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읽고 천심을 보다〔讀易見天心〕
농환1)하는 여가에 대나무 창문을 여니 弄丸餘暇啓竹牖
외로운 나무에 핀 매화꽃이 싸락눈 같네 獨樹梅發花如霰
맑은 향기 이슬에 섞여 위편2)에 들어오니 淸香和露入韋編
붉은 방점 찍으며 읽은 게 몇 번이던가 點點硏朱知幾遍
아득한 하늘을 누가 그윽하고 말없다 했나 玄天誰謂幽且黙
고결하고 깊은 속을 여기서 보겠네 皎皎深衷茲一見
획을 그리기 이전의 역이 태극이니 畫前之易是太極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하고 운행이 없네 漠漠沖沖無斡轉
한 번 현묘한 이치 동하고 정하고부터 一自玄機動還靜
천간이 되고 지지가 되어 괘의 변화가 생겼네 而干而支生卦變
사시의 유행이 진실로 고리와 같은데 流行四時固如環
월굴과 천근3)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던가 月窟天根誰後先
중곤4)은 정고5)하여 양이 없을 듯한데 重坤貞固似无陽
괴이하게도 용이 싸워 피가 검붉네6) 恠底玄黃有龍戰
매서운 바람 부는 차가운 밤 자시 정각에7) 觱發寒宵子之半
현주와 대음은 잡을 수 없다네8) 玄酒大音无畔援
일천 문이 어찌 절로 차례로 열리겠는가 千門何自次第開
지하에서 우레 소리 이르지 않았는데9) 地下一聲雷未洊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선의 으뜸으로10) 大哉乾元善之長
쉬지 않고 이어지니 정녕 실과 같다네 不息綿綿正如綫
석과가 본래 씨앗이 없다고 한다면 若令碩果本無仁
싹이 어떻게 땅 속에서 뚫고 나오겠는가11) 有苗安能地中穿
음과 양이 서로 뿌리 되는 것이 천심인데 陰陽互根是天心
없는 가운데 형상이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12) 無中有象誰能眄
오직 성인은 원래 또 하나의 하늘이니 惟聖從來亦一天
넓고 넓은 흉금에 부러움을 끊었다네 浩浩靈襟絶歆羨
애애한 단서는 느낌에 따라 발하고 藹藹之端隨感發
찬란한 꽃 번쩍번쩍 번갯불 같네 花燃閃鑠光如電
이로 인해 발현되는 근본을 보자니 因茲發見見本根
뭇 이치 모두 담겨 한 조각이 아니네 衆理俱涵非一片
바람과 달 같은 마음은 끝없이 드넓고 風月靈臺浩无邊
짙푸른 뜰 가운데 풀이 절로 우거졌네13) 交翠庭中草自蒨
삼감14)에 유행하여 모두가 봄이 되니 周流三坎摠是春
온화한 바람 온 천지에 두루 불지 않음이 없네 仁風四海無不徧
물아(物我)가 본래 간격 없음을 알겠나니 始知物我本無間
마음에 있어 천인을 일찍이 구분하지 않았네 有心天人曾不揀
분명한 역의 이치 이와 같음이 있는데 分明易理有如比
어찌 하여 내 마음은 감발(感發)에 어두운가 胡乃吾心昧感現
복숭아나무에 오얏꽃 피는 게 어찌 이치이며 桃發李花豈其理
말에 소뿔이 돋는 걸 어찌 일찍이 보았던가 馬生牛角何曾睠
비록 새싹이 산의 나무와 같다 해도 縱然萌蘖如山木
날마다 소와 양 오는 것을 버려두지 마소 日來牛羊須莫遣
고질을 고치는 데 방법이 있으니 醫此膏肓自有術
약을 먹되 아찔하게 써야 한다네15) 用藥要須待瞑眩
조심하며 홀로 세 글자 부절16)을 차고 兢兢獨佩三字符
못가에서 두려워하듯이 거울을 닦아야 하리17) 戰戰臨深磨鏡面
어찌 한 치 아교로 황하를 맑게 하겠는가18) 安得寸膠救黃流
달빛 비친 찬 강물은 비단처럼 맑네 / 照寒江淨如練
사람 마음에 절로 하나의 건곤이 있으니 人心自有一乾坤
천심을 보는 길이 한갓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네 見天非徒賴黃卷
끊임없이 힘쓰고 두려워하며 마음으로 《주역》을 음미해서 乾乾惕若玩心易
욕심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라 그대들에게 알리네 遏欲存天報諸彦
[주1] 농환(弄丸) : 태극(太極)과 같은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말로, 역리(易理)를 탐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 강절(邵康節)의 《격양집(擊壤集)》 권12 〈자작진찬(自作眞贊)〉 말미에 “구슬을 가지고 노는 여가에, 한가로이 왔다 갔다 하노라.[弄丸餘暇, 閑往閑來.]”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주(自註)에 “환(丸)은 태극이다.”라고 하였다.
[주2] 위편(韋編) : 가죽 끈으로 맨 책으로, 《주역》을 가리킨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여러 번 읽은 나머지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으므로 붙여진 말이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3] 월굴(月窟)과 천근(天根) : 월굴은 건상손하(乾上巽下)인 〈천풍구괘(天風姤卦)〉로서 음효(陰爻)가 처음 생기므로 월굴이라 하였고, 천근은 곤상진하(坤上震下)인 〈지뢰복괘(地雷復卦)〉로서 양이 처음 생기므로 천근이라 하였다. 소옹(邵雍)의 〈관물(觀物)〉에 “건이 손을 만날 때 월굴이 되고, 지가 뇌를 만난 곳에 천근을 보네.[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라고 하였다.
