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 -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문
김태준
군말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Mazzini, 1805~1872,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끈 혁명가)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戀愛)가 자유(自由)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羊(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은 그의 첫 시집이며 마지막 시집이기도 한 하나뿐인 시집 의 머리말을 '군말'이라고 썼다. 그리고 첫머리에 쓰기를,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고 스스로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을 기루며, 그래서 이 시를 쓴다고 했다.
'어린양'이라면 생후 1년 미만의 양, 주로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는 양을 뜻한다. 기독교의 상징어여서 다소 뜻밖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이미지에 더하여, 스스로 "해저문 벌판에…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을 위해서, 그리워해서, 사랑해서 이 시를 쓴다고 '군말'을 썼다. 강렬한 중생 제도의 보살행(菩薩行)일 터이다.
일찍이 만해의 후배로 동악(東岳) 시단에서 자란 조지훈(趙芝薰)은 말하기를, "한용운 선생의 진면목은 혁명가와 선승(禪僧)과 시인의 일체화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성격은 마치 정삼각형과 같아서 어느 것이나 다 다른 양자를 밑변으로 한 정점을 이루어, 각기 독립한 면에서도 후세의 전범이 되었지만, 이 세 가지를 아울러 보지 않고서는 만해의 진면목은 체득되지 않는다."고 했다.(박노준·인권환 서문)
그는 만해의 문학을 일관하는 정신이 또한 민족과 불(佛)을 일체화한 님에 대한 가없는 사모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 '군말'은 참으로 군말이 아니라 그의 첫 시집의 '첫 시'라 할 만하다.
만해 스님이라면 '별난 시인'으로 인상 받기 십상이지만, 실로 그렇다. 시인으로 그가 낸 시집은 이것이 유일하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아직도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하고 일갈한 T.S 엘리어트의 명구가 유행하던 세기말에 50세 가까워서 이런 시집을 내며 "님의 침묵에다 머리말이 '군말'이다. 게다가 끝말로 쓴 '독자에게'에서는 스스로 시인으로 여러분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하고, "독자는 나의 시를 읽을 때"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를 슬퍼할 줄을 안다"고 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게 깊고, 독자는 시인을 슬퍼하고 스스로를 슬퍼할 시간, 그러나 '님의 침묵'은, 설악산의 그림자도 엷어 가고, 새벽종은 정녕 울려야 했다.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