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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15-23절. 그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임
1. 서언
지난 시간에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송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총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무리 삼위 하나님의 예정과 구속과 보증하심의 객관적 진리가 주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성도 각자의 심령에 주관적으로 경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 각자에게 통찰력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도 같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1:9-12.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분해
15-16절. 감사-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감사
17-19절. 기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기도함
20-23절. 지식-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 만물의 구조를 말함
15절.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I too, having heard of the faith in the Lord Jesus which exists among you and your love for all the saints,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나도 듣고
Διὰ τοῦτο κἀγώ, ἀκούσας τὴν καθ’ ὑμᾶς πίστιν ἐν τῷ Κυρίῳ Ἰησοῦ
because of this I also, having heard of the among you faith in the Lord Jesus
직역하면 ‘이 때문에 나도, 너희 가운데서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듣고’란 뜻입니다.
‘듣고’(ἀκού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καὶ τὴν ἀγάπην τὴν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ἁγίους,
and the love of the toward all the saints
1. 이로 말미암아
3-14절에서 말씀한 대로, ‘성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피 흘려 대속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인치시고 보증하셨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계시의 정신을 맏아서, 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혜들을 깨닫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계시의 정신을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의 노력과 지혜만으로는 구원의 복음을 절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적인 지혜와 노력으로 구원의 복음을 알 수 있었다면, 세상 관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8-9.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으로 이것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심지어 구약성경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이란 예언을 알았던 유대인들조차도, 메시야가 오시면 다윗왕국처럼 세상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에서 말씀한 메시야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이사야 53장을 메시야의 승리로 바꾸어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명심해야 할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성경 말씀은 내 생각대로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계시의 정신을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요나서에 기록된 앗수르 나라 수도 니느웨 성이 19세기 중반까지는 일반 역사에 알려지지 않아서, 실제 사건으로 보지 않고, 비유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고고학적 발굴로 앗수르 나라의 수도 니느웨 성이 발견되고, 특히 앗수르바니팔 도서관이 지하에서 발굴됨으로써, 앗수르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되었고, 요나서가 비유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 중에 우리의 지혜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을 때, 배척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믿음이 성장해서, 그 전에 깨닫지 못했던 말씀을 더욱 깨닫는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your faith in the Lord Jesus)이란 ‘주 예수님을 믿는 너희 믿음’을 가리킵니다.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서로 많이 사랑하고, 특히 소아시아 지방 모체교회로서 지방 교회들을 많이 사랑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있는 골로새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대 교회, 빌라델피아 교회 등을 돕는 모체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는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셨고,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것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의 뜨거운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이란 수직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수평적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한1서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3. 나도 듣고
당시에 바울 사도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53-56년에 3년 동안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행 19장).
그 후로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빌립보 교회와 마게도냐 교회들에게서 구제헌금을 거두어다가 동족인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가져다주다가,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체포되었습니다.(행 21장)
그 후로 가이사야 감옥에서 미결수로 2년 있다가, 지금은 로마 감옥에서 2년간 황제의 판결을 기다리면서 감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동안에, 빌립보 교회 등에서는 선교헌금을 보내주었으나, 에베소교회는 선교헌금을 보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설립한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믿음과 사랑에 감사하고, 신령한 은혜들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로 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가 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6절.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not cease giving thanks for you, while making mention of you in my prayers;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οὐ παύομαι εὐχαριστῶν ὑπὲρ ὑμῶν
not do cease giving thanks to you
직역하면 ‘너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내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감사하는 것을’(εὐχαριστῶν)은 현재 분사로서 계속 감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치지’(παύομαι)도 현재형으로서(do cease) 그치지 않고 감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μνείαν ποιούμενος ἐπὶ τῶν προσευχῶν μου,
mention making in the prayers of me
직역하면 ‘나의 기도들에서 언급을 하며’란 뜻입니다.
‘기억하며’(μνείαν ποιούμενος)에서 동사(ποιού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making) 언제나 기억한다는 뜻이고, 앞의 단어(μνείαν)는 ‘기억’(remembrance)이란 뜻도 있고, ‘언급’(mention)이란 뜻도 있어서, 후자로 번역하면 ‘너의 기도에서 너희를 언급하며’란 뜻입니다.
