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차 |
| |
|
| ||
I. 들어가면서 1. 주최 측의 요구 확인 2. 주제 파악 및 사실 확인 II. 학생들은 과연 변했는가 1. 실태 조사 2. 학교 이야기 듣기 III.학교 붕괴 원인에 관한 기존의 언급들 1. 선행연구자들의 원인분석 2. 원인에 관한 그 외의 견해들 IV. 내가 파악한 교실붕괴의 원인 1. 나의 원인 분석 방식 2. 교육계 일지 3. 교실붕괴의 원인 4. 더 논의할 점들
|
V. 대책 1. 선행연구자들의 대책 2. 나의 대책 3. 체벌에 관하여 VI. 나가면서
* 참고문헌
|
I. 들어가면서
1. 주최 측의 요구 확인
이번 논문 발표의 부탁을 받은 후 나는 맨 먼저 학술대회 주최 측의 일원에게 물어보았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실붕괴의 교육심리학적 접근’이란 제목에서 ‘교육심리학적 접근’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학교가 붕괴되고 있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변했기에 그런 것인지, 아이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요청을 받을 때는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주최 측은 ‘학교에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다면 그 동안 학생들이 어떻게든 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그들의 부탁에 따라 내가 알아보니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 다음에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교육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니 「아무 일도 없었음」’뿐이지 않겠는가? 아직 조사를 해 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그럴 경우 교육심리학적으로는 별로 할 말이 없더라도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두 번째 주의점은 이것이다. 주최 측의 요청은 ‘학생들이 어떻게 했기에 학교가 붕괴되었는가’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생들에게서 원인을 찾는 접근법인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런 논의는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그 책임까지 묻는 학생 귀책론으로 넘어가 있기 쉽다. 물론 학생들이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변하여 그 후부터는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그 원인은 학생들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다면 학교 붕괴(혹은 ‘교실 붕괴’. 앞으로는 혼용하여 사용함)의 책임도 역시 학생들에게 있었던 거구만’ 하는 식의 논리 전개는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의 장에서는 설령 문제의 원인이 학생들의 변화에 있다하더라도 그들에게 전적인 책임을 지우는 설명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원인론이 곧 귀책론이 되는 이런 식의 논리 비약 내지 오류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왜 그런가?
교육의 장에서는 언제나 최종 목적은 학습자의 배움(학습)이며, 교사의 가르침(교육)은 그의 수단이다. 학교에서 어떤 원인이나 이유로든 학생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혹은 더 나쁜 쪽으로 변했다면 교육자의 교육 행위는 실패한 것이며, 따라서 그 책임도 그가 져야 한다. 게다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에서는 대개가 교육자는 성인이며, 피교육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요즈음은 서비스 업계뿐만 아니라 의료계, 교육계 등 전문직종까지도 ‘수요자 중심’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수요자 중심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를 보면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학교가 병원이나 식당과는 많은 점에서 다른 조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조직의 근본적인 존립 목적, 즉 그 조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그 목표의 달성도를 평가는 기준마저 불분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병원의 존재 이유와 의사의 유능성의 평가 기준이 환자의 건강 회복에 있는 것이라면, 학교의 존재 이유와 교사의 유능성 평가 기준도 결국은 학생의 학습 정도에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하고 있지 못한 학교 상황에서 ‘요즈음 학생들은 공부할 자세가 안 돼 있어’라고 말함으로서 그 책임을 학생에게 돌리는 것은,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는커녕 빈번히 사망하게 만드는 병원이 ‘요즈음 환자들은 통 치료받는 자세가 안 돼 있어’라고 하면서 그 책임을 환자 탓으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조직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런 식의 귀책 논의가 교육의 장에서는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교실 붕괴만이 아니라 어떤 교육 문제의 경우에도 학생에게서 원인은 찾을 수 있어도 그들에게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교사든, 학교장이든, 교육부 장관이든, 피교육자가 아닌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의 책임인 것이다. 만약 요즈음 학생들이 과거의 학생과는 많이 달라져서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면 그 책임 역시 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들에게 효과적인 교수 방법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한 교육자들의 잘못이다. 상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환자는 항상 옳다.’ 이 말은 환자가 그런 병을 앓게 된 것도 그 사람의 상황과 수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을 이해해야만 환자의 상담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교육문제에서는 ‘학생 원인론’이 ‘학생 귀책론’으로까지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부터 ‘교육심리학적 접근’이란 것을 시작해보자.
2. 주제 파악 및 사실 확인
(1)주제 파악
교실(학교) 붕괴가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현상을 일컫는 용어인가? 이 이야기는 언제,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
교실은 정말 붕괴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붕괴 양상은 어떠한가? 어떤 식으로 붕괴되고 있는가?
전종호(1999)는 학교 붕괴를 ‘학급에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생활지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황과 이러한 결과에서 나타나는 학교 교육의 본질적 기능이 약화되는 현상’이라 정의하면서, 학교붕괴현상을 나타내는 하위 지표로서 수업의 붕괴, 생활지도의 붕괴,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의 붕괴, 교사-학부모의 파트너쉽 붕괴 등의 4가지를 설정하였다.
학교붕괴 또는 학급붕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것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즉 교사의 수업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이 잡담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안을 돌아다니거나, 교실 밖으로 나간다거나, 교사에게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하는 등 학생들의 난폭한 행동으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수업의 불성립, 교사의 지도력 결여’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수업을 하려면 적어도 학생이 교실에 있어야 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며, 잡담을 하지 않고 교사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전종호, 1999)
우리나라에 ‘학교 붕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98년 말과 1999년 초 신문 지상(예컨대 조선일보 1998년 12월 25일자와 1999년 1월 27일자)에 일본의 학교 현황이 소개되면서 일본에서 통용되는 ‘학교 붕괴’ 혹은 ‘교실 붕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을 때가 처음인 듯하다. 그러던 것이 차츰 우리나라의 학교 상황을 보도하면서도 그 용어를 똑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학교 붕괴 현상’은 ‘학교붕괴(혹은 교실붕괴)’라는 용어와 함께 (처음에는 ‘교실 파괴’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다. 1999년 8월23일 조선일보) 1999년 7월 30일 MBC 뉴스, 1999년 8월 23일부터 31일까지의 조선일보의 기획시리즈 ‘무너지는 교실’, 1999년 9월 23일자 커버 스토리로 꾸며진 시사저널의 ‘교실붕괴: 학생도 교사도 학교 가기 싫다’ 등의 매스컴 보도를 통하여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 직후부터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을 보도하는 기사나 조사연구 보고물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또한 그것을 주제로 한 각종 세미나도 연이어 열리게 되었다.
(2)사실 확인
교실은 정말 붕괴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붕괴 양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어떤 일의 사실 여부를 알고 싶다면 일단은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는 것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본 후, 그들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① 설문조사 결과
다음은 1999년 11월에 전국의 24개 중․고등학교 학생 2243명과 교사 2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윤철경(1999)의 분석 결과이다. 붕괴의 현장인 교실에 있었던 사람들 중 교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 붕괴의 사실 여부
- 우리 학교에도 학교붕괴현상이 매우 많다: 38.1%,
- 약간 있다: 48.6%,
둘을 합해서 86.7%
* 학교붕괴현상이 나타난 시기
- 최근 1-2 년 사이에 갑자기 진행되었다: 74.8%
- 1990년대 전반기부터이다: 21.6%
* 수업시간 중 설명을 듣고 주목하는 학생의 수
- 3분의 1 정도: 38%
- 3분의 2 정도: 30.7%
- 2분의 1 정도: 17.0%
* 1시간 수업 중 실제 수업 진행 시간
- ‘20 - 30분’: 39.9%
- ‘31 - 40분’: 33.5%
- ‘20분 미만’: 12.4%
* 수업 중 다음과 같은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자주 본다고 응답한 교사의 비율(%는 ‘매 우 자주 본다.’와 ‘자주 본다.’고 응답한 교사의 합)
- 잡담 등 소란을 일으키는 학생: 61.0%
- 잠자는 학생: 58.3%
- 편지쓰기, 만화책/잡지책 보기 등 딴짓하는 학생: 41.3%
- 수업 도중 화장실 등을 이유로 내보내 달라고 하는 학생: 32.1%
- 수업 도중 이유 없이 돌아다니는 학생: 17.4%
- 손오락기, 핸드폰 등을 사용하는 학생: 14.2%
- 수업 시간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몰래 빠져나가는 학생: 11.5%
* 생활지도 중 다음과 같은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자주 접한다고 응답한 교사의 비 율(%는 ‘매우 자주 접한다.’와 ‘자주 접한다.’고 응답한 교사의 합)
- 지적하면 그때만 시정하는 척 하는 학생: 71.1%
- 온갖 이유를 대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학생: 62.1%
- 불러도 오지 않고 도망가는 학생: 24.8%
-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는 학생: 20.2%
- 눈을 흘기며 면전에서 욕을 하는 학생: 10.1%
- 112 신고 등 법적으로 하겠다고 대드는 학생: 3.7%
-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가하려는 학생: 1.8%
* 앞으로의 전망
- 현재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90.4%,
-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7.3%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 붕괴의 사실 여부
- 우리 학교에도 학교붕괴현상이 매우 많다: 20%,
- 약간 있다: 50.8%,
둘을 합해서 70.8%
* 자신이 수업 중 다음의 문제 행동을 자주 한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는 ‘매우 자 주 한다’와 ‘자주 한다’고 응답한 학생의 합)
- 잡담, 큰 목소리로 떠들기: 32.3%
- 잠자기: 29.7%
- 편지 쓰기, 만화책/잡지책 보기 등 딴짓 하기: 21.2%
- 수업 도중 옮겨 다니기: 8.9%
- 수업 도중 화장실 등을 핑계 대고 밖에 나가기: 3.6%
- 수업 시간에 아예 안 들어가거나 몰래 빠져나가기: 3.2%
*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은가?
- 매우 그렇다 12.2%
- 그렇다 59.4%
- 둘을 합하여 71.6%
* 수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이 수업을 포기하는 때가 많은가?
- 매우 그렇다 6.0%
- 그렇다 44.8%
- 둘을 합하여 50.9%
* 수업 시간에 잘 듣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54.4%
- 수업 내용이 어려워서: 16.3%
- 수업 분위기가 소란하고 선생님이 무섭지 않아서: 10.6%
( - 이미 배워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1.8%)
* 앞으로의 전망
- 현재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72.3%,
-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24.2%
② 당사자들의 이야기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교실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함으로써 교실 붕괴는 명백한 사실이며 현재 진행 중임을 증언하고 있다(다음 3 사례는 시사저널,1999.9.23. 기사 중에서 인용).
“집중하는 아이 3명. 내처 자는 아이 5명. 잡담하고 노는 아이 10명. 딴 생각하는 아이 30명. 그뿐인가. 수업도중 예닐곱은 ‘화장실에 간다’며 흐름을 끊기 일쑤이다. 개중에는 흡연 욕구를 이기지 못해 수업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 한 대 꼬슬리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도 있다.”(서울 ㄷ고등학교 교사 ㄱ씨의 말)
“오전 4교시 수업시간. ‘수업 시작하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여학생 하나가 손으로 입도 가리지 않은 채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한 지 5분만에 또 다른 여학생이 칫솔을 들고 발딱 일어나 ‘양치질 좀 하고 올게요.’하는 데는, 정말이지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남녀공학인 서울 ㅂ고등학교 교사 ㄱ씨의 말)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인 ㅇ씨는 하루 종일 떠들고 장난친 아이에게 방과 후 교실에 남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아이가 대꾸한 말. ‘그랬다가는 선생님을 경찰에 고발해 버릴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던 ㅇ씨는 ‘선생님이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죄 없는 사람을 남으라고 했으니까 신고할 거예요.’”
이번에는 나의 직접 경험담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니지만 나도 선생님은 선생님인 것이다.
근래 들어 내가 대학 강의실에서 체험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 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 몇몇 학과 학생 100여명을 모아 놓고 하는 교직 과목 시간의 일이다.
- 나는 수업 시작 종이 울린 후 교실에 강의하러 들어가면 교단에 올라가 교탁 앞에 선 후 일단 학생들을 두루 둘러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킨다. 이런 나의 행동은 수업을 시작해도 될 만큼 학생들이 대부분 들어왔는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학생들에게 ‘이제 내가 들어왔으니 친구와의 대화는 멈추고 수업 준비를 하라’는 무언의 요청이기도 하다. 내가 침묵 속에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곧 하나 둘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나에게 모으게 된다. 그때서 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학생들의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를 들은 후 수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내가 침묵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내가 교단 위에 서도 학생들은 선생님을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전에는 몇 초 내에 조용해지던 것이 이제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몇 분이고 계속 떠들어댄다. 올해 들어 그런 현상은 더욱 확연해졌다. 한번은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더니 3분 이상 조금의 변화도 없이 계속 떠들어대서 ‘이제는 좀 조용히 하고 수업을 시작하자’ 하면서 내가 얼굴을 붉히며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말해도 학생들은 곧 조용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친구와 뒤돌아보며 떠들어대느라고 내 말을 못 들은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좀 조용히 하자’라는 말을 몇 번쯤 해야 겨우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자기 대답만 한 후에는 다른 학생들은 너무 시끄러워 출석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건 없건 다시 떠들어대는 것이다. 출석 부르는 중에도 ‘좀 조용히 해라. 다른 학생들이 대답을 할 수가 없잖아’라고 몇 번씩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갈수록 화가 난다. 속으로는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이 아이들이 대학생 맞아? 대학생들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하는 생각을 한다.
수업 중에 1-2 번쯤은 휴대폰 벨소리가 난다. 아직까지는 수업 중에 통화를 하는 학생은 없었다. 대부분은 미안해하며 바로 벨소리가 안 나도록 조처한다. 그러나 밖에 나가 전화를 받고 들어오는 학생은 종종 있다. 해가 갈수록 수업 시간에 들락날락 하는 학생들도 점차 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가끔 가다 한두 명이 그런 행동을 하면 ‘용변이 급해서 그렇겠지’하고 이해하였으나, 최근에는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다. 어떤 학생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지만, 몇 명은 나가서는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나중에는 어이가 없다가 이제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대학 교실에서 내가 체험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대학의 강의실도 ‘붕괴’까지는 아직 안 갔는지 몰라도 매년 그런 쪽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학교 붕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즘의 학교요?) 글쎄여. 무너졌을껄? 왜 무너지냐면 제가 무너뜨리거덩여. 저두 공부좀 한다고 하는 편이지만 요즘엔 학교에 나가기가 싫으네여. 맨날맨날 담임 찡그린 얼굴. 공부 시작하면 엎어지는 아새끼들. 저두 별로 틀리진 않지만... 우리학교는 남자학교임다. 남자학교니까 삭막하겟져? 글구 와일드 하겟져? 남자애들끼리 하는 음담패설들루 맨날 입은 드러워 지져. 공부 시작하면 엎어져서 자져. 저는 양심이 좀 있어서 엎어져서는 안 자구 꾸벅꾸벅 조는 정도. 특히 제 옆에 있는 어떤 넘은 안자는 시간이 없져. 그래서 선생님들두 걔 이름 하나는 확실히 외우고 있져. 과학시간에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유일한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반장부터 시작해서 내성적인 아새끼들까지 떠들어대져. 선생님이 열 받아서 자습 시키져. 수업시간에 애들끼리 문자 보내구 통화하구 깔들이랑 전화하구, 등등등... 아직두 무너지지 않았다구여? 그렇게 생각하는 넘들 몇이나 있는지 전국적으루 설문조사를 해봐야 할껍니다.”(어떤 학생의 글. 인터넷 사이트 ‘학교는 죽었다’(myhome.hananet.net/ ~phoenix77) 중에서. 1999.11.6.)
