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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 속에 둘러앉아 관옥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비 소리가 워낙 강하고 선생님 목소리가 작아서 더욱더 집중해서 듣고 적습니다.
선생님 : 두어 달 더 된 거 같아요. 감기가. 오늘은 목소리도 나오고, 기침도 많이 멎었고, 아이고, 오셨어요? 저분이 계시니까, 여기 안 올 수가 없어. 아까 얘기 들으니까, 곡성에서 기차 타고 오셨다고요? (박수)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아주, 진심으로 회개라는 걸 한번 했습니다. 회개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거, 진심으로 회개했어요. 뭐냐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고, 그거 자체가 고마운 일인지 몰랐어요. 그 자체가. 고마운지를 모르니까, 감사한 마음도 없이, 그렇게 80년 세월을 살아왔어요.
음성에 가면 꽃동네라는 게 있어요. 거기가면, 처음 신부님이 음성에 부임했을 때, 그 교구에 노숙자, 노숙자라는 말이 근사하지만, 사실 거지잖아요. 바닥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 얘기가 꽃동네에 가면 아마 지금도 있을 거예요.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그 신부가 그 노숙자 김순 할아버지라 그래. 이게 들은 말 한마디. 빌어 먹고 사는 것도 은혜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냥 아직도 빌어 먹고 산다는 거. 이거 자체만 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안 나와서 말도 못 해보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말할 때, 우리 힘 안 들잖아요. 그렇죠? 숨 쉴 때 힘 안 들고, 밥 먹을 때 힘 안 들고, 그거 자체가 얼마나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내가 잘나서 그런 거 아니잖아? 그걸 몰랐어요. 이재부터 그 사랑 잊지 않겠다고. 매 순간, 그 고마울 따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명심하고, 살겠습니다. 그렇게 한 말씀 드렸죠.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오늘 같이 읽어볼까요? 진정을 따름. 127페이지.
우리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으니
그래요. 이거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자기가 아는 한, 우주에는 두 가지 무한이 있대요. 하나는 우주, 우주는 한이 없다. 한이 없다는 말은, 경계가 없다는 말, 울타리가 없어, 그것이 우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의 무지다. (웃음)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쫓으려 하면 몸을 해칠 따름인데. 그런데도 굳이 알고자 하는 자는 끝내 몸을 망치고 만다.
뭘 우리가 사람이, 뭘 해도 몸으로 하잖아요. 그렇죠? 철학도 몸으로 해요. 그렇죠? 몸 아니에요? 옛날에 제가 젊었을 때, 저희, 먹물 먹은 인간과 노동자 이 둘을 구분을 해서, 우리 먹물 먹은 인간들은 노동자들에게 빚진 자들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교수님, 그런 생각 안 하셨어요? 먹물 먹은 사람, 노동자한테 빚이 많다. 우리 제가 대학시절 때,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누굽니까? (프랑치 파농이라고 들어라 먹물들아. 파롱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어요. 들어라 양키야, 그것을 그냥 들으라 먹물들아)
그랬구나. 하여튼. 파롱, 지도 먹물이잖아요. (웃음) 그런 책을 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내가 괜히 내가 미안하고, 노동자들한테 무슨 걔들을 착취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우리 친구들 노동 현장에 많이 나와서 공사판으로 가기도 하고. 글쎄요. 제 친구 허정수 목사는 목사직 관두고 미쟁이가 됐어요. 그런 시절에 우리가 살았어요. 나도 그랬어요. 그러나, 난 용기가 없어서 노동 현장에 가지는 못하고, 끊임없이 어떤 이 사회의 부채감을 가지면서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그것도 관념이다. 노동자만 몸으로 일하냐? 