1.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동안에, 에베소 교회가 바울 사도에게 선교헌금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에베소 교회가 바울 사도에게 헌금했다는 말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것은 아마도 죽음을 무릅쓰고 전도해서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대로 54-56년에 3년간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하므로 에베소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 병든 자에게 얹으면, 병자가 낫고 귀신도 떠나갔습니다. (행 19:11-12)
또한 마술 하던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마술 책을 불살랐는데, 그 금액이 은 5만(약 5백억)이나 되었습니다. (행 19:19).
그러나 에베소 성의 수호신인 아데미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3만 명이나 데모를 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여 에베소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하면 남다른 감사가 나왔을 것입니다.
마치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기를 낳은 엄마가 아기를 볼 때마다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것과 같습니다.
2.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이 말은 원문에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며’(making mention in the prayers of me)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해주는 것은 돈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돈을 한 번 주고 항상 줄 수 없지만, 날마다 기도해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가 날마다 생명을 유지하고 복된 생활 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자녀들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탕한 삶을 살다가 18세에 사생자를 낳았고요, 9년 동안 마니교 이단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모니카는 교회당에 가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모니카에게 ‘기도한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모니카의 기도로 어거스틴이 돌아와서, 32살 때 톨레레게(tolle lege: 펴서 읽어라)라는 환청을 듣고, 성경(롬 13:13-14)을 펼쳐서 성령의 충격적인 감동을 회심했습니다.
그래서 어거시틴은 교회 역사상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날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편 교회에서 대표 기도할 때는 결석자들이나 병든 자들이나 새신자들을 위해서 단체로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 이름을 들어서 기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역예배나 철야기도회 같은 때는 개인을 놓고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glory, may give to you a spirit of wisdom and of revelation in the knowledge of Him.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ἵνα ὁ Θεὸς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ὁ Πατὴρ τῆς δόξης,
that the God of the Lord of us Jesus Christ, the Father of the glory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δώῃ ὑμῖν πνεῦμα σοφίας καὶ ἀποκαλύψεως ἐν ἐπιγνώσει αὐτοῦ
may give to you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in knowledge of Him
‘주사’(δώῃ) 부정과거 기원격(optative) 동사로서(may give) 반드시 주시기를 기원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ἐν ἐπιγνώσει αὐτοῦ)는 원래 ‘그를 아는 가운데’(in knowledge of Him)란 뜻인데, 한글성경은 풀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1. 원래 바울 사도가 기도한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17절.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18절.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하늘 나라의 영광이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해주시라는 것입니다.
19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능력의 크심이 어떠함을 알게 해주시라는 것입니다.
2. 이처럼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과 물질과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적인 것을 기도하다 보면, 엉뚱하게도 신령한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다녔는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성령을 체험하게 해주시고, 새 마음도 주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나귀도 찾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렸을 때, 요셉이 얼마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에 집어넣으시고, 마침내 애굽 총리가 되게 해주시고, 7년 흉년 때 만민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만나고 형제들도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물질과 건강이 다 필요한 줄 아시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깨서 은혜로 주신 것들은 인간의 지혜와 탐구로서는 알 수 없고,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는 세상 불신자들이 인간적인 지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오지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셔야만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8-10.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처럼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나,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으로써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시적으로만 아는 것(γνῶσις)을 가리키지 않고, 체험적으로 완전히 아는 것( ἐπίγνωσις)을 가리킵니다(contact-knowledge: experiential knowing).
이처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함께 살면서, 깊이 사귀면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함께 사는 부부가 서로를 깊이 아는 것처럼,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가운데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세밀하게 섭리하심과 지극히 사랑하심을 날마다 삶 속에서 체험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18절.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so that you will know what is the hope of His calling, what are the riches of the glory of His inheritance in the saints,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πεφωτισμένους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τῆς καρδίας ὑμῶν,
having been enlightened the eyes of the heart of you
직역하면 ‘너희 마음의 눈들이 밝혀지게 하사’란 뜻입니다.
‘밝히사’(πεφωτισμένους)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enlightened) 성령님의 은혜로 마음의 눈이 밝혀져서 영적인 진리를 계속 알게 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the ministry of the Holy Spirit who continually illuminates spiritual truth).
여기서 완료형은 계속되고 있는 과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L. Key. 523.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εἰς τὸ εἰδέναι ὑμᾶς τίς ἐστιν ἡ ἐλπὶς τῆς κλήσεως αὐτοῦ,
in order for to have known you what is the hope of the calling of Him
직역하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너희에게 알게 하시기를 위해서’ (내가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알게’(εἰδέναι)는 완료 부정사형 동사(to have known)입니다.
