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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김현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치가 떨어졌다며 가져다 달란다. 명령을 하달 받은 부하처럼 조바심이 난다. 평생 집안 살림살이에는 취미가 없는 엄마는 때때로 입맛 당기는 음식들을 내게 주문하신다. ‘여자팔자 길들기 마련’이라는 말은 엄마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다.
엄마는 합법적으로 완전한 미스다. 자식을 셋이나 두었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온전한 처녀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른 엄마의 인생은 비극일까? 아니, 어쩌면 완벽한 해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집안의 성화에 떠밀려 한 결혼이 성에 차지 않았다. 바깥으로만 돌던 아버지의 외도는 엄마를 만나 하나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엄마는 그 시절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엄마의 무모함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어떤 이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면서 파란만장한 엄마의 첩살이는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직장을 핑계 삼아 외지에 분가해서 살았다. 꿈처럼 달콤한 신혼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집안의 삼대독자였던 아버지는 집안 대소사를 책임져야 했다. 시시때때로 본가로 불려가야 했고 그런 날이면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밤을 새웠다. 본가에서 큰엄마와 함께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애태우던 애증의 시간들은 일기장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나마도 오래지 않아 아버지의 폐병이 도져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본가로 옮겨 와야 했다.
할머니는 산다하는 부잣집 외며느리로 큰 집안 살림을 이끌어가는 여장부였다. 여자의 몸으로 여러 척의 배를 소유하고 있을 만큼 억척스럽고 대찬 여자였다. 무섭기가 이를 데 없어 동네아이들은 할머니를 호랑이 할머니라 부르기도 했다.
할머니는 엄마의 서툰 살림살이를 늘 탐탁찮아 했다. 어쩌면 그보다는 부도덕한 엄마를 책망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손주들을 출산한 엄마를 호락호락 대하지는 못했다. 누구도 엄마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의 홀대도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에도 엄마는 주눅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생존은 엄마의 든든한 방패막이로 충분했다.
한 지붕 아래 본처와 첩이 함께 사는 고역살이를 엄마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으로 꿋꿋히 버텨내는 듯 했다. 하지만 병이 악화되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했다. 할머니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갔고 엄마는 급기야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시나리오처럼 엄마는 커다란 가방에 차곡차곡 자신을 옮겨 담았다. 사랑도 미련도 훌훌 털어버린 채 엄마는 떠나갔다.
여자가 가방끈이 길면 집안에 망조가 든다는 할머니의 소신을 엄마가 여지없이 확증시켜 준 셈이다. 할머니는 엄마의 고학력이 쓸데없는 사치라는 것을 늘 내게 주입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의 유산을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 법적으로 상속자격이 되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주어진 유산조차도 일절 욕심내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세 남매만을 챙겨 나왔다. 애시 당초 재물 따위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 것이 아닌 남자를 사랑했던 엄마의 반성 같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돈보다는 사랑이 우선이었던 엄마는 근본적으로 로맨티스트였다.
꽃과 화초를 좋아하는 엄마의 작은 베란다에는 사시사철 꽃이 지는 일이 없다. 책 보기를 즐기고 뉴스를 챙겨보는 인텔리다. 여자는 가꾸어야 제 맛이라며 화장기 없는 얼굴로는 슈퍼도 나가지 않았다. 정갈한 손톱위에는 언제나 고운 빛깔의 매니큐어가 빛을 발한다. 단정한 머리 스타일과 세련된 옷맵시는 엄마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밥은 굶어도 명품 하나쯤은 지녀야 하며 맘에 드는 물건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들이고야 만다. 혼자 하는 식사도 대충 먹는 법이 없다. 음식의 맛보다는 밥상의 치장에 더 공을 들인다. 그것은 팔순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건강을 지키며 즐겁게 살아가는 엄마만의 삶의 방식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살아가는 엄마라는 일반적인 틀을 엄마는 완강히 거부했다. 분명 여느 친정엄마들과는 다르다. 제철 야채며 과일들을 사다 드리는 일도, 김장이며 밑반찬을 챙겨 보내는 일도 엄마가 아닌 내가 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위를 위해 소주 한 병 챙길 줄 모르는 장모다. 처가라고 가봐야 씨암탉은커녕 맛있는 밥상 한번 받아본 일이 없다. 엄마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음식을 못한다. 그래서인지 남이 해주는 음식에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맛이 있던, 없던 말이다.