교사나 학생이나 이구동성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니 교실이 붕괴되고 있긴 한 모양이며, 교사들의 대다수(74.8%)가 그렇다고 하니 교실붕괴는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일인 것 같다. (1999년 연구에서 ‘최근 1-2년 사이’라고 했으니 1년이 더 지난 올해에는 ‘최근 2-3년’이 되겠다. 이하 본 논문에서는 ‘최근 2-3년’으로 씀.)
학교 붕괴의 대체적인 양상은 많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는 등,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불량하여 수업이 제대로 이루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교사에게 ‘눈을 흘기거나 면전에서 욕을 하는 학생’(‘매우 자주 본다’와 ‘자주 본다’고 응답한 교사의 비율 10.1%), ‘112 신고 등 법적으로 하겠다고 대드는 학생’(3.7%),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가하려는 학생’(1.8%)은 소수인 것으로 나타나, 아직까지는 교권을 침해할 정도의 극단적인 행동이 일반화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여 본 연구자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학교 붕괴’라는 것은 ‘1998년 즈음부터 갑자기 수업 시간 중 많은 학생들이 잡담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수업과 관계없는 책을 봄으로써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II. 학생들은 과연 변했는가
과연 요즘 학생들은 과거의 학생들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겠다. 첫째는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의 비교를 통하여 그들의 일상 생활과 생각의 변화 여부를 알아볼 것이며, 두 번째는 소수 학생들의 글이나 말의 비교를 통하여 그들의 학교생활이나 내면 세계의 변화 양상을 좀 더 깊이 있게 탐색한다.
1. 실태 조사
다수의 학생들에게 일시에 설문을 실시하여 그들의 의견을 묻는 실태조사는 오래 전부터 많이 이루어졌으나, 다년간에 걸쳐 같은 설문지를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변화 추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마침 이런 목적에 유용한 자료로서, 1991년의 ‘MBC 청소년 백서’에 이어 2000년에 또 다시 전국의 중․고등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조사기간: 1999.10.25. - 11.4.) ‘MBC 청소년 백서’가 발간되었으니, 그 내용을 비교함으로써 약 10년을 사이 둔 ‘과거 청소년’과 ‘요즘 청소년’의 차이를 알아보고자 한다.
(1) 학교 생활
<표 1> OO님은 학교에 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혹은 싫습니까?
백분율(%)
|
① 매우 좋다
|
② 대체로 좋은 편이다 |
①+② |
③ 대체로 싫은 편이다 |
④ 매우 싫다
|
③+④ |
1991 년 1999 년 |
14.2 12.1 |
62.9 63.8 |
77.1 75.9 |
20.2 19.3 |
2.7 4.7 |
23.9 24.1 |
<표 2>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개 중복응답)
백분율(%)
|
① 친구와의 사귐
|
② 인격형성에 도움
|
③ 클럽/써클활동
|
④ 자신의 능력을 발휘 |
⑤ 선생님이 좋아서
|
⑥ 학교공부가 재미있어서
|
1991 년 1999 년 |
85.8 92.9 |
36.6 33.7 |
17.9 27.0 |
18.6 18.1 |
15.9 11.9 |
14.6 10.0 |
(df = 5)
<표 3> 학교에 가는 것이 싫은 이유는 무엇입니까?(2개 중복응답)
백분율(%)
|
① 지나치게 공부강조
|
② 좋은 선생님이 없음 |
③ 수업내용이어려움
|
④ 클럽/써클 활동부족
|
⑤ 친구관계
|
⑥ 학생들의 괴롭힘
|
1991 년 1999 년 |
60.6 67.2 |
27.7 50.6 |
29.6 34.7 |
20.7 15.0 |
10.7 9.7 |
14.4 3.9 |
(df = 5), * P< .05
<표 4> ○○님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입니까?
백분율(%)
|
① 유머있는 선생님
|
② 수업을 쉽게 가르치는 선생님 |
③ 공평한 선생님
|
④ 엄하지만 따뜻한 선생님 |
⑤ 함께 고민하는 선생님 |
⑥ 솔직한 선생님
|
1991 년 1999 년 |
14.9 33.2 |
19.3 19.3 |
24.0 17.2 |
19.9 15.1 |
13.9 8.9 |
7.8 5.8 |
(df = 5)
* note: 자유도(df) 5인 경우는 χ²값이 11.07 이상이 되어야 p< .05 수준에서 유의하다.
<표 5> ○○님은 학생이 잘못을 했을 경우, 선생님이 매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어떠한 경우라도 매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분율(%)
|
① 어떠한 경우라도 매를 때려서는 안된다 |
② 매를 때려도 된다
|
③ 모름 /무응답
|
1991 년 1999 년 |
21.8 18.9 |
78.0 81.0 |
0.2 0.1 |
<표 1>부터 <표 5>까지 1991년 학생들과 1999년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비교해 보았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거의 같은 응답 양상을 보였다. 특히 ‘학교에 가는 것이 좋으냐, 싫으냐’를 물은 <표 1>에서는 모든 항목의 응답 비율까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1991년 학생들이나 1999년 학생들 모두 ‘학교 가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75%를 넘어 의아했는데, <표 2>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니 역시 ‘공부가 재미있어서’(91년:14.6%, 99년:10.0%)가 아니고 ‘친구와 사귈 수 있어서’(91년:85.8%, 99년:92.9%) 때문이었다.
양 집단 간에 차이가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표 3>의 ‘학교 가기 싫은 이유’에서 99년 학생들은 91년 학생들에 비해 ‘좋은 선생님이 없어서(91년:27.7%, 99년:50.6%)’라는 응답을 2배 가까이 많이 했다는 점과 <표 4>의 ‘좋아하는 선생님 상’에서 91년 학생들은 ‘공평한 선생님’(91년:24.0%, 99년:17.2%)을 가장 선호했는데 비해 99년 학생들은 ‘유머 있는 선생님’(91년:14.9%, 99년:33.2%)을 가장 선호하였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도 통계적으로 의미 있을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표 5>의 ‘체벌에 대한 태도’에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99년 학생들이 오히려 91년 학생들에 비해 매에 더 많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학업과 입시
<표 6> ○○님은 올해 들어 학교공부나 학업성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신체적 병리현상. 중복응답)
백분율(%)
|
① 복통 |
② 두통 |
③ 비염 |
④ 불면증 |
⑤ 악몽 |
1991 년 1999 년 |
14.0 14.8 |
32.3 34.0 |
8.0 8.8 |
6.7 8.3 |
4.0 4.3 |
<표 7> ○○님은 올해 들어 학교공부나 학업성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심리적 병리현상. 중복응답)
백분율(%)
|
① 큰소리를 지르고 싶다 |
②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
③ 불안/초초
|
④ 파괴 욕구
|
⑤ 슬프다
|
⑥ 부모님께 반항
|
⑦ 자살충동
|
⑧ 가출
|
1991 년 1999 년 |
38.5 37.3 |
36.4 36.2 |
33.5 34.0 |
30.7 29.4 |
24.5 23.4 |
16.8 16.5 |
11.3 7.2 |
8.8 6.3 |
(df = 7)
<표 8> ○○님은 공부나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로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2개 중복 응답)
백분율(%)
|
① 오락을 한다 |
② 노래를 부른다 |
③ 친구와 놀거나 이야기 한다 |
④ 음악을 듣거나 연주한다 |
⑤ 잠잔다
|
⑥ 운동한다
|
⑦ 먹는다
|
1991 년 1999 년 |
19.6 36.7 |
0 27.8 |
23.5 26.0 |
32.7 20.1 |
22.0 19.1 |
6.5 10.6 |
4.4 7.4 |
(df = 6), *** p< .001
* note: 1991년 설문지에 ‘노래를 부른다.’는 선택지가 없었는지, 혹은 있었는데 응답률이 0%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만약 없었다면 통계분석 자체를 할 수 없다. 위의 분석은 그런 선택지가 있었는데 응답률이 0%라고 가정한 경우이다.
<표 6>과 <표 7>은 공부로 인한 신체적 병리현상과 심리적 병리현상을 비교한 것이고, <표 8>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알아본 것이다. 신체적, 심리적 병리현상을 보면 91년 학생과 99년 학생이 응답 비율의 수치까지 똑같이 나타나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에서는 양 집단이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91년에는 없거나 적었던 ‘노래방’, ‘PC방’, ‘게임방’ 등이 그 이후 생겼기 때문이다.
(3)여가 생활
<표 9> ○○님의 자유시간은 하루 평균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분율(%)
|
① 30분이내
|
② 1시간 정도
|
③ 1시간 30분 정도 |
④ 2시간 정도
|
⑤ 2시간 30분 정도 |
⑥ 3시간 정도
|
1991 년 1999 년 |
4.0 5.2 |
11.3 11.8 |
7.1 7.8 |
24.8 22.1 |
9.9 7.8 |
42.8 45.3 |
(df = 5)
<표 10> ○○님은 다음 각각을 먹거나 냄새를 맡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백분율(%)
|
① 담배 |
② 술 |
③ 각성제 |
④ 본드 |
⑤ 부탄가스 |
⑥ 환각제 |
1991 년 1999 년 |
26.8 44.4 |
34.8 60.9 |
4.8 2.6 |
1.8 3.7 |
1.1 2.2 |
0.8 |
<표 9>의 ‘일일 평균 자유시간’은 양 집단이 거의 같으며, <표 10>의 유해물질 경험에서는 99년 학생들이 91년 학생에 비해 ‘담배’와 ‘술’을 월등히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각제’는 91년 설문지에서는 항목에 없었음)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은 1999년 1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가 매우 잘 해주고 있다.
“음주와 흡연으로 적발된 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약화돼 서울시의 경우 1997년 69명이나 되던 퇴학자는 1998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특별교육과 사회봉사, 학교봉사 등의 경징계가 주를 이뤘다. 특히 비행 적발자에 대한 가장 약한 처벌인 학교봉사는 1997년 2,592명에서 1998년 9,591명으로 3.7배나 늘어 음주․흡연에 대한 일선 중․고교의 처벌이 크게 관대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교육청의 양진홍 생활지도담당 장학관은 ‘이런 현상은 1998년부터 교사들의 체벌과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심각한 학원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부분 적발 시 때려주기보다는 가벼운 처벌로 대신하는 일이 늘어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하면 1998년부터 체벌을 금지하고 퇴학을 시키지 않으니 학생들이 무서울 것이 없어 술, 담배를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 붕괴와 관련시켜보면 요즘 학생들의 이런 변화는 학교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학교붕괴의 과정 혹은 결과인 셈이다.
(4)인생관
<표 11> ○○님은 요즘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혹은 불행하다고 느끼십니까?
백분율(%)
|
① 매우 행복 |
② 약간 행복 |
①+② |
③ 약간 불행 |
④ 매우 불행 |
③+④ |
1991 년 1999 년 |
21.0 22.2 |
53.5 54.1 |
74.5 76.3 |
22.5 20.3 |
3.0 3.4 |
25.5 23.7 |
(df = 3)
<표 12> ○○님은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2개 중복응답)
백분율(%)
|
① 공부 |
② 진학 |
③ 돈 문제 |
④ 이성문제 |
⑤ 친구문제 |
⑥ 외모 |
⑦ 성격 |
⑧ 취직 |
⑨ 가족문제 |
⑩ 건강 |
⑪ 성 문제 |
1991 년 1999 년 |
55.2 58.2 |
41.1 49.1 |
7.6 15.9 |
11.0 14.2 |
16.5 12.4 |
11.5 10.8 |
12.2 6.5 |
10.4 6.1 |
7.0 6.0 |
9.5 5.9 |
5.3 1.7 |
<표 13> ○○님은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누구와 의논을 하십니까? (2개 중복응답)
백분율(%)
|
① 친구 |
② 어머니 |
③ 형제/자매 |
④ 아버지 |
⑤ 선배 |
⑥ 선생님 |
⑦ 친척 |
⑧ 전문상담원 |
⑨ 상의하지않음 |
1991 년 1999 년 |
74.8 83.4 |
34.2 47.5 |
24.0 19.7 |
10.7 8.9 |
10.1 7.7 |
10.3 4.3 |
2.4 2.2 |
0.5 0.8 |
9.2 6.5 |
(df = 8)
<표 14> ○○님은 자신의 장래목표는 무엇입니까?
백분율(%)
|
① 자신의 취미에 맞는 생활 |
②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 |
③ 행복한 가정생활
|
④ 한가롭고 마음편한 생활 |
⑤ 사회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생활 |
⑥ 높은 사회적 위치
|
1991 년 1999 년 |
27.6 36.0 |
8.4 20.7 |
36.9 15.7 |
16.2 14.3 |
8.8 6.7 |
1.8 6.6 |
(df = 5), ** P< .01
<표 15> ○○님은 사람들이 본래 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분율(%)
|
① 선하다 |
② 악하다 |
③ 모름 /무응답 |
1991 년 1999 년 |
86.8 86.9 |
12.8 12.9 |
0.4 0.2 |
χ²= .1 (df = 2)
<표 11>부터 <표 15>까지 행복감, 고민거리, 인생목표, 인간관 등에 관한 살펴보았다.
인생 목표에서의 작은 차이 이외에는 ‘이럴 수 있나’ 할 정도로 91년 학생과 99년 학생의 응답 결과는 같다. 75%정도가 행복하다고 응답한 것도, 고민은 오직 ‘공부와 진학’인 것도, 고민이 생기면 친구나 어머니와 의논하는 것도, 87% 정도가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치 서로 보고 베낀 듯이 똑 같다. 차이점은 인생 목표에서 91년 학생들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가장 많이 원했는데, 99년 학생은 ‘취미에 맞는 생활’을 가장 많이 원했다는 정도이다.