한글번역에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19절 마지막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τίς ὁ πλοῦτος τῆς δόξης τῆς κληρονομίας αὐτοῦ ἐν τοῖς ἁγίοις,
what (are) the riches of the glory of the inheritance of Him in the saints
1.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1)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두 번째 기도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인들도 다른 교인들에 비해서 세상적인 부요와 지위와 향락을 누릴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하늘나라의 축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 눈을 밝혀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눈으로는 하늘나라의 축복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마음의 눈이 밝아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나자 육신의 눈은 밝아지고, 마음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창세가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 것, 육신의 것만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늘나라의 축복에 대해서는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는, 발람이라는 선지자가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향락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이 금하시는 죄악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칼을 들고 길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타고 가는 나귀는 영안이 열려서 칼을 든 천사를 보았으나, 세상 물질에 눈이 먼 발람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칼을 든 천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창세기 21장에는,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주인 사라에게서 쫓겨났을 때, 광야에서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종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창세기 19: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마음 눈을 밝혀주셔야,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천국의 축복들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왜 마음의 눈을 밝혀서 천국의 축복들을 보아야 할까요?
그냥 세상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 그때에야 천국 축복들을 보면 안 되는가요?
네, 이 세상에서 성령으로 신령한 축복들을 맛보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과 천국의 축복들을 맛보지 못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파해서 모두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불량식품들을 사 먹는데, 어떤 아이들은 불량 식품을 사 먹지 않습니다.
불량식품을 사 먹지 않는 아이들은 집에 가면 아주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천국의 신령한 복들을 확실히 알고 성령으로 맛 보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오염된 죄악과 향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축복들을 알지 못하고 성령 안에서 맛보지 못하는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을 받으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세상에서 부요하고, 권세를 가지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신령한 축복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실로 바울 사도는 세상 명예와 자랑을 분토와 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함이라.
2.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1) ‘그의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다는 데 대해서 감격하지 않으십니까?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서 상을 주면 영광스럽습니다.
군인들은 지휘관이 이름을 불러서 상장과 휴가장이 나왔다고 하면 기쁩니다.
정치인들은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전화로 이름을 불러서 함께 일하자고 하면,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성도의 이름을 불러주시면 얼마나 더욱 영광입니까!
물론 우리들은 누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2) 그러면 ‘부르심의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커다란 축복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마귀의 종노릇 한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 한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서 원주민 아이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총을 잘못 건드려서 선교사가 애지중지 기르는 칠면조 8마리를 죽였습니다.
그러자 종노릇 하던 하인 여자가 이 양자를 선교사님에게 이르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 후로 이 양자 아이는 여자 하인이 시키는 대로 농노릇을 했습니다.
이 양자 아이가 하인 여자의 말을 안 들으면 ‘너 칠면조 이른다’라고 하면, 아이는 꼼짝 못하고 하인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자 아이가 하인의 괴롭힘이 너무 힘들어서 병이 났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이 양자 아이를 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아이의 병이 마음병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아이에게 무슨 근심거리가 있냐고 물었고, 아이가 칠면조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은 양자 아이에게 ‘너는 칠면조 100마리보다 더 귀하고, 이 집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이 아이의 병은 나았고, 하인 여자가 ‘너 칠면조’ 하면서 종노릇 시켜도, 이 아이는 하녀에게 더 이상 종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마귀가 우리를 종노릇 시킬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마귀에게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로마의 한 귀족이 전쟁에 나갔다가 식민지 가정에서 예쁜 처녀를 노예로 잡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귀족이 노예 처녀를 사랑하게 되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된 여자가 남편된 귀족에게 자꾸 이전처럼 일을 많이
해서 남편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아내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일해서 인정받으려는 노예 생각을 버리세요>
(5)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부르셔서 주시려는 소망은 너무도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천국을 기업으로 주시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8:30-32.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6) 우리는 마음 눈이 밝아져서 부르심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명예와 부귀영화가 크게 보여서, 날마다 주시는 신령한 복들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7)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천국의 영광을 육신적으로 완벽하게 체험할 정도로 분명하게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영광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천국의 영광을 세상 것으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우리의 세상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만일 천국 영광을 분명하게 체험하게 되면, 마약복용자처럼 되어서, 더 이상 힘든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세상살이를 소홀히 하든지 자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국 영광을 희미하게 말씀해주시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8)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천국의 상급이 이 세상의 봉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봉사에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그러므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3.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기업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성도 안에서
즉 천국 기업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성도 안에서 누린다고 했습니다.