철학자도 몸으로 일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먹물도 몸으로 먹물 노릇을 해요. 노동자도 머리를 써야 돼. 그렇죠? 똑같아. 인간이야. 먹물, 노동자, 이거는 내가 만드는 경계지. 생각일 뿐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조금 벗어난 기억이 납니다. 뭘 해도 몸으로 해요. 그렇죠? 사람이 뭘 하는데 몸으로 안하는 게 뭐가 있어요? 사랑을 해도 몸으로 하고, 누구 미워하는 것도 몸으로 하고, 몸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그게 몸이야. 이 몸, 참 신비롭고, 미스터리 한거예요. 근데, 몸으로 하는데,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게 사람한테 있잖아요. 몸은 말 그대로 자연이에요. 자연. 저 나무하고 다를 거 없어요. 몸만 가지고 말하면, 여러분이나 나나 똑같아요. 모양은 달라도 몸은 같은 몸이예요. 먹으면 배부르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추우려면 자고. 몸이야. 똑같아. 유명한 말 있잖아요. 몸만 가지고 말하면, 공자님이나 도척이나 똑같다. 도척은 당시 유명한 도둑이예요. 몸만 가지고 말하면 똑같아. 어떻게 보면, 몸은 인간을 통일시키는, 인류를 통일시키는, 그 하나의 바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각자 사람이 자기 몸이 하자는 대로만 하면,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몸이 하자는 대로만 하고, 몸은 거짓말을 못해요. 몸은 거짓말을 못해요. 그렇죠? 거짓말이 안 돼. 해로운 음식이 들어오면 못 받아 들여. 그러니까, 저마다 몸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사람이 똑같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야. 마음은 경계가 없어. 그렇죠? 경계가 없어. 몸은 한계가 있어. 몸은. 사람마다 자기 키가 있고, 체중이 있고, 그렇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몸은 그래요. 마음은 그런 경계가 없어요. 언제든지 돌아댕기고, 마음은 만족이라는 것이 없단 말이야. 만족이라는 것이 뭡니까? 됐어, 충분해. 이거 아닙니까? 이것에 경계가 없어. 들어와도 더 들어 올 수 있어요.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 끝도 없잖아요. 경험으로 아시죠? 인간의 욕심. 한이 없어. 사람이 뭘 한다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몸이 하는 것은 아니야, 또. 그거 묘해. 그러잖아요? 내가 고구마를 보지. 내 눈이 보는 것은 아니라고.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주체가 못 돼. 할까? 말까? 결정은 마음이 해. 그렇죠? 여기 광주에서 오시는데, 올까? 말까? 자기가 했잖아요. 코가 했어요? 발이 했어요? (웃음) 마음이 몸을 부린단 말이야. 근데, 여기 얘기한 것처럼. 한도 끝도 없는 놈이, 한이 있는 놈을 부릴래니까, 지나치면, 지나치면, 몸에 탈이 난다. 그거지. 왜? 몸은 거짓말을 못하니까. 여기까지야. 나는. 이 이상은 못해. 그런 거야. 근데? 마음은? 아니야. 아직도 더 해. 계속 가니까, 몸이 아이고, 나 못해. 그게 폐병이여. (웃음) 안 좋은 고기 자꾸 먹고, 술을 마음껏 마시고, 이 간이 그거 좀 독성을 해소하려고 다 노력하는데, 있어야지.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10그람인데, 20g 30g 들어온단 말이야. 없잖아? 간이, 아이고, 나 그만 못해. 간염이 걸린다고.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장자가 뭐 대단한 철학자 아니에요. 우리 다 아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착한 일을 해도 이름이 날 만큼은 하지 말고 약한 일을 해도 벌을 받을 만큼은 하지 말아라.
아 참, 이 친구 참 되게, 재밌게 해요. 맞아요. 좋은 일을 해도 이름이 날 만큼은 하지 마라.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렇죠? 내가 뭐 좋은 일을 하는데, 이름이 난다는 얘기는 남들이 알아준다는 거예요. 어, 쟤 봐라. 이렇게. 그렇게까지는 가지 마라. 그래. 사람이 벌 받을 악한 일을 할 수 있지. 해도 벌 받을 만큼은 하지 마라. 뭐냐.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해. 그러라나, 지나치지는 마라. 지나치지 말아. 너 중앙을 잘 지켜라.
중정을 따르는 것으로 기를 삼으면 이로써 몸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며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수 있다.
