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종덕 이 ‘금’ 자에 화운하여 보내면서 뜻을 부친 것이 매우 깊었는데 왕왕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어 삼가 그 뒤를 이어 뜻을 말하다〔金道彦 宗德 和寄襟韻屬意深遠往往有不敢當者謹續貂以道意〕
산속 마을 세모에 눈과 서리 깊은데 山村歲暮雪霜深
책 가득 책상 앞에 홀로 옷깃 여미네/ 滿案圖書獨整襟
어찌 이웃 노인 따라 밤에 벽을 뚫으리 肯學鄰翁穿夜壁
죽창의 아침 햇살이 마음속을 비추리라 竹窓朝日皦中心
원시(原詩)에 불빛을 빌린다는 뜻이 있기에 그 말을 뒤집은 것이다.
흰 구름 깊은 곳에 선비들 찾아들어 靑衿踏逐白雲深
좋은 시간 보내며 한껏 회포 나누었지 好把光陰細討襟
결국엔 입으로만 떠든 헛된 말이었으니 畢竟空言資口耳
책 속에서 고인의 마음에 되려 부끄럽네 卷中還愧古人心
호랑이 노는 깊은 설산에 그늘이 짙고 雪嶺陰陰虎豹深
무단히도 지척 간에 마음이 막혔다네 無端咫尺阻靈襟
생각하면 세상만사 뜬구름처럼 변하니 商量萬事浮雲變
묘처에는 모름지기 따로 마음 써야 하네 妙處惟須別用心
○ 주자가 말하기를 “세상의 모든 일은 잠시 사이에 변하고 사라지니 모두 가슴에 담아 둘 만하지 못하며, 오직 이치를 탐구하고 몸을 닦는 것만을 궁극의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 평소 도언의 자품과 행실이 신중하고 민첩하여 더불어 학문을 함께할 수 있음을 사랑스러워했다. 다만 이른바 잠시 사이에 변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쉽게 끊어 버리지 못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감히 주제넘게 언급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주1] 김도언(金道彦)이 …… 깊었는데 : 도언은 대산의 문인인 김종덕(金宗德, 1724~1797)의 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천사(川沙)이다. 문집으로 《천사집(川沙集)》이 전하는데, 그가 화운한 시는 《천사집》 권1에 〈운사에서의 ‘심’ 자에 차운하다〔次雲寺心字韻〕〉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주2] 어찌 …… 뚫으리 : 굳이 남에게서 빛을 빌려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한(漢)나라의 광형(匡衡)이 부지런히 공부하였지만 가난하여 밤에 등불을 켤 수 없었다. 이웃집에서 등불을 켰는데 불빛이 미치지 않자, 벽을 뚫어 빛을 끌어와 책을 읽었다고 한다. 《蒙求 匡衡鑿壁》
[주3] 원시(原詩)에 …… 있기에 : 김종덕의 시에 “혹시나 이 마음 비춰 줄 수 있을는지.〔倘許容光照此心〕”라는 표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