지금까지 요즘의 교실 붕괴 현상이 학생들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닌가 알아보기 위하여 1991년 학생들과 1999년 학생들을 ‘MBC 청소년백서’의 실태조사 결과를 통하여 비교하여 보았다. 양 집단의 차이점을 굳이 찾자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노래방, 컴퓨터의 보급) 취미생활이 조금 달라졌다는 점과 요즘 학생들이 재미있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다(유머있는 선생님, 취미에 맞는 생활), 그리고 장래 목표로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지향하는 학생은 줄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생활’이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원하는 학생이 증가했다는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청소년들의 내면 세계와 일상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아니 놀랄 만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신인류나 신인종은커녕 부모, 선배 세대와 똑 같이 공부에 시달려 갖가지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는 우리들의 가련한 복사판일 뿐이었다.
2. 학교 이야기 듣기
이번에는 요즘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이전의 학생들과 과연 다른지 알아보기 위하여 요즘 학생과 과거 학생들의 학교 이야기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요즘 학생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들어보자.
“내신으로 인해 우리의 학교는 살벌해지고 있다. 추억의 고교시절... 그것은 이제 옛말에 불과하다. 추억이라? 성적 올리겠다고 피 터지게 공부한 것, 친구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추억으로 남을 것인가? (중략) 초등학교 교과서인 바른생활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자’라는 문구가 있다. 지금 현재 고교들은 초등학교보다 모자라지 않는가?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라. 그것이 너의 살길이다. 일류대학 못 가면 무조건 성공 못하는 것인가? 이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후략)” (어떤 여고생의 글. 인터넷 사이트 ‘10대들의 학교이야기’(www.skyangel.co.kr) 중에서. 2000. 2.17.)
“저는 고등학교를 때려 치웠습니다.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항상 전교 3, 4등을 했지만, 정말 학교가 거지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진정한 학습은 없습니다. 차라리 천리안이 훨씬 낫습니다. 천리안보다 못한 학교! 지금과 같은 학교는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무조건 외우는 공부! 무조건 반복하는 공부! 학교가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학교는 인간을 미치게 만듭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 어쩌고저쩌고 말은 잘하면서 왜 아이들을 정신병자로 만듭니까?”(전종호,1999 재인용)
요즘 학생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우리나라 국민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도 학교 생활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부터 10년 단위로 과거의 학교 생활을 더듬어 본다.
학교 붕괴라는 말조차 없었던 1990년, 한국교육개발원은 ‘교육현장에 관한 사례연구집’을 낸 바 있는데, 그 책에서 한 중학생은 자신의 하루 일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0 분 만에 세수하고 아침밥 먹고 달려서 학교에 도착하고 용의 복장지도에 걸릴까봐 가슴을 두근거리며, 교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하루의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정규수업 전의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는 집에서 다하지 못한 숙제를 베끼는 것으로 보내고 7시간 동안 지루한 수업을 받고 방과 후에는 학원에서 가서 공부를 하다가 깜깜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나면 11시가 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그나마 공부라도 잘하는 아이들은 성적에 대한 불안감 정도로 시달리지만 학습결손이 누적되어 기초실력이 거의 없는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에게 하루하루의 학교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교사의 말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하며 이해할 수도 없는 글들을 공책에 옮겨 적어야 하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지 못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전종호,1999 재인용)
10년 전 학생의 학교 생활을 보면 요즘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때 학생들은 ‘친구들과 장난도 치지 못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는 것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왜 과거 학생들은 장난도 못 치고 참으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비해 요즘 학생들은 잠자고 만화책 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교실을 붕괴시키는 것일까?
이제 20년 전으로 가보자.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30대 중반의 한 남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조금 전 어느 한 학생이 쓴 자퇴 일기를 보았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30대 중반의 나이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것이 어언 20년 전이 되었는데. 그 학생의 자퇴 일기는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20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 그 당시 우리가 느끼고 괴로워했던 그 사실을 요즘의 학생들도 그대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수십 평 남짓한 교실에 들어있는 60여명의 학생들. 체격에 맞지 않는 책걸상과 꽉 짜여진 일과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고 똑같은 시험지를 통해 똑같은 평가기준을 거쳐 성적을 내는 교육. 단지 남들과 조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체육실, 교무실, 진학상담실을 전전하면서 호된 욕설과 폭행을 당했던 친구.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쳐야 했다. 잘 길들여진 경주마처럼 무조건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불쌍한 상위권 학생들. 친구란 단지 사치품이고 좋은 성적의 방해 요소일 뿐, 모든 사람이 경쟁자이고 적이었다. 각종 촌지가 오고가고, 대학을 많이 보낸 선생이 최고로 여겨지며, 하위권은 인간 이하로 취급되고... 어차피 입시에 들어가면 1/3만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2/3는 무엇을 하란 말인가?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단지 남은 건 독설과 나쁜 짓. 이것은 20년 전에 내가 겪었던 중․고등학교 생활이다. 요즘 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귀에 거슬린다. 교육의 붕괴는 20-30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그때부터 사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동창 중에 교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가 말하기를 껍데기만 빼면 옛날과 똑같아서 너무 편하다고. 방식도, 교장과 학부모들의 요구사항도, 심지어 학생들을 상담해보면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무척 동질성이 들더라고 했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때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자퇴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자퇴하던 학생들도 있었다. 요즘의 사례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요즘의 문제로만 치부되나? 난 지금 3살 된 딸아이가 있다. 아마 그 아이가 크면 나와 똑같은 학창생활을 맞을 것이다.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좋은 성적과 학업 열중을 요구할 것이다. 왜 이런 미래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 나의 과거가 그들의 미래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겐 과연 절망만 존재하는 것일까?” (30대 중반 남자의 글. 인터넷 사이트 ‘학교는 죽었다’(myhome.hananet.net/~phoenix77) 중에서. 1999.11.5.)
이제 30년쯤 전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 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도 학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즈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엎드려 자거나 만화책만 보고 있어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고 하지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봐도 그때 역시 아이들은 수업 중에 졸거나 잤으며 무협지를 몰래 봤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내놓고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매 시간 몇 명의 아이들은 불려나가 매를 맞거나 선생님이 던진 분필을 맞고 잠을 깼다. 수업 진도를 제대로 쫓아갈 수 있었던 아이들은 내 생각에는 소수에 불과했다. 매를 맞거나 분필을 맞고 잠을 깬 후 아이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알겠나?’ 하는 선생님의 질문에는 일제히 ‘네’ 하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래야 매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도 수업을 끝내시기 때문이다.
과거 학생과 요즘 학생 간에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 학생인 우리들은 그런 행동을 선생님 눈에 안 띄도록 요령껏 해야만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당당히(?) 한다는 점뿐이지 않을까 한다. 차이점이라면 그 정도이다. 내가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1970년대나 1980년대나 요즘이나 놀랄 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요즘 학생들의 학교 생활과 기본 의식이 과연 그 이전의 학생들과 달라졌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보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결론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이나 과거 학생이나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응답자의 비율까지도 거의 차이가 없으며, 학교 생활의 모습도 대체로 같다. 그렇다면 요즘의 학교 붕괴가 학생들이 달라져서 발생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이 교실에서 과거 학생들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행동의 종류는 같은데 그 방식과 정도가 달라졌다. 앞의 ‘사실 확인’ 작업에서 밝혀졌듯이 최근 2-3년 사이에 학생들은 확실히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만화책을 보며, 그런 행동을 조심스럽게도 아니고 아예 내 놓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면 세계와 학교 생활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행동은 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요즘 학생들은 과거 학생들과 생각과 느낌도 거의 같고, 수업 시간이 지루한 것도 매한가지인데 왜 행동은 다르게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과거 학생과 속은 같은데 겉은 달라진 것일까? 대부분의 과거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 힘들고 지겹더라도 꾹 참고 앉아있었는데, 왜 요즘 학생들은 참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바로 ‘학교 붕괴’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 길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교육심리학적 분석은 별무 소득으로 끝났으니, 이제부터 학교 붕괴의 참 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새로 시작해보자.
III. 원인에 관한 기존의 언급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학생들의 심리 상태 및 내면 세계, 그리고 그들의 학교 생활은 과거에 비해서 별로 달라진 바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원인에 의해 붕괴된 것일까? 이 주제에 관해 먼저 연구했던 선행연구자들의 원인 분석과 그 외 나름대로 그 원인에 대해 언급한 다양한 집단이나 개인의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선행연구자들의 원인분석
이제부터 학교 붕괴를 먼저 연구했던 선행연구자들의 원인 분석을 살펴본다.
(1) 전종호(1999)
① 현재의 산업사회적 학교모델이 ‘정보화’로 대변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제대로 유효하지 못하기 때문
-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학교가 지금까지 누렸던 유일한 학습원(學習源)으로서의 지위가 축소
- 지위경쟁의 통로로 이용되었던 현재의 학교구조와 졸업장의 기능 약화
- 지식 불변성의 신화가 깨어짐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해방 이후의 교육과정 틀을 그대로 유지, 국가수준에서 교육과정의 수준, 내용, 그 조직방법, 평가방법 등을 결정함으로써 학생들을 교육현장에서 유리시키는 결과를 촉진시켰다.
②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산업사회에서의 경험이 소비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세계와 의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 기성세대: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절제하고 살아왔다
- 오늘의 청소년: 내일이 오더라도 기꺼이 오늘을 즐기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내일을 위해 학교에서의 금욕생활을 견디어 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늘의 학교붕괴현상도 기성세대와 신세대 문화의 어법(code)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다.
③ 관료적 권위주의
- 오늘날 학교붕괴현상을 방치하게 된 교사들을 무능과 피동성, 무기력과 극도의 소진(burn out)으로 몰아세운 원인(遠因)은 한국교육을 지배한 관료적 권위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사는 국가에서 정해 준 교육과정(teacher-proof curriculum)을 학생에게 잘 전달해 주는 대롱(導管)의 역할만을 강요받았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의 개혁정책을 사실상 강제하는 세력도 교육 관료이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 의해 구축된 행정우위, 상명하달식 관료주의 문화가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을 바라보지 않고, 위로, 상급관청으로, 상급 지위만 쳐다보는 해바라기로 만듦으로써 학생들의 필요와 욕구에 부합한 교육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윤정일(1999)
① 교원 정년단축
- 고령교사 무능론, 교원 경시풍조, 대량 명퇴 파동, 이에 따른 수업의 질적 저하
② 대학입시정책의 일관성 결여
- 시험 횟수 규제, 수행평가제 도입, 대학입학전형제도의 잦은 변경, 학교 간 학력차이 문제에 따른 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자퇴현상
③ 교육재정의 대폭적인 감축
- GNP의 5% 수준에서 4.3%로 삭감, 이로 인한 학교운영비와 인건비의 부족 현상, 교원당 학생수 증가, 이로 인한 교육의 질적 수준의 저하.
④ 학교공동체(교원․학생․학부모의 연대)의 약화
- 수요자 중심 교육개혁: 수요자 중심 교육개혁의 발상인 학생의 담임선택제, 학부모의 교원평가제, 임금피크제, 학생체벌금지 등으로 인하여 교원들은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교육에 대한 사명감과 열의가 크게 감퇴되었다.
- 교원노조의 합법화: 교직을 노동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사는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자긍심과 책무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교원에 대한 시각이 변하게 되었고, 더구나 한 학교의 교원들이 두 세 개의 교직단체로 분할됨으로써 교원들 간에도 갈등이 생겨나고 교직사회가 안정성을 잃게 되었다.
(3) 심성보(1999)
① 구조적 요인
- 소품종 대량체제에 맞는 근대적 학교체제가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맞이하여 근대교육의 부정적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것
- 인터넷, 게임, 영상, 음반 등 새로운 매체의 발달은 문자 언어로 된 왜소화한 교과서의 교육적 힘을 극도로 약화
- 지식정보사회를 맞이하여 영상매체가 보여주는 교육적 힘은 논리적 문자로 구성된 교과서의 권능을 심각하게 위협
② 문화적 요인
- 대중매체가 청소년교육의 주체로 부상되고 학교교육은 청소년교육의 객체화로 전락
- 획일적이고 모방 일색의 대중문화와 상업주의적 소비문화에 탐닉하고 게다가 하위문화, 주변문화에 머물렀던 아이들의 문화가 엄연한 주류문화로 자리잡아가면서 어른에 의해 청소년이 영향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청소년에 의해 어른이 영향을 받고 있는 역전된 문화상화의 도래도 성인과 교사의 삶을 상당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교사의 문화적 지도력을 어렵게 한다.
③ 가치관의 혼란
- 인터넷과 게임, 영상음반, 가상공간을 타고 즐기는 요즘 아이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산 어른의 소통 방식은 청소년과 코드가 달라 소통을 매우 어렵게 한다. 소통문화의 차이는 메시지의 차이를 낳고 예의범절의 차이까지 낳아 가치갈등을 증대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에 대한 모욕적 행위, 고함, 인신공격, 극단적인 반항 등은 사제간의 인간관계 유지를 어렵게 한다.
④ 규범적 요인
- 학생들의 반권위주의적 무례한 태도, 교사의 지도력 상실
⑤ 도덕적 책임감의 상실
- 어린 시기에 부정의 비판의식이 과도하게 발달되어 기성의 문화전통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경향
⑥ 발달단계의 균열
- 조기 사춘기화와 조기 성인화 현상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은 길어지는 동시에 청소년기는 연장되면서 성의 발달은 계속되고 그에 따른 욕구 불만 및 지연은 청소년의 정상적 발달을 어렵게 하고 정서적 불안과 좌절을 겪게 한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은 생활을 하고, 어른과 젊은이의 생활이 혼재하고, 어른들에만 있는 성인병이 아동에게도 나타나는 저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인간의 발달단계의 균열’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⑦ 학교 공동체성의 상실
- 과열입시문화로 인하여 우정을 싹트게 하는 ‘정서적 요소’를 삭막하게 하고 있다.
⑧ 성인문화의 타락
- 성인문화가 타락, 교사의 도덕적 기강 해이
문제 어른이 문제 자식을 만들고, 문제교사가 문제 학생을 만들고 있다.
