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三冬에 베옷 입고
암혈岩穴에 눈비 맞아
구름낀 볕 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진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조식의 병가 甁歌
성리학의 대가 조식曺植은 창녕조씨로 조선 중기 경상도 단성현감-.
서산에 해진다 하며 눈물겨워 하였다. 그후 벼슬 자체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 또한 햇빛 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미완의 일 때문에 슬퍼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대를 초월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남명 조식의 따뜻함이 깃든 시조작품이다.
삼동에 베옷을 입고 암펼에 눈비를 맞으며 지내는 청빈한 선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따뜻한 햇볕은 고사하고 구름에 낀 볕살조차 쬐지 못했을망정, 해가 져서 슬퍼한다는 슬픔이 담겨있다.
남명南冥 조식선생-
그의 삶은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맞는 삶이었다.
삶의 의연함과 기개가 없이는 이겨낼 수 없는 삶이다. 단순히 가난하고 헐벗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절개를 지닌 선비나 지사가 살아가는 삶이기에 스스로 삼동에 베옷입과 암혈에 눈비맞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살아가는 인새의 모습과 같다. 겉으로는 부유해 보이고 위세등등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희비애환이 있는 법 .
고단한 삶이 절정에 이르는 둘째 수를 보라. 따뜻한 햇볕을 쬐어도 성이 차지 않을 일인데 하물며 구름에 가린 햇볕조차 쬔 젓이
없다고 하였으니 치열하고 극한적인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남명 조식은 이황과 더불어성리학자로 우뚝선 위대한 분이시다.
종장에 서산에 해진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햇빛도 못받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지만 해가 진다하니 서글퍼진다는 말은 얼마나 휴머니즘적인가! 남명은 벼슬자체에 연연하지 않았다. 청빈한 삶을 고고히 살아가던 우리가 원하던 스승상이 분명하다.
삼동에 베옷입고 암혈에 눈비 맞는 삶,
아름답고도 맑은 시심, 그 삶속에 깃든
남명조식의 슬픔은 못내 뜨거운 삶의 열기를
후세에 전해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