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흥사기(遊廣興寺記)
광흥사(廣興寺)는 팔선대(八仙臺) 남쪽 20여 리 거리에 있는데, 낮은 민둥산에 골이 좁고 얕으며 게다가 마을이 가까이 있으니, 그야말로 야사(野寺)이다. 두 가닥 개울이 산뿌리에서 발원하여 콸콸 소리내며 흘러 절 좌우를 돌아 동구에서 합하는데, 들어보면 물소리가 마치 패옥을 울리는 듯, 생황을 울리는 듯하다. 법당 서쪽에는 정사(精舍)가 있는데 창을 열고 앉아서 침을 뱉으면 닿을 거리이다. 또 그 서쪽에는 감나무 정자가 물가에 서 있어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이 절의 빼어난 경관이라 하겠다.
아, 사람이 마음을 기름은 진실로 거처의 우열(優劣)에 달려 있지는 않으니, 마음이 만약 흐리다면 비록 풍악산(楓岳山) 정상에 앉아 있더라도 저잣거리의 시끄러운 소음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마음이 만약 맑다면 비록 진흙탕 속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마치 물외(物外)의 경계에 노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옛사람 중에는 번화한 저자거리에서 대장장이나 장사치들 속에 몸을 숨기고 산 이들이 있었으니, 그 자취는 비록 더러웠지만 마음만은 깨끗했던 것이다. 하물며 이 절은 비록 시골 마을과 인접한 곳에 있다고는 하나, 개울이 맑은 소리를 울리며 옥 같은 물방울을 뿜는 경관이 있고 게다가 개울가에 정자가 있어 편안히 기거하며 시를 읊고 휘파람을 불면서 세념(世念)을 털어버릴 수 있음에랴. 이것이 내가 자주 이 절로 오면서도 귀찮은 줄 모르는 까닭이다.
저녁 땅거미가 개울을 건너오고 서늘한 기운이 나무에서 일어날 즈음 두세 명의 중들과 감나무 정자 위를 배회하노라면 불현듯 속진(俗塵)을 벗어나 신선이 된 듯한 생각이 일어난다. 그리고 달이 허공에 떠 있고 만물이 모두 고요히 잠들 때 눈같이 흰 눈썹의 노승과 헌함(軒檻)에 기대어 그림자를 희롱하다 보면 이 사람, 이 물, 이 달이 공명(空明)하고 쇄락한 경계에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물아(物我)를 망각하게 되니, 이러한 멋은 속인(俗人)들과는 말하기 어렵다.
이상의 이야기를 절의 승려 보인(普仁)에게 말해 주고, 써서 기(記)로 삼는다.
遊廣興寺記
廣興寺。在八仙臺南二十餘里。山禿而低。洞狹而淺。村且近。眞野寺也。有二泉出山根。㶁㶁而鳴。左右寺而合於洞門。聽之如玦環。如笙簧。佛殿之西。有精舍。可開窓坐而唾也。其西有柿亭枕水。可濯可漱。此則寺之勝槪也。噫。人之養心。固不係於居處之高下。心苟濁矣。雖坐楓岳之頂。而無異市闐。心苟淸矣。雖墮泥塗之中。而如在物外。是以。古之人有隱淪於城市商冶之間者。以其迹雖汚而心獨潔也。況是寺也。雖在村野之間。而有鳴泉噴玉之勝。又有亭舍之枕流。可以偃仰吟嘯。消遣世慮。此余之所以頻來而不知勞者也。夕陰渡溪。微涼生樹。與二三釋子逍遙於柿亭之上。翛然有出塵遐擧之想。桂魄當空。群動皆寂。與雪眉老衲。憑軒而弄影。則之人也。之水也。之月也。相忘於空明灑落之境。此則難可與俗人道也。旣以語寺之僧普仁。遂書以記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