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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문이 열리는 비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6 (요 4:23-24)
새로운 교회에 부임한 신삥 목사님이 부임 후 첫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설교를 하는 것이라 성도들 앞에서 긴장도 되고 떨리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점점 무르익기 시작했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키가 작았어요. 그리고 직업은 세리였어요.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를 찾아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달려 나갔지만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하고,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자기가 설교를 잘못한 것을 알고 갑자기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니고데모가 뽕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삭개오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우리는 날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 아침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예배이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예배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어야 하고, 하늘 문이 열려지는 복이 임하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늘 문이 열려지는 복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자는 어떤 존재인가?
1. 택함 받은 자입니다.
사람의 몸을 화학 성분으로 분해해서 그 값을 따져보면 보통 사람의 경우 사람의 몸은 2.25kg의 칼슘, 5백 g의 인산염, 2백 52g의 칼륨, 1백 68g의 나트륨, 28g의 마그네슘, 각각 28g 이하의 철과 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밖에 체중의 65%가 산소, 18%가 탄소, 10%가 수소 3%가 질소로, 이물질 등을 현시가로 판다면 겨우 89센트에 불과하다고 일리노이 대학의 해부학 교수 할리 먼센 박사가 분석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900원 꼴입니다.
사람의 가치를 화학성분으로 분해한다면 단돈 1,000원도 안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만, 생물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대단히 귀중한 존재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남성은 평생 약 3,000번 정도 사정을 합니다. 여성은 평생 약 400 개의 난자를 생산합니다. 남성이 한 번 사정할 때에 정자수가 약 2억 개가 됩니다.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은 5분의 1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질병이나 전쟁 또는 사고 등이 없었다고 할 경우에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순수 생물학적 확률은 3000x400x2억x5=1,200조 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1,200조:1의 경쟁률을 뚫고 세상에 나온 위대한 존재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나’라는 존재는 태초 이후 동서고금을 통 털어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존재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영적으로 말한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성품을 갖게 하시고 예수 닮게 하시고 능력 주셔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귀하고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을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을 다스리고,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성도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들어 사용하셨듯이 거룩한 나라로 구별된 우리들을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모든 삶의 소유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희생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하는 자는
1)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2)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3) 나는 거룩한 나라다.
4)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는 주일을 거룩히 지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걸리는 열 가지 병이 있다고 합니다.
1. 주일 예배는 참석했어도 세상 일만 생각하는 세상 병.
2. 예배당에 종을 쳐도 아직도 우물쭈물하니 게으름 병.
3. 믿는 형제 서로 보면서 두 눈만 힐끗힐끗하는 시기 병.
4. 예배당에 앉아도 살림살이 염려하는 염려 병.
5. 예배당에 출석부를 보니 동그라미 가득한 결석 병.
6. 예배당에 늦게 나와서 남들 눈치 보며 정신없이 기도하는 외식 병.
7. 예배당에 와서 앉아 고개만 끄덕끄덕 졸음 병.
8. 성경말씀 아무리 들어도 은혜 받지 못하는 기갈 병.
9. 헌금할 때 돈 아까워 우물쭈물 인색 병.
10. 예배드리고 돌아가서도 세상 일만 골몰하는 세상 병.
사람에게는 세상일을 쉬고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드리면서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산에 올라가 겨우내 땔 땔감나무를 준비했습니다. 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낫을 이용해서 나무를 잘랐습니다. 다른 한 사람도 낫을 이용해서 나무를 잘랐는데 한 시간쯤 일하고는 물가에 가서 한 십분 정도 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 마치고 나니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한 사람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쉬면서 일을 한 사람이 더 많은 땔감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한 사람이 “자네는 재주도 참 좋네, 쉬면서 일해도 나보다 더 많은 땔감나무를 얻었으니 말일세. 그 비결이 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쉬면서 일을 했던 사람이 “나는 잠깐 동안 쉬면서 낫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더 많은 일을 하는 줄 알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은 적당한 때 쉬는 쉼이 있어야 더 효율적이고 능률 있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살이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면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쉬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인간의 매뉴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쉬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주일에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을 받으며 살아가야 인생을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주일
성경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안식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샤바트’인데 ‘휴식(休息)’이란 뜻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 일에는 안식하셨고, 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에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출20: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만나를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출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모세 시대에는 안식일에 불도 필 수 없었고(출35:3), 안식일을 어기면 목숨까지 잃기도 했습니다(출31:14: 민15:32-36). 그리고 안식일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안식일 규례가 강화되면서 “안식일에는 너희는 각기 그 처소에 있고,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라.(출16:29)”는 말씀을 왜곡하면서 안식일은 사람들의 삶에 발목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뒤에는 안식일에 대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마2:28)”이라고 말씀하셨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막2:27).”라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적인 필요가 안식일의 율법적 규범에 우선한다고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심으로 안식일은 주일로 바꾸어 지키게 되었습니다.
