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단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그의 국가대표팀에서의 모습.
디디에 데샹, 비센테 리자라쥐, 유리 조르카예프, 지네딘 지단, 릴리앙 튀랑, 파비앙 바르테즈, 마르셀 드사이, 크리스티앙 카랑뵈, 로랑 블랑.
위의 선수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98년 월드컵을 들어올린 전설의 멤버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때의 우승으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20세기 마지막을 화려그리고 하게 장식한 바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축구는 암흑기에 빠져있었다. 80년대 미첼 플라티니, 장 티가나 등이 이끌던 대표팀은 유로 우승컵을 차지하며 유럽 정상 자리를 차지했었으나, 이들의 은퇴와 노쇠, 거기에 너무 급했던 세대교체가 겹치며 9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프랑스의 악몽은 예상 외로 길어졌다. 폴 르 갱, 다비드 지놀라, 장-피에르 파팽, 에릭 칸토나, 루이스 페르난데스 등 새롭게 등장한 신예를 바탕으로 당당히 유로 1992 본선에 올랐으나, 조별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쓸쓸히 유로 무대를 떠났다.
94년 월드컵은 처음엔 조금 달라보였다. 특히 다비드 지놀라는 예선 내내 뛰어난 터치, 드리블을 보여주었고, 본인의 뛰어난 외모와 함께 프랑스 최고의 인기남으로 등극하였다. 하지만 그의 활약과는 별개로 팀의 성적은 좋지 못했으며 결국 예선 마지막 경기 불가리아 전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패배하면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 예선 내내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지놀라는 크로스 실수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프랑스는 그대로 2대 1로 패배,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지놀라는 이 실수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 프라스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으며 도피하듯이 잉글랜드 무대로 옮겨가야만 했고, 국가대표에서도 잘 활약할 수 없었다.
아마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축구에 관심을 가진 팬이라면 알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플라티니와 지단의 두 황금세대 사이에 낀 '저주받은 세대' 이야기. 그리고 대부분이 그 끝을 지놀라의 실수로 기억하고 있다.
지놀라의 실수와 함께 당시 프랑스 국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많은 선수들이 개편된 것은 사실이다. 에릭 칸토나, 장 피에르 파팽 등은 95년 즈음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하였고, 새롭게 부임한 에메 자케 감독은 리그에서 떠오르고 있던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 새롭게 발탁하며 새 틀을 짜고 있었다.
시작에서 언급한 선수들도 96년 유로를 시작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갈 준비를 하던 선수들이라는 또 다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엔 낭트에서 맹활약하던 공격형 미드필더, 레이날드 페드로스(Reynald Pedros)도 있었다. 낭트 유소년 팀 출신으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국가대표팀에선 지단과 경쟁하던 그는 리그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지단 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도 있던 선수였다.
95년 낭트를 이끌고 리그 우승컵을 들었을 때 그의 평가는 최고에 다다랐고, 그 다음 해에는 팀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다. 이 활약은 유럽 명문 바르셀로나 등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페드로스 본인도 98년 월드컵 참가까지의 큰 계획을 두고 좀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고자 하였기에 유로 1996을 앞두고 이적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유로에서의 비극으로 페드로스는 본인의 큰 계획을 정말로, 진짜 단 1도 실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프랑스의 유로 1996 기록은 나쁘지 않았다. 4강에 진출하며 새로운 선수들의 희망을 보았고, 이 때의 주축 멤버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8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어쩌면 유로에서의 비극이라는 말 보다는 지극히 페드로스 본인의 비극이었을 것이다. 페드로스는 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경쟁자 지단에게 밀려 후보로만 세 경기를 나온 것이 고작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4강, 체코와의 경기가 문제였다.
