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에서〔安市城〕
황제에게 배례(拜禮)하던 안시성주의 옛 자취 아련한데 舊迹依俙拜帝年
나그네 길가에 무너진 성가퀴 길게 누웠도다 頹陴長卧客程邊
만승의 위엄 장대하다 말하지 말라 休言萬乘揚威壯
외로운 군대의 굳센 절개 여전히 남아 있다오 尙有孤軍抗節堅
백우전(白羽箭)에 관한 사실 이미 기휘(忌諱)가 심한 줄을 아니 白羽已知嫌諱甚
청사(靑史)에는 끝내 성명이 전해지지 않네 靑編終靳姓名傳
노나라 영토 날로 깎여 지금과 같음에 상심하니 傷心魯削今如許
돌이켜 생각하니 흠모하여 눈물 절로 흐르노라 / 緬挹英風涕自漣
[주1] 안시성(安市城) : 사행 경로에 위치하는바 책문(柵門)과 10리 거리에 있다. 고구려의 28대 왕인 보장왕(寶藏王) 4년(645)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공격해 왔을 때, 성주(城主)가 고군분투하며 당군을 크게 격파한 성으로, 봉황산의 동남 기슭에 있는데 봉우리가 철옹성처럼 둘러싸고 있어 천연 요새로 일컬어진다.
[주2] 황제에게 …… 아련한데 : 당나라 태종이 안시성의 공성전에서 패배하고 돌아갈 적에, 안시성주가 배례로 전송하였던 옛날 역사에 대한 소회를 말한 것이다. 이 내용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고구려세가 하(高句麗世家下)〉에서 “안시성 성주는 힘을 다해 싸워서, 날마다 당군과 6, 7합을 60여 일간이나 접전하였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태종은 요동 지방에 추위가 일찍 와 풀이 마르고 병마(兵馬)가 오래 머물기 어려우므로, 철군 명령을 내렸다. 성 아래에서 열병(閱兵)을 하고 돌아가니, 성주가 성 위에서 배례하였다. 태종은 그에게 비단 1백 필을 주고 군대를 돌려 요하를 건넜다.〔安市城力戰日六七合 六十餘日 終不下 帝以遼左早寒草枯 士馬難久留 詔班師 耀兵城下而歸 城主從城上拜 帝賜縑百匹 還軍渡遼〕”라고 전하고 있다. 《記言 卷34 東事 高句麗世家下》
[주3] 만승(萬乘) : ‘만승천자’의 줄임말로 당나라 황제를 가리킨 것이다. 승(乘)은 고대의 전차(戰車) 한 대를 이르는 말로, 여기에는 군마(軍馬) 4필, 갑사(甲士) 3명, 보병 72명이 소속되었는바, 천자국은 1만 승, 큰 제후국은 1천 승을 갖추었다.
[주4] 백우전(白羽箭)에 …… 않네 : 백우전은 흰 깃털이 달린 화살을 이르며, 기휘(忌諱)는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김을 이른다. 당나라 태종이 30만 대군을 친히 거느리고 고구려를 쳐들어왔다가 당시 안시성주로 있던 고구려 장수의 백우전을 맞아 부상당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당시의 안시성주는 양만춘(楊萬春 또는 梁萬春)이라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중국의 역사책에는 이 사실을 기휘하고 기록하지 않아 그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말한 것이다.
[주5] 노(魯)나라 …… 상심하니 : 노나라는 춘추 시대 산동성(山東省)에 있던 나라로 열강들의 틈에 끼어 국토가 날로 줄어들었는바, 우리나라를 노나라에 비유하여 서글퍼한 것이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노나라 목공의 때에 공의자가 정사를 하고 자류와 자사가 신하가 되었으나, 노나라의 영토가 줄어듦이 더욱 심하였다.〔魯繆公之時 公儀子爲政 子柳子思爲臣 魯之削也滋甚〕”라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