(4) 윤철경(1999)
①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충돌
- 문명사적 전환과 교육의 위상변화: 세계화와 학교 위상의 변화, 정보화와 학교위상의 변화, 대중소비사회와 학교의 위상변화
-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학교에서의 문화충돌
② 사회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교육체제
- 교육과정과 교과서 체제의 유연성 결여
*교육과정의 문제: 교육과정 체제의 탄력성 부족의 문제, 교육과정의 획일적 적용문제
*교과서 문제: 낡은 지식, 교과서 속의 낡은 진술 방식, 교과서 품질 저하
- 학교 제도의 경직성과 획일화
- 강의 위주의 일방향 수업체제
- 통제 위주의 학교 규범 문화
③ 학교 현장과 유리된 교육개혁
④ 기타: 가정 교육의 부재, 언론의 상업주의, 소비성향 부추기는 기업
선행 연구자들의 원인 분석을 보니 마치 우리나라 교육의 종합검진 결과 같다. 교실 붕괴의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그 일이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생겼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행연구자들은 그들이 원인이라고 밝힌 위와 같은 많은 일들이 최근 2-3년 사이, 혹은 바로 그 직전에 우리 교육계에 한꺼번에 발생했다는 것인가? 어쩌면 그들은 ‘그런 것은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런 일들이 누적되어 온 결과 최근 들어 일이 크게 터진 것’이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물론 선행연구자들이 원인이라고 주장한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학교도 붕괴시켰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학교 붕괴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교육계의 고질을 다시 한번 반복하여 언급하기보다는,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오던 것이 ‘왜 하필 그 시기’에 터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학교는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선행연구자들의 원인 분석 방식은 이를테면 배가 아파도, 발가락이 가려워도, 어깨가 저려도 일단 종합 검사를 시켜보는 병원의 진단 방식과 유사한 듯하다. 그리고 환자의 검사 결과 소견이란 것이 ‘이 사람이 병자임에는 틀림없으며, 병의 원인으로는 원래 허약체질인데 다가 10 년 전에 맹장 수술을 한 것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있었던 듯싶고, 지방간도 조금 진행되고 있었으며, 감기 바이러스의 영향도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마침 봄철 환절기여서 황사에 의해 눈과 호흡기도 약간 감염된 점도 원인의 한 가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식이라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내용이란 말인가? 더구나 각각의 전문의의 진찰 결과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꽤 많은 듯하다.
교사나 학생들과 같은 교실 속의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그 모습과 원인, 과정이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 보였던 교육 현상이 일단 교육 전문가들의 토론에 붙여지면 오히려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희한한 일이 교육 문제의 경우 빈번히 발생한다.
2. 원인에 관한 그 외의 견해들
(1) 학부모들 - “우리나라 교육현실은 5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가정은 변하는데, 학교는 변하지 않으려 한다. 교사가 변화해서 아이들을 잘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윤지희 참교육학부모회 회장.2000.3.13.조선일보). 이번 일은 어제 오늘의 어떤 특별한 일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실은 그 동안 누적된 우리 교육계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곪아터진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들은 ‘학교가 틀려먹었다. 우리 애들 다 망쳐놓는다’고 누누이 이야기했지 않은가? ‘자라는 아이, 누르는 학교’라고 벌써 언제부터 이야기해 왔던가? 이제라도 학교와 교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무능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하지 않고는 교육은 아무 것도 안 된다.
(2) 학자 1 - 세계는 정보화 사회,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 학교는 여전히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으니 망할 수밖에. 그것 봐라. 내가 새로운 사회가 곧 닥치니 모두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집에서는 인터넷으로 노는 아이들을 학교에서는 집단으로 모아놓고 여전히 백묵만 들고 가르치려드니 될 일인가? 21세기 아이들을, 20세기 선생님이, 19세기 교실에서 가르치는 현실은 곧 교실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우려해 왔는가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그 동안 내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다. 학교는 이제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한 대씩 주어서 인터넷으로 교육해야 한다.
(3) 학자 2, 3, 4 - 학교 붕괴는 ‘신자유주의 교육관의 결과’, ‘근대 교육의 피할 수 없는 한계’, ‘교육이 기회 획득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어 발생된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1999.10.31. 한겨레신문 참조. ‘왜 지금 우리는 청소년을 이야기하는가 - 청소년과 근대성’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의 주제 발표와 토론 내용)
(4) 교원단체 - 모든 원인은 교원의 정년 단축에 있다. IMF 하에서 인력을 줄이는 구조 조정의 수단으로 교육 개혁이 이용된 것이다. 결국 정년 단축으로 많은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몰아냈다. 돈 좀 줄이겠다고 경험 많은 교사들을 몰아낸 것은 결국 교원 부족, 학급 당 학생 수 증가, 교육 경험의 사장과 모든 교사의 의욕 저하를 불러왔고 그것이 학교 붕괴의 원인이다.
(5) 교사 1 - 수요자 중심이다, 촌지추방이다, 체벌금지다 하며 교육부가 촐싹댈 때부터 우리는 알아보았다. 이해찬 장관이 우리 교사들을 돈이나 받아먹는 파렴치범, 아이들을 때려대는 폭력배로 몰아세울 때부터 이런 식의 탁상공론 정책은 학교 실정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며 그 결과는 학교 붕괴일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학교를 때리고 교사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흔들어대면, 학교가 우리 없이 돌아갈 수가 있을 것 같았던가? 그렇다면 그 대책은? 학교의 모든 것을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라.
(6) 교사 2 - 우리 교사가 다 잘 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교육 정책도 그 내용만으로는 모두 바람직한 것이라고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방법 상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서둘렀다. 그래서 졸속 행정이 되었으며, 결국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좋은 술이 결국 쉬어 버렸다.
(7) 교사 3 - 열린교육 세대가 학교붕괴의 주범이다. 열린교육이 학교 현장에 도입된 4-5년 전부터 ‘주의가 산만하고, 노는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시사저널,1999.9.23).
(8) 교사 4 - “어떤 교사가 선물을 받아 승용차 트렁크에 싣는 모습을 생생하게 TV로 중계하면서 아이들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미디어 폭력을 기억하는가? 교사의 권위가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히 추락한 것은 철학 없는 교육개혁정책의 세련되지 못한 추진 방식과 ‘언론의 천박한 장단’이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도대체 소위 교실붕괴라는 당면 문제에 대하여 조금의 애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태의 심각성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지 못해 안달하는 저널리즘의 천박성은 종착역을 모른다. 교실붕괴는 ‘시청률 올리기’의 소재쯤일 뿐 그들에게서 밤을 새워 번민하는 흔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1999.9.25, 1999.11.14. 인터넷 교육홈사이트 ‘교실밖선생님’(http://webtutor.shinbiro.com)의 운영자 교사 함영기의 말).
(9) 교사 5 - ‘아이들이 달라졌다’, ‘완전히 새로운 인종이다.’ 교사들이 ‘새로운 인종’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지적 호기심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어떤 수업에도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다. 때로는 ‘룸펜 50명이 교실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도대체 뭘 생각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무기력하게만 보이는 아이들’은 기성세대와 가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서태지가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절규하던 그 즈음부터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시사저녈,1999.9.23.). 21세기 아이들에게 ‘민주화’라든지, ‘공동체’ 또는 ‘성실’ 이런 구호들은 고리타분한 선배들의 유산일 뿐이다. 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지금 당장’, ‘나는 나일뿐’과 같은 감정적이고 개별화된 욕구들이다. 중학교 아이들 몇 명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연예인이 으뜸이다. 탤런트, 가수, 코디네이터, 빽댄서, 심지어 로드매니저(가수를 실어 나르며 뒷바라지하는 사람이란다)까지. (1999.9.25, 1999.11.14. 인터넷 교육홈사이트 ‘교실밖선생님’(http://webtutor.shinbiro.com)의 운영자 교사 함영기).
(10) 교사 6 - “학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는 소홀하면서 교사 위에서 군림하는 감시자 노릇을 하려 한다”(김경윤 한국교총 교권옹호부장.2000.3.13.조선일보). 학부모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자기 자식 사람 만들어 주겠다고 한,두대 때려준 은혜는 모르고 교육청에 고발하고, 학교로 찾아와 선생님 멱살을 잡아? 그런 집안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결심했다.
(11) 학생들 모두 - 무조건 외우는 공부! 무조건 반복하는 공부! 학교가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 현재의 학교는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 어쩌고저쩌고 말은 잘 하면서 왜 아이들을 정신병자로 만드는가?(전종호,1999.에서 재인용).
(12) 학원 강사 - 우리가 앞서 학원에서 다 가르쳐 보내니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새로 배울 것은 없고, 그러니 잠을 잘 수밖에. 안 그래도 그 전날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느라고 피곤할 테니.
(13) 우리 동네 30대 청년 - “선생들이 한 짓이 있는데 학교가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얼마나 얻어 터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았던 우리가 병신들이었어요.”(탁구장에서 우연히 만나 내가 ‘학교 붕괴’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마디 던진 말)
위의 주장들을 들어보면 서로가 서로를 책망하기 바쁜 속에서 은근히 자신들의 입장을 보호하거나 강화하려는 듯한 혐의도 엿보인다. 학생과 학부모와 사회는 교사를, 나무에 올려져 흔들림을 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일차적으로는 교육부와 매스컴을 격렬히,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은근히 탓하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교실붕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서도 심한 거부감을 보이며, 교실붕괴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단 몸을 웅크렸다가 틈을 봐서 반격할 기회를 노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또한 교원단체는 이번 기회를 정년 단축을 철회하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어머니모임은 학교의 과오 인정을 받아낼 수 있는 호기로 여기고 있으며, 교사들은 ‘수행평가’니 ‘열린 교육’이니 하는 그간의 부담들을 털어내려는 빌미로 이용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재미있는 원인 분석 중 압권은 매사를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설명하고 마는 발상일 것이다. 집단따돌림은 일본의 ‘이지메’가 수입된 것이고, 교실붕괴는 ‘일본의 수업붕괴’가 수입된 것이고, 조금 있으면 등교 거부는 일본의 ‘부등교(不登校)’가 수입된 것으로 치부할 것임에 틀림없는 단순한 설명 방식. 문화가 무슨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게임인가?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몇 년 전에 있었다고 그것이 곧 우리나라에 수입되게? 역사와 전통과 정책과 사람 등 모든 것이 다른데 어찌 그런 것이 무슨 물건처럼 일본에서 수입되어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는 말인가?
IV. 내가 파악한 교실붕괴의 원인
1. 나의 원인 분석 방식
나는 원인 분석을 위하여 다음과 방식을 취하도록 하겠다.
첫째, 당사자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본다.
붕괴의 현장인 교실에 있었던 사람들 중 교사들은 교실붕괴의 원인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하 윤철경, 1999의 설문조사에서).
* 학교붕괴의 원인(중복 응답)
- 교육부의 부적절한 정책: 58.3%
- 가정교육 부재 및 사회가치관 붕괴: 56.4%
- 학교 구조 및 교육제도의 경직성: 25.2%
- 교사에 대한 매스컴의 부정적 보도: 25.2%
- 너무 빨리 변해버린 학생 의식: 15.1%
( -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의식: 3.7%)
* 수업진행이 어려운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교사의 비 율(%는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응답한 교사의 합)
- 학생들이 내가 가르치는 교과지식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48.6%
- 칭찬,체벌,꾸지람 등 현재의 상벌 수단이 학생들에게 별로 효과가 없다: 67.4%
- 수업 중 유머나 질문, 토론 제의를 해도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68.8%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 학교붕괴의 원인(중복 응답)
- 학생들 생각이 어른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 51.6%
- 학교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학교활동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 46.0%
- 교육부가 교육 정책을 잘못 펴기 때문: 30.9%
- 억지로 외우는 공부를 시키기 때문: 24.1%
- 선생님들이 사회변화를 너무 모르기 때문: 14.5%
- 가정교육이 잘못 되고 사회 가치관이 혼란하기 때문: 12.6%
* 수업 시간에 잘 듣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54.4%
- 수업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16.3%
- 수업 분위기가 소란하고 선생님이 무섭지 않아서: 10.6%
( - 이미 배워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1.8%)
양자의 원인 분석을 들어보면 학교 붕괴가 ‘교육부의 부적절한 교육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으나, 그 외의 점에서는 서로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요컨대 선생님들은 교육부가 교육을 망치는 정책을 학교에 강요한 상황에서 학생들까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버르장머리 없는 상태로 학교에 와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주장이고, 학생들은 ‘교육부 잘못도 있지만 선생님들도 우리 학생들을 너무 잘 모르고 수업도 지루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있어 목격자들의 진술에 일치되는 부분과 일치되지 않은 부분이 공히 있을 때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일치되는 부분이 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서로 불일치되는 점은 좀 더 심층적인 조사를 거쳐 누가 옳은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 연구자는 이번 일을 하는데 있어, 양자가 의견 일치를 보이는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볼 것이며, 그 뒤에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따져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입을 모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육부가 뭔가 잘못한 게 있긴 있는 모양인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둘째, 사실 확인 작업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교사들은 교실 붕괴가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진행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많은 언론들도 1999년에 들어 ‘학교 붕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바로 그 시기, 즉 학교 붕괴가 급속히 일어났다는 최근 2-3년 사이, 혹은 바로 그 직전에 우리 교육계에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당사자들은 공통적으로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을 탓하고 있으니 특히 그 즈음의 교육 정책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만약 그때 무슨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그 다음으로는 그 이전 시기로 눈을 돌려서 그 동안 어떤 문제점들이 어떤 식으로 누적되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하필 이 시기에 터지게 되었는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2. 교육계 일지
교실 붕괴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우리 교육계에 최근 2-3년 혹은 바로 직전에 어떤 교육정책들이 시행되었는지 알아보자.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방안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간단하게나마 먼저 문민 정부의 교육정책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책: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는 ‘세계화․정보화․다원화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교육개혁방안은 ‘소비자(수요자,학습자) 중심교육’, ‘열린 교육’, ‘인성 교육’, ‘정보화 교육’, ‘세계화를 위한 외국어 교육’ 등을 기본으로 하면서, 구체적으로는 학교단위의 교육자치 기구로서 심의․의결․자문 기능을 갖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하며, 대학입시제도는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가 논술 중심으로 대체돼 사실상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과 새로 도입되는 종합생활기록부가 주요 전형 근거로 채택되고, 사립대의 입시는 완전 자율화되며, 중․고교입시는 선복수지원 후추첨제로 바뀌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이해찬 장관의 등장: 1998년 2월 25일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육에도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를 도입해 ‘경쟁력 강화 교육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3월 3일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해찬 장관은 ‘대통령이 나를 교육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교육계를 개혁하라는 것이다’ 라고 일성을 발한 후 4월 1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①학생에게는 입시고통 완화 ②학부모에게는 사교육비 부담 경감 ③기업에는 필요한 인력 공급 ④사회에는 협동하는 인간 배출 ⑤교사의 명예와 교권 보장’ 등 5 가지가 향후 5 년 간 추진할 교육정책의 기본 골격이라고 보고하였다. 이해찬 장관은 이 보고에서 ‘교육부에 한 달 여 있어보니 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육인력 구조개혁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며 교육개혁의 주요 대상이 교수․교사․교육부 공무원․학생 모두임을 강하게 시사했고, 앞으로 불법과외 추방운동,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학교폭력 추방활동 등 개혁과제 실천운동을 펼치겠으며, 교원자질 향상을 위해 일정기간 동안 자질을 파악해 능력이 있는 교사만 임용하는 수습교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하였다.
