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이 병화를 입은 기록[本國被兵志]
신묘년 3월에 세 명의 사신이 돌아왔다. 5월에 평의지(平義智)가 한 척의 배를 타고 와서 절영도(絶影島)에 정박한 뒤 스스로 말하기를 “급보가 있으니 경성에 가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였으나 본국이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 경상 감사와 만나고 싶다고 하였으나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임진년 4월 14일 적군이 갑자기 들이닥쳐 먼저 부산(釜山)을 함락시켰다. 15일 적이 동래(東萊)로 진격해 왔는데 부사(府使) 송상현(宋象賢)이 전사하고 성이 함락되었다. 좌수사(左水使) 박홍(朴泓)과 좌병사(左兵使) 이각(李玨)이 연합하여 언양(彦陽)에 진을 쳤다가 얼마 뒤에 이각은 본진(本鎭)으로 돌아가고 박홍은 물러나 경주(慶州)에 주둔하였다. 16일 적이 흩어져 양산(梁山)ㆍ울산(蔚山) 등 지역에 들어와 대대적으로 노략질을 감행하였다. 17일 황산(黃山)의 잔교(棧橋)에 이르렀는데,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진(朴晉)이 고군분투하였으나 당해내지 못해 적이 밀양에 들어왔다.
19일 관군이 와해되고 여러 고을이 잇따라 무너져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24일 적이 4개의 부대로 나뉘어졌는데, 한 부대는 낙동강(洛東江)을 따라 올라오고, 한 부대는 곧장 황간(黃澗)과 영동(永同)을 향하고, 한 부대는 조령(鳥嶺)을 향하였다. 25일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상주(尙州)에서 패하였다. 28일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충주(忠州)에서 전사하였는데, 29일 패보(敗報)가 이르자 30일에 선묘(宣廟)가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5월 2일에 적이 한강(漢江)에 이르렀는데 한강을 지키지 못해 3일 만에 적이 경성에 들어왔다. 7일 선묘가 평양(平壤)에 머물렀다. 27일 임진(臨津)의 수비벽이 무너지면서 6월 8일에 적의 선봉이 대동강(大同江)에 도착했다. 12일 선묘가 평양을 떠나 영변(寧邊)으로 갔는데, 이곳에서 양궁(兩宮 왕과 세자)이 처음으로 헤어져 선묘는 의주(義州)로 향하고, 광해(光海)는 감무(監撫)하는 임무를 받아 강원도 쪽으로 가서 이천(伊川)에 머무른 뒤 성천(成川)과 용강(龍岡) 등지로 옮겼다. 23일 선묘가 의주에 도착하여 행재소(行在所)를 차렸다.
本國被兵志
辛卯三月。三使臣回。五月。平義智乘單舸來泊絶影島。自言有急報。願至京城面陳。本國不許。又願與慶尙監司相會。又不許。明年壬辰四月十四日。賊兵猝至。先陷釜山。十五日。進逼東萊。府使宋象賢死之。城陷。左水使朴泓與左兵使李珏合陳於彥陽。已而珏歸本鎭。泓退屯慶州。十六日。賊散入梁山,蔚山等地。大肆怯掠。十七日至黃山棧。密陽府使朴晉孤軍力戰。不能敵。賊入密陽。十九日。官軍瓦解。列郡土崩。不可收拾。二十四日。賊分爲四起。一起循洛東江而上。一起直向黃澗,永同。一起向鳥嶺。二十五。日巡邊使李鎰敗於尙州。一十八日。都巡邊使申砬沒於忠州。二十九日。敗報至。三十日。宣廟西幸。五月初二日。賊至漢江。漢江不守。初三日。賊入京城。初七日。 宣廟次平壤。二十七日。臨津失守。六月初八日。賊鋒至大同江。十二日宣廟離平壤幸寧邊。兩宮始分。宣廟向義州。光海受監撫之寄向江原道。箚伊川移成川,龍岡等地。二十三日。宣廟到義州。爲行在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