[주4] 중곤(重坤) : 중지곤(重地坤)이라 불리는 〈곤괘(坤卦)〉를 가리킨다.
[주5] 정고(貞固) : 정도(正道)를 굳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역》의 사덕(四德) 가운데 정(貞)을 풀이한 말로,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정도를 굳게 지키면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있다.[貞固足以幹事.]”는 말이 나온다.
[주6] 용이 …… 검붉네 : 음양이 서로 교차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곤괘(坤卦) 상육(上六)〉에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붉다.[龍戰于野, 其血玄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7] 매서운 …… 정각에 : 동짓날을 말한다. 동지는 〈지뢰복괘(地雷復卦)〉에 해당되며, 11월 동짓날 자시(子時) 정각에 이르면 다 깎였던 양이 아래에서 되살아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8] 현주(玄酒)와 …… 없다네 : 동지에 자연의 현상은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현주는 물을 말하고 대악(大樂)은 큰 음률을 말하는 것으로, 물맛은 담담하지만 모든 맛의 원천이고 큰 음률은 울림이 드물지만 정음(正音)의 기준이 된다. 소옹(邵雍)의 〈복괘(復卦)〉 시에 “동지 자시 반에, 천지는 마음을 옮기지 않았네. 양 하나 막 움직이고, 만물은 아직 살아나지 않았네. 현주의 맛은 담담하고, 대음의 소리는 드물다네.[冬至子之半, 天心無改移. 一陽方動處, 萬物未生時. 玄酒方味淡, 大音聲正希.]”라고 한 데서 인용 하였다. 《격양집(擊壤集)》 버리고 잡을 수 없다는 말은 《시경》 〈황의(皇矣)〉에 “그렇게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잡지 말며, 그렇게 흠모하고 부러워하지 말라.[無然畔援, 無然歆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9] 일천 …… 않았는데 : 이 구절은 주자의 〈원기중이 계몽을 논한 것에 답하다[答袁機仲論啓蒙]〉 시에 “홀연히 야밤에 한줄기 우레 울리니, 온 집 일천 문이 차례로 열리누나.[忽然半夜一聲雷, 萬戶千門次第開.]”라는 대목에서 인용하였다. 지하에서 우레 소리는 〈지뢰복괘(地雷復卦)〉가 초구(初九)만이 양인데, 이는 땅속에서 우레가 울리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10] 위대하도다 …… 으뜸으로 : 《주역》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위대하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하였고, 〈문언전(文言傳)〉에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元者, 善之長也.]”라고 하였다.
[주11] 석과가 …… 나오겠는가 : 《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는데, 상구(上九) 한 효만이 양(陽)인 〈박괘(剝卦)〉의 상(象)이, 과일나무 끝에 있는 한 개의 큰 과일을 사람들이 따먹지 않아 달려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12] 없는 …… 알겠는가 : 주희(朱熹)의 〈원기중이 계몽을 논한 것에 답하다[答袁機仲論啓蒙]〉 시에 “없는 가운데 형상이 있음을 안다면, 그대가 복희를 직접 보고 왔다고 인정하겠네.[若識無中含有象, 許君親見伏羲來.]”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朱子大全 卷9》
[주13] 바람과 …… 우거졌네 :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하여 “흉금이 시원하기가 마치 맑은 바람에 달이 씻긴 듯하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하였고, 주희(朱熹)가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에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말하면서 “바람과 달빛 끝이 없고, 뜰의 풀들은 푸른 잎이 무성하다.[風月無邊, 庭草交翠.]”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14] 삼감(三坎) : 물을 의미한다. 후천괘(後天卦)의 차례가 삼감수(三坎水)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주15] 약을 …… 한다네 : 질병을 고치는 독한 약을 복용한다는 뜻이다.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만약 약이 아찔하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독하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가 없다.[若藥不瞑眩, 厥疾不瘳.]”라고 하였다.
[주16] 세 글자 부절 : 세 글자의 뜻을 부절(符節)로 삼은 것이다. 주희가 병산(屛山) 유자휘(劉子翬)에게 성인의 도(道)로 들어가는 차례를 묻자, 유자휘는 “나는 《주역》에서 덕(德)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았으니 이른바 ‘멀지 않아 돌아온다[不遠復]’가 바로 나의 삼자부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心經 不遠復章》
[주17] 못가에서 …… 하리 : 늘 두려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듯이 수양한다는 말이다. 《시경》 〈소민(小旻)〉에 “전전 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고 하였다.
[주18] 어찌 …… 하겠는가 : 아교는 물의 탁한 기운을 가라앉힌다. 여기서는 작은 힘을 가지고 큰일을 이루어 보려 했다는 말이다. 《포박자(抱朴子)》 〈가돈편(嘉遯篇)〉에 ‘한 치 아교로 황하를 다스릴 수 없다.[寸膠不能治黃河]’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인용하여 주자가 〈수남헌(酬南軒)〉 시에서 “어찌 알랴 조그마한 아교가, 천 길의 혼탁함을 구할 줄을.[豈知一寸膠, 救此千丈渾.]”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비롯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