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도 발 東國輿地圖跋
하늘은 멀고 땅은 가까우나 하늘의 해와 달의 운행의 도수와, 성수(星宿)의 높고 낮은 전차躔次 성좌星座는 분촌(分寸)으로 계산이 가능하고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다. 땅의 산천의 맥락과 도리(道里)의 원근에 대해서는 끝내 상세한 것이 없다. 대개 하늘은 높아도 그 보이는 것이 트였지만 땅은 낮아도 그 보이는 것이 막혔기 때문이다. 천체(天體)는 평평하고 곧으나 지형(地形)은 올록볼록하고 구불구불하다. 하늘은 양이라 드러나고 땅은 음이라 숨는다. 그러므로 땅을 그리는 것은 하늘을 그리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다.
내 친구 현로(玄老) 정항령(鄭恒齡)은 그 어려운 일에 고심했다. 일찍이 우리나라의 지도를 그리면서 나누면 열읍(列邑)이 되고 합치면 전국지도가 되도록 했다. 척(尺)과 촌(寸)을 헤아려 지극히 정밀하게 만들었다. 〈방성(方星)〉, 〈탁성(坼星)〉, 〈혼개통도(渾盖通圖)〉와 그 체례(體例)를 같이하고 있다. 현로의 황고(皇考) 농포공(農圃公)이 실제 시작했고 그 맏아들 원림(元霖)이 증익(增益)했으니 무릇 3세대 50여 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오묘함을 다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경인년(1770, 영조46)에 임금께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편찬하라고 명하였는데 나는 그 일에 참여했다. 또 신하들에게 명하여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하게 했다. 이에 공부(公府)에 소장된 10여 건을 꺼내고 제가(諸家)의 고본(古本)을 찾아 고찰해 보았지만 현로가 그린 것만 한 것이 없어서, 마침내 그것을 사용하면서 약간 고치고 손을 보았다. 6월 초6일에 시작해서 8월 14일에 마치고 올렸다. 《열읍도(列邑圖)》 8권, 《팔도도(八道圖)》 1권, 《전국도(全國圖)》 족자 하나인데, 주척(周尺) 2치(寸)를 한 선(線)으로 삼아서 세로줄이 76개요, 가로줄이 131개였다. 또 동궁(東宮)에도 그 수량대로 똑같이 올릴 것을 명하고, 임금이 친히 〈소서(小序)〉를 지으셔서 족자의 머리에 두었으니 신장(宸章 임금의 문장)이 빛나서 팔도의 산천이 모두 환히 비춰주는 빛을 입게 되었다.
아, 현로는 문장을 잘하고 경륜을 품고 있었다. 일찍이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는데 시무에 절실한 내용이었다. 평소에 차와 술을 마실 적에 했던 말과 논의는 세상에 수용(需用)할 만한 것이 또한 얼마였던가. 그러나 모두 쓰이지 못했고, 또한 8년간 머리에 병을 앓다가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어찌 현로의 불행일 뿐이겠는가. 지도는 그의 한 가지 재능이었는데 지금 청연(淸燕)에 들여놓고 살피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땅이란 반드시 하늘에 도모한 이후에 그 방위의 대소를 분명히 알아서 인량(寅亮)의 용도로 삼을 수 있다.
영묘(英廟 세종대왕) 때에 윤사웅(尹士雄)ㆍ최천구(崔天衢)ㆍ이무림(李茂林) 등을 강화도의 마니산, 갑산의 백두산, 탐라의 한라산에 파견하여 북극고도(北極高度)를 측량하게 하였다. 요 임금 때 희화(羲和)에게 나누어 명한 것과 같았는데, 그때 측량한 도수가 지금 전해지지 않으니 안타깝다.
현로는 집안에 간평의(簡平儀)를 제작하여 설치했고, 나와 약속하기를 ‘참으로 우리나라의 네 극단에 도달하여 별이 운행하는 도수와 태양의 그림자를 측량해 와서 지도 작업을 마치자.’ 했는데, 현로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나 또한 늙었으니 그 누가 할 것인가. 아, 슬프구나.
[주1] 도리(道里) : 어떤 곳으로부터 다른 곳까지 이르는 거리의 이수(里數)로, 이정(里程)과 같은 말이다.
[주2] 정항령(鄭恒齡) : 1710~1770.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아들로, 현로는 그의 자이다. 신경준의 글에 의하면 정상기의 지도제작에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3] 방성(方星) : 〈방성도(方星圖)〉를 가리킨다. 별의 크기와 위치를 밝히는 한역천문도(漢譯天文圖)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는 청나라 강희제 때 예수회 선교사로서 흠천감(欽天監)에서 일하던 민명아[閔明我; Philippus Maria Grimaldi, 1639~1712]에 의해 1711년 작성된 천문도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종류의 천문도가 제작되어서 여기에서 말하는 〈방성도〉가 꼭 민명아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방성도라는 명칭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이익의 《성호사설》을 통해서였다. 《성호사설》 권2 〈천지문 방성도〉에 나온다.
[주4] 탁성(坼星) : 〈성토탁개도(星土坼開圖)〉를 가리킨다. 《성호사설》에서 〈방성도〉와 함께 언급되는 천문도의 일종이다. 《성호사설》 권3 〈천지문 성토탁개도〉에 나온다.
