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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1-7절. 일반인과 통치자를 위해 기도하라
1장에서는 교리적인 내용으로서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경계를 말씀했는데, 2장에서는 교회의 실제적인 윤리에 대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1-7절에서는 왕과 일반인에 대해서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1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irst of all, then, I urge that entreaties and prayers, petitions and thanksgivings, be made on behalf of all men,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Παρακαλῶ οὖν πρῶτον πάντων
I exhort therefore first of all
직역하면 ‘그러므로 첫째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들과 기도들과 도고들과 감사들을 하기를 내가 권한다’는 뜻입니다.
‘권하노니’(Παρακαλῶ)는 현재형으로서(I exhort) 현재 권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ποιεῖσθαι δεήσεις, προσευχάς, ἐντεύξεις, εὐχαριστίας, ὑπὲρ πάντων ἀνθρώπων,
to make entreaties, prayers, petitions, thanksgivings, on behalf of all men
‘하되’(ποιεῖσθαι)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make)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기를’ 내가 권한다는 뜻입니다.
1. ‘간구’(δέησις: supplication, entreaty)란 특별한 대상을 위한 간절한 애원을 가리키고, ‘기도’(προσευχάς)는 일반적인 기도(prayers)를 가리키고, ‘도고’(ἔντευξις:petition)란 남을 위한 중보적인 기도를 가리킵니다.
‘감사’(εὐχαριστίας)란 감사 기도(thanksgivings)를 가리킵니다.
2. ‘간구’에 대한 예로써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간청을 예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5-7.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리고 벗 됨을 인하여는 떡을 주지 않을지라도 간청함을 인하여 떡 주는 것을 비유로 예수님이 간청의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0-13.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도고’는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말하는데,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백성과 함께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50명에서 10명에 이르도록 여러 번 숫자를 줄이면서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창세기 18:23-33).
3. ‘그러므로’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처럼 마귀의 세력이 일어나므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단과의 싸움은 육신적으로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이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영지주의의 방탕하고 율법적인 이단이 교회에 침투하면, 육신적인 무력으로는 싸울 수 없으므로, 우리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란 둘째와 셋째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전도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고 말씀 선포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처럼 기도가 중요합니까?
신앙생활이란 육신적인 지혜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말씀 전하는 사람은 자기를 높이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여 성령님 은혜로 봉사하고 전도하고, 말씀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흔히 성경 읽기는 밥 먹는 것 같고, 봉사와 전도는 운동하는 것 같지만, 기도는 쉼 쉬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첫째로 권하노니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4. 기도하되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주로 저와 가족과 불신자 전도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목회할 때는 주로 교인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시간이 부족해서 모든 사람을 다 만나보거나 전화할 수는 없으나, 기도해주면서 살면, 얼마나 자신에게 행복감이 깃든지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도 기도하시는 분들 덕분에 파탄나지 않고 교회가 지속되는 줄 압니다.
5. 특별히 ‘간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70년만에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을 깨닫고, 위험을 무릅쓰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2-3.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시내산에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진멸시키시겠다고 하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출애굽기 32-33장).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려고 하셨을 때, 모세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민수기 14장)
6. ‘기도’란 친한 사람과도 이야기 못할 사정도 좋으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 아뢰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나는 고통스런 심정을 하나님께 토하여 아뢰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무엘상 1:13-15.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7. ‘도고’는 중보기도를 가리키는데,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모세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용서와 축복을 주시라고 중보기도 했습니다.
시편 106: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모니카가 아들 어거스틴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자, 암브로우스 목사님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고 했습니다.
과연 어거스틴은 극적으로 회심하고, 교회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감사’란 감사 기도를 가리킵니다.
즉 기도 시간에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참 감사 기도를 많이 했고, 그것들이 찬송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어려운 이웃과 자녀들을 위해서 간구하시고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시고, 온 가족과 자녀들이 큰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kings and all who are in authority, so that we may lead a tranquil and quiet life in all godliness and dignity.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ὑπὲρ βασιλέων καὶ πάντων τῶν ἐν ὑπεροχῇ ὄντων,
for kings and all those in authority being
‘있는’(ὄντων)은 현재분사로서(beijng) 현재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끝에 ‘하라’는 첨가한 것으로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ἵνα ἤρεμον καὶ ἡσύχιον βίον διάγωμεν
so that tranquil and quiet life we may lead
‘하려 함이라’(διάγω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we may lead)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현재 영위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ἐν πάσῃ εὐσεβείᾳ καὶ σεμνότητι.
in all godliness and dignity.