거기 본문을 보면, 본문 중간 끝에, 독연이위경이란 말이 나옵니다. 아니요. 미안합니다. 연독 이위경이라는 한문이 나와요. 연이라는 말은 인연이란 말 쓰는 말인데, 서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연결된다. 이어진다. 그다음에 여기 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독을 뭐라고 해석하느냐. 학자들이 대개, 여기 나오는 중정, 중정 또는 중용 또는 중성 이런 말로 이제 옮겨서 읽어요. 그러니까, 중정을 지키면서 뭐 하면 이런 말입니다. 뭘 해도 좋아. 중정을 시키면서 하라. 그러면 가이, 가이라니까 뭐 할 수 있다는 거니까. 보신이요. 몸을 보호하게 되고, 몸을 해치지 않는단 말이죠. 보호하게 되고. 가위 전생이요. 전생. 전이라는 걸 온전하게 안다는 겁니다. 생은 삶이죠. 그 완전하게 잘 살고. 가이 양친이요.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가이 진년이니라. 자기의 수명을 다할 수 있다. 보신, 전생, 양친, 진년, 이게 전부 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거잖아요. 그죠? 그거 어렵지 않다. 뭘 해도 좋으니, 중정만 지켜라. 근데, 이 중정을 지킨다는 게, 참 어려운가 봐요. 그래서 공자님도 보면, 한탄을 해요. 아, 내가 중용을, 중용을 지키는 사람을 보질 못한다. 자기 자신도, 자꾸만 이렇게 넘어간단 말이야. 젊어서 죽은 자기 제자 안현이 있는데, 젊은 나이에 죽었죠. 공자가 굉장히 아꼈던 제자. 내심으로는, 자기 제자지만은 자기 제자들도 이렇게 나보다 윗길이다. 이렇게 인정했던. 그런 분이, 안연이라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공자가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하늘이 나를 버리셨다. 그 안연이라는 제자에 대해서, 난 그 사람이 중정을, 중용을 지키는 걸 내가 봤다. 그 정도로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게 중용이라고 하는 걸 인정하는 게 좋아요. 그러나, 그것은 좋으니까 인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중용을 지킬 수 있을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나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건,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그걸 몰라요. 이게 모자란지, 지나치는지 마음은 몰라요. 몸은 알아요. 지금 내가 일이 지나친지. 그렇지 않은지. 몸은 알아. 그러니까, 몸의 신호를 평소에 잘 보고, 무시하지 말고, 몸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잘 듣고, 그런 훈련을 우리가 평소에 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감자 동의가 돼? (웃음) 근데, 세상은 나한테 자꾸 무리하게 하잖아. 그치? 직장은 나한테 내가 하기 어려운, 무거운. 세상만 나한테 그런 짐을 주나? 내 욕심만한 게 없다고 봐.
내가 5월 1일 날, 진짜 내 말 들리냐? (네.) 참. 내가 디아코니아에 가서 설교를 했어요. 설교하러가기 전날, 오후에 산책을 잠깐 하고 들어와 누웠는데, 갑자기 오한이 밀려들더니 온 몸이 떨려. 사시나무 떤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왔나봐. 진짜 이렇게 떨리는데. 저 발끝에서부터 여기까지. 온 몸이 떨려. 내 기억에는 생전 처음 겪어 본 일이라. 이게 뭐지? 왜 이러지? 나 혼자 있는데. 그때 한 말씀 들려 주셨어. 요즘 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가 배운,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내 마음대로 한님 어머니, 이렇게 바꿔서 부르는데, 같은 분이지. 나는 어머니가 더 좋아. 아버지보다. 한님 어머니. 한님 어머니가 아주 분노한 말씀으로, 네 몸으로 네 일 하는 거 아니야. 나보고. 내 몸으로 내 일 하는 거다. 네가 지금 몸 떠는 거 아니야. 내가 떠는 거야. 나는 이 몸이 내 게 아니라는 건 내 군대 있을 때 경험해서 머리로는 알았어요. 평생 잊지 않고 살았어. 이 몸 이게 내 소유가 아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걸 알긴 알았어요. 근데, 그거를 머리로 알았지. 이번에. 네가 지금 떨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내 몸을 떨고 있는 거야. 너는 그저 내가 내 몸으로 하는 일을 잘 봐. 잘 지켜보고, 내가 지켜본 대로, 사람들에게 얘기해. 그게 증인이야. 증인. 나는 너를 내 증인으로 삼았다. 나는 네가 필요해. 그러니, 너는 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니가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엄마가 하는 거니까. 그게 뭔 얘긴지. 뭔지를 네가 경험한 대로 잘 얘기해. 증인은 자기가 본 대로 말해야 돼. 보지 않은 걸 얘기하면 안 돼. 증인의 자격이 없어. 본대로. 그 본 것을 자기가 해석해도 안 돼. 해석도 안 돼. 있는 그대로 얘기해라. 이런 말씀을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있던 것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어요. 그죠? 그 많은 일을 내가 한 게 아니더라고. 내가 한 게 아니야. 엄마가 하셨어요. 그런데, 엄마가 나한테 하려고 하는 일을 내가 다 망쳤어요. 내가. 엄마가 원래 하려고 하는 건 이건데, 내가, 주관해서 이리 틀고, 저리 틀고 망가뜨렸어요. 그게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 따라 하십시오. 그게 그런 말씀이었구나. 내 뜻이 있었던 거야. 진짜 목사가 되고 싶다. 이런 거. 그 얘기 뭐야? 이 세상에 내가 보니까, 가짜 목사들 많다. 이런 얘기잖아. 나는 진짜 목사가 되고 싶다. 예수의 참 흠 없는 제자가 되고 싶다. 내 생각이야. 그러니까,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래야 한다. 수많은 이래야 한다. 가 내 속에 있어요. 동시에, 그러면 안 돼. 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엄마의 뜻을 차단한 거야. 예수는 자기 뜻이 있어. 그러나, 그거를 아버지 앞에서 지워 버렸어. 그게 느껴졌어요.