주일은 능력의 날이다.
주일은 능력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일은 죽음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죄악의 권세를 깨트리는 날입니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마귀의 유혹으로 음란과 부정과 악한생각으로 살아가던 더러운 모든 것을 씻어버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절망의 권세, 가난의 권세, 무지의 권세를 깨트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권능으로 예배자가 새로워지는 날입니다.
주일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주일에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주일 아침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 중에 임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내 속에 있는 죄를 태워버리고, 세상의 악한 관습을 깨트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사단의 권세를 제어하는 능력의 종들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하늘 문이 열려지는 날입니다.
주일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하늘 문이 열려지는 환상을 보고 하늘나라를 구경하고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계시를 받은 날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은 예배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는 날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날, 내 삶의 원동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의 미래를 설계하고, 내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는 능력을 공급받는 날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날이 주일입니다.
성도는 주일성수를 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였던 스티븐 지라드라고 하는 사람이 어느 토요일에 자기의 직원들에게 일이 바쁘니 내일 나와서 항구에 들어온 선박의 짐을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한 청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라드씨. 저는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말하기를 “그럼 할 수 없지. 나와 헤어지는 수밖에” 결국 청년은 그동안 일한 급료를 받고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동안이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라델피아시에 있는 한 은행 총재가 지라드 씨에게 새로운 은행을 하나 열어야 하겠는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곰곰이 생각을 하던 지라드 씨는 자기가 해고한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그러자 은행장이 “자네가 해고한 청년을 왜 나에게 소개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지라드 씨는 “내가 그 청년을 해고한 이유는 일요일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했지. 그러나 은행은 주일에는 쉬지 않나. 그리고 자신의 믿음과 삶의 원리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새로 세우는 은행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결국 지라드 씨에게 주일에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해고된 청년은 새로운 은행 총재에게 발탁되어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은 한 주일의 첫날이지 주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일을 주말로 생각하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날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달력을 보면 주일이 제일 앞에 있습니다. 모든 날의 시작이 주일입니다.
그러기에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은 거룩한 날이지 휴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지 내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은 존귀한 날이지 흥청망청 대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은 복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천국 가는 훈련
미국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복음성가 가수의 간증이 있습니다. “제가 열 살 되었을 때에 아버지와 사냥을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그 날이 주일이어서 주일 예배를 드리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사냥하러 가는 마음에 들떠서 ‘주일 한 번 어긴다고 그리 걱정할 것은 없어’라고 말하고는 저와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산에 갔는데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혼자 남겨두고 황급히 토끼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아버지는 나무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물체를 발견하고 사냥총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제 머리카락을 토끼의 꼬리로 착각을 하고 총을 쏜 것이지요. 그날부터 저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로 우리 가족은 구원을 받았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되었습니다. 눈을 잃고 온 가족이 구원받았으니 이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유혹할 때에 ‘딱 한 번인데 뭘’이라고 말하면서 유혹합니다. 한 주일만 빠지는 건데 뭘..... 이것이 나의 영혼을 갉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천국 가는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국 가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다해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잠을 더 자고 싶더라도, 주일에 골프를 치고 싶더라도, 주일에 돈을 벌고 싶더라도, 주일에 친구를 만나고 싶더라도, 주일에 여행을 다니고 싶더라도 모든 것을 다 물리치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당시 1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 영국 에릭 리델(Eric Liddel) 선수는 100m 경주가 주일에 열리자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는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400m 경주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가 갑자기 뛸 수 없게 되어 그가 대신 뛰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400m 경주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47.6초의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후에 중국 선교사가 되어 1945년 병으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며 선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에릭 리델은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을 생각하며 세상에서의 금메달을 멀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예배자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거룩하고 존귀하고 복된 날로 알고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받고 한 주간 한 주간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삶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기적과 복이 넘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