(3) 촌지 추방: 1998년 3월 1일에는 1997년 6월 ‘촌지 기록부’가 발견돼 해임됐던 초등학교 여교사가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여 해임보다 징계수위가 훨씬 낮은 3개월 감봉 처분을 받고 1997년 말 다른 초등학교로 복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이 촌지 문제로 다시 한번 들끓었다. 결국 그 여교사는 곧 사직을 하고 교원징계재심위위원장까지 사표를 냈으나, 교육계에는 그해 3월에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선물․촌지 반환접수처’가 설치되고 학교 정문에는 ‘우리 학교는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일체 받지 않습니다’는 촌지추방 알림판이 내걸리게 되었고, 4월에는 서울시 교육청이 감사팀을 조직하여 학교 주변 문구점을 비롯, 슈퍼마켓과 음식점 등 학부모와 교사들 간에 촌지가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는 장소에 암행 단속반을 상주시켰다. 4월 24일에는 촌지를 받은 중학교 교사가 즉각 해임되는 일이 처음으로 있었으며, 7월과 8월에도 촌지 문제로 다수의 교사가 중징계를 받았다. 교육부장관은 4월 29일 ‘매년 스승의 날을 전후로 촌지수수 행위가 빈발하고 있는데 오는 5월은 촌지가 없는 달이 되도록 해달라’고 학부모․교사들에게 호소한 후 5월을 ‘촌지 없는 달’로 선포했고, 이에 따라 그 해에는 스승의날 행사를 하지 않은 학교가 적지 않았으며, 아예 그날 하루 휴교하는 학교도 있었다. 6월 10일 교육부는 전국 시․도 교육감 회의에서 각 학교 단위로 촌지반환․거절장부를 비치해 촌지를 반환 또는 거절한 교사를 파악하고 이들에게 성과급을 주거나 근무평정․모범공무원 포상 등 인사 상 우대를 해주도록 지시했으며, 10월에는 참교육학부모회가 스승의날을 학년말인 2월로 옮기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교육부는 이를 수용하여 적극 검토하기로 하였다.
(4) 부적격교사 수업제한: 1998년 7월 1일 교육부는 교사연수 과정을 강화해 교사 자질을 검증하여, 부적격 교사를 가려내 수업담당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으며, 7월 24일에는 교육개혁의 지속적 추진과 교육에 대한 국민의식 개혁 등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대통령 산하에 새교육공동체위원회를 발족하였다.
1998년 11월 3일에는 전국 10개 교육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전국교대대표자회의가 ‘수습교사제 도입은 명백한 교권침해이자 졸속 교육개혁의 표본이며, 교육현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교대와 사대의 존립근거마저 부정하는 수습교사제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
(5) 교육비전 2002: 1998년 8월 12일 교육부는 1999학년도부터 중학생과 고1학생들을 상대로 한 보충수업과 사실상 타율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자율학습을 폐지하겠다고 하였으며, 31일에는 고액과외 혐의가 인정된 교사에 대해서는 파면․해임 등 중징계하고 관련 학부모의 명단을 공개하며 학생들에 대해서도 학칙에 따라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9월 18일에는 ‘2002학년도 대입제도의 개선’ 시안을 발표했다가, 10월 19일에 확정 발표하였다. 그 초점은 대입 선발에서 시험성적만이 아니라 인성과 품성을 중시하기 위하여 2002학년도부터 수능을 자격고사로 그 성격을 바꾸고 무시험전형을 확대하며 학교생활기록부를 핵심 전형자료로 삼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999년부터 학생생활기록부는 기존의 단매에서 파일형(portfolio)으로 바뀌며 수행평가제도가 도입되게 되었다.
10월 21일에는 대학입시의 개선에 발맞추어 초․중등교육정상화 방안으로서 ‘교육비전 2002: 새 학교문화 창조’를 발표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학생생활기록부 개선, 수행평가제도 도입, 보충학습 및 자율학습 금지, 모의고사 폐지, 중간․기말고사 축소, 방과 후 교육활동 다양화, 현장 체험학습 확대, 고입 무시험제도 확대, 고교 교육과정 개선 등이며, 그 이외에 초등학교의 담임연임제, 중․고교의 평가방식 사전 예고제, 교과목 교실 수업제, 학생의 담임교사 선택제, 전교사 담임제, 교차채점제 등도 포함되었다.
(6) 교원정년단축: 1998년 10월 29일에는 처음으로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교육부의 개혁정책에 대하여 반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발전과 교직안정을 위한 전국 교육자 대표자대회’를 열고 교원정년 단축, 교육감의 시․도지사 임명제 전환, 교원노조 법제화 추진 등 교육부의 개혁정책을 집중 성토했다. 교총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는 교원에 대한 차등 보수 및 연봉제 실시, 학생의 담임선택제, 참스승인증제 등 교직안정을 저해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으며, 참가자들은 ‘현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은 시장논리를 내세워 교육의 핵심주체인 교원들을 개혁대상으로 규정하고 획일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일련의 교육개혁 정책이 교원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한 가지도 실현될 수 없는 데도 교원들의 역할과 책임만 강조할 뿐 교사들의 참여의지를 끌어내려는 동기유발은 전혀 없다’, ‘즉흥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책이 남발됨으로써 교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교육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교총은 집회 뒤 교육개혁 반대 4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그 다음날인 30일에는 즉각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가 한국교총이 교원정년 단축과 교육부의 일련의 교육개혁에 집단반발하고 있는데 대한 반박성명을 내고 ‘교총은 반개혁적 주장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나서, 그 후 특히 교사의 정년단축 문제를 놓고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이 노정되었다.
교원정년 단축 문제는 1998년 1월 3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IMF 한파에 따른 구조조정에 교원도 정년을 단축하여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교육계에 처음으로 전해졌는데, 그 후 교육계는 즉각 다양한 방법으로 반발하였으나 사회 각계의 비난이 워낙 거세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단축하는 쪽으로 단호히 결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 동안 거론되지 못 하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에 따라 많은 교사는 명예 퇴직의 길을 택하여 1998년 3월 수합된 서울교육청의 8월 명예퇴직 희망 교원수는 1,148명으로 1997년 같은 시기의 253명에 비해 급증하였고, 10월에 수합된 99년 2월 명예퇴직 신청 교원은 전국적으로 10,714명으로 98년 2월 명예퇴직 신청자 1,126명에 비해 10배 정도 증가하면서 명예퇴직 수당액수가 너무 커져 절반 밖에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0월 29일부터 다시 교총에 의해 교원정년 단축반대가 주장되었으나, 11월 2일에는 정부가 교원 정년을 60세로 낮추는 교원정년단축안을 발표하면서 교원들 사이에는 반발과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반대로 학부모 및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조치가 교육계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교육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라며 환영하였다. 이 문제는 결국 12월 30일 국회 교육위원회가 국․공립 초․중등 교원의 정년을 현행 65세에서 62세로 3세 낮추되 1999년 8월 한꺼번에 시행키로 결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에 따라 1999년 8월에는 62세 이상이 되는 12,647명이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7) 체벌금지: 1998년 12월 14일에는 수업시간에 체벌을 했다는 이유로 여고생이 휴대폰으로 담임교사를 경찰에 신고해 해당 교사가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교권’을 다시 세워야한다는 주장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였다. 체벌 문제는 교육계 뉴스 중에서도 단골 메뉴에 속한다.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6년 11월 27일 당시의 교육개혁위원회는 빠르면 1998년부터 일선 학교에 ‘체벌금지위원회’를 만들어 일체의 체벌을 금지하고 교사들이 수업시간이나 공식활동에서 학생들에게 경어 사용을 의무화하겠다는 ‘민주시민교육의 방향과 개혁과제(안)’을 발표했으며, 1997년 6월 2일 발표된 교개위의 ‘제4차 교육개혁방안’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확정되어 포함되었다. 교사의 체벌 금지와 경어 사용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10월 24일 전라북도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체벌을 일절 금지하고 학생에게 경어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그 이후 교육계에서는 체벌금지가 원칙인 것처럼 되었으나, 실제로는 1998년에 들어와서도 체벌로 인한 문제는 계속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양상은 달라져 1998년부터는 교사의 체벌이 지나쳐 말썽이 된 경우는 줄어든 대신 교사의 체벌에 대해 학생이 지나치게 반발하거나 학부모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안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체벌에 극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98년 6월 24일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담임교사의 체벌을 문제 삼아 집단으로 담임 교체를 학교 측에 요구하는 초유의 일이 있었고, 7월 1일에는 수업 중 학생들을 집단 체벌한 경남 창원의 초등학교 교사가 담임직을 박탈당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일도 있었고, 7월 23일에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 10여명이 3학년 학생 100여명을 30여분간 체벌한 일에 대하여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부산지부’가 28일 성명을 내고 학교장과 해당 교사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9월 15일에는 부산의 한 학부모가 친척과 합세하여 전날 자신의 딸을 체벌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무릎 꿇게 하고 구타한 후 교장실과 회의실 등의 집기를 부수고 이를 제지하는 교사들을 흉기로 위협하는 일도 있었고, 11월 25일에는 여중학생 2명이 꾸지람하던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12월 9일에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자녀를 차별 대우했다며 학생들 앞에서 담임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구타한 사건 등이 발생했다. 이런 일은 1998년에 들어와 급증한 것으로 체벌과 교권을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체벌 문제가 반복되자 강원도교육청은 7월 24일 각급 학교별로 체벌 내용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체벌규정을 마련토록 했으며, 서울시교육청에서는 10월 22일 ‘체벌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선언해 11월부터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라는 지시를 일선학교에 시달했다. 그런가 하면 11월 21일 울산의 어머니회와 12월 3일 청주의 어머니회는 교권 회복을 위하여 교사들에게 ‘사랑의 매’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1998년 12월 14일의 여학생의 교사 112 고발 사건은 이런 와중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일이 매스컴에 보도되자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학생들의 교사 112 고발사건이 16건이나 뒤를 잇는 등 더욱 확산돼, 2000년 3월 13일 경북 성주에서 교사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던 여고생이 체벌을 당하자 경찰에 신고하여 교사를 입건케 한 최근 사건까지 연이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다. 첫 번째 학생의 교사 112 고발 사건 직후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와 주장이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연일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한겨레신문은 12월 24일 사설에서 그해 교육계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면서 1998년을 ‘교권추락의 해’라 이름하였다. 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례 수를 보더라도 1997년의 36건에서 1998년 70건, 1999년 77건으로 급증해, 1998년이 교권추락의 해임을 증명하고 있다. 교육부도 체벌 전면 금지조치로 인해 교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1999년 1월 25일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사회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학교규정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학생을 체벌할 수 있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8) 교사들의 반발과 이해찬의 퇴진: 1999년에 들어와 교육부는 3월 11일 2003년까지 추진할 교육개혁의 종합적 청사진으로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개혁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려 했으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4월 17일 열린 임시 대의원회의에서 ‘교육위기 극복을 위한 교육자선언’을 채택하고 이해찬 교육부장관 퇴진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교총은 이날 선언문에서 ‘교원들의 무더기 교직이탈 등 최근의 교육 위기상황을 초래한 이 장관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며 ‘장관이 퇴진할 때까지 40만 교원서명운동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한 퇴진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5월 4일에는 한국노총도 이해찬 교육부장관 퇴진운동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고 밝히면서 ‘장관 퇴진 100만 조합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하였으며, 5월 14일 한나라당은 ‘교육현실을 무시한 좌충우돌식 밀어붙이기로 추진되는 현 정부 교육정책으로 교권과 교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닫아거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됐다. 이 장관을 해임해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해찬 교육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5월 11일 교육부는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교직사회의 불만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우려에 따라 국무회의에 ‘교원의 전문성․권익 및 후생․복지향상 대책’을 내놓았으며, 5월 15일에는 이해찬 장관이 KBS 1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스승의날 특집 음악회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즘 선생님들께서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선생님들 마음 아프게 해 죄송하다’며, 공개적인 공식 자리에서 교사들에게 처음으로 사과의 말을 했으나, 결국 5월 24일 개각에서 교육부 장관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김덕중 장관이 새로 임명되었다. 같은 날 새벽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에서는 그 학교의 교사가 ‘비현실적인 과도한 경제논리 위주의 교육정책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유서를 대통령에게 남기고 자살하였다. 그리고는 그 해 8월부터는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3. 교실붕괴의 원인
지금까지 내 방식으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교실 붕괴의 원인은 첫째, ‘부적절한 교육정책으로 인한 교사들의 사기 저하’, 둘째, ‘체벌금지에 따른 학생 통제 불능’의 두 가지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부터 내가 그렇게 판단하게 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1) 부적절한 교육정책으로 인한 교사들의 사기 저하
다른 요인들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교사들의 말대로 ‘교실 붕괴’가 최근 2-3년에 걸쳐 급속히 진행된 최근의 사회현상이라면, 그 즈음에 시행되기 시작한 교육부의 부적절한 교육정책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교권 추락의 해’라 일컬어지는 1998년 교육부에 의해 집중적으로 발표된 ‘교원정년단축’, ‘촌지 추방’, ‘체벌 금지’, ‘부적격교사 수업 제한 및 퇴출’, ‘교장․교감 평가제’, ‘수행평가 실시’, ‘참교사인증제’, ‘학생의 담임교사선택제’, ‘수습교사제’, ‘성과급제’, ‘피크임금제’, ‘자격갱신제’, ‘순회교사제’, ‘기간제교사 확대’ 등의 수많은 교육 정책들은 교사들을 당황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다가 결국 사기 저하와 의욕 상실의 상태에 빠지게 한 듯 하다. 교육부의 교육개혁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평을 들어보면, 총론에는 찬성하나 각론에는 반대한다고 말하거나 뜻은 좋으나 방법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아예 학교 현장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의 산물일 뿐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대체로 보면 교사들은 자신들을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과 교육개혁정책이 학교 현장에 맞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지나치게 경제 논리를 강조하고 상명하달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등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느끼는 것 같다.
이제부터 대표적인 몇 가지 교육정책이 어떻게 교사의 사기를 떨어뜨렸으며, 그리하여 학교의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① 촌지 추방: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발표한 ‘촌지근절’ 대책에 따라 ‘선물․촌지 반환접수처를 만들고’, ‘촌지를 반환 또는 거절하는 교사에게 성과급을 주고 인사 상 우대하겠다는 방침이 나오고’, ‘스승의날을 학년말로 옮기자’는 의견 등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몇몇 사람의 잘못이나 지난날의 관행을 가지고 여론몰이식으로 교사들을 단죄하고 있다고 분개하였다.
