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에서의 낯선 경험, 사당역~내곡동
1. 일자: 2018. 12. 29 (토)
2. 산: 서울둘레길 사당역~내곡동
3. 행로와 시간
[사당역(08:23) ~
둘레길 포스트(08:32) ~ 전망바위(08:39) ~ 성뒤골(08:50, 시민의 숲 6.16km) ~ (보덕사) ~ 성산약수(09:06) ~ 대성사/예당 하늘공원(09:56~10:12) ~ 관문사 갈림(10:45) ~ KT 연구소(11:00) ~ (양재천) ~ 양재 시민의 숲/윤봉길 기념관(11:33)
~ (현대차 본사 앞 천변 길) ~ 내곡동(12:00)
/ 10.24km]
세밑한파가
기승이다. 추위도 할 일이 있다. 따듯한 침대를 벗어나는
건 고역이었지만 떨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들머리가 사당이라 여유가 있다.
사당역 우성아파트 앞에서 낯선 골목을 따라 간다. 건축 자재들을 가공하는 소규모 공장들이 둘레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시간이
몇 십 년 뒤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기억을 불러온다. 화려한 도시 이면에는 이 도시를 지탱하는 낡고 지저분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다시 주변을 찾을 땐 오늘이 기억나리라.
스탬프 포스트를 지나며 우면산 둘레길이 시작된다. 남태령에서
오를 때와는 느낌이 많아 다르다.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낯선 풍경이 조망된다. 답답했던 시야가 확 트인다. 전원마을 갈림을 지나 한참을 가도 길이
낯설다. 성산약수에 와서야 풍경이 눈에 익다. 그것도 잠시
또 다른 낯섦과 마주한다. 둘레길은 확실히 대간이나 정맥과 다르다. 우선
봉우리를 거부한다. 봉우리가 나타나면 에둘러 낮은 곳으로 향한다. 또한
정맥과 정반대로 물길을 지향한다. 소망봉을 돌아 낮은 곳으로 향한다.
멀리 북한산과 강남 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의 전당 건물들도 하나 둘 눈에 가까워진다. 대성사 갈림에서 잠시 길을 벗어나 예당 옥상정원 위에 선다. 갓
모양을 한 건물이 시선을 확 잡아맨다. 주변 공간을 압도한다. 잘
생긴 건축물이다.
대성사 앞이다. 전화가
온다. 절이 그리고 산행이 심란을 잠재워 평온을 가져오리란 믿음은,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라 믿는 것들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다시 걷는다.
다가오는 순간순간을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 가야 하나 보다. 마음을 비운다. 감기가 끝물일 때 몸이 느끼는 회복의 기운처럼, 전화로 이런 저런
조치를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편하다. 밥벌이의 고단함이 일상화된다.
어디로 걸어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전 철탑이 보인다. 전면으로 빌딩이 숲을 이룬다. 가까운 풍경이 무척 깨끗하다.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온다. 하늘이 맑다. 미세먼지의 주범은 정체된 공기임이 분명하다.
KT 연구소 앞 도로로 내려선다. 11시가 막 지난다. 길 안내를 하던 주황 리본이 사라졌다. 주변을 서성이다 양재천으로 내려선다. 바람에 리본이 나부낀다. 천변으로 오리가 한가로이 물살을 가른다. 회사 부근에 이리 호젓한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잘 정리된 길이 이어지다 양재 시민의 숲 공원으로 들어선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에 걸음을 멈춘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따스한
공기와 함께 태극기, 동상, 유물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에겐 애국지사, 일제에게는 테러리스트로 불려졌을 한 젊은이가
의젓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사건이지만, 일왕 생일날에 군국주의의 상징인 군인들을 향한 폭탄 투척은 식민지 백성의 이유 있는 저항이라 믿는다.
양재에서 둘레길이 어디로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은 현장에선 의외로 쉽게 풀렸다. 외길, 판교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개천이 길게 이어진다. 사방이 도로라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물가
살찐 오리가 이 길의 주인 행세를 한다. 사람이 지나도 요동도 하지 않는다. 지하도로를 걸어 내곡동 방향으로 나온다. 청계산과 구룡산이 양 옆으로
호위하는 뚝방을 걸어 내곡동으로 향한다. 예정했던 길은 여기까지다. 육교를
건넌다. 버스가 온다. 마음이 급해진다. 버스에 오른다. 시간은 12시가
막 지난다. 버스가 대로를 질주한다. 지나온 길과 그 길에서의
시간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지나면 흩어져 희미해지나 보다.
< 에필로그 >
골목은 도시의
갯벌이라 한다. 그 안에 미지의 생명체를 담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며 새로 마주하는 풍경들은 낯설지만 호기심을 불러온다. 사당에서 전원마을 부근을 지나 우면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과거에 익숙했던 낯선 풍경과 마주하며 들던 생각이 걷는 내내 뇌리에 남아 있었다.
우면산 둘레길은 밋밋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바라보는 서울 남쪽의 풍경은 명징했다. 대성사에
들려 잠시 심란을 누그러뜨리려던 계획은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양재천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희미한 기억과 몇 컷 사진, 그리고 지금
이 기록이 훗날 오늘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첫댓글 수고하셨어요... ^^
감사.
화악산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