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감자 / 210223 / 박찬석
맬더스는 인구의 크기는 식량 생산에 좌우되고, 식량생산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여 식량부족으로 전쟁 질병 같은 재앙이 올 것이라 했다. 한편, 농업경제학자 에스터 보저럽(Ester Boserup)은 농업 발달은 인구와 상관이 있다. 인구가 많아지면 인구 압력으로 농업 기술혁신이 일어나 식량도 따라 증산된다고 했다. 현대 사회를 보면 보저럽의 주장에 손을 든다. 21세기 세계는 엄청난 크기의 인구 압력으로 농업기술이 발전하여 식량 생산은 78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지만, 식량 절대량 부족이 아니고 분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FAO는 감자를 옥수수, 밀, 쌀과 함께 4대 식량 작물로 취급한다. 2018년 전 세계 감자 생산량은 3억68백만 톤이다. 감자 생산 국가 순위는 중국, 인도, 러시아, 미국,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6위가 독일이다. 독일은 매년 8백만 톤의 감자를 생산한다. 왜 독일이 이렇게 많은 감자를 생산하는 국가일까. 독일인 식재료를 두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코 감자와 돼지고기이다. 어떻게 독일인이 다른 서부유럽 국민들에 비하여 감자를 많이 먹게 된 것일까? 독일의 식단에는 감자 요리가 빠지는 경우가 없다. 브랏카토펠(Bratkatofelln), 카토펠크뇌벨(Kartoffelknodel), 스바인스학세(Schweinstshaxe)같은 요리에 감자가 들어간다. 감자 샐러드, 감자 메시, 감자튀김 등이 있다. KBS <한국인의 밥상>에서 각 지방 고유 음식의 발달은 그 지방의 기근과 관계가 있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살기 위한 식단이 오늘에 유명 요리가 되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먹어야 한다. 요리는 그렇게 발달했다. 독일인이 감자 요리가 유명해진 것도 기근과 관계가 있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 페루와 볼리비아이다. 감자의 종류는 수 천 종이나 된다. 유럽에 감자가 전래된 건 16세기, 콜럼버스 교역 품(Columbian Exchange)때이다. 남미에서 유럽의 전래된 농작물은 감자, 옥수수, 도마도, 카사바, 고구마, 담배이다. 신대륙으로 전파된 가축은 말, 나귀, 돼지, 소, 양, 염소 닭과 개, 양봉이다. 신대륙의 식량 작물 소개로 18세기에 유럽 인구는 25% 증가하였다. 인구의 증가는 반드시 기근(famine)을 부른다. 인구 증가로 기근이 들자 프러시아 프레드릭(Fredrick) 왕과 러시아 에카트리나 여제는 국민들에게 감자 먹기를 권장했다. 유럽인은 처음에 감자를 관상용으로만 재배했다. 감자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식 자료이고 땅 속에 자라는 식물이므로 악마의 음식이라고 했고, 감자를 먹으면 문둥병에 걸린다고까지 해서 가축사료로만 사용 했다. 계몽군주였던 프리드리히 왕은 기근이 자주 들자, 감자의 영양가를 알고 국민들에게 감자먹기를 권장했으나, 감자를 기피했다. 왕은 스스로 매일 식단에 감자를 올리게 했고, 귀족들에 먹도록 하여 농민들이 감자를 재배하고 서민들의 식량으로 보급되어 프러시아에 기근을 면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감자만큼 서식지가 넓은 작물도 없다. 사하라사막에서 알라스카, 그린란드까지 재배가 가능하다. 비가 많지 않는 건조지방과 추운지방, 토양이 척박한 땅에서도 감자가 잘 자란다. 유럽의 북부 지방에 기후와 토양이 감자 재배에 적지이다. 감자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식단은 패스트푸드, 프렌치프라이(French Freis)가 유명하다. 프렌치프라이는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식품이다. 이름을 두고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에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 벨기에는 프렌치프라이는 벨기에 왈롱지방(불어 사용지역)에서 2차대전 기간 동안 미군병사들이 감자튀김을 많이 해먹던 데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프랑스는 따로 프랑스 원조 설을 내세우고 있다. 어떻든 프렌치프라이는 감자튀김이고, 미국으로 부터 전 세계에 전파된 패스트푸드임에 틀림이 없다. 맥도날도 한 회사가 프렌치프라이로 연간 140톤의 감자를 소비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감자튀김은 가장 인기 있는 식품 중의 하나이다.
감자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파급되었다. 한반도에는 <五洲衍文長錢散稿>에 의하면 1826년에 중국인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하고, 金昌漢 <圓藷譜>는 1832년에 영국 상선에서 전래되었다 하며, 강원도 회양군에 독일인에 의하여 난곡1호가 1930년 화전민이 주로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감자는 19세기 초반에 전래되었고, 일본이 한반도의 쌀을 수탈하면서 구황작물로 감자가 널리 보급되었다. 한국은 연간 99만 톤의 감자를 생산하고 주산지는 강원도(35%)와 경북(15%)이다. 감자 이름은 고구마와 혼용했다. 김동인의 1925년 소설 <감자>는 감자가 아니고, 고구마이다. 일본에서는 <자카이모>라고 하는데 자카르타에서 가져왔다는 뜻이고, 중국에서는 말 요령(搖鈴)과 닮았다고 해서 마령서(馬鈴薯)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