모세라는 사람이, 그게 히브리 노예 아들이잖아. 근데, 이제 파라오라고 하는 애굽의 왕이 이 히브리 민족이 자꾸만 숫자가 늘어난다 말이야. 이놈들, 내버려 두면 안 되겠어. 그 수를 줄여야 되겠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다 죽여버려라. 이렇게 이제 명을 내렸어. 얘도 이제 아들이니까, 죽여야 되겠다고 그래서 죽일 수 없고, 그래서, 그때 상자에 담아다가 강에 띄었다는 거 아니야.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하필이면, 파라오의 딸이 목욕을 하다가 발견하고, 갓난쟁이 아닙니까. 아이고, 그 불쌍한 걸 누가 버렸구나. 내가 데려다 기르자. 그래서,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로 된 거야. 그리고 파라오의 왕가의 왕자 중에 하나가 된 거지. 40년을 살았어. 그렇게. 그럼 자기 마음속에는, 너는 히브리 민족이라는 게 알고 있어. 왜냐하면, 자기를 젖먹여 기른 게 엄마거든. 생모. 생모가 가르쳐줬단 말이야.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너는 히브리 사람이야. 자기만 알지. 어느 날, 공사판에서 애굽 사람 하나가 히브리 사람 하나를 죽이려고 한단 말이지. 그걸 보고 모세가 가만히 있어도 돼. 못 본 척해도 돼. 자기 신분, 누가 뭐라고 안 그래. 그러나, 본인이,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래서, 일어나서 그 일에 참여한단 말이지. 그 히브리 민족 자기 동족을 구하려니, 죽이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사람하나 죽였다는 거 아닙니까? 사람을 죽였어요. 둘러봐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나. 보고 아무도 없다 싶었을 때, 자기네 마음속으로 내가 민족을 위해서, 외면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는 그런 뭐 생각이 있었겠죠. 근데, 그 다음 날, 똑같은 쌈박질이 벌어졌는데, 동족끼리 싸우잖아. 또 가서 말려. 이러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 동족이 뭐라고 합니까.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 일에 참견하느냐? 우리가 언제 너를 재판관으로 세웠냐? 어제는 애굽인을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겠냐? 네가 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 같으면, 모세가 여러분 같으면,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몸에서 맥이 빠졌을 겁니다. 이게 내가 어제 한 일이 동족에게 이 정도밖에는 의미가 없었던 것인가.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는가. 얼마나 실망했겠어요. 아마 인간적으로 히브리 동족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졌을지도 몰라요. 그러던 차에 왕실에서 자기를 잡아 죽인다는 말이 들린단 말이죠. 겁이 잔뜩 난거예요. 죽어라고 도망갔어요. 어디로 갔냐. 어디로 도망갔어요? 참, 여기에는 기독교 신자가 없지요? (웃음) 미디안이라는 사막으로 도망을 가서, 가보니까 거기는 유목민이 사는 곳인데, 미디안 사막에 가서 한 여자를 만나서 장가를 가고, 집을 꾸리고, 양치기가 돼요. 양치기는 양을 풀을 뜯기는 사람이예요. 마음에 민족이니, 해방이니, 그런 것이 없어. 나는 그저 여기에서 양이나 치다가 식구들과 살다가 여기서 그냥 죽지.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거야. 젊었을 때 가졌던 그런 의욕, 나쁜 의욕아니야. 아주 좋은 거지. 민족을 위해서 뭘 해보겠다는 거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뭘 해보겠다는 거지. 참 좋은 뜻이야.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40년 걸렸대. 참 웃기는 게, 참 웃겨. 무위당 선생님이 나 처음만났을때, 70년대, 갔더니, 이 목사는 이름을 한문으로 뭐라고 쓰셔? 어질 현에 두루 주자입니다. 오, 알았어. 