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외숙 비지 남 선생에 대한 만사 3수 〔仲舅賁趾南先生輓 三首〕
퇴계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고 師事李先生
주 고정을 존숭하였네 尊崇朱考亭
경전을 궁구하여 체득하길 바랐고 窮經要體認
예를 배워 몸소 실행하길 힘썼네 學禮務躬行
역수를 부지런히 교정했고 易數勤讐校
시묘 살며 효성을 다하였네 廬居盡孝誠
어찌 하늘이 돌봐 주지 않아 如何天不憖
나의 모범되는 분을 잃게 하는가 使我失儀刑
삼십팔 년 평생 누린 즐거움은 卅八生平樂
단표누항에 있었네 簞瓢陋巷間
사는 곳은 원량의 집과 같았고 堵同容膝亮
마음은 안연의 곡굉을 사모했네 心慕曲肱顔
피눈물 흘리며 삼년상을 다 마치고 泣血霜三盡
슬프게도 여름 지나 형을 잃었네 悲昆暑一闌
쓸쓸한 혼이 지금 이어 가버리니/ 孤魂今繼逝
천도는 정말 알기 어렵구려 天道測眞難
많고 많은 생질 중에 詵詵甥與姪
내가 가장 사랑을 받았다네 鍾愛我居先
어릴 때부터 이끌어 주시어 句讀承提命
미련한 내가 가르침 받았네 頑蒙被誨鐫
근래에 괴롭게도 어머님 병이 드셔 母病邇來苦
상여를 메기가 어렵네 靈輀難自肩
영구를 보내며 영결하니 辭柩仍永訣
슬픈 눈물 갑절로 흐르네 悲涙倍潸然
[주1] 비지(賁趾) : 남치리(南致利, 1543~1580)의 호이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의중(義中)이다. 30세 때인 1572년(선조6)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문과에는 응시하지 않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채 이황의 《이학통록(理學通錄)》과 《계몽전의(啓蒙傳疑)》 원고를 정리하고 교정하여 간행하는 데 힘썼다. 중앙과 지방으로부터 뛰어난 인물로 선망을 받았으나 모친상에 이어 백씨 상을 치르느라 몸을 상해 38세로 요절하였다. 1649년(인조27) 사림(士林)에서 노림서원(魯林書院)을 세워 봉향하였다.
[주2] 주 고정(朱考亭) : 주희(朱熹)를 말한다. 고정은 주희가 평생 거처했던 곳으로, 1192년 이곳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을 짓고 학문을 강론했다. 이 때문에 주희를 고정이라 부르고 있다. 《宋元學案》
[주3] 단표누항(簞瓢陋巷) : 안빈낙도의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구석에서 살자면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雍也》
[주4] 사는 …… 같았고 : 사는 집이 작다는 말이다. 원량(元亮)은 진(晉)나라 때 은사(隱士) 도잠(陶潛)의 자이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남쪽 창에 기대어 오만한 마음 부치니, 무릎 놀릴 만한 작은 집도 편안함을 알겠네.〔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고 하였다.
[주5] 곡굉(曲肱) : 곡굉음수(曲肱飮水)의 준말로, 팔뚝을 구부려 베개로 삼고 배고프면 물을 마신다는 뜻으로,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서 베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않으면서 누리는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述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