1.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할 당시에도 바울 사도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라가 무질서 하지 않고 평안해서, 성도들도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생활과 이웃에 대한 단정함으로 생활할 수 있어서 그 결과 외적으로 고요하고 내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건주의(pietism)는 이 ‘경건’(Pietismus)이란 단어에서 비롯되었고, 북맨(Bookman)의 정적주의(quietism)도 이 ‘고요함, 정적’이란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2. 바울 당시에 로마 황제와 지방 총독이 기독교를 박해하므로 에베소 교인들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별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신앙 체험을 통해서 왕들과 고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즉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 전도를 할 때, 아데미 숭배자들과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3만 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연극장에 모여서 데모를 했는데, 당시 에베소 성의 서기관이 이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바울이 살아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목회자인 디모데 목사에게 임금들과 고관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8장에서는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해서 죽이려고 했을 때, 갈리오 총독이 유대인들의 고소 사건을 공정하게 재판해서 바울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평안한 가운데서 크게 부흥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는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으나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구출했습니다.
사도행전 23장에서는 유대인들 40명이 금식 동맹을 해서 바울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천부장 루시아가 270명의 군사를 동원해서 바울을 무사히 가이사랴 총독에게로 호송했습니다.
사도행전 24장에서는 유대인들이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죽여달라고 고소했으나, 벨릭스는 바울에게 형사적인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많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25장에서는 베스도 총독 앞에서 26장에서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이 공정한 재판을 받고, 심지어 복음을 전하면서 베스도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까지 했습니다.
그후로 바울은 AD 61-63년에 로마 네로 황제의 재판을 받고, AD 64년에 석방되었습니다.
이후에 바울이 이 디모데전서를 쓸 때는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불을 질러놓고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씌우던 때였습니다.
이런 때 바울은 에베소 교회 디모데 목사에게 통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3. 한국 교회는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삼일운동의 주체 세력이 기독교인들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니 김구 같은 이와 제헌국회가 기독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은 매일 기도하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독립전쟁 때, 워싱턴은 독립군과 함께 ‘호지 골짜기’라는 곳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독립군의 처지는 비참했습니다.
그 때 워싱턴은 ‘아이삭 포츠(Issac Potts)’란 집에 유숙했는데, 아침에 포츠가 산책하러 가서 워싱턴이 강가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포츠는 하나님께서 워싱턴의 기도를 들으시고 독립전쟁에 승리할 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4. 프랑스의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미국을 방문하고 와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미국의 위대성을 발견하려고 갔는데, 비옥한 토지나 광산이나 상업이나 공장에서는 미국의 위대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교회에서 미국의 위대한 힘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그 선한 행실에서 나옵니다”
5. 1919년 4월 3.1 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지나서 평안남도 일본 헌병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라까미’(村神) 헌병 대장은 ‘다나까’ 부하에게 3.1 운동 주동자를 체포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다나까(田中) 부장이 나갔다 오더니, 누가 만세를 불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헌병대장이 기독교인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나까 부장이 주일날 교회에 가야 기독교인을 알 수 있지 지금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헌병 대장이 말하기를 “기독교인들은 정체성이 분명해서 거짓말을 않고, 만세를 불렀으면 불렀다고 실토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헌병대 문서에 나온 이야기인데, 이런 기독교인의 신앙으로 인해서 대한민국 독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6. 나라의 통치자가 네로 황제처럼 포악해지면,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 때처럼 기독교인들을 도와주면, 성도들이 경건하고 단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서 성도들이 고요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평안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통치자의 태도에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사업과 가정에 큰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 임금들과 고관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3절.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is is good and acceptable in the sight of God our Savior,
τοῦτο καλὸν καὶ ἀπόδεκτον ἐνώπιον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Θεοῦ,
This good and acceptable before the Savior of us God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이것‘은 통치자를 위한 기도를 가리키고, ’받으실만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기도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
즉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목적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3:16)
’이것이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말한 아름다운 제물 같은 것이란 뜻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좋은 제물을 향기로운 제물로 기쁘시게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임금들과 고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향기와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히브리서에는 선행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래서 로마서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물론 하나님께서는 십일조 등 헌금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말라기 3:10, 마태복음 23:23)
2.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다른 것 보다 더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와 봉사가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기도가 더 우선적이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가서 전도하기 이전에 먼저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4)
그래서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고, 제자들은 성령 받아서 전도함으로 하루에 3천 명이 예수님 믿고 세례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3.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전도와 봉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도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시간이 있는 할머니 권사님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고, 젊은 사람들은 육체노동만을 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기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장로님들이 기도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금들과 고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과 같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desire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원하시느니라.