② 정년 단축: 1998년 11월 정부의 교원정년단축안이 발표됐을 때 많은 교사들은 교사들의 사기 저하를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이 일은 그것만이 아니라 그 후 교사들 간에도 찬성, 반대로 편이 갈리면서 분위기를 소원하게 만들었으며, 정년단축에 적극 찬성을 한 학부모단체와 교사 집단 간에도 감정의 골을 깊게 파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원정년단축안이 발표되던 날 양재고 정수영 교감은 “교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시기인데 정년단축 발표가 나와 일할 의욕마저 상실했다. 다른 직종에 비해 봉급은 낮아도 정년이 높다는 이유로 버텨왔는데 이제 교사직에 대한 매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고 김상률 교사는 “교사들의 현 여건을 전혀 고려치 않고 경제논리에 떠밀려 정년을 5년이나 낮춘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정년퇴직 대상자들에 대한 구체적 처리방안이 어떻게 마련되는지 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노원중 이영위 교사는 “일반사무직과 달리 교사는 연륜이 쌓여야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 퇴직의 기준을 능력이나 성실도가 아닌 연령만으로 삼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방배초등학교 윤대완 교장은 “현재 명예퇴직 신청자가 13명이나 있는데 내년부터 새로 바뀐 정년제가 도입되면 경험이 풍부한 중간 교사 층에 공백이 생겨 정상적인 교육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한겨레신문, 1998.11.2.).
③ 수행평가: 서울 신정여상 김창학(41) 교사는 “작년 8개 반 450명을 대상으로 ‘관찰법’과 ‘포트폴리오’를 사용한 수행평가를 시험해봤다. 거의 매일 야근하다시피 했는데도 객관성을 자신할 수 없었다. 교사의 1주 수업시간이 12시간 수준으로 줄고, 학생도 40명 미만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울산의 한 중학교 교사(46)는 “수행평가가 좋은 제도인 것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이 예상된다. 교사가 소신껏 평가를 해도 학생들이 ‘왜 내 점수가 나쁘냐’고 할 때 ‘○월○일 ○교시 과제물 준비 부족’ 같은 근거 자료를 남겨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금 여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주간조선, 1999.2.24.).
④ 체벌금지와 학생의 교사 고발: 서울시교육청은 ‘체벌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발표하고, 1998년 11월까지 초․중․고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학교별로 체벌금지에 따른 학칙을 만들어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제부터는 사랑의 매도 안 된다’는 기사를 크게 보도하였다. 교육청의 공문을 받은 각급 학교 교장들은 교무회의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때리지 말라. 만약 체벌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학교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교사들을 단속했다. 이 발표를 듣고 교사들은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평소 때리지 않는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교사들조차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차라리 때리고 그만두겠다.’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자주 매를 들었던 교사들은 절대 때리지 않고 오히려 경어까지 꼬박꼬박 쓰면서 교육을 포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자세로 나왔다. 교육 관료들은 체벌교사 엄벌령만 내리면 일시에 체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때리기만 해 봐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하도록 만들고, 결국 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초래하게 된다고 일선 교사들은 한탄한다. 교사 고발 사건이 있은 후 학생들이 말썽을 피워도 ‘내 자식인가, 내버려둬!’라고 말하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이처럼 학생지도를 포기하는 교사들이 많아진 예로 교사들의 담임 기피현상을 들 수 있다(신동아,1999년 3월호).
본 연구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하여 교사들과 많은 대화를 해 보았는데, 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교육부가 탁상공론의 정책에 따라 교사들을 몰아세우면서 모든 교사를 깡패, 파렴치범, 무능한 늙은이 취급을 하니 학부모도 덩달아 교사를 만만하게 생각하여 걸핏하면 학교로 찾아와 교사의 멱살을 잡는다. 그런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또 학교에서는 절대 체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선생 알기를 우습게 알고 겁 없이 교실에서나 복도에서나 천방지축으로 제멋대로 날뛰고 경찰서에 핸드폰을 쳐댄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잠을 자건 서로 때리며 싸우건 내가 미쳤다고 나서나? 열 내 봤자 나만 폭력 교사라고 매도되어 경찰에 끌려가거나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할 텐데. 나도 만사 귀찮은 사람이다.’
교사들이 모여 저녁에 소주 한잔 하게 되면 오늘 학생을 야단친 선생님을 모두 비난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누가 고마워하기나 한데? 이제 그러지 마. 앞으로는 학생들한테 화내지마. 때리지는 더더욱 말고. 앞으로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든 그냥 못 본 척 해버려. 그게 우리가 요청 받은 일인 동시에 살아남는 길이야. 그렇게 안 해도 시간은 가고 월급은 나오잖아.’ 바라는 것은, 능력이 되면 빨리 교직을 떠나는 것이요, 안 되면 교감, 교장 빨리 되는 길을 찾아 무사히 정년 퇴직을 맞는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선생님들이 교육부 정책, 학부모, 매스컴이 원망스럽고, 아이들까지 싫어져서 교육에서 손을 뗀 상황이라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교육을 포기했는데 어디에서 수업을 찾고 생활지도를 찾을 것이며, 또 어찌 그런 학교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교사들은 1998년 말부터 ‘학교는 무너질 판, 교장은 죽을 판, 교감은 살얼음판, 장학사는 닦달판, 교사는 이판사판, 학생은 개판, 교실은 난장판, 학부모는 살판, 교육부는 깽판’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를 되뇌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2) 체벌금지에 따른 학생 통제불능
부적절한 교육 정책에 의한 교사의 사기 저하와 의욕 상실이 학교의 기반을 취약하게 했다면, 그런 학교를 확 밀어붙여 결국 무너지게 만든 가장 직접적이며 결정적인 원인은 교사의 손에서 매를 빼앗은 ‘체벌 전면금지 조치’라고 판단된다.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시행된 체벌금지 조치는 당장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사건까지 유발하여 그나마 남아있던 의욕마저 사라지게 하였다. 그 결과 많은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서 더욱 손을 놓게 되었으며, 설령 의욕이 남아있더라도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체벌을 대신 해서 벌점제가 도입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일 뿐이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은 당장 자신에게 징계나 위해가 오지 않는 벌점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벌점 때려요’하는 한 마디로 넘어가는 것이 벌점제의 실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벌점제는 학생들을 통제하는데 거의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윤철경(1999)의 연구에서도 ‘수업 진행이 어려운 이유’로서 ‘칭찬, 체벌, 꾸지람 등 현재의 상벌 수단이 학생들에게 별로 효과가 없다’에 동의한 교사가 67.4%(‘매우 그렇다’ 13.3%, ‘그렇다’ 54.1%, 합하여 67.4%)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관해 윤철경은 ‘사회변화와 상급 관청의 지시로 인해 체벌이 금지되고, 이를 대체할만한 마땅한 합리적인 제재 수단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체벌 금지 이후 교실이 붕괴된 것은 초등학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다음은 교육부 소리함에 올린 어느 초등교사의 절규이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입니다. 우리 반에 한 남자 아이 때문에 교실이 미쳐갑니다. 1분이 멀다하고 다른 아이들을 귀찮게 합니다. 2분이 멀다하고 장난을 겁니다. 3분이 멀다하고 딴짓을 합니다. 공부는 애당초부터 안중에 없었습니다. 어리니까 몰라서겠죠? 모르니까 가르쳐야겠죠? 어리니까 타일러야겠죠? 그렇지만(But) 어떻게(HOW)? 몰라서 묻냐고요? 그래요, 몰라서 묻습니다. 때리면 안돼요! 벌을 세워도 안돼요! 윽박질러도 안돼요! 어쩌면 교육부 나리들 발상하고 그 어머니의 발상이 똑같은지? 준비물이 없이 다른 아이 방해를 해도 글자 한자 쓰지 않고 딴 짓을 해도 다른 모든 아이들이 이 아이 때문에 보는 정신적, 시간적, 물리적 고통이 얼마든간에 야단치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 타이르세요!
저는 1년 간 많이 미쳐버렸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덩달아 미쳐가고 있습니다. 점점 함께 뛰고, 소리치고, 구르고, 안 하고, 안 가져오고, 건들고. 언제냐고요? 공부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구별하지 않는답니다. 한 아이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막아야 하나요?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나요? 기본이 안 된 아이들의 교육 거부권은 왜 안 주나? 학부모만 신나는 세상! 교사만 죽어나는 세상! 아이들이 미쳐가는 세상! 이것이 교육부가 바라는 세상 아닌가요? 정말이라면 교육부 의도대로 학교는 미쳐가니까 즐거워하쇼! (미쳐가는 초등교사 올림)
교단 생활 21년째인 한 중학교 교사의 다음과 같은 말 역시 체벌금지와 학교 붕괴의 관계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인다.
‘과거엔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콩나물시루처럼 몰려 있어도 호통 한마디로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한 반 학생이 40명을 넘지 않는데도 수업의 밀도가 높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엉망이다. 억지로 교실에 들어오게 할 수는 있지만 수업에 열중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얼마 전만 해도 교사가 한번 꾸짖으면 학생들은 일단 고개를 숙였지만 지금은 친구와 말다툼하듯이, 눈싸움이라도 하듯 정면으로 맞서 교사의 눈을 쏘아보는 일이 잦다. 도리어 교사가 면구스러워 고개를 돌리게 됐다. 이미 체벌에만 복종토록 길들여진 학생들을 현재 체벌이 금지된 상황에서는 통제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별로 없다. 대안으로 나온 벌점제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은 벌점에 개의하지 않는다. 아직도 체벌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경향신문,1999.5.7).
매 이외에 다른 통제 방식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수단은 쥐어준 것 없이 그나마 들고 있던 교편마저 빼앗으니 이제 무슨 통제 방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서글픈 일이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폭력이 만연된 사회이다. 한국의 가정폭력(부부간, 부모-자녀간)은 미국의 3.5배에 달하며(옥선화,정민자,1993년), 교사의 학생 체벌은 중국 조선족 학교에 비해 무려 10.6배나 많다(한양대학교 의대 김광일 교수의 조사결과. 조선일보, 1996년 8월 28일자 재인용). 체벌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취학 전부터 가정에서 매 맞으며 자라왔고, 학교에 들어온 이후로도 계속 매로 다스려진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갑자기 매 없이 가르치라 하니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런 뜻에서, 교육부의 졸속적인 정책에 앞장 서 1998년 11월 별 다른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체벌 전면 금지’를 지시한 서울교육청은 학생통제 불능상태를 만들어 학교 붕괴를 일으킨 장본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강원도 교육청처럼 새로운 체벌규정을 만들어 교육적인 체벌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무조건 금지부터 시키고 보았던 것이다. 체벌 여부와 그 방법은 교육전문가들의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내려야 할 것인데, 서울교육청은 그런 준비와 고려도 없이 단지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운동적 차원에서 일을 벌였다. 교사의 체벌로 인해 몇 번 사회가 시끄러워지고 교육부가 닦달해대자 바로 일체의 체벌을 금지시킨 것은 전혀 교육자적이지 못한 처신이었다.
체벌이 가장 바람직한 지도 방법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도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경우, 원칙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체벌은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 문제는 잘못된 체벌이다. 무원칙한 체벌, 감정적 체벌, 지나친 체벌 등은 모두 잘못된 체벌이며, 따라서 금지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다음에 교육계가 할 일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체벌’을 대신 할 ‘올바른 체벌법’을 찾아내고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체벌 자체를 없애려들었다. ‘잘못된’에 맞추어야 할 초점을 ‘체벌’에 맞추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총기오발 사고를 방지한다고 아예 전 군인에게서 총기를 회수한 꼴이 되었다. 체벌 금지는 몇 가지 안 되는 학생 통제 방법 중 결정적인 한 가지를 버린 꼴인 셈이다. 더구나 다른 대안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학생들은 체벌 금지의 철학적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교사들은 때릴 수 없다고 생각해 학생들을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말한 한 서울의 중학교 교사의 말(한겨레신문.1998.12.16)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요컨대 나의 주장은 ‘대안 없는 체벌 전면금지 조치가 학교 붕괴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인데,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교사의 수업시간에는 학급붕괴 현상이 거의 없다.”(서울 ㄱ 중 김모 교사.1999.5.9.경향신문)는 교사의 말과, 요즈음 학생들도 무서운 선생님 시간에는 대부분 조용히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윤철경(1999)의 실태조사 결과는 나의 이런 판단을 지지하는 자료라 할 것이다. (윤철경의 조사에서 학생들은 ‘나는 무서운 선생님 시간에는 조용히 수업을 한다.’는 항목에서 ‘매우 그렇다’ 21.8%, ‘그렇다’ 51.9%, ‘그렇지 않다’ 22.2%, ‘전혀 그렇지 않다’ 4.0%로 응답해, 무서운 선생님 시간에는 73.7%가 꼼짝 못 하고 조용히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 더 논의할 점들
지금까지 학교 붕괴의 원인에 관해서 교사와 학생의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양자 간에 의견 차이를 보였던 부분에 관하여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의견 차이를 보였던 점을 다시 한번 알아보면, 교사들은 학교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가정 교육의 부재 및 사회 가치관의 붕괴(56.4%)’를 지적했던 반면, 학생들은 ‘학생들 생각이 어른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51.6%)’, ‘학교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학교활동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46.0%)’, ‘억지로 외우는 공부시키기 때문에(24.1%)’라고 하였다. 마치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힐난하고 있는 듯 하여 보기가 여간 민망하지 않다.
당사자들의 말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두 집단은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붕괴 장면을 지켜 본 각도는 매우 달랐었을 수도 있다. 나는 성급한 판단 착오의 오류를 피하기 위하여 일단은 그 두 당사자 집단의 직접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는 태도를 잠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하겠다.
(1)학생들의 의견
이제 학교 붕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에 대해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요즘 학교가 붕괴된 원인이 ‘학생들 생각이 어른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51.6%)’, ‘학교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학교활동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46.0%)’, ‘억지로 외우는 공부시키기 때문(24.1%)’이라고 응답하였다.
요즈음 학생들의 학교 생활과 공부 실태가 어떤지 잠시 살펴보자.
1997년 11월에 한국교육개발원(연구자: 임연기)에서 조사한 ‘교육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에서는 실제 수업과 관련하여 교과내용 수준의 적절성에 대한 질문에서 고등학생의 약 절반 정도(‘매우 어렵다’ 3.6%, ‘어렵다’45.8%, 합계 49.4%)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교과별 수업 이해도에 있어서는 수학과 영어의 경우 30%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학생들이 각각 34.3%, 23.7%로 나타나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생활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불만족도가 41.6%(‘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13.1%, ‘만족하지 않는다’ 28.5%)로 나타나 역시 학교생활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생들은 윤철경(1999)의 조사결과와 같이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고’(54.4%),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워서’(16.3%) 수업 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학생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자. 요즘의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몇몇 학생들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교사는 학생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전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99년에 들어와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란 인간하고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상담이라고 한다고 하더니 10명 정도 하고 그만두고 머리가 나빠서 말로는 안 되니까 맨날 때리기나 하고. 교사는 학생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을 뿐입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한 건물 안에 있으면서 제대로 된 따뜻한 대화를 못 나누는 사이가 어디를 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가요? 더 이상 학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때는 지났고, 가장 같이 있기 싫은 사람,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일뿐입니다.”
