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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2장 11-15절. 우리를 구원하심은 선한 일에 열심하게 하려는 것임
11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grace of God has appeared, bringing salvation to all men,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Ἐπεφάνη γὰρ ἡ χάρις τοῦ Θεοῦ
was appeared for the grace of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나타나’(Ἐπεφάν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ppeared) 과거에 확실히 나타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성육신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σωτήριος πᾶσιν ἀνθρώποις,
bringing salvation to all men
‘구원을 주시는’(σωτήριος)은 형용사인데, ‘구원하는, 구원을 주시는’(saving, bringing salvation)이란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란 말씀입니다.
즉 어떠한 죄인도 구원하시는 구주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반드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이란 표현은 각계 각층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황제나 왕이나 부자 같은 사람이나 노예나 세리나 창녀조차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2.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는 말씀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것과 그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킵니다.
3. 본 절은 펠라기우스(Pelagius)와 알미니우스(Arminius)가 주장한 만인 구원설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칼빈(Calvin)을 추종하는 장로교인들은 제한속죄설을 주장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오직 예수 믿는 성도들만을 위해서 하신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서 십자가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으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만 예수님을 믿고, 실제로 많은 불신자들은 지옥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structing us to deny ungodliness and worldly desires and to live sensibly, righteously and godly in the present age,
우리를 양육하시되
παιδεύουσα ἡμᾶς,
instructing us
‘양육하시되’(παιδεύουσα)는 현재분사로서(instructing) 계속 양육하고 교육하시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ιδεύω) 어린이를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고 훈련시키는(educate and train children) 것을 가리킵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ἵνα ἀρνησάμενοι τὴν ἀσέβειαν καὶ τὰς κοσμικὰς ἐπιθυμίας
so that having denied ungodliness and the worldly desires
직역하면 ‘이는 이 세상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게) 하기 위함이다’는 뜻입니다.
‘다 버리고’(ἀρνησ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enied)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을 가리키며, 원형(ἀρνέομαι)은 ‘부인하다, 거절하다’( deny, repudiate, refuse)는 뜻입니다.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σωφρόνως καὶ δικαίως καὶ εὐσεβῶς
discreetly and righteously and piously
이 세상에 살고
ζήσωμεν ἐν τῷ νῦν αἰῶνι,
we should live in the present age
직역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게 하려는 것이다’(ζήσω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we should live) ‘단호하고 철저하게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우리가 살게 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1. 본 절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 목적 두 가지를 말씀한 내용입니다.
첫째,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고 훈련시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경건과 세상 정욕을 버리도록 훈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는 것’은 경건의 반대어로 불신앙을 가리킵니다.
‘세상 정욕’에서 ‘세상’이란 불신 세계를 가리키고, ‘정욕’이란 육체의 자연적 욕구로서 육신의 정욕인 음행과, 안목의 정욕인 물질적 탐욕, 이 세상의 자랑인 세상적 교만을 가리킵니다(요일 2:16).
2. 둘째로,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두 번째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신중함’이란 자신에 대해서 자제하고 근신하는 것을 가리키고, ‘의로움’이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로 사는 것을 가리키며, ‘경건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건한 신앙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13절.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looking for the blessed hope and the appearing of the glory of our great God and Savior, Christ Jesus,
προσδεχόμενοι τὴν μακαρίαν ἐλπίδα καὶ ἐπιφάνειαν τῆς δόξης τοῦ μεγάλου Θεοῦ καὶ Σωτῆρος ἡμῶν,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awaiting the blessed hope and appearing of the glory of the great God and Savior of us, Christ Jesus
‘기다리게 하셨으니’(προσδεχό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awaiting)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ροσδέχομαι)은 적극적으로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것(wait actively, expectantly),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기다리는 것(active looking for and waiting)을 의미합니다.
1. ‘복스러운 소망’(τὴν μακαρίαν ἐλπίδα)이란 주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성도들이 영생을 얻고, 천국에서 살 것이라는 복된 소망을 가리킵니다.
2. ‘영광이 나타나심’(ἐπιφάνειαν τῆς δόξης)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가리킵니다.
3. ‘우리의 구주 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τοῦ μεγάλου Θεοῦ καὶ Σωτῆρος ἡμῶν, Χριστοῦ Ἰησοῦ)란 표현은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구주시고 크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즉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크신 하나님이시란 표현입니다.