ὃ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θέλει σωθῆναι
who all men desires to be saved
‘구원을 받으며’(σω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saved) 확실하게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원하시느니라’(θέλει)는 현재형으로서(desires) 현재 원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καὶ εἰς ἐπίγνωσιν ἀληθείας ἐλθεῖν.
and to knowledge of truth to come
직역하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르기를’(ἐ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come) 확실히 이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만인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는 만인을 인간의 믿음과 회개 없이 억지로 구원받도록 예정하시고 섭리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 절은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만인구원설(universalism)의 근거 구절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만인구원설을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능동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수동태) 원하시기(θέλει σωθῆναι: desires to be saved)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사람을 구원하시되(에베소서 1:4-5, 로마서 9:15-16), 인간의 믿음을 요구하시고(요한복음 1:11-12),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에베소서 2:8).
믿음이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들여서 예수님 믿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고, 악인이 회개하고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악 중에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일지라도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뻐하시는데, 문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아들 예수님을 죄인들 대신에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셨지만, 악한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끝까지 거부하고 마귀 따라 지옥에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48절 말씀대로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만 예수님을 믿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완악한 유대인들처럼 끝까지 믿지 않고 대항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에베소서 1:5, 11).
3. 그런데 우리 인간은 누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받은 사람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또한 예정 교리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적 예정은 ‘인격적 예정’(유기적 예정; organic predestination)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적 예정이란 우리 인간이 인격이 없는 물건처럼 가만 있어도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과 복음의 말씀을 믿고, 회개해야 구원받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회심 체험을 하고 울고불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앞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서 전도하게 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성령으로 감동하신 사실은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인격적인 믿음과 회개로 유기적이고 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루실 때 인격적으로 다루시고, 강제로 물건이나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또 다시 범죄하면 하나님이 벌하시고, 그 후에라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에스겔 33:11-16).
또 출애굽기 3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고 모세를 큰 나라게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나, 모세가 그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출애굽기 32:9-12).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하 15:35)
이처럼 하나님의 예정은 인격적인 예정이시고, 비인격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고,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진리’란 구원의 도리 즉 복음을 가리키며, 구원의 길인 예수님을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요한복음 17:17), 진리의 말씀이 복음이기 때문에(에베소서 1:13),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사도행전 5:20, 빌립보서 2:16).
그리고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예수님은 “내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전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목사와 교사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늘 전하고 가르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때를 따라 종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군들이 주님 오실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42-43.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시고, 하늘의 별같이 빛나고, 큰 복 받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also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εἷς γὰρ Θεός,
one for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εἷς καὶ μεσίτης Θεοῦ καὶ ἀνθρώπων,
one also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ἄνθρωπος Χριστὸς Ἰησοῦς,
man Christ Jesus,
1.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라는 말씀은 당시 에베소 교회의 영지주의 이단자들이 하나님을 여럿이라고 주장하는 다신론에 대해 반박하는 말씀입니다.
즉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신들을 에이온(Aeons)이라고 표현하면서, 최고 높은 에이온 신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헬라철학자들이나 영지주의자들처럼 여러 신들이 있다면, 이 신들을 헬라신화에서처럼 서로 싸우고 질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에 따라서 인간들도 자기들이 위하는 신에 따라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구원의 중보자로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란 말씀은 오직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죄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산 정상에 올라가는 길들이 여럿 있듯이 하나님께 가는 길도 여럿이 있어서, 꼭 예수님을 통하지 않더라도, 불교와 이슬람교나 유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잘못 주장합니다.
‘중보자’란 모세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해주고,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인간편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죄용서를 해주시도록 중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모세나 구약의 제사장들은 온전한 중보자가 되지 못해서,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제사장들도 자기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뜻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온전한 중보자는 유일하게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한 중보자셨고, 인간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유일한 길이요 구원의 중보자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incarnation) 참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한 것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은 단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처럼 보인 것뿐이라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한 데 대한 반론입니다.
