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행 신은선-1
1. 봄이 오는 길목에서 3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했다.
갑자기 주어진 6시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스무살의 기억을 더듬어 ‘그 곳으로 추억여행을 떠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초년생으로 풋풋한 나의 청춘과 맞닥뜨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약간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을 쫓아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2.가난한 시절의 아련한 추억, 혀끝에 감도는 맛의 기억, 몸이 먼저 기억하고 그 곳으로 발길이 닿았다. 시장 안 식당은 오랜 세월에 찌든 흔적들이 곳곳에 산재 해 있었다. 보리밥을 지으면 나는 구수하면서도 쿰쿰한 냄새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반겨주었다. 빛바랜 누런 벽지,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벽에 걸린 해바라기 그림 등이 잊고 있던 감성을 불러 일으켰다. 드디어 양은 쟁반에 담겨져 온 된장과 시랏국, 김치, 나물한가지, 콩자반, 양재기에 나물 서너가지 전부였다. 보리밥은 따로 담겨져 나왔다. 검은색 짙은 국인지 찌개인지 불분명한 된장에는 알알이 부서진 콩알조각들이 둥둥 떠다녔지만 짜조롬한 맛은 옛 맛 그대로였다. 그 시절 먹던 보리밥이 오버랩 되었다.
3.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뜨기 계집애가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보리밥이었다. 무생채, 배추겉절이, 상추, 콩나물에 흰쌀이 얼마 섞이지 않은 거의 꽁보리밥 수준의 보리밥 비빔밥이었다. 함께 주는 숭늉과 강된장이 너무 맛있는 할머니 표 보리밥. 물론 돈만 주면 무엇이든 맛난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겠지만 매달 올려 보내주는 생활비는 부모님의 피땀 어린 노동의 댓가인줄 알기에 아껴 쓰고 아껴 썼다.
4. 우리들이 대구로 유학을 온 것은 사촌 오빠가 풍기고등학교에서 대구경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1남 4녀인 우리 집도 변화가 왔다. 부모님께서는 남동생을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시켰다. 유학을 시켜야 한다는 사촌오빠의 조언도 있었지만 교육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 있으셨던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께서는 오빠집 근처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사서 공부시켰다. 처음에는 언니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졸업하기 전까지 4년동안 동생 뒷바라지를 했고 이어 둘째인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바톤을 이어 받았다.
어머니께서는 시골 분답지 않게 딸자식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 시절에는 여자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을 다니거나 좀 더 괜찮은 형편의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자매들은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모두 대학교를 졸업했다.
시골에서 1남 4녀 교육을 시키자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허리띠를 조아 매는 생활을 하셨을 것이다.
5.대도시로 유학 온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네 자매의 역할이었다. 입이 까다로운 남동생은 인스턴트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나물과 조림 반찬 등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였다.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 생각하니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6.나는 강의 시간이 끝나면 부랴부랴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아야 했고 매일 반찬 걱정을 했다. 과수원을 하시는 부모님께서는 매달 생활비를 부쳐 주셨지만 늘 빠듯한 돈으로 생활해야 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다보면 맛난 냄새가 사방에서 나를 유혹했다. 보글보글 끓여 오르는 빨알간 떡볶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묵꼬치의 유혹, 치킨냄새는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돈 아낀다고 학식조차도 매일 매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학식을 먹지 않은 날은 시장에서 풍겨오는 온갖 맛있는 냄새 때문에 주린 배를 움켜지고 장을 봐야 했다.
하루는 큰마음 먹고 보리밥을 한 그릇 주문해서 먹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맛 그대로였다. 된장이 어찌나 맛나던지...
숭늉 또한 시골냄새가 나는 구수한 맛이었다. 싹싹 긁어 먹는 나를 보시곤 주인 할머니께서 보리밥을 한 주걱 듬뿍 주시면서
“학생이 배가 어지간히 고팠나보네. 배가 고프면 모든 게 힘들지. 그러니 언제나 배가 든든해야 허” 많이 먹고 힘내라는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결혼하고 그곳을 떠나올 때까지 그 식당은 나의 마음과 몸을 살찌우는 곳이 되었다.
7.생각해보면 별게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할머니의 보리밥 한 주걱과 응원의 한 말씀이 힘이 되었다. 앞이 깜깜하고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에 휩싸여 허우적거릴 때도 할머니의 말씀을 떠 올리며 힘을 내곤했다.
누구에게나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내려놓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그 자신이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순도순 지구별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대 해 본다.
8.오늘은 나의 스무 살 그곳으로 추억 여행을 떠났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예순을 바라보는 봄길에서 나의 스무 살은 어땠는지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했다.
과연 열정을 가지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가?
세월의 무게는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 오만함으로 편협된 사고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던가?
마음은 늙지도 않았는데 몸은 어느덧 내일모레면 예순을 바라본다.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가 그곳을 갔지만 그곳에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오래전 돌아가시고 머리카락 하얀 따님이 뒤를 이어 보리밥집을 이어 가고 있었다. 세월은 가고 추억은 남는 것일까? 세월의 무상함을 가슴 깊숙이 느끼는 하루였다. (2025.02.22.토)
첫댓글 세월은 無常하고 어릴적의 추억만 남아있는 글 한펀을 잘 읽었습니다.
구수한 보리밥과 된장찌개가 갑자기 먹고 싶어 집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순도순 지구별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대 해 본다.-아, 그렇지. 우리는 지금 지구별을 여행하는 중이지. 불현듯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생각납니다. 어린왕자의 지구별여행은 특별했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린왕자의 투정과 당돌한 질문에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의 부끄러움을 책망하게 되지요. 귀한 상상의 소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