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카미노 둘째날
어제 밤에는 침낭안에서 잤지만 고도가 높고 텐트 안이어서 추워서 덜덜덜 떨면서 잠을 잤다.
텐트가 좁아서 마음대로 움직이도 못하고 프랑스 아가씨에게 민폐를 안끼치려 하다 보니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벽녘에는 이슬이 많이 내려서 처음에는 밖에 비가 오는 줄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7시부터 식사가 된다고 하여 프랑스 아가씨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서 식당에 가보니 큰 사발에 커피와 우유를 함께 가득 따라 주면서 빵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역시 유럽의 아침은 간소하기만 하다.
사발로 따라 주는 커피와 버터를 바른 빵으로 배를 채우면서…굶어 죽지 않으려면 불평없이 많이 먹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서 의무적으로 먹었는데 . . . 첫날 순례자의 길 카미노에 대한 비장한 각오때문일까? 맛이 어떤지도 모르고 먹었다.
식사 후에 점심때 먹을 빵과 물을 사들고 텐트로 돌아와서 후래쉬를 켜놓고서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 . 이 아가씨가 인기척에 깨어나 일어나기에 돌아보았더니. . .헉! 옷을 벗고 자다가 그대로 침낭을 빠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기겁을 하고 텐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데 이 아가씨 왈 괜찮다고 하면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
하는 말이 . . .어제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내가 코를 안 골아서 잠을 푹 잤다나 어쨌다나~!!
새벽부터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니 오늘 저 유명한 피레네 산맥을 제대로 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충 짐을 싸서 밖으로 나오니 마침 어제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한 안양에서 온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산을 넘자고 한다.
얼마나 피레네 산맥이 악명이 높았으면 모두들 이렇게 겁을 먹는지 모르겠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는 경관은 안개에 가려서 신비를 더해주었는데 정말 멋있었다.
길 양편에 방목장이 있어서 소와 양과 말들을 방목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반기려는 듯, 이 녀석들이 길가로 나와서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나에게 카메라를 연신 꺼내들도록 만들고 있었다.
한참을 오르는데 경사가 급한 탓인지 새벽의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겠지만 발에 물집이 생길까 봐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그런데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 듯, 오른쪽 발바닥에 곧 물집이 생길 듯. . . 이상한 조짐이 나타났다.
급히 맨소래담을 꺼내서 양말을 벗고서 발라 주었다.
산 정상에 거의 다 온 지점에 바위산이 있었는데 그 위에 성모님 상이 있었다.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언제 쫓아왔는지 어제밤에 텐트에서 함께 묵은 아가씨가 따라 올라왔다.
그런데 이 아가씨 복장이 우째~ ~카미노를 걷는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래도 인연이다 싶어서 사진을 한 컷 찍었는데. . .이 여우 아가씨는 금새 또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진짜 여우 아가씨인가?
올라오다 보니 카미노를 걷다가 숨진듯한 이의 무덤이 하나 있었는데 모든 순례자들에게 안개와 함께 겁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성모님께 무사히 피레네를 넘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후 묵주기도를 시작하였다.
기도 덕분일까? 발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드디어 정상을 지나니 도중에 약수물이 나오는 식수대가 있어서 배낭을 내려놓고서 아침에 싸온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그런데 생장 피드포르에서 4km정도 위치에 있는 훈토 알베르게에서 묵고 열심히 달려온 한국인 젊은 남녀 서너명이 다가와서 구면인듯 안양 아가씨에게 인사를 한다..
이 중에서 한 아가씨 왈 "이 길에 왠 늙은이들이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는데 내가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나를 같은 또래로 착각을 했나?
면전에다 대놓고서 인신 공격을 해대다니. . .
순례길이 아니었다면 "아가씨! 이 길은 나같이 정신없이 인생을 살다가 뒤늦게나마 나를 되돌아 보고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그리고 내려놓기 위해서 걷는 순례자의 길인데 그렇게 막말을 하면 되겠냐?"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 . 이것도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소화해내고 다져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참았다.
카미노 길에 20대 젊은이는 우리나라 밖에 없었는데 젊은이들이 카미노를 걷는 또다른 의미와 목적이 있겠지만, 하지만 늙은이라는 저속한 표현에 왠지 서글픈 서러움을 느꼈다.
서러운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걷다 보니 스페인과의 국경선임을 표시하는 철조망이 있고 길에는 바닥에 철로 된 바가 몇 개 박혀있었는데 아무도 지키지 않는 국경을 걸어서 넘어간다는 생각에 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젊은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얼마를 더 가다보니 산속 작은 오두막에서 스페인 남자 20여명이 나와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정년퇴임을 하는 소방관 아저씨의 환송회라고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다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우리에게도 한잔씩 돌리는데 덕분에 받아 마신 알콜 기운으로 급경사 내리막길을 기분좋게 내려갈 수가 있었다.
내리막 길이 워낙 험하고 급해서 한참을 조심해서 내려가고 있는데 훈토에서 온 젊은이들이 안양 아가씨를 꿰차고 추월하여 갔다.
덕분에 숲이 꽉 우거진 산길을 내 페이스대로 걸어서 론세스바예스까지 갈 수가 있었다.
산속에 혼자 있으면 무서움을 유독 많이 타는데 묵주기도 하며 걸으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되어서 좋았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을 하였다.
마을은 집이 몇 채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수도원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
더구나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듯, 수도원과 알베르게는 아주 깨끗하고 좋았다.
어제 세탁을 못한 때문에 손빨래 걱정을 하였는데 지하 1층에 가보니 최신식 세탁기와 건조기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2.7유로를 주니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다.
저녁에는 안양 아가씨를 꿰차고 간 젊은이들과 모두 5명이서 근처 바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였다.
아직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인데 출발할 때 베네딕토가 준 발에 나쁜 독을 빼내준다는 한방 약초를 넣은 부착포를 붙이고 나서 맨소래담을 발랐다.
물집은 초반 일주일이 문제라고 하니 맛사지 등으로 최선을 다해 발을 관리해야 할 것 같다.
2011.9.22. C H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