(학생의 글. 인터넷 사이트 ‘학교는 죽었다’(myhome.hananet.net/~phoenix77) 중에서. 1999. 10.31.)
“우리가 학교를 욕하는 것은, 욕할만한 점이 있으니깐 하는 것이다. 학교만 좋아봐라. 우리가 쓰잘데기 없이 욕하겠는가? 그리고, 한번 찍힌 학생들은 선생들한테 좋은 이미지 주기 어렵다. 선생은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은 볼 생각을 안 하니깐. 항상, 나쁜 학생, 좋은 학생, 이렇게 나뉘어 가지고 무슨 심부름시킬 때마다 선생들한테 가는 것은 공부 잘 하는 애들 시키고, 못하는 것들은 물건 사오라고 시키고, 우리가 자기들 개인 줄 아는 선생들... 사사로운 감정에 싸여 학생기록부에 안 좋은 말 쓰는 것들. 선생들이 학생들한테 욕 얻어먹고 산다고? 선생들은 학생 욕 안 하냐? 선생들 모이면 문제아들 이름 부르면서 차례차례 씹으면서. 문제아는 범생이 되기 어렵다. 한번 찍혔으므로. 한 면만 볼 줄 아는 선생들이 판을 치고 있으므로.”
(학생의 글.인터넷 사이트 ‘10대들의 학교이야기’(www.skyangel.co.kr) 중에서. 2000. 3.18.)
“음... 전 작년에 학교를 졸업했구, 지금은 대학생이졉. 전 다른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다닌 학교에서만은 선생이란 우리들의 적이져. 학생이 선생들의 적인 것도 마찬가지. 선생들에게 학생들이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어주는 도구에 불과하죠. 조금이라도 더 반 평균을 올리고, 더 좋은 대학에 많이 진학시켜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 이런 식이니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죠. 선생들은 학생들 중 15등 밑으로 잘라낸 뒤 그 밑으로는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우등생들의 들러리 정도? 그냥 조용히 앉아있고 수업분위기만 흐트러 뜨리지 않으면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질문도 하지 않죠. 그냥 석상처럼 앉아만 있어야져. (중략) 선생들은 우등생에게는 엄청 잘 해줍니다. 왜냐하면 우선 우등생들은 머리가 좋으니 졸업 후에 성공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될꺼고, 그리고 자신이 이런 제자를 키웠다는 자랑거리도 되니까요. 이건 정말이져. 우리 열등생들한테 기합 줄 때 선생이 ‘너네들은 가르쳐 봤자 필요 없어! 너네들이 졸업해서 나한테 뭘 해 주겠냐, 엉?’ 이런 소리를 해대니깐.”
(어떤 대학생의 글.인터넷 사이트 ‘학교는 죽었다’(myhome.hananet.net/~phoenix77) 중에서. 2000. 2.14.)
요즘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거의 100%가 이런 내용이다. 학생들은 교사를 ‘가장 가까이 있기 싫은 사람’, ‘우리들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발췌한 것은 그나마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들이다. 요즘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은 선생님들이 이렇고 학교 공부가 재미없으니, 자기들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거나 자는 것이라고, 그래서 학교가 붕괴된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교사와 학교가 그랬던 것은 요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학교에나 이런 교사들이 몇 명씩은 꼭 있고, 그런 분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이 괴로웠던 것은 과거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 전에 진도를 놓쳐 수업을 이해할 수도 없는데 선생님은 억지로 외우게 시키고 야단치고 때리고’, ‘학교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학교 활동이 다양하지 못하고’,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지금보다 10년 전, 20년 전이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싫고 학교가 재미없어 학교 붕괴가 일어났다는 요즘 학생들의 의견은 꼭 맞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벌써 오래 전에 이미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유라면 과거 학생들은 참아냈는데, 요즘 학생들은 참지 않거나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교실에서는 못 뛰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겁 없이 마구 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단지 무서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생활은 비슷한데, 과거에는 버텨오던 교실이 지금에 와서 무너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교실이라는 집에서 전세로든, 사글세로든 12년 이상을 살고 나왔다. 전에는 그 집 주인인지 관리를 위탁받은 자인지 하는 교사라는 사람은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사실 그 집은 그 시절에도 이미 많이 낡아 있었다. 기둥은 흔들리고 벽은 갈라져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교사라는 사람은 우리가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규제했다. 우리는 매 안 맞고, 욕 들어먹지 않기 위해 눈치껏 조용히 했고, 발 뒷꿈치를 들고 다녔으며, 재주껏 많은 시간을 졸거나 엎드려 자면서 보냈다. 그렇게 12년 세월을 보낸 뒤 그곳을 나왔다.
그 뒷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 그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우리 때는 그렇게 무섭던 교사들이 근래 들어서는 통 기운이 없어 보였으며, 특히 어떤 이유론가 매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된 다음부터는 입주자들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우리 후배 입주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고 소리 지르며 교사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집은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 집은 오래 전부터 그리 견고한 편은 아니었다. 이미 너무 낡았었다.
(3)교사들의 의견
교사들은 학교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가정 교육의 부재 및 사회 가치관의 붕괴(56.4%)’를 지적하였다. 그것은 곧 학교 붕괴가 학생들 때문이라는 말이다. 사회 가치관이 붕괴되고 가정 교육이 부재하니 학생들의 기본이 제대로 서지 못 했을 것이요, 그런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오니 행동이 제멋대로이고, 그래서 학교가 붕괴되었다는 말인 것이다.
다음은 1999년 1월 14일 천리안 ‘전국교사동호회’에 올라 온 ‘학부형의 소란’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오늘은 99년 최악의 날이다.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교무실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학생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담임선생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생이 상습적으로 가출하고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것은 담임의 자세와 학교교육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니 책임을 지라고 했다. 요즘 학부형들은 교사를 무엇으로 보는가? 가정교육이 70%고 학교교육이 30%라는데 요즘 학부형들은 가정교육은 없고 학교교육만 따진다. ‘우리 애는 공부를 싫어하니 공부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 ‘우리 애는 맞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니 절대 때리지 마세요.’, ‘우리 애는 꾸중 듣는 것을 싫어하니 꾸중하지 마세요.’ 그 학생의 어머니가 1학기 때 담임인 나를 찾아와서 한 얘기다. 막상 교무실에서 말로만 듣던 교권 침해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노라니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학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는 소홀하면서 교사 위에서 군림하는 감시자 노릇을 하려 한다’는 한국교총 교권옹호부장의 말(조선일보.2000.3.13.)은 요즘 교사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이전의 아이들과 달라졌다는 증거는 충분치 않다. 본 논문의 전반부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요즘 아이들의 심리나 학교 생활은 10년과 거의 같다. 그렇다면 요즘의 학교 붕괴가 아이들 때문이며, 또 그것은 가정교육이 잘못 되고, 사회의 가치관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가정교육 부재와 사회 가치관의 붕괴’를 학교 붕괴의 원인으로 지적했던 윤철경(1999) 설문조사의 응답 교사들은 중․고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설사 요즘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전과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가정 교육이나 사회 가치관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의 초등교육의 실패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많은 중등학교 교사 중에는 요즘 학생들을 ‘공포의 열린교육 세대’라고 부르며 학교 붕괴를 초등학교의 열린교육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신동아,1999년 3월호).
대체로 보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도대체 뭘 배우고 올라 온 거야.’ 하며 그 이전 단계의 교육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의 교육을 탓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를, 중학교는 초등학교를 탓하며, 모든 교원들은 힘을 합쳐 가정 교육을 비난한다. 사실 이런 식의 귀인(歸因) 방식은 자신들의 속은 편하게 해줄지 모르겠으나 그것의 진위 여부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 볼 때 매우 비생산적이며 무책임한 태도이다. 설사 아이들이 이전 단계에서 제대로 못 배운 상태로 학교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교육 실패를 모두 전 단계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팔짱만 끼고 있다면 정작 자신들의 교육적 역할은 어디서 찾겠다는 말인가? 교육이란 것이 본래 미숙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일이고, 부족한 아이들을 채워주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기초와 기본이 부실한 아이들이라도 그들에게 맞는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을 택하여 가르쳐내는 것이 교사들의 임무가 아닌가? 학교 교육이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학생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앞으로의 교육도 아이들이 스스로 개과천선 해주지 않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의 학생 귀책론은 비생산적이며 무책임한 일인 것이다.
교사들이 학교 교육의 실패를 가정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교실 붕괴가 더 심각하다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의 학교 붕괴 원인 분석에서도 교사들은 자신들의 지도력 부족에서보다는 아이들의 인내력 감소나 부모들의 가정교육 문제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후지하라의 연구. 김정자,1999에서 재인용). 그런 반면 일본 문부성이 위촉한 ‘학급경영위원회’는 ‘교사의 학급 경영에 유연성이 부족’, ‘수업내용과 방법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 ‘이지메 등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늦어짐’ 등과 같이 학교 붕괴 원인의 7할이 교사 지도력의 부족에 있는 것으로 1999년 10월 중간 보고하였다고 한다(김정자,1999).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학교 붕괴는 가정교육 부재와 사회가치관 붕괴로 아이들이 가정에서부터 잘못 키워져 학교에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교사들의 주장은 ‘책임 회피’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하고자 한다.
V. 대책
1. 선행연구자들의 대책
먼저 선행연구자들이 제시한 대책을 들어보도록 하자.
(1) 윤정일
① 교원정책 개선: 파행적인 교원수급정책을 시정하고 우수한 교원으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교원의 정년을 65세로 환원시키되 교직부적격자로 평가될 경우에는 언제라도 교직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교원에 대한 예우가 실질적으로 향상되고 교원존중 풍토가 조성될 수 있도록 이미 예고된 ‘교원예우규정안’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② 일관성 있는 대학입시정책 제도: 대학입시정책과 제도는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정확하게 예측하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유지시키면서 점진적인 개선책을 강구토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나 학부모, 진학을 지도하는 교사가 각 대학의 입시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대학진학정보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각 대학은 과학고를 비롯한 특수목적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며, 정부에서는 과학영재교육 강화를 위한 제도적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③ 수행평가의 성공적 정착 방안 마련: 수행평가는 학생들이 학습과정에서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하는 등 학교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평가이다. 그러나 이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수를 통하여 교사들이 목표지향평가와 수행평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하고, 수행평가가 가능한 과목과 영역에 한하여 실시토록 하되, 교사 1인이 평가해야 하는 평가대상 학생 수를 대폭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④ 교육재정의 확보: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기 위하여 조속히 교육재정을 GNP의 6%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학교교육 붕괴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선진 교육체제를 확립하고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⑤ 학교 공동체의 협력 방안 마련: 학교교육 공동체를 다시 확립하기 위하여는 구성원인 교원, 학부모, 학생이 상호 이해하고 신뢰하며 협력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교사는 교육주체로서 전문성 신장을 통하여 교권을 회복하고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하며, 학부모는 올바른 자녀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권을 존중하며 교원의 편에 서서 학교교육을 지원하고 참여해야 한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학교의 기본 질서를 모두 함께 준수함으로써 학교공동체를 지켜야 할 것이다.
⑥ 언론매체의 협력과 참여: 학교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언론매체의 협력과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학교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신념을 가지고 학교교육 붕괴를 막고 학교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육성, 발전시키는 운동에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⑦ 정치권에서는 교육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어떠한 교육정책과 제도를 자신들의 정당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는 더 이상 교원을 개혁의 대상이나 감시감독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교육개혁의 주체임과 동시에 존경과 우대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부는 교원의 자존심과 권위를 존중하고 교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차원 높은 정책을 수립 실시해야 할 것이다.
(2) 심성보
①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의 결합: 단순히 계층상승을 위해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입시용 지식교육은 일차원적 저급한 지식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다 높은 상위의 지식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식교육이 인격적 지식으로의 발전을 해야 한다.
② 교양교육과 기술교육의 조화: 우리는 입시교육으로 이론적 지식교육이 우위를 차지하고 실제적 지식은 열등한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 인문교육과 실업교육은 결합하여야 한다.
③ 발달주의적 이해와 처방: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항상 성장하는 존재로서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구성주의적 발달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기체로서의 아동은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도와 주며, 자신의 성장(자아실현)을 위해 자율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발달주의적 관점에서 학생의 자긍심(자기존중감)을 길러주는 생활지도와 상담기능이 필요하다. 상벌주의적 행동주의 훈육형 교육관을 벗어나고, 체벌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는 동시에 나아가 공동체적 발달을 도와주어야 한다.
④ 인간적이고 친밀한 교실 분위기의 조성: 학생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교실의 정서적 인지적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이 직면한 내재적 조건을 마련하고,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내용과 교과 주제의 질이나 교수법을 개선하여 학생 모두에 수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교실의 공간(특히 벽)을 정서적 미학적으로 조성하여 인간적이고 친밀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학생 수를 30 여명 내외로 줄이고 학교규모를 학년 당 5학급 이내로 줄이는 작은 학교로 전환하여야 한다.
⑤ 자치문화와 토론문화의 향상: 학생들의 참여 및 학급-학생회간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민주적 자치기구를 조직하도록 하여 활성화하고 민주적 담론문화의 형성이 필요하다. 기성문화와 다른 신세대의 문화를 다름과 차이로서 공존시키는 문화정치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⑥ 학교 및 학교규율의 민주적 제 정비와 실천하기: 규칙과 법에 대한 자발적 순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율의 능력과 자기통제의 능력을 길러주는 효과적인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내가 만들 규칙을 내가 스스로 지키는 자기규율의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학생의 행동을 개선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상호 합의된 계약을 학생들 사이에 제정하거나 담당교사와 학생이 함께 수립하여 지켜나가도록 고무하여야 한다.
⑦ 체험학습과 협동학습의 고양: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활동을 하고, 다양한 놀이문화와 여가문화의 기회를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서로 잘 알게 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소속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협동학습에 의해 발달되는 기능들은 주의 깊게 경청하기, 타인의 관점을 취하기,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기, 갈등을 해결하기,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기 등을 포함한다.
⑧ 참여적 학교운영 모색: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학교가 운영되기보다는 다수의 교사가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다양하게 마련하여야 한다. 물론 지금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부모나 교원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나 많은 경우 통과의례에 불과한 자문 수준에 머물러 있기에 우선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교사의 권한 강화를 통해 학부모회의 활성화를 유도하여 중요한 학교정책의 결정에 중요한 참여를 하여 원활한 학교운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⑨ 새로운 학습법과 교수법의 마련, 교육과정의 자율화 및 교과서의 민영화: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열린교육, 교육과정의 자율화와 교과서의 민영화가 필요하다.