같이 갔던 후배가 나오면서, 오늘 형도 선생님 글씨 한 장 받겠다. (웃음) 아닌게 아니라, 그 다음 날 갔더니, 이현주, 도인시상, 글씨를 주셨어. 그 글씨가 뭐냐, 신신명에 나오는 문자인데, 원래 신신명이 여덟자로 된 짧은 시편이거든. 그 중에 하나야. 불용구진이니 유수식견 하라. 그렇게 넉자씩, 앞에를 빼고, 유수식견만 넉자를 써서 나한테 주셨어. 그 뜻이 뭐냐면, 불용은 아니 불 자에 쓸 용 자, 쓸데 없다, 알 필요 없다. 구는 구할 구자에 참 진자, 진리를 구할 거 없다. 그럴 필요 없다. 그런 얘기야. 왜? 네 눈앞에 있어. 네 눈앞에 있는 것을 어떻게 찾아 나서겠다는 거냐. 그런 뜻이야. 그러니, 다만, 유수식견, 유수는 영어로, only must 이런 뜻이야. 다만 이렇게 해라. 식견이 중요해. 식은 휴식할 때 식자야. 볼견자. 견해를 쉬어라. 견해를 멈추어라. 이런 말씀인데, 그 때는 선생님이 왜 이런 글씨를 나한테 주셨는지 물론, 이해가 안 갔어. 유수식견이 뭐예요? 이렇게 여쭤 보니까, 보는 것을 쉬어. 보는 것을 쉬면, 맹인으로 살아야 하나? (웃음) 내가 너무 뭐 이렇다, 저렇다, 까불고 얘기하니까, 좀 잠잠해라, 이 놈아. (웃음) 이런 식으로 말씀을 주셨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죠. 그랬는데, 그게 내 속에 그 말이 소화가 되었어요. 나로 바뀌었어요. 내가 감자를 먹잖아요. 그러면, 감자가 금방 나로 안돼. 이미 내 안에서 소화가 다 되어서 감자가 없어져야 내가 돼. 유수식견, 넉자가 내 속에서 소화가 되었어요. 40년 걸렸어요. 40년이 걸렸어. 참 묘하다.
모세가 산에 가서 양들 풀 뜯기다 보니까, 호렙산이라는 산에 올라가게 되었단 말입니다. 산에가서 양들 풀 뜯기다 보니까, 저쪽에서 불이 났어. 불이 났구나. 보는데, 불이 막 타는데, 나무 떨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어. 붙었는데, 떨기나무가 안 없어지는 거야. 재가 되어야 되잖아. 나무는 나무대로 있고, 불이 막 피어나는 거야. 이상하다. 저게 어떻게 된 거냐? 가까이 가서 봐야 되겠다. 가까이 가려고 하는 거야. 그때, 그 성경 보면, 불꽃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그거 하는 말씀이야. 너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니,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어. 뭔 뜻일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 눈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는 신비로운 그런 곳에만 계신 게 아니고, 어디에나 계셔. 너 지금, 거기도 내 땅이야. 그 얘기야. 가까이 올 이유가 없어. 다만, 너하고, 나하고, 만나야 되겠는데, 너하고, 나하고, 만나는 그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게 있다. 뭐냐? 신발이야. 신발은 하나님이 신겨준 거 아니야. 그 신발 하나님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지가 만들었지. 너하고 나를 못 만나게 하는 것은 니가 만든 신발이 가로막고 있어. 그 신발이 뭔가, 나는 그때 알았어요. 그게 바로, 견할 때 견 자야. 견해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판단하는 마음, 이건 이래야 돼. 저래야 돼.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는 생각. 이게 내 신발이었어. 그것 때문에 내가 너를 못 만났다. 불용구진이니 유수식견 하라. 따로 진실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 너 있는 거기가 바로 거기야. 그런데, 그 진실을 내가 못 보는 거는 내 눈에 견해가 있어서 그렇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지, 내 욕망, 이런 것들이 진실을 보지 못하구나. 무위당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고, 40년 전에, 하필이면 골라서 그 문장을 나한테 주신 거야. 그거 표구해서 꽤 오래 두고 봤는데, 지난번에 엄정 집에 갔더니, 어느 놈이 가져왔는지 안 보이더라. 다음에 읽어볼까? 하나만 더 오늘 하나만 더 읽읍시다.