요한2서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2. 세상에서 귀신들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유교인들은 죽은 조상이 귀신이 된다고 믿고 제사를 드리며, 많은 무당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귀신들을 섬기면서 자기가 섬기는 귀신이 더 영험하고 강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온 우주만물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귀신들과 악인들조차도 적당한 곳에 쓰고 계십니다. (욥기 1:12, 잠언 16:4).
철학과 문화가 발달한 아테네에서도 많은 귀신들을 섬겼는데,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제사를 지냈습니다(사도행전 17:23).
그리스의 최고 문학인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 보면, 헬라인들은 열 두 귀신을 섬겼으며 그 신들이 서로 시기질투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수만 개의 귀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많은 귀신들은 천사가 타락하여 귀신이 된 것이고, 하나님의 절대 통치하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절대 어떤 귀신도 성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 하나님은 절대 권력을 가지시고, 성도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므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스가랴 2: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시편 17:7-9)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모든 귀신과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성도들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는데 무엇이 아깝다고 우리에게 주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러나 귀신이 쫓겨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3.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열왕기하 19: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이사야 37: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마가복음 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디모데전서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4. ‘중보자’란 쌍방이 서로 원수 관계에 있을 때, 중간에서 화해시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부부간 이혼하려고 할 때도, 법원이 중재자가 되어서 중재기간을 두고 서로 합의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 관계가 되어서 인간이 영원한 형벌과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구원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사도행전 4:12)
그런데 유일한 중보자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한 말씀은 원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에 계신 분이신데,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드리셨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6절.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gave Himself as a ransom for all, the testimony given at the proper time.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ὁ δοὺς ἑαυτὸν ἀντίλυτρον ὑπὲρ πάντων,
the (One) having given Himself ransom for all
‘주셨으니’(δοὺ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iven) 역사적으로 틀림없이 주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τὸ μαρτύριον καιροῖς ἰδίοις·
the testimony in times their own
직역하면 ‘그 자신의 때에 (주신) 증거라’는 뜻입니다.
동사가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1.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으니’란 말씀은 앞 절에서 예수님이 중보자이신 사실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ἀντίλυτρον: ransom)이란 말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주는 댓가를 의미하고, 죄에 대한 값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 절의 헬라어(ἀντίλυτρον)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대속물’(λύτρον:ransom)보다 더 강렬해서 ‘대신’(ἀντί)이란 접두어가 첨가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ὑπὲρ πάντων: for all)란 말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선택한 성도 모두를 위해서 피 흘려 대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절대적인 의미로 만일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의 죗값을 다 지불하셨다면, 이제 악인들을 위한 지옥 형벌이 남아 있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결국 다 구원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모든 사람’이란 예수 믿기로 예정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 절 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 2장 1절과 4절과 4장 15절과 5장 20절과 디모데후서 1장 15절의 ‘모든 사람’도 절대적 의미의 모두(인류 전체)가 아니라 제한적 의미의 모두(기독신자 모두)를 가리킵니다.
2. ‘대속물’이란 빚을 져서 잡혀갔거나 감옥에 갇혔거나 노예가 된 사람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갚아주는 돈을 가리킵니다.
지금도 남의 빚을 갖다 썼다가 갚지 못하면 빚쟁이들에게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빚을 못 갚으면, 그 집에 머슴살이를 하거나, 노예로 일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자 친척이 와서 대신 빚을 갚아주면, 머슴살이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빚져서 종살이하고 있는 사람을 풀어주는 돈을 ‘대속물’(속전:贖錢)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2백년 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노예 제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노예 제도가 나쁜 제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굶어죽는 것보다는 남의 집에 가서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때에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는 ‘대속금’은 너무나도 귀한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영생 천국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3.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죄의 빚을 진 죄인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유대인들이나 헬라에서나 미국에서도 ‘빚’(debts)이라는 말을 ‘죄’라는 말과 똑같은 말로 씁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르므로, 빚진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와 마귀에게 종노릇하여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죄인들을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서 ‘대속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범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데, 우리 죄인들이 처벌받을 것을 예수님이 대신 처벌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8) 할렐루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해방과 구원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한 청년이 노름을 하다가 흥분하여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지방 주민들이 그 청년을 불쌍히 여겨서 주지사에게 탄원서를 내고 한번만 사면해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지사가 사면장을 가지고 그 감옥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주지사를 몰라보고, 목사가 설교하러 온 줄로 착각하고, 주지사를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주지사가 그러면 이 종이라도 받으라고 사면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 사면장이 전도지인 줄 착각하고, 쫙쫙 찢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간수를 통해서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사면장을 믿음으로 받아야 죄와 지옥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4.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란 말씀은 하나님이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때에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처럼 구약시대에 약속된 메시아 예수님이 때가 되매 오셔서 대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7절.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I was appointed a preacher and an apostle (I am telling the truth, I am not lying) as a teacher of the Gentiles in faith and truth.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εἰς ὃ ἐτέθην ἐγὼ κῆρυξ καὶ ἀπόστολος,
for which I was appointed I herald and apostle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세움을 입은 것은’에서 동사(ἐτέθη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I was appointed) 과거에 확실히 세움받은 사실을 가리키고, 직역하면 ‘내가 세움을 입었었다’는 뜻입니다.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ἀλήθειαν λέγω, οὐ ψεύδομαι,
truth I speak, not I lie
직역하면 ‘내가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참말이요’에서 동사(λέγω)는 현재형으로서(I speak) 현재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고, ‘거짓말 하지 않는다’에서 동사(ψεύδομαι: I lie)도 현재형으로서 현재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διδάσκαλος ἐθνῶν ἐν πίστει καὶ ἀληθείᾳ.
