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啞陶 / 송수권(1940-2016)
아도란 무엇이냐
질그릇이다.
인사동 골짜기의 고물상 같은 데 가서 만나보면
입은 기다랗게 찢겨져 있고 두 귀는 둥글게
구멍이 패여 있는
입이 있어도 벙어리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못생긴 우리네의 질그릇이다.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겁장이 지식인들의 입을 누르는
그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은밀히 건네는
유가풍의 禁書금서와 같은
질그릇이다.
사화가 극심했던 시절엔 서울의 아도商은
짭짤한 재미를 보았고
외세가 판을 치던 시대엔
주먹만한 아도를 사들고 관직에서 떨려난 선비들은
줄을 이어 낙향했다.
우리들의 입에 재갈 물리고 귀에 자물쇠 채우는
이 희한한 물건은
이태조가 서울의 땅기운을 끄기 위해
간신배 정도전을 시켜 고안해낸 물건이었다.
또한 수상기가 오른 입의 뻗세디뻗센 집 문간엔
아도 일백 개를 사서 쌓아두기도 했다.
신라 때 복두장이는
하루 아침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
도림사 대숲가에 가서 외치다
아무도 듣는 이 없어 복장이 터져 죽었다지만
나는 오늘 이 도시의 어디선가
목을 조르며 도둑고양이처럼 오는 최루탄 개스에
재채기 콧물 눈물 범벅이 되면서
잎 핀 오월의 가로수 밑에 비틀거리면서 비틀거리면서
그 시대에서 한 발짝도 더 깨어나지 못한
또 하나의 아도가 되어가는 내 모습을 본다.
아도 아도 아도 아도 아아아아 아도
이 땅의 시인이여 만세.
시 한 편 때문에 잠을 설쳐본 기억이 있을까. 나는 시인의 시 「아도」를 읽고 새벽이 오길 기다리다 아내와 함께 서울로 달려갔다. 그날은 결혼기념일이라 핑계 삼아 인사동이나 갔다 오자 했던 것이다. 시인의 시구 “인사동 골짜기의 고물상 같은 데 가서 만나보면”을 믿고 반나절을 헤맸다. 아무 곳에서도 아도는 볼 수 없었고, 누구도 아도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아도에 정신 팔려 있는 동안 아내는 지쳐서 맥을 못 추고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에 자사호 작은 것 하나 선물로 사 안겨 내려오는 내내 결혼기념일은 쓸쓸히 끝나고 말았다.
도대체 벙어리질그릇 아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전국의 박물관과 있을만한 곳을 검색해도 볼 수가 없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어느 도자기 장인의 블로그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시인의 시를 읽고 시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위해 가상한 노력을 기울였던 지난날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입틀막’이란 요상한 짓이 활개 치며 몰려다니고 있는 시대에 시인의 시를 불러낸다. “복장이 터져 죽”을 것 같은 벙어리처럼 서 있는 시인은 “오월의 가로수 밑”에서 “비틀거리며” 오열하고 있다. 시인 공화국인 나라에서 “한 발작도 더 깨어나지 못한” 벙어리가 되어가는 모습이지만 결코 죽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나선다. 1연에서 아도의 생김새를 소상히 말한 시인은 2연에서 아도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그랬구나. 간신배 정도전이 고안해 만든 물건이 ‘입틀막’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농간이란 말, 농단이란 말로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큰 간신배와 도둑들이 물꼬를 바르게 흘러가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길을 잃었다. 아니 정치가 막힌 것이다. 시인은 이 땅의 시인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은 죽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입에 재갈 물리고 귀에 자물쇠 채우는” 희한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벙어리 울음으로(“아도 아도 아도 아도 아아아아 아도”) 당부한다. “시인이여 만세”라고, 시인은 내게 말했다. ‘나는 글로 투쟁했고, 싸웠으며, 글로 내 몸을 바쳤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