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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재기(陶隱齋記)
옛사람 가운데 조정에 몸을 숨긴 자가 있었으니, 시경詩經에 나오는 영관伶官1)과 한漢나라 때의 골계滑稽2)가 바로 그들이요, 저잣거리에 몸을 숨긴 자가 있었으니, 연燕나라의 도구屠狗3)와 촉蜀 땅에서 매복賣卜하던 이4)가 바로 그들이다. 진晉나라 때에 술을 마시며 숨었던 자들이 죽림竹林5)이라면, 송宋나라 말년에 고기잡이를 하며 숨었던 이는 초계苕溪6)였다. 그 밖에 ‘숨을 은隱’ 자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표기한 적도 있었으니, 당唐나라의 이씨李氏와 나씨羅氏7) 같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고 하겠다.
우리 삼한三韓은 그 기풍이 워낙 유아儒雅해서 예로부터 걸출한 인재가 많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리하여 드높은 풍도風度를 지니고 절세絶世의 기예를 소유한 이들이 각 시대마다 모자람이 없이 배출되었는데, 정작 ‘은隱’이라는 글자를 가지고서 자신의 호로 삼은 사람은 보기가 드물었다. 이는 출사出仕하는 것이 그들의 뜻이었기 때문에 ‘숨을 은’ 자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은거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숨을 은’ 자를 가지고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서였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처럼 들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일까. 그러다가 근세에 들어와서는, 계림鷄林 (경주慶州 옛 이름)의 최졸옹崔拙翁(최해崔瀣)이 자신의 호를 농은農隱이라 하였고, 성산星山 (성주星州의 옛 이름)의 이 시중李侍中(이인복李仁復)은 자신의 호를 초은樵隱이라 하고, 담양潭陽의 전 정당田政堂(전녹생田綠生)은 자신의 호를 야은野隱이라 하였고, 나 역시 목牧이라는 글자 속에다 나 자신을 숨기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또 시중侍中의 족자族子인 자안子安 씨가 이 대열에 참여하였는데, 그가 대개 숨을 곳을 찾은 것은 바로 ‘도陶’라는 글자를 통해서였다. 도陶라는 글자 속에는, 순舜 임금이 바로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위에 알려지고8), 주周나라도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장차 떨쳐 일어나게 된9) 그런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이 서책에 기재되어 있으니 충분히 살펴볼 수가 있다.
자안 씨는 나이 16세 때에 시부詩賦를 가지고 임인년(1362, 공민왕11)의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글의 기상이 그때 벌써 노성老成한 경지를 보여 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료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그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학문과 문장이 조금도 멈추는 법이 없이 날로 발전한 결과 마치 못물처럼 깊어지고 별빛처럼 빛나는 가운데 그의 글 속에 주공周公의 뜻과 공자孔子의 생각이 끊이지 않고 흘러넘치게 되었으므로, 그동안 노성하다고 자부하던 자들도 일제히 자안 씨를 찾아와서 자기들이 배운 것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자안 씨는 문장의 폐단이 필시 주周나라의 말기처럼 될 것을 알고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 도복도혈陶復陶穴10)의 바탕 위에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러고는 크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부자夫子께서도 ‘주나라는 하夏나라와 은殷나라를 본받았기 때문에 문물이 이토록 성대하게 된 것이다11).[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라고 일컬으셨는데, 주나라도 처음에는 이와 같았을 줄 그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지금은 상고 시대의 소박하고 간략한 풍조와는 너무도 동떨어져서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제도 가운데 그래도 상고 시대의 질박한 풍조가 가장 드러나 있는 것을 찾는다면, 바로 진흙을 구워 내는 것이 그렇다고 하겠다.
띠풀을 자르지 않은 채 지붕을 이고 흙으로 섬돌을 만들던[茅茨土階]12) 풍조가 변하여 옥돌 계단의 화려한 누대와 궁실이 세워지고, 땅을 파서 술을 담아 놓고 손으로 움켜 떠 먹던[汙尊抔飮]13) 풍조가 변하여 옥 술잔과 상아 젓가락이 등장했지만, 진흙을 구워서 쓰는 풍조가 변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고, 또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 질박한 면모를 잃지는 않았으니, 예컨대 동작대銅雀臺의 기와14)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하늘이요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이는 황제이니,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큰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천하의 온갖 물건이 모두 갖추어져서 성대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제기祭器로는 오직 질그릇을 사용하고 있으니15), 예법을 만든 이가 어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였겠는가. 뭔가 반드시 질그릇에서 취한 점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역시 질박함[質] 그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질質의 도道야말로 천하의 대본大本이라고 할 것이니, 커서 넉넉하기만 한 삼백의 경례經禮와 삼천의 곡례曲禮16) 모두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하였다.