teacher of gentiles in faith and truth
‘내가—되었노라’는 의미상 첨가한 것입니다.
동사는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1. ‘이를 위하여’란 앞 절에서 말한 복음 전도를 위해서 바울 자신이 전도자의 대열에 참여한 것을 가리킵니다.
‘전파하는 자’(κῆρυξ)란 왕의 공문서를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전령사(herald)와 포고자(proclaimer)를 가리킵니다.
‘사도’(ἀπόστολος)란 원래 ‘파송 받은 자’란 뜻인데, ‘메시지 전달자, 사절, 전달자, 어떤 사람을 대신하여 파송된 자’(messenger, envoy, one commissioned by another to represent him)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복음 전파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송하신 자( especially a man sent out by Jesus Christ Himself to preach the Gospel)를 가리킵니다.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란 말은 1장 3, 19. 20절에 말씀한 대로, 에베소 교회에 영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이 바울 사도의 사도성에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란 말씀은 당시에 사도의 진정성으로서 예수님을 생전에 본 사람이라는 자격 조건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생전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 아니지만,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리키고, ‘진리’란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하는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파송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9:15)
2. 바울이 전파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은 것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전파자와 사도가 된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 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2장 21절 말씀대로 바울은 예수님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열 두 사도처럼 예수님이 직접 세워주셨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강조한 것은 열 두 사도 외에 바울 사도는 당시 사람들 중에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적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즉 오늘날에는 바울이 사도인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에는 바울을 전도자로 인정은 했으나, 예수님 생전에 따라다니지 않았던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롯 유다 대신에 궐석 사도를 선출할 때, 기준은 예수님 살아 생전에 따라다니던 사람들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1:22)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 당시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열두 사도들과 함께 다니지 않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일부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예수님이 직접 이방인의 사도로 파송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5-7, 15)
3. 그러면 바울의 사도성이 왜 중요합니까?
만일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면,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게 되고, 바울이 설립한 교회들은 모두 이단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가 이단자와 이단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디모데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에베소교회는 바울 사도가 3년간의 전도로 직접 세운 교회였고, 디모데는 바울의 직제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가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예언한 대로(사도행전 20:28-29) 흉악한 이리 같은 영지주의적 유대인 이단자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말씀한 대로,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금하는 영지주의 중에서도 율법주의적인 이단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겉으로는 경건한 사람들 같이 보였지만, 실상은 귀신에게 미혹된 영지주의적 율법주의 이단이었습니다.
즉 영지주의는 영만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금욕주의(asceticism)로 나가고 한편으로는 방탕주의(libertine:liberalism)로 나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이 악하기 때문에 혼인과 음식을 금한 금욕주의가 있었고, 한 편에서는 물질은 선한 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영으로 해탈한 사람은 물질생활과 육신 생활을 방탕하게 가져도 된다고 잘못 주장했습니다.
4. ‘믿음’이란 기독교 신앙을 가리키며, ‘진리’란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고귀한 믿음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같은 곳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복음 진리를 전파해서 수많은 이방인 교회들을 설립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시고, 바울의 복음 전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신앙 안에서 감사를 넘치게 하시고, 항상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