[주5] 혼개통도(渾盖通圖) :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에 나오는 천문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혼개통헌도설》은 명나라의 이지조(李之藻, 1565~1630)가 마테오 리치[利瑪竇;Matteo Ricci, 1552~1610]와 함께 서양의 천문서(天文書)를 번역, 편찬한 책이다.
[주6] 농포공(農圃公) : 정상기(鄭尙驥, 1678~1752)로,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일(汝逸), 호는 농포자(農圃子)이다. 조선 영조 때의 지리학자이다. 100리를 1자로, 10리를 1치(寸)로 표시하는 축척법인 백리척(百里尺)에 근거를 두고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했다.
[주7] 원림(元霖) : 정항령의 큰아들인 정원림(鄭元霖, 1731~1800)을 가리킨다.
[주8]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조선조 때 영조(英祖)의 명을 받들어 홍봉한(洪鳳漢) 등이 원(元)나라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본떠 공사의 기록에서 널리 참고하여 편찬한 책으로 140책인데, 상위(象緯)ㆍ예(禮)ㆍ악(樂)ㆍ병(兵)ㆍ형(刑)ㆍ직관(職官) 등 조선 고금(古今)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모아 수록하였다. 고종(高宗) 때에 와서 이를 증보(增補)하였다.
[주9] 환히 비춰주는 : 원문의 ‘昭回’는 빛이 하늘을 따라 돌면서 비춤을 이르는데, 은하수의 빛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임금의 문장을 높여서 이른 것이다. 《시경》 〈운한(雲漢)〉에 “밝고 밝은 저 운한이여, 빛이 하늘 따라 돌도다.[倬彼雲漢, 昭回于天.]” 하였다.
[주10] 청연(淸燕) :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다.
[주11] 인량(寅亮) : 재상(宰相)이 천도(天道)를 받들어 임금을 보좌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서경》 〈주관(周官)〉에서 “천지를 공경하고 밝힌다.[寅亮天地]”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주12] 윤사웅(尹士雄)ㆍ최천구(崔天衢)ㆍ이무림(李茂林) : 세 사람은 모두 세종 시대의 역관, 즉 천문학자들이다. 1420년 윤사웅은 10월의 지진과 11월의 혜성을 관측한 공로로 남양 부사에 제수되었고, 최천구와 이무림 역시 비슷한 외직에 제수되었다.
[주13] 북극고도(北極高度) : 지평면으로부터 북극까지의 고도를 뜻하는 것으로 즉 오늘날 관측 지방의 위도(緯度)를 뜻한다.
[주14] 희화(羲和) :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로, 《서경》 〈요전(堯典)〉에 의하면 천문 역법의 책임을 맡은 인물들이다. “이에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일월성신을 책력으로 만들고 살펴서 백성에게 농사철을 공경히 주게 하셨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란 구절이 실려 있다.
[주15] 간평의(簡平儀) : 명나라 말에 이탈리아 선교사인 사바틴 데 우르시스[熊三拔;Sabbathino de Ursis, 1575~1620]가 편찬한 《간평의설(簡平儀說)》에 따라 제작된 천문관측기구이다.
東國輿地圖跋
天遠地邇。而天之日月運行度數。星宿高低躔次。可以分寸計而無毫髮差也。地之山川脉絡。道里遠近。卒無以詳。盖天高而其朢通。地低而其見窒。天軆平直。地形凹凸紆曲。天陽也顯。地陰也隱。故圖地難於圖天也。吾友鄭恒齡玄老。於其難者用心苦。甞圖東國。分而爲列邑。合而爲全國。尺量寸度。至爲精密。與方星,坼星,渾盖通圖。同其例也。玄老之皇考農圃公實創之。其胤元霖 增益之。凡三世五十餘年乃成。不如是。何以盡其妙乎。歲庚寅。上命撰東國文獻備考。賤臣與其役。旣又 命臣作東國地圖。於是發公府藏十餘件。訪諸家古本考之。無如玄老所圖者。遂用之略加校讎。始于六月初六。八月十四日訖進之。列邑圖八卷。八道圖一卷。全國圖簇子一。以周尺二寸爲一線。縱線七十六。橫線一百三十一。又命獻東宮如其數。上親製小序。弁諸簇子之顚。宸章煥爛。八域山川。咸被昭回之光矣。嗟乎。玄老善文章懷經綸。嘗進萬言疏。剴切時務。平居茶酒之間。其言議可以需於世者。又幾何也。皆未見試。且貞疾八載。卒不起。此豈特玄老之不幸哉。地圖乃其一能。而今得入於淸燕之覽。是亦幸也。雖然地必謀於天而後。可以明知其方位大小而爲寅亮之用。 英廟朝。遣尹士䧺,崔天衢,李茂林于沁都之摩尼山。甲山之白頭山。耽羅之漢挐山。測北極高度。如堯之分命羲和。而其所測度數今不傳。可嘅也。玄老家製置簡平儀。與余約。苟到於國之四隅。測星度晷景而來。以卒地圖之業。玄老已沒矣。余且老。其誰爲之。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