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7) 장승상 부인, 심청을 부르다.
심청이 제 아비를 이렇듯 봉양할 제, 춘하추동 사시절을 쉴 날 없이 밥을 빌었으나 ,
나이 점점 자랄수록 바느질과 길쌈으로 삯을 받아 부친을 공경을 하기에 이르렀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 하더니, 어느덧 심청이 십오 세에 이르니, 얼굴이 국색이요, 효행과 재질이
비범하고 문필도 유려하여 여자 중 군자요, 새중에 봉황이라 , 꽃으로 친다면 한 떨기 모란이라 ..
상하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 하는데 ..
"곽씨 부인을 영락 없이 닮았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월편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심청의 소문을 들으시고 시비를 보내 , 심소저를 청하였다.
심청이 그 말을 듣고 부친 앞에 여쭈어,
"아버지, 천만 뜻밖에 장승상 부인께서 시비에게 분부하여 소녀를 보자 청하셨사오니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일부러 부르신다니 안 가 뵐 수 있느냐 . 그 부인 께선 일국의 재상 부인이시니 조심하여
다녀 오너라."
"혹간, 소녀가 더디 다녀 오게 되면 그간 시장하실 터이니 진지상을 보아 탁자 위에 놓고 가니
시장하시거든 잡수십시오. 금방 다녀 오겠나이다." 하고 , 시비를 따라 승상 댁으로 향하는데,
심청이 천연하고 단정하게 천천히 걸음하여 승상댁 문전에 당도하였다.
문 앞에는 버들이 늘어져 춘색을 뽐내며 자랑하고 , 담 안에 기화요초는 중향성을 열어 놓은 듯
단정하고 기품있는 모양이었고, 중문 안에 들어서니 당우가 웅장하고 장식도 화려하였다.
중계에 다달으니 반백의 부인이 곱단한 옷을 단정히 입고 있었는데 피부와 얼굴이 풍만하고,
눈 은 빛났으며, 오똑한 코와 한 일자로 잘 다무려진 입술은 앵두색으로, 영락없이 복록이
넉넉하고 후덕이 넘쳐 보이는 귀 부인 이었다.
문을 들어서는 심청이를 발견한 부인은 심청이를 반겨 보고 일어서 맞은 후에 심청의 손을 잡고,
"네가 과연 심청이냐 ? 듣던 말과 다름없구나." 한 눈에 사람됨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어 앉힌 후, 심청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더라.
그러나 심청이는 별로 단정한 일 없이 왔으나, 부인의 눈 에는 심청의 맵시 있는 모양이 가희
국색으로 , 전혀 모자람 없이 보였다.
"너의 전신은 알수 없으나 , 분명히 선녀로다. 이렇듯 도화동에 네가 내려왔으니, 월궁에 놀던 선녀가
가히 벗 하나를 잃었겠구나. 무릉촌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서 무릉촌에 봄이 드니
도화동에 개화로다. 심청아 내 말 들어라. 승상은 세상을 떠나시고 아들은 삼 형제를 두었으나,
황성 가서 여환하고, 다른 자식은 아직 손이 없다. 하여, 내 슬하에 말벗이 없어, 자나 깨나 적적한
빈 방에서 마주 대하니 촛불이요, 길고 긴 겨울 밤에 할일 없이 보는 것이 ,고작해야 고서이다."
"그리고 네 신세를 생각하니 양반가의 후예로서 저렇듯 빈곤하니 , 네가 나의 수양딸이 되어
여공도 숭상하고 문자도 학습하여 ,내가 낳은 자식처럼 지내면서 나의 말년의 생활에 활기와
재미를 보자 하니 너의 뜻은 어떠하냐?"
심청이 여쭈기를,
"명도가 기구하여 저 낳은지 칠 일 만에 모친께서 이 세상을 버리시사, 앞 못 보시는 늙은 부친이 저를
안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면서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길러 내어 이만큼 되었나이다."
"모친의 모습을 알수 없는 것이 철천지한이 되어, 내 어머니를 생각하여 연만한 부인들께, 자식의
지극한 봉양을 아끼지 않았는데, 오늘날 승상 부인의 존귀하신 처지로서 미천한 저를 , 딸 삼으랴
하시니 어미를 다시 본 듯 반갑고 황송 하옵니다."
"말씀대로 이곳에 와 지내게 되면 ,부인의 은혜로 내 팔자는 영귀하게 되겠으나, 앞 못 보는 소녀의
부친, 사철 의복 조석 공양은 누가 있어 하겠나이까. 길러내신 부모 은덕이 사람마다 있겠으나
소녀의 부모 은혜는 남 다르게 각별하니, 감히 부친의 슬하를 일시라도 떠 날 수가 없나이다."
심청이 더 이상 목이 메어 말 못하고 눈물이 흘러 내려 얼굴에 젖는지라,
부인이 듣고 가상히여겨,
"네 말이 과연 하늘이 낸 효녀로다. 노망한 이 늙은이가 미처 생각을 못 하였다." 하였다.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