⑩ 구성주의와 수행평가의 성공을 위한 조건 마련: 그 조건은 학급 수를 줄이는 일이나 교사의 자율권의 신장,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쌍방향의 긴밀한 대화구조의 정착, 공정성의 준수, 상호신뢰와 존중의 풍토 조성, 학생들 자신의 자치문화의 신장, 관료주의의 극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⑪ 인권교육의 실시: 학생들의 인권의식과 민주적 시민의식의 함양은 학교의 참여민주적 시민 사회화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물론 인권교육은 자율과 연대, 정의와 배려가 고루 발달된 인간을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⑫ 학생관의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교사상의 요청: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교사상이 필요하다. 교사는 완전하고 학생은 불완전하다고,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기만 한다는 이분법적 사제관은 변화되어야 한다.
⑬ 대안교육의 모색: 학교 밖의 대안학교의 건설 노력과 함께 다수를 차지하는 학교내 공교육(수업, 교과서, 교육관, 학교운영구조 등)의 대안교육화의 노력을 해야 한다.
(3) 윤철경
① 학생중심의 수업체제 및 학생생활문화를 조성하고 학교를 학생 삶의 풍요로운 공간으로 재구성
- 학생참여에 의한 학교규율 개혁과 학생자율 규제 확대
- 학생자치활동 및 인성교육을 위한 수련활동 활성화
- 학생복지공간 및 시설확대
② 교사의 가르칠 의욕 충만과 전문적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지원책 강구
- 정년단축에 상응하는 보상 및 사기진작책 수립
- 교무실을 교과별 연구실체제로 개편 및 자율 출퇴근제 확대
- 영화 및 연극, 서적, 공연․관람시설에 대한 교원패스카드제 실시 등으로 교사문화 체험 확대
- 교사의 학생이해와 수업방법개선을 위한 연수 및 고충상담을 위한 상담소 운영
③ 학생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 욕구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유연화, 학교의 다양화를 추진
- 교육과정의 수시 개정 체제 확립 및 교과서 진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시검정 실시
- 자율학교와 특성화 고등학교 점진적 확대
- 교과목 선택권 및 학교선택권의 확대
④ 학교와 교사가 학교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학교중심개혁을 지원
- 학교운영위원회를 주축으로 ‘학교 비젼 만들기 협의회’를 구성하여 학교자체개혁 프 로그램 작성
- 학교자체개혁 프로그램의 실천성과를 학교평가에 반영
⑤ 교사․학생․학부모․지역사회가 연대하는 따뜻한 학교공동체 만들기 추진
- ‘학교공동체의 날’ 운영
⑥ 학습부진아, 학교부적응아를 위한 대안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시설 설립
- 복교생에 대한 학교적응프로그램 지원 및 의무 이수화
- 학교부적응아를 위한 대안학교설립지원
- 학교장의 학생 입․퇴학권 부활
⑦ 학교붕괴 해결을 위해 전 사회적 노력과 합의가 필요함을 계도
나는 위의 모든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게 하면 학교 붕괴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만 되면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고질적인 문제들은 일시에 해결될 것이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최근 2-3년 사이에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학교 붕괴’ 문제의 해결책으로만 제안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분들이 다른 교육문제의 경우에도 바로 이 의견을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안해 오고 있음을 오래 전부터 보아왔다. 그들의 의견은 모두 옳다.
그러나, 그들이 제안한 대책은 마치 등이 가려운 사람이 왔는데 종합적으로 긁어준다고 하면서 일단 발끝부터 긁어나가는 방식처럼 보인다. ‘결국은 그곳도 긁게 되어있다. 내 방식이 가장 종합적인 해결방식이다. 이렇게 해야만 가려운 곳을 놓쳐 엉뚱한 곳을 잘못 긁는 우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하면서 말이다.
또 어떤 것은 천지개벽을 하면 일이 모두 잘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대책인 경우도 있다. 정부는 교육정책을 잘 세우는 동시에 교육재정을 충분히 확보하고, 학부모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정에서부터 잘 가르치고, 학교 선생님들은 인격적으로는 참 스승인 동시에 인터넷도 도사인 첨단 교육전문가가 되고, 아이들도 자신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개과천선하면 된다는 식의 대책! 그런 말에 대해서 누가 틀렸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학자들이 토론장에서 그런 논의로 왈가왈부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교사와 청소년들은 무너져가는 교실에서 여전한 삶을 견뎌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학교 붕괴’의 원인 분석에서도 그랬었듯이 대책에 있어서도 ‘적확성’과 ‘우선 순위’와 ‘효율성’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동안 누적되어왔던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창한 계획과 그에 따른 천지개벽 식 대책이 아니라 ‘요즘 많은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잡담하고, 자고, 만화책을 본다고 하는 학교 붕괴 문제’만이라도 시급하게 저지할 수 있는 효율적인 대책이 아닐까?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에 빠진 자는 일단 건져 놓고 볼 것이며, 수영 강습은 나중 일이다.
2. 나의 대책
대책에 대해 말해기 전에 지금까지의 논의를 먼저 정리해보자. 나는 앞에서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의욕 상실’이 학교의 기초를 취약하게 했으며, 특히 ‘체벌 금지’가 학교 붕괴의 결정타가 되었다고 했다. 체벌 금지와 학교 붕괴의 관계에 관한 나의 설명 논리를 간략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체벌금지와 학교 붕괴의 관계에 관한 나의 설명 논리>
①모든 유기체는 쾌락을 추구하며, -----> ① 학생들은 미성숙한 인간이므로
고통을 회피한다. 재미있는 것에 더욱 탐닉하고,
사람 역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없는 것은 더 못 참는다
재미없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재미있는 일은(만화보기,
재미있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전화통화,컴퓨터게임,춤추기) 못 하게
스스로 찾아서 하며, 해도 몰래 더 하려 하며,
싫은 것은 강제로 시켜도 싫어하는 일은(모르는 수업 조용히
가능한 한 피하거나, 적게 하려고 한다. 듣기, 졸리운데 참고 있기, 심심한데
잡담 안 하기) 억지로 시켜도 잘
따르지 않는다.
②싫어하는 것을 시키기 위해서는 ---------> ②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싫어하는데,
상과 벌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들을 수업에 참여시키려면 상과
상으로 줄 것이 없을 때는 벌이 유일한 벌이 필요하다. 학교에는 상으로
수단이다. 줄 것이 별로 없으므로 남는 것은
오직 벌뿐이다.
③그런 상황에서 벌마저 사용할 수 없다면, --> ③ 이런 상황에서 벌마저 금하면 학생들
싫어하는 일을 시킬 도리는 없다. 에게 싫어하는 일을 시킬 방법은
없으며, 그 결과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교실은 붕괴된다.
이제 대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한 가지는 방법과 관련된 일시적인 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근본과 관련된 지속적인 길이다.
첫 번째 길은 통제의 수단을 교사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서,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체벌을 다시 사용하게 하는 것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상을 늘리는 것이다. 그때의 상은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라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근본적인 길은 교실에서의 수업을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좋아할 만한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수업 중에 자라고 해도 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길이고 결국은 우리 학교가 해내야만 하는 일이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학교 이외 다른 장소(집이나 게임방 등등)에서는 훨씬 더 재미있는 일들을 더 많이 접하고 있고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고 하겠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잠자고 떠들고, 만화책을 보는 것이 문제라면, 그래서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면, 그들을 가장 빨리 깨우고 정숙하게 하는 데는 일단 매가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3. 체벌에 관하여
교사의 체벌이 부활되면 당장은 학교 붕괴를 막아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체벌을 다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감정적이고 무원칙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다시 허용된 체벌이 과거와 같이 무분별한 폭력의 양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차라리 학교가 붕괴되는 것만도 못한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체벌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체벌이라기보다는 폭행에 가까웠다. 따라서 학생들의 잘못을 교정하기보다는 반발심만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교권을 약화시켰다.
이제부터 지금까지의 잘못된 체벌 관행에 대해 반성적 차원에서 알아보고 올바른 체벌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먼저 무원칙한 체벌에 관한 한 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전 울산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C모 양입니다. 저는 폭력과 체벌의 문제는 모두 선생님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사랑의 매 나눠주기 운동을 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회초리는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고 과거의 잘못된 일을 회상하여, 가령 사고 친 아이들은 전과(?) 때문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1대 맞을 때 3대를 맞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사랑의 매로 생각하여 다음부터 그 선생님을 더 공경하고 잘 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의 편견과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매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기에 고마움과 선생님들의 은혜는 하루하루 잊혀져 갑니다. 선생님들의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 때문에 저희는 더욱 빗나가게 되고 잘못 행해지는 체벌 하나하나 때문에 저희의 마음에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없어집니다.”
(여중생의 글. 인터넷 사이트 ‘10대들의 학교이야기’(www.skyangel.co.kr) 중에서. 2000. 1.29.)
무원칙한 체벌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감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과도한 체벌과 인권 유린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 내가 OO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6년도의 이야기이다. 2학년 3반으로 기억한다. 담임 선생이 학기 초에 학생들의 1학년 성적을 보면서 한 학생에게, 아이들이 보고 있는 교실에서 대놓고 얘기를 했다.
선생: 야! 너는 공부를 한거냐?
학생: ...
선생: 너는 반 평균이나 깎으니까 다른 학교로 전학이나 가라.
학생: 예?
선생: 내가 농담이나 할 것 같냐? 네가 전학 가기 싫어도 내가 전학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할 테니까 버틸 수 있으면 버텨봐?
그때 그 선생의 표정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무적의 전사의 표정이었다. 그 선생은 그 아이를 벌레를 보듯 했고 우리는 자그마한 책상에 앉아서 그를 우러러 봐야만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그 아이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선생은 그 아이를 계속 괴롭힌 것으로 기억한다. 심심하면 불러서 ‘야! 너, 전학 가라. 내가 서류를 모두 준비 해놓았으니까.’ 물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얘기했다. 그 녀석은 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자의가 아닌 타의로 OO고에서 떠나게 됐다.
남보다 우위에 있는 자는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힘이 없는 자는 무시당하고 자신의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었다. 약자는 자신의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요 학교이다.”
(어떤 고교 졸업생의 글. 인터넷 사이트 ‘학교는 죽었다’(myhome.hananet.net/~phoenix77) 중에서. 1999.10.30.)
이 글에서의 교사의 행위는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우리의 학교 현장에는 이런 교사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격도 갖추지 못했으며, 그 중 일부는 성격장애라는 병을 갖고 있는 정신질환자 수준이다. 그것은 무슨 조사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교를 10년 이상 다닌 우리나라 국민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학생들이 장난친다고 백묵을 먹이는 교사(1997년 6월 11일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가 있고, 체벌 받다가 교실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는 학생(1997년 11월 7일 제주의 여고에서 있었던 일)이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교사에게 맞아 고막이 터지는 정도는 너무 많아 뉴스 거리도 못되는 나라이다. 이런 문제 교사들이 어느 학교에나 한, 두 명씩은 있기 때문에 전체 교사 집단이 더불어 매도되고 교권은 실추되어왔다. 폭력 교사의 숫자가 전체적으로 보면 극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이 학생과 교육계에 끼치는 악영향은 결코 작다할 수 없다. 그들이 하루에 학생 한․두 명만을 폭행한다 하더라도 그 피해와 해악은 폭행당하는 학생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장면을 공포 속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일은 금방 잊더라도 나쁜 일은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더구나 충격적으로 당한 모욕적인 일은 평생을 간다. 초․중․고 시절 한두 번이라도 문제 교사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평생 교사들에 대해서는 좋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사 체벌 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많았으며, 그런 식의 잘못된 체벌은 앞으로 절대로 금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무원칙한 구타가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처벌 규정을 미리 만들고 이에 따라 올바르게 체벌을 한다면 더 이상의 교실 붕괴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문 조사에 의하며 학생들도 ‘사랑의 매’라면 체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MBC 청소년백서에서는 ‘학생들이 잘못했을 경우 선생님이 매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어떠한 경우라도 매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81.0%가 ‘때려도 된다.’고 응답했으며, ‘어떠한 경우라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응답은 18.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려도 된다.’는 응답은 1991년의 78.0%에 비해 오히려 3.0% 증가하였다(문화방송, 2000). 충청남도의 조사에서도 학생들의 18.7%가 ‘사랑의 매가 꼭 필요하다’, 57.4%가 ‘가끔씩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87%는 ‘잘못을 해 매를 맞는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중앙일보,2000.3.30.기사 재인용).
물론 교육 방법의 선택은, 체벌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학생들의 찬․반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은 미성숙한 피교육자들의 선호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의 의견과 교육전문가들의 전문적 견해를 종합하여 그것이 피교육자의 성장, 발달에 도움을 주는 교육적 방법인가, 아닌가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교육에서의 학생 중심’ 혹은 ‘흥미 중심’이 마치 교육의 모든 것을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해는 가장 잘못된 이해 방식이다. 그것은 가르칠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은 사회와 학교가 결정하되, 단지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생들이 흥미롭게 그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수업 방식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구성하라는 수업 전략의 기본 원리일 뿐인 것이다. 어쨌거나 학생들마저도 ‘사랑의 매’라면 달게 받겠다고 하니 체벌을 교육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순조로울 수는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참고로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은 27개 주가 체벌 전면 금지, 23개 주는 전면 허용, 또는 부분 허용을 하고 있으며, 스웨덴, 우루과이, 독일의 헤센, 함부르크 주 등은 전면 금지하고 있다(중앙일보,1998.12.17). 그러나, 1987년 모든 공립학교에서 체벌을 금지시켰던 영국은 1996년도에 실시된 2번의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체벌 부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다시 체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조선일보, 1996.12.3.). 체벌을 명문으로 금지한 일본의 경우 근래 체벌 사건 재판에서 ‘사회 상규 상 교육적 필요’라고 인정되는 체벌은 교육적 행위로 본다고 판결하고 있다(중앙일보, 1998.12.18). 체벌을 허용하는 나라나 주라 해도 교사가 자기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니고, 모두 엄격한 체벌 규정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VI. 나가면서
학교를 다시 세우는 데는 ‘교권 회복을 통한 교사들의 사기 앙양과 의욕 고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다수의 교사들(66.5%)도 학교붕괴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교사의 권위회복’이라 생각하고 있다(윤철경,1999). 지금까지 학교 때리기에 몰두했던 교육부, 매스컴, 학부모들은 이제부터는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사들이 힘이 빠져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는 데야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교사들도 이전과는 달라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사 집단은 동료애라는 비합리적 감정으로 폭력을 일삼는 부적격 교사를 무조건 보호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을 교단에서 몰아냄으로써 자신들의 무너진 교권을 스스로 회복하여야 한다. 그것이 전문직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한국교총을 위시해 어떤 교사집단도 정년단축 같이 자신들의 이해가 달렸을 때만 단결했을 뿐 스승답기 위한 진지한 자체 정화 노력은 보인 적이 없다. 그런 점도 앞으로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장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하니 급한 대로 일단은 넘어지는 건물에 지지대라도 대어 붕괴만은 막고 보아야 할 것이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 와서 기둥은 못 잡아 줄망정, 애초부