포정의 소잡기. 포정이 문혜군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을 구부리니까 서걱서걱바각바각 칼이 움직이는 대로 소리가 울리되 어긋나는 소리 하나 없이 상림의 무곡에도 맞고 경수의 음률에도 맞는다.
예, 이게 포정이라는 사람이 백정이죠. 소 잡는 사람. 근데, 나라에서 유명한 소 잘 잡는 사람으로 소문나니까, 문혜군이라고 하는 임금이 나를 위해서 소 한마리를 잡아라. 그랬던가 봐. 소를 잡는 것을 보니까, 뭐 소리만, 소리가 들리는데 소리가 서걱서걱 빠각빠각 소리가 들렸는데, 이 소리에서 서로 어긋나는 소리가, 어긋나는 소리가 안 들렸다 하는 얘기는 뭡니까? 충돌하는 게 없었다, 부딪히는 소리가 안 들렸다.
문혜군이 말하기를 어허 참 훌륭하다. 사람의 기술이 저런 경지까지 이르렀구나.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되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인데 사람의 기술보다는 윗길이지요.
이겁니다. 문혜공은 포정의 기술을 봤어요. 어떻게 칼을 저렇게 놀리냐. 칼을 놀리냐. 그게 기술이야. 놀라운 기술이야. 그 문혜공의 눈에 그게 보였어. 근데, 그 기보다는 도야. 기라고 하는 거는 도를 얼마나 잘 따르느냐에 따라서 기가 발전하는 거거든. 근데, 포정의 관심은 소 잡는 기술을 익히겠다는 게 아니야. 이 포정은 이 소를 잡는 이 작업을 통해서 내가 도를 깨쳐야 되겠다.
처음 제가 소를 잡을 적에는 보이는 것이 온통 소 아닌 게 없더니 3년 뒤에는 소의 몸통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요즘은 제가 소를 마음으로 만나되 눈으로 보지는 아니합니다.
여기에 마음으로 만난다고 번역이 됐지만, 여기 본문은 뭐냐 신정신할 때 신자를 씁니다. 마음 신자가 아니고. 그 신으로 본다는 게, 눈으로 보는 거는 그건 육신으로 보는 거죠. 정신으로 본단 말이야. 사물을 보는 내 눈이 마음에 눈하고, 육신의 눈하고, 그러는데 육신의 눈이라고 하는 거, 아까 얘기하는 것처럼, 그 한계가 있어서 그 이상 못 봐. 그 너머에 있는 걸 보려면, 그 마음의 눈밖에 안 보여. 근데, 이 포정은 항상 자기가 처음에 볼 때는 소밖에 안 보여.
그러더니, 한 3년 지나니까 소는 이제 없어지고, 형체는 없어지고, 그 안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도, 그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감관으로 보기를 그치고 마음의 작용에 막히지요. 하늘 위치를 쫓아 커다란 틈새에 칼을 박고 텅 빈 곳을 자르니 본디 잘려진 곳을 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기술은 아직까지 뼈와 살이 붙은 자리에서도 막혀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큰 뼈를 떼어내는 데야 새삼 말할 게 있겠습니까?
그 소고기라는 게 분석해 보면 뼈하고 살로 돼 있잖아요. 뼈하고 뼈가 있고, 뼈하고 뼈 사이에는 있잖아. 뼈하고 살 사이에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기틀이 있어. 거기에 칼은 두께가 없어. 두께 없는 것이 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힘들 게 뭐야? 그 얘기하는 겁니다. 허공을 베는 걸. (웃음)
솜씨 좋은 백성이 해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그것으로 살을 가르기 때문이오. 보통 백성이 달마다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가 쓰는 칼은 19년을 쓴 것인데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 잡았습니다만 칼날이 새로 숯돌에 간 것 같지요.