마치 성도들이 수양회를 하게 되면 개인의 집을 떠나서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처럼, 천국에서도 공동생활을 하면서 천국을 개인 소유로 갖는 것이 아니라 공동 소유로 향유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기업은 영광스럽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천국 영광 앞에서는 썩은 냄새 나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의 영광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가득히 임재하실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친히 보았습니다.
베드로후서 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그 때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세상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천국 영광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더 영광스런 것입니다.
(3) 천국 기업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천국 기업이 영광스럽다는 것은 천국의 질을 말하는 것이고, 천국 기업이 풍성하다는 것은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성도들의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처럼 천국 기업은 성도들의 연합 속에서 영광스럽고 풍성한 곳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마음 눈을 열어주셔서 부르심의 소망과 천국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날마다 신령한 기쁨을 가지고, 세상 유혹을 이겨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9절.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at is the surpassing greatness of His power toward us who believe. These are in accordance with the working of the strength of His might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καὶ τί τὸ ὑπερβάλλον μέγεθος τῆ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εἰς ἡμᾶς
and what (is) the surpassing greatness of the power of Him toward us
직역하면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능력의 뛰어나게 위대하심이 어떠한 것을’이란 뜻입니다.
‘뛰어나게’(ὑπερβάλλον)는 현재분사입니다(surpassing).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τοὺς πιστεύοντας κατὰ τὴν ἐνέργειαν τοῦ κράτους τῆς ἰσχύος αὐτοῦ,
those believing according to the working of the might of the strength of Him
‘믿는’(πιστεύ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believing) 현재 믿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에베소 도성은 소아시아 수도인 큰 도성인데, 아데미 우상신을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도성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주에 가면 불국사가 있는 것처럼, 에베소 도성 한 가운데는 아데미 우상 신전이 있고, 아데미 우상신이 높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데미 신전과 아데미 우상 잔재가 남아 있는데, 얼마나 웅장한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즉 이집트 피라밋처럼 현대 건추 기술로도 불가능하게 웅장한 건축물을 세원 것입니다.
아데미 우상은 예쁜 여성 신상인데, 유방이 여러개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성 사람들은 철저히 아데미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년내내 아데미 우상 축제일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성 사람들은 아데미 우상을 떠나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아데미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 사도가 전도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지, 귀신들이 떠나가고, 수 많은 병자들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우상신을 거짓이고, 하나님이 참된 신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데미 우상신전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 팔아먹고 사는 아데미 우상 숭배자들이 데모를 일으켰습니다.
즉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몰려들어가서 바울을 죽이자는 데모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서 에베소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 후로 에베소 교회의 기독교와 아데미 우상신 사이에 영적인 전쟁이 항상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3.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은 도시에 가면 기독교인들의 영적 싸움이 좀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적은 시골로 갈수록 귀신을 섬기는 귀신의 역사가 많고, 영적인 싸움이 더 심합니다.
가정적으로도 기독교인들이 많은 가정은 영적 싸움이 수월합니다.
그러나 전체가 귀신 섬기고 제사하는 가정에서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영적 싸움이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믿는 가족을 전도하려면, 먼지 믿는 사람이 그 만큼 더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힘을 충전해야 합니다.
4. 악한 귀신과 영적인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아니고서는 이런 귀신이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러기 때문에 귀신과의 영적 전쟁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처럼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힘 입지 않고는 오히려 귀신에게 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 성읍에서 바울 사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으니까, 유대인 스게와의 아들들도 시험삼아 흉내를 내다가, 오히려 귀신에게 상처를 입고 벌거벗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5. 바울 사도가 멀리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듯이, 우리가 기도하면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들을 위해서나 부모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멀리서 어려운 가운데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6.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했듯이,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리고 예수님이 성도들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성도들을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요한1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어린 신자 한 사람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보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또한 성도들을 예수님에게서 빼앗을 자가 없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강력한 능력으로 성도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기도하고, 날마다 성령님 모시고, 승리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