직무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가끔 매니저의 과잉된 배려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동반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직무가 매니저의 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영화 <라디오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스타와 매니저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마치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관계로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거의 사생활에 가까운 것들까지 모두 매니저 직무의 영역인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끄집어낸 것처럼 매니저만이 아닌 그 어떤 직업에서도 일의 영역과 사생활의 부분은 명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아직도 여전히 매니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의 세계에 남아 있는 가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일이라고 볼 수 없는 영역들까지 "우리가 남이냐"며 무시로 선을 넘어오는 그런 시대착오적 사고방식들이 더 이상 관행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는 일.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진짜 봐야하는 것들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