기술이 못난 그런 소잡이들은 청어 뼈를 막 두드린단 말이야. 그 이빨이 나가고 그러니까. 빨리빨리 칼을 갈아야 돼. 그래서 좀 나은 사람은 이 뼈는 안 가지고, 하여튼 그렇게 해서 칼을 다 갈아야 되는데 자기는 19년을 썼는데 아무도 안 갈았다는 거야.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어서 두께 없는 것으로 틈 있는 곳에 들어가니 칼날 노는 데가 널찍하고 여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래서 19년을 쓴 칼날이 새로 숫돌에 간 것 같다는 말씀이올시다. 그러하나 뼈와 살이 뭉쳐 있는 곳에 칼을 댈 적마다 일의 어려움을 아는지라. 두려움으로 상가 경계하고 곁눈질을 하지 않으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 아주 세밀하게 칼질을 하며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살덩이가 툭툭 떨어지지요.
이건 그냥,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하는 거 아닙니다. 지금 굉장히 마음을 써서, 집중해서, 지금 작업을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길을 놓칠 수 있단 말이야. 자칫 잘못하면. 그러니까, 순간순간 자기가 하는 일에 초집중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 따라서 가는 게 좋아요. 아무렇게나 하는 거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이고, 지금 생각나는데, 강원도 주문진에 가면, 보헤미안이라고 하는 커피에 카페가 있어요. 혹시, 선생님 가 보셨어요? 언제 한번 강원도 강릉 가시면 보헤미안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한번 들러보세요. 거기를 제가 근방에 있는 후배들이 형님 한번 커피 한 하러 갑시다. 따라갔더니, 주문진하고 강릉 사이. 미안해. 나 휴지 한 장만 줄래? 한 장만 달라했더니, 벌써 몇장이냐? (웃음) 나오지도 않으면서 이래. 갔어요. 거기 아래 동해바다가 보이고, 산중턱에 거기 달랑 커피 만 있는 3층 짜리 건물을 지어놨더라고. 아무것도 없어. 거기를 가 봤는데, 홀이 이만해. 테이블 몇 개놓으면 끝나. 그날은 사람이 꽉차 있어. 문 열고, 보면 좌석 두 개가 있어서 거기에 앉았다고. 바다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어. 딱 보이는 것은 바리스타가 커피 내리는 것만 보여. 그것 밖에 안 보여. 어쩔수 없이 봤지. 박이추라고 하는 사람인데, 일본 사람으로 알아요. 한국 여자랑 결혼해서 60, 70년대부터 명동에서 커피 하우스를 했어. 드립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에서 온 거잖아요. 그니까, 한국 사람들은 드립커피가 신기한 거야. 그것을 해서 이 양반이 명동에서 돈을 벌었는데, 박이추씨가 그렇게 바다가 그리워. 바다가 보고 싶어서 강릉을 갔대. 가서 바다가 보이는 땅을 사서 거기가 보헤미안이라는 커피 하우스를 만든 거야. 아마 내가 갔을 때, 보헤미안 커피하우스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 거야. 우연히 조는데, 박이추씨가 직접 드립을 해. 속을 깜짝 놀랐어. 저게 장인이구나. 장인라는 것을 실감했어. 별거 아니야. 드립하는 것은. 그 순간, 저 박이추라는 인간에게는, 그게 우주야. 딴 것은 없어. 그것이 느껴져. 참, 냄새 맡아보고, 물 붓다가 맡고, 다시 내리고, 커피 한잔 내리는데, 온 몸과 마음을 거기다가 쏟아붓더라는 거지. 그것이 내 눈에 보였어. 와, 멋있는 사람이다. 내가 알기로는 강릉이 커피의 메카라고 알려져 있잖아. 박이추씨의 공이 컸을 거야.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고, 3층은 사는 집이고, 2층은 홀, 1층은 커피 공장, 볶는 곳, 거기서 커피 제자들을 기른다고 그러더라고. 도를 따르는 사람은 뭐를 해도 대충하는 것이 없어. 전심을 기울여. 중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심을 기울이지.
이제 이 얘기를 하고 있어. 나 아무렇게나 하는 거 아니올시다. 나의 온 몸과 혼을 다 쏟아서 이만큼도 빈틈이 없이, 헛 손질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칼을 든 채 서서 사방을 살펴보고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이윽고 흡족한 마음으로 칼을 잘 씻어 제자리에 둡니다. 문혜군이 말하되 훌륭하구나. 내가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의 도를 얻었다.