자안 씨는 이름이 숭인崇仁인데, 그 이름 속에는 어떤 한 가지 일이라도 인仁 아닌 것이 없게 하려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할 것이다. 자안 씨가 이미 그러한 경지 속에 안온하게 거하고 있으면서 다시 도陶라는 글자를 가지고 자신의 거처를 이름하였으니, 이는 또 예禮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뜻이 분명하다고 하겠다17). 그러고 보면 천하 사람들이 그 인仁으로 돌아갈 것 또한 확실하다고 할 것이니, 이는 바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지언정 결코 숨는 것隱은 아니라고 하겠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천지가 막히면 어진 이가 숨는다.[天地閉 賢人隱]”18)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하며 태평을 구가하고 있으므로, 물고기도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새도 구름 사이를 훨훨 날아다닌다. 그리고 관작(官爵)과 녹봉(祿俸)을 풀어 놓아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 마음껏 경쟁하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루루 떼를 지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산림(山林)에 몸담고 있던 수재들뿐이다.
나야 이제 늙었으니 ‘숨을 은(隱)’ 자를 가지고 나의 호로 삼아도 괜찮겠지만, 자안 씨는 지금이야말로 남보다 우뚝 솟구쳐서 앞으로 용감하게 나아가야 할 때인데, 은(隱)이라는 글자로 자처해서야 되겠는가. 나와 자안 씨는 모두 남양공(南陽公 홍언박(洪彦博)을 가리킴)의 문인(門人)인 데다, 성균관(成均館)의 동료로 서로 어울려 지낸 지가 또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들기에 한 번 물어보는 것이니, 자안 씨는 더욱 힘을 내기 바란다.
陶隱齋記
古之人隱於朝者。詩之伶官。漢之滑稽是已。隱於市者。燕之屠狗。蜀之賣卜者是已。晉之時。隱於酒者。竹林也。宋之季。隱於漁者。苕溪也。其他以隱自署其名者。唐之李氏羅氏是已。三韓儒雅。古稱多士。高風絶響。代不乏人。鮮有以隱自號者。出而仕其志也。是以羞稱之耶。隱而居其常也。是以不自表耶。何其無聞之若是耶。近世雞林崔拙翁自號曰農隱。星山李侍中自號日樵隱。潭陽田政堂自號曰野隱。予則隱於
牧。今又得侍中族子子安氏焉。蓋陶乎隱者也。陶者。舜之升聞。周之將興。以之爲地者也。方冊所載。可見已。子安氏年十六。以詩賦中壬寅科。辭氣老成。同列猶以少。故不甚畏之也。未幾。學問文章。日進而不少止。淵乎其深也。曄乎其光也。周情孔思。層見而疊出也。向之老而自負者。翕然從子安氏。求正其所學焉。子安氏知文之必弊也如周之季焉。泝而求其陶。復陶穴之地。喟然嘆曰。夫子稱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夫孰知其初之如是哉。上古朴略之風。遠矣不可追矣。今之制尙古質之甚者。惟陶爲然。茅茨土階之
變也。而瑤臺瓊室作焉。汙尊杯飮之變也。而玉杯象箸興焉。而陶之用。未聞其有變也。雖變而不離乎質也。銅雀之瓦是已。天下之至大者天也。至尊者帝也。以帝者而事昊天。天下之大事也。天下之物皆備焉。極其盛也。而其器則惟陶之用焉。制禮者夫豈徒哉。必有所取之也。亦曰質而已矣。質之道。其天下之大本乎。三千三百。優優大哉之所從出乎。子安氏。崇仁其名也。無一事非仁。子安氏安於其中矣。而又以陶名其居。信乎其復於禮之本矣。天下之歸仁也必矣。是達也。非隱也。易曰。天地閉。賢人隱。今則明良遭逢。
都兪吁咈。魚川泳而鳥雲飛也。流示之爵祿而鹽其利。是以。于于焉者皆山林之秀也。而吾老矣。猶之可也。子安氏卓然勇往之時也。而以隱自名可乎。予與子安氏。俱南陽公之門人也。同寮成均。相從也又久。故問焉以質之。子安氏其勖之哉。
[주1] 시경(詩經)에 나오는 영관(領官) :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 모서(毛序)에 “위(衛)나라의 현자(賢者)가 영관(領官) 벼슬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영관은 궁중의 악관(樂官)이다.
[주2] 한(漢)나라 때의 골계(滑稽) : 한 무제(漢武帝) 때 활약한 동방삭(東方朔)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와 같은 사람은 조정 사이에 숨어서 세상을 피하는 자라고 하겠다.……궁전 속에서도 세상을 피하면서 몸을 온전히 할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오두막 생활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한 동방삭의 말이 실려 있으며, 《한서(漢書)》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 찬(贊)에 그를 일컬어 ‘골계지웅(滑稽之雄)’이라고 평한 대목이 나온다.
