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날씨가 완전 여름날씨가 되어 아주 많이 더웠다.
지난 가을 입기 시작한 내복을 벗고 얇은 긴 팔 하나만 입을 수있는 날이었다.
황토방에 불을 때지 않고도 그냥 잠을 잘 수있는지는 한 열흘 남짓 된 거 같다.
여지껏 내복에 두꺼운 잠옷을 입고 살았는데 이제는 얇은 긴팔과 짧은 반바지만 입어도 좋다.
지금은 열어 놓은 양쪽 창문을 통하여 햇살가득한 숲속의 새들의 노랫소리와 날개짓까지 앉아있는 서재로 흘러들어온다. 세포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뜨는 듯하고 온몸을 간질이며 행복의 홀몬이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뻐 -국 뻐-국, 흠, 뻐국이도 좋은 가보다.
1급 조경사인 충헌이는 울 집을 지었다는 소문에 한 번 둘러보고는 돌담장 쌓은 것이 집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 했다가 지난 주 내내 일꾼들을 데리고 와서 돌담장을 다시 쌓고 마당을 고르며 집안 마무리 공사를 마치고 갔다.
충헌이와 초등, 중학교때 한 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는데도 이 친구를 떠올리면 듬직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30여명 2학급 규모였기에 그래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부도 잘하였고 잘 어울리던 친구였다. 가정형편에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는데 역시나 다르게 지금도 영어 단어 공부를 하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취미라니 그집 아이들이 서울 일류대를 어찌 들어갔는지 알만하다. 어떻게 조경사 일에 접하게 되었는지 딱 이 친구에게 맞는 일 같아 부럽다.
일 품새도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대개의 우리 나이의 남자아이들 답지 않게 말수가 적고 조용조용하며 실없는 허풍이나 허세같은 것도 없고 남을 의식해서 잘 보이려는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한다. 차분하고 조용조용한Serotonin적인 목소리도 신뢰가 듬뿍간다. 50대 중반인데 대원사까지 산책하면서 대화하다보니 양성성이 균형이 잡혀있어 여자인 나와 수다떨기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자들은 속내를 털어놓고 정신적인 지지를 교환하며 우정을 쌓는 반면 남자들은 주로 활동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남자든 여자든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자친구를 자주 만나는 것이다. 『리즈 호가드지음(2005), 이경아 옮김, 영국 BB 다큐멘터리 행복, 예담, 104쪽 』
회식자리든 점심 식사 자리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앉거나 어울리는 우리네 습속에서 가끔 여자동료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끼어서 담소를 즐길줄 아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양성성적으로 균형잡힌 친구를 만나는 것은 기쁘고 역능이 놀랍기만 하다.
유교적인 가부장적인 문화와 군대 필수인 우리나라 풍토로는 허풍떨거나 센 척하지 않고도 술 없이 속내를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경청할 수있는 또래의 남자를 만나기는 거의 기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여자들과 재미있게 귀를 기울이며 즐길줄 아는 좌우뇌 균형을 고루 잡힌 남성을 보는 것도 즐겁다. 그 자신의 일상사가 스트레스를 견디는 역치도 높을테고 행복한 노후 준비의 첫번 째 항목에서 이미 패스된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집앞에 약간의 화단을 쌓으려고 돌을 나르고 화분을 정리하다보니 이거저거 할 일들이 보였다. 모레(화)는 비가 온다니 여기저기 귀퉁이에 꽃 양귀비 꽃씨를 구해서 뿌릴까 싶기도 하고, 감나무니, 대추나무니, 호박이니 손과 발이 흙을 만나니 코까지 기운을 올라와서 벌름벌름하게 된다.
울 동네는 온통 숲속의 달디 단 꽃향기로 가득하다.
찔레꽃에,
인동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