엄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아내로 살지는 못했지만 짧고 굵게 사랑하였노라 만족할 줄 안다. 자식에게 내어줄 게 없어 미안하지만 당신이 건강해서 고맙지 아니하냐는 당당함이 멋지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아름다우리라 말하는 긍정에 감사한다. 잔소리 보다는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여유로움이 우아하다. 어느 듯 엄마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나는 자식보다는 자신을 먼저 챙기는 엄마의 건강한 이기가 안심되기까지 한다.
늦게 가입한 노인대학에서 엄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엄마가 입는 옷은 언제나 완판이 될 정도이며 회장투표에선 말할 것 없이 싹쓸이 몰표를 받는다. 매일매일 점심을 사겠다는 영감님들이 줄을 섰다는 엄마의 자랑이 분명 거짓이 아님을 나는 안다
김치 한통을 차에 싣는다. 왁자지껄 수화기 너머가 시끄럽다. 엄마는 모임 중이라며 김치냉장고에 잘 넣어둘 것을 당부한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바쁘다.
큰 바위 얼굴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안방 문지방을 넘어 온 집안 구석구석으로 넘실거린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남편은 전에 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바탕 풀어놓더니 잠이 들었다. 머리가 유난히 커 대두라는 별명을 가진 남편의 커다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느 마을의 안위를 지켜냈던 수호신,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난다.
사업에 실패한 시아버님이 숨어 지냈던 강원도 탄광촌은 남편의 고향이요 어린 시절의 상흔이 배인 곳이다. 남자의 아버지가 탄광사고로 돌아가시자 엄마와 일곱 형제는 각자의 삶을 찾아야만 했다.
학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남자는 고등학교 합격통지서를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매일같이 산등성이에 올라 해가 저물어야 산을 내려왔다. 남자는 일몰의 시각이 너무도 싫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까운 자신의 청춘이 발갛게 타들어가는 것 같아 미칠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질풍노도였던 남자는 아르바이트로 약간의 여비를 마련하여 도시로 발을 내디뎠다.
도시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학원에 다녔다. 고등 검정고시를 위해 중학교 졸업증명서를 떼러 갔던 남자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아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절망감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중학 검정고시부터 고등 검정고시까지 이를 악무는 혹독함으로 소년기를 헤쳐 나갔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손재주가 유별났다. 시계며 라디오, 전축 등 기계만 보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금방 사들인 텔레비전 틈새로 새어 나오는 진공관의 붉은 불빛은 남자를 흥분시켰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남자는 텔레비젼의 내장들을 풀어헤쳤다. 네 발로 서있던 텔레비전 등 뒤에서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텔레비전의 심장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남자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런 남다른 재주로 남자는 기계장비회사에 입사를 하였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남자는 회사의 배려로 일본의 기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도의 기술들을 습득하며 그가 느낀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욕망은 세계 곳곳의 기술교육을 두루 수료하게 하였고 최고의 엔지니어로 성장시켰다.
남자는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에 업무 차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에게 순식간에 반해버린 일이 있었다. 회사의 기계가 심각한 고장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남자는 수리 차 우리 사무실을 찾았고 신중히 기계를 살폈다. 나는 무심히 퇴근을 했었다.
이른 아침 사무실 문을 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제 퇴근할 즈음 기계를 손보고 있던 남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꼿꼿하게 기계를 수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얀 와이셔츠가 그렇게 빛나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때 그 남자의 커다란 얼굴은 오래도록 묵직하게 내 가슴 속에 남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컴퓨터가 활성화되면서 최초로 전자출판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전자출판이 또 궁금했고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매뉴얼을 하루 종일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먹지도 자지도 않는 것 같았다.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컴퓨터에 매달렸다. 지치지 않는 열정은 남편을 전자출판의 선두주자로 이끌어 주었다. 큰 바위 얼굴은 문득문득 듬직한 여운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인덕이라곤 없는 남편은 베풀고도 뺨 맞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장비장사라는 것이 소모품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많은 소모품까지 관리하기가 벅차다 싶을 즈음, 하는 일 없이 비실대던 남편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남편은 큰 벌이는 안 되겠지만 부지런히 설치면 월급쟁이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친구에게 소모품 일체를 넘겨주었다. 