[주3] 연(燕)나라의 도구(屠狗) : 전국 시대 말기의 유명한 자객(刺客)인 형가(荊軻)를 가리킨다.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인 영정(嬴政)을 죽이러 갔다가 피살당했는데, 《사기》 권86 자객열전(刺客列傳)에 ‘그가 연나라에 있을 적에 개백장[屠狗] 및 축(筑)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와 어울려 노닐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4] 촉(蜀) 땅에서 매복(賣卜)하던 이 : 군평(君平)이라는 자(字)로 더 잘 알려진 전한(前漢)의 술사(術士) 엄준(嚴遵)을 가리킨다. 촉 땅 성도(成都) 시내에서 점복(占卜)으로 생활하면서 하루에 100전(錢)만 벌면 문을 닫고 방 안에 들어앉아 《노자(老子)》 강의와 저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漢書 卷72 王貢兩龔鮑傳》
[주5] 죽림(竹林) : 진(晉)나라 초기에 술과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던,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인 위(魏)ㆍ진(晉)의 완적(阮籍), 혜강(嵇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완함(阮咸), 상수(向秀) 등을 가리킨다.
[주6] 초계(苕溪) : 자신의 호를 초계어은(苕溪漁隱)이라고 했던 호자(胡仔)를 가리킨다.
[주7] 당(唐)나라의 이씨(李氏)와 나씨(羅氏) :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인인 이상은(李商隱)과 나은(羅隱)을 가리킨다.
[주8] 순(舜) 임금이 …… 알려지고 : 순 임금이 평민었을 때, 하수(河水) 가에서 질그릇을 구워 생활하기도 하였으며, 나이 20세 효성(孝誠)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가 나이 30에 요(堯) 임금에게 발탁되었다는 기록이 《사기》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온다. 그리고 《서경(書經)》 순전(舜典) 첫머리에 “숨겨진 덕행이 위에까지 알려졌으므로, 요 임금이 그에게 벼슬을 내려 임명하게 되었다.[玄德升聞 乃命以位]”는 말이 나온다.
[주9] 주(周)나라도 …… 된 : 주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우고서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주(周)라고 하였는데, 《시경》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께서는 땅을 파고 혈거(穴居) 생활을 하였을 뿐, 아직 번듯한 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는 ‘도복도혈(陶復陶穴)’의 고사가 실려 있기 때문에, 목은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10] 도복도혈(陶復陶穴) : 주(周)나라 초기라는 뜻이다. 주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우고서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주(周)라고 하였는데, 《시경》 대아(大雅) 면(綿)에 “고공단보께서는 땅을 파고 혈거(穴居) 생활을 하였을 뿐, 아직 번듯한 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라고 나온다.
[주11] 주나라는 …… 것이다 :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온다.
[주12] 띠풀을 …… 만들던 : 《사기》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묵가(墨家)를 비평하는 대목에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은 흙으로 섬돌을 세 칸 올렸고[土階三等], 띠풀로 지붕을 얹으면서 가지런하게 자르지도 않았다.[茅茨不翦]”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13] 땅을 …… 먹던 :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나오는 말이다.
[주14] 동작대(銅雀臺)의 기와 :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가 고도(故都)인 상주(相州)에다 동작대(銅雀臺)를 세울 적에, 흑연(黑鉛)에 호도(胡桃) 기름을 섞어서 기와를 구워 만들었다고 하는데, 후대에 그 기왓장을 벼루의 재료로 썼다는 기록이 전한다. 《春渚紀聞 銅雀臺瓦》
[주15] 제기(祭器)로는 …… 있으니 :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천자가 교제(郊際) 즉 하늘 제사를 올릴 때, “제기로 질그릇과 바가지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천지의 질박한 본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器用陶匏 以象天地之性]”라는 말이 나온다.
[주16] 커서 …… 곡례(曲禮) : 《중용장구(中庸章句)》에 “커서 넉넉하도다. 예의 삼백과 위의 삼천이여.[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라는 말이 있다.
[주17] 자안 씨는 …… 하겠다 : 《논어》 안연(顔淵) 첫머리에,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는 안연의 질문에 대해, 공자가 “나를 이기고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인데, 하루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천하 사람들이 그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대답한 대목이 나오는데, 목은이 바로 이 대목을 연관시켜 숭인(崇仁)이라는 이름과 도은(陶隱)이라는 호를 멋지게 풀이한 것이다.
[주18] 천지가 …… 숨는다 : 천지 사이에 있는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조화되지 못하여 서로 통하지 않게 되면, 인간 사회 역시 소인이 날뛰는 세상이 되기 때문에 군자들은 숨게 마련이라는 뜻인데,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文言) 육사(六四)에 이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