지난 경기들과 같이 교체로 출장했으나 도통 경기에서 골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경기는 0대 0으로 끝난 채 승부차기로 이어지게 된다. 원래 페드로스는 페널티킥을 전담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테크니션 이미지가 강해 훈련 도중 가끔 멋있는 킥을 보여주었단 얘기는 있었으나, 그의 소속팀 낭트에서 페널티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페널티킥을 차게 될 다섯 명의 선수 안에 들지 못하였고, 긴장 속에서 동료들이 페널티킥을 차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양 팀의 페널티킥 다섯 개가 모두 들어가자, 에메 자케 감독은 여섯번째 키커를 정해야 했고, 페드로스가 그 대상이 되었다. 그는 무덤덤하게 오른쪽 구석을 향해서 강한 슈팅을 날렸다. 안타깝게도 체코의 골키퍼도 같은 방향으로 뛰었고, 결국 그의 슛은 막히게 된다. 그 후 체코는 본인들의 여섯번째 페널티킥을 가뿐히 성공시키며 결승에 진출한다.
'인생에 한 번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당시 대표팀 코치가 페드로스에게 해준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 인생에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프랑스 대표팀은 그동안의 부진을 깨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에메 자케 감독도 안타깝지만 패배를 인정하며 다음 월드컵을 대비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팬들을 그렇지 못했다. 지놀라의 실수가 월드컵 본선행 탈락으로 이어졌던 지난 1993년을 기억하던 그들은 페드로스에게 엄청난 비난을 가하였다. 분명 필요 이상의 비난이었다. 유로 대회 전 바르셀로나, 모나코 등의 관심을 받던 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는 단 하나의 슈팅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없었고, 이적 문제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대회 후 갓 2부에서 승격한 마르세유로 떠나게 되었다. 당시 어수선했던 마르세유의 팀 분위기는 그에게 퇴보를 불러왔다. 이 퇴보는 그에게 98년 월드컵이라는 꿈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그는 결국 마르세유를 곧바로 떠난다. 월드컵을 앞두고 좀 더 수준높은 리그에서 클래스 있는 선수들과 함께 뛰고자 하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리그 세리에A 파르마로 떠나게 된다. 분명 그는 뛰어난 패서였으나, 안타깝게도 피지컬이 좋던 당시 파르마 선수들 사이에선 그는 주전으로 뛸 수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며 안첼로티의 플랜에 그의 자리는 점점 줄었다.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의 우선 목표였기에 그는 임대로라도 팀을 떠날 것을 허락받고, 곧 나폴리로 팀을 옮긴다. 하지만 나폴리의 보드진과 감독은 페드로스를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파르마 측의 일방적인 일처리로 나폴리로 적을 옮긴 것일 뿐, 페드로스의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월드컵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그의 꿈도 그대로 포기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페드로스는 월드컵을 향한 꿈을 꾸준히 드러내며 리옹 이적을 추진, 그 곳에서 준수한 활약과 함께 부활의 찬가를 불렀다. 하지만 에메 자케 감독은 리옹 이적 당시 말고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결국 본인도 월드컵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몽펠리에, 툴루스, 바스티아, 알-코르 등을 거쳐 활약하다 프랑스 하부리그, 스위스 리그 등을 거친 뒤 2009년에 은퇴하였다.
후에 인터뷰에서 그는 바르셀로나로의 이적을 포기한 것(이는 그의 부인 때문에 결렬되었다고 한다.), 파르마에서의 부상이 선수 생활 도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언급하였다.
96년 그 페널티킥이 없다. 기자도 의아했는지 선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저는 국가대표로써 그 킥을 찰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말을 남들이 듣는다면 저에게 비난을 하겠죠 하지만 전 이제 웃으며 넘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해설자로 일하고 있어요. 누군가 페널티킥을 놓친다면 왜 놓쳤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말이죠. 전문가가 되었어요."
분명 그의 페널티킥은 그의 선수 생활 전체를 보았을 때 그를 골짜기 세대에서 또 다시 생긴 골짜기로 만든 주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축구 교육 관련 일을 하며 그는 다시 얘기한다, "저에겐 말이죠, 공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 보다는 인간적인 면, 그 감정 같은 것 있잖아요. 그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단과 자웅을 겨루던 선수, 레이날드 페드로스. 그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으나 사람들은 계속 얘기한다, 만약 그 킥이 들어갔더라면? 이 점이 얼마나 그가 아쉬운 선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