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필법(春秋 筆法)과 정론 직필( 正論 直筆)
춘추(春秋)는 공자(孔子)가 지은 사서(史書)로 유학(儒學) 오경(五經)의
하나다.
<춘추,春秋>는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22~BC 481) 242년 동안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는데 기원전 5세기 초 공자가 노(魯)나라
에 전해지던 사관(史官) 기록을 직접 편수(編修)한 것이며 동주(東周)
시대 전반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부르게 된 것도 <춘추,春秋>
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공자가
노나라에 전해지던 기록을 공자의 역사 의식, 가치관을 투영해서
새롭게 편수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현재 우리가 접하는 <春秋>다.
공자는
평소에 다른 사람과 의논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혼자 판단을 내리지
않았으나 <春秋>를 지을 때는 혼자 기록하고 혼자 삭제했기 때문에
자하(子夏)와 같은 수제자도 감히 한마디도 거들 수가 없었다 한다.
사마천 (司馬遷, BC 145 ?~ BC 86?)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公子世家)' 편에는
...공자는 역사의 기록에 근거해서 <春秋>를 지었다... 기록돼 있다.
공자가 <春秋> 뜻을 제자들에게 전수 한 뒤 공자는 이같이 말하였다.
"후세에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면 <春秋>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春秋>때문일 것이다" 말했다.
공자의 위의 말을 본인 나름대로 해석해 보면
공자는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엄정하게 객관적 사실 기록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어떠한 연고(지연,학연,혈연...)에도 치우침없이 혼자서
<春秋>를 엮었고 춘추에서 의인으로 서술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春秋>에 대한 평가는 상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른 말이라 본다.
공자는 <春秋>에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명분(大義名分)
을 밝혀서 천하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하였으며 명분에 따라 서릿발
같이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준엄하게 기록하는 것을 춘추필법(
春秋筆法)이라고 후세 사람들이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