참 장자, 참 재밌는 사람이야.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내 반에 성만 기억난다. 그놈이 푸줏간 집 아들이어서 우리한테 얼마나 구박을 당했는지 몰라. 푸줏간 집 아들이라고. 그게 불과 얼마 전에 세월이야. 장자 시대에 백정은 인간도 아니야. 의식이. 그런데, 이 임금이 백성한테 배웠다는 거 아니냐. 이게 장자 얘기야. 장자 참 재밌는 인간이야. 혹시 질문하실 거 있으면 해보세요.
학생 : 이게 장자가 지어낸 얘기죠. 마치 예수님이 비유로 얘기하듯이 장자도 얘기를 만들어서 그 뜻을 전하려고 하는 거죠?
선생님 : 아마 그럴 거야. 아마도 그건 뭐 사실이 확실히 그렇다는 건 내가 알 수가 없지.
내 생각엔 장자는 이야기꾼이야. 근데, 이야기 속에 사실은,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보통 우리가 픽션, 르포, 이렇게 얘기하잖아. 자기가 겪은 거를 바로 얘기할 때, 그걸 르포라고 그러고, 상상으로 해서 만든 건 픽션이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은 르포 속에 훨씬 더 많은 거짓이 들어갈 수 있고, 이야기 속에 훨씬 더 진실한 것이 담길 수 있는 거야.
학생 : 오한이 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다 했는데, 그때 이제 니 몸은 네 몸이 아니고 이건 내 몸이고 내가 떠는 거다.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은 그 말씀은 니 안에 내가 있고, 내가 너다. 이런 말씀으로 들리는데, 모세 이야기하실 때 신발을 이야기하시면서 니가 만든 거를 벗어야지. 나를 볼 수 있다 했을 때 그 나와, 내가 아까 말씀하셨던 이 안에 내가 있고, 내가 나다. 라는 그 나가 계속 혼재되어서 잘 이해할 수가 없다고요.
선생님 :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거, 내가 알고 있는 나야. 다시 말하면, 그 정체는 내가 만든 거라고. 나는 누구야. 라고 제가 생각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나는 목사야. 라는 것도 내가 생각해서. 하지만 세상이 나한테 준 것이 있고, 그래 그래서, 그 통째로 말하면 내가 만들거나 받아들인다. 라고 할 수 있지. (그거는 신발이고 아까 그 모세의 신발 내가 만든) 아니야. 그 신발은 아니야. 그 나,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그걸 도저히 심리학에서 애고라는 말을 써. 에고, 나랑은, 내가 하는 모든 일, 생각, 사고방식, 생활 습관, 사회 제도, 이거 다 사람이 만든 거야. 어디서? 여기서 나오는 거야. 그걸 통틀어서 신발이라고 내가 얘기한 거야.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게 아니야. 지가 만든 거지. 내가 내 정체를 내가 만든 것도 아니야. 사실 사회가 만들어줬어. 넌 누구야. 넌 누구야.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돼. 이런 정체성을 끊임없이 우리 어렸을 때 받았다고. 넌 남자야. 그러니까, 남자답게 살아야 돼. 넌 여자야. 그러니까, 조신하게 굴어. 뭐 이런 끊임없이. 끊임없이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라는 말을 하고 그냥 들으면서 살아. 그러다 보니까, 그게 다 나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런데, 그 분 말씀은 너한테는 또 다른 너가 없어. 내가 만든 너, 그 둘이, 둘이 서로 사이가 좋게 잘 살면 얼마나 좋겠냐. 그 둘이 서로 안 맞아. 몸은 그거 아닌데. 그럼 둘이 살아. 둘이 서로 엄마가 만든 나와 내가 만든 나, 이 둘이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몸은 같지만, 같은 게 아니야. 그게 부딪혀. 그럴 때마다 내가 돌이켜 놓고 보면, 엄마가 나한테 양보했어. 100번이면 100번 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하자. 그래, 별 짓 다 했어. 이번에, 이제 이제 그만해. 그 신호로 나는 받아들였어. 이제는 네가 나한테 맞춰라. 이놈아.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맞춰줬잖니. 이제 니가 나한테 맞춰라. 그러니까, 예수가 말한,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제가 아버지 뜻을 맞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