4. ‘크신 하나님’(μεγάλου Θεοῦ)이란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인데(신 10:17, 느 1:5),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란 말씀입니다.
14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every lawless deed,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for His own possession, zealous for good deeds.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ὃς ἔδωκεν ἑαυτὸν ὑπὲρ ἡμῶν
who gave Himself for us
직역하면 ‘그가 자신을 우리를 대신하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주셨다’(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gave) 과거에 확실히 주신 역사적인 틀림없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ἵνα λυτρώσηται ἡμᾶς ἀπὸ πάσης ἀνομίας
so that He might redeem us from all lawlessness
직역하면 ‘이는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그가 속량하시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속량하시고’(λυτρώσηται)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 might redeem) 확실히 속량하신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καὶ καθαρίσῃ ἑαυτῷ λαὸν περιούσιον,
and He might purify to Himself people His own possession
직역하면 ‘자신을 위해서 자기 소유의 백성을 깨끗케 하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깨끗케 하려는 것이었다’(καθαρί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 might purify) 확실히 깨끗하게 하려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ζηλωτὴν καλῶν ἔργων
zealous good works
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예수님이 범죄한 우리가 죽을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본 절에서 ‘대신하여’(ὑπὲρ)란 단어는 ‘위하여’(for)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마가복음 10장 45절에는 ‘대신하여’(ἀντὶ)라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2.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라’에서 ‘속량하다’(λυτρόω)는 단어는 ‘속전(贖錢:ransom)을 받고 풀어주다, 속량하다’(release by paying a ransom, redeem)는 뜻인데, 우리가 죄와 죽음과 사탄의 노예가 되었으나, 예수님이 대신 속전(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용서와 영생과 자유를 얻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받은 것과 바벨론에 포로된 것에서 해방받은 것을 가리켰습니다.
시편 130편 8절에서는 ‘자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시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노예된 사람을 부자가 속전을 주고 해방시킨 것을 ‘속량’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불법’이란 죄를 가리킵니다.
요한일서 3:4-5.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3.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범죄한 백성에게 언약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한 것처럼(레 17:11),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우리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4.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신 목적이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λαὸν περιούσιον)이란 ‘자기 소유인 백성’(people of one's own possession),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 specially chosen people)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들이 참 이스라엘로서(갈 6:16)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의 백성이고, 하나님 자신의 백성입니다.
16절.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se things speak and exhort and reprove with all authority. Let no one disregard you.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Ταῦτα λάλει καὶ παρακάλει καὶ ἔλεγχε μετὰ πάσης ἐπιταγῆς·
these speak and exhort and rebuke with all authority
‘말하고’(λάλει)는 현재 명령형으로서(speak) 항상 말하라는 것입니다.
‘권면하며’(παρακάλει)도 현재 명령형으로서(exhort) 항상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책망하여’(ἔλεγχε)도 현재 명령형으로서(rebuke) 항상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μηδείς σου περιφρονείτω.
no one you let despise
직역하면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말게 하라’는 뜻입니다.
한글 번역은 원문의 능동태를 수동태로 바꾸어서 번역했습니다.
‘업신여기지 말게 하라’에서 동사(περιφρονείτω)는 현재 명령형으로서(let despise) 항상 업신여기지 못 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1. ‘너는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고,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는 것은 디도 목사가 바울이 가르친 말씀을 말하고(2:1),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권면하고(2:6), 권면해도 안 들으면 책망하라는(1:9, 13)는 말씀입니다.
2. 이처럼 말하고, 권면하고 특히 책망할 때는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권했어도, 고치지 않을 때는 강력한 영적 권위로 책망해야 합니다.
여기서 ‘권위’(ἐπιταγή)란 ‘명령과 강한 권위’(command, strong authority)을 뜻하고, 특히 성령의 은사로 인한 강한 권세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베드로가 아니니아와 삽비라를 책망할 때, 그들이 넘어져 죽은 것과 같은 강한 권위나(행 5:1-11), 바울이 박수 엘루마를 책망했을 때 그가 장님이 된 것이나(행 13:8-11), 엘리사가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저주하자 곰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죽인 것과 같은 것이나(왕하 2:23-24),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다가 문둥병자가 된 것(민 12:1-10)과 같은 영적인 권위를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경건하게 사시고, 선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