노는 일에 이력이 나 있던 그 친구는 물건을 사다 들이기만 했지 납품은 우리 직원이나 내가 해야 할 만큼 태무심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 화투짝이나 치고 다니던 친구는 온 동네에 사기를 당했다고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지만 남편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업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남편이 답답해 화를 낸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일이라며 가장 큰 복수는 원망이 아니라 잊어주는 거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화투 빚에 쫓겨 행방이 묘연해졌다. 우직하게 앞날을 관망할 줄 아는 남편을 보며 나는 세상살이의 명확한 해답을 찾은 듯 손뼉을 쳤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바위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진 남자다.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자기주관의 소유자다.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아버지다. 때론 황소고집으로 힘들게 하지만 한 잔 술로 툴툴 털어버릴 줄도 아는 지아비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린 큰 바위 얼굴은 ‘자신의 발을 절벽 끝에 디디고 있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조금만 흔들려도 절벽 밑으로 곤두박질쳐지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진 것 없이 혼자의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고독함이 흠씬 묻어 있다. 이젠 한 걸음 걸어 나오라는 내게 큰 바위 얼굴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잠든 남편 얼굴이 오늘따라 편안해 보인다. 한 마을을 지켜낸 큰 바위 얼굴처럼 남편은 단단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낸 수호신이다. 살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고달프고 또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오늘도 겁 없이 일상을 즐긴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 큰 바위 얼굴이 바로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당선소감
김 현 지
맑은 물이 펑펑 샘솟는 귀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찌나 선명하기에 혹여 좋은 일이 있으려나 설레던 중이었습니다. 꿈에 대한 화답처럼 미당문학 신인상 수상 소식이 전해져 왔지요.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서 그리도 좋아하시던 국화꽃 흐드러지는 가을날, 제게 국화꽃 한 다발을 보내오셨습니다.
수상 소식을 접하던 날은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듯 행복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한 소녀의 가당찮은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문학의 초입에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제가 이토록 큰 상과 마주하고 보니 새삼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의 게으름과 소심함을 채찍질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달려갈 문학의 길에 미당문학 신인상은 제 가슴 속, 커다란 문신으로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날입니다.
미당문학신인작품상 심사평
이번 미당문학신인작품상에는 전국에서 모두 70명, 297편이 응모했다. 예심을 거쳐 시 부문 3명 총 22편, 수필 부문 3명 총 9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본심에서는 정독을 거친 뒤 부문별로 2명 씩 압축해 다시 작품을 보며 논의해 나갔다.
시 부문에서 박홍관 씨의 「문, 바람이 온다」 「볍씨 스케치」 「장미, 멘토를 찾다」 등의 작품에 주목했다. 시를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게 세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쓰고 있다는 시 의식, 작의(作意)를 표 나게 드러내 되레 시속살의 느낌과 메시지를 갉아 먹고 있는 게 아쉬웠다.
김건희 씨의 「물총새를 날리다」 「돌탑」 「꽃의 자리」 「눈사람」 등 응모작 편편이 수작이었다. 비유를 통한 이미지 창출보다는 적확한 묘사와 진술로 정서와 메시지를 전하고 끊을 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우리네 삶의 속내, 그리움이며 한 같은 것들을 가없이 표출해낼 수 있는 시적 역량을 높이 샀다. 위에 언급한 네 편 중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도 손색이 없을 것이나 노을 같이 번져오는, 강물처럼 흐르는 그리움을 돌탑처럼 쌓아올린 단정한 형태의 「돌탑」을 당선작으로 민다.
수필 부문에선 서정애 씨의 「동고비」 「속긋을 긋다」 등에 주목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려 쓰고 또 단정하면서도 짧은 문장의 속도감도 있었다. 자연을 관찰하고 우리네 삶과 결부시켜 명상하는 자세도 좋았다. 그러나 그 결합이 작위적이고 펄펄 끓어오르는 오늘 나의 삶이 없고 회고적이란 게 흠이었다.
김현지 씨의 「자궁반란」 「마더」 등의 응모작들은 우선 재미있게 읽혀 좋았다. 폐경기의 히스테리나 허탈감마저도 낙천적으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좋았다. 무엇보다 오늘의 삶과 주위에 대한 성찰과 주장이 들어있어 믿음직스러웠다.
「마더」는 아버지 호적에도 못 올리고 첩으로 살아야했던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단순한 회고를 넘어 오늘날 늘어나는 미혼모의 삶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를 넘어 자신이 겪어본 어머니의 삶을 통해 미혼모들의 사랑과 자신감을 낙천적으로 드러내며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혀 당선작으로 밀기로 흔쾌히 합의했다.
시 부문 김건희 씨, 수필 부문 김현지 씨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 문단의 신예로 힘껏 밀어드린다. 위에 언급한 응모자들도 곧 문단에서 얼굴 뵐 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위원: 문효치 · 이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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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현지님의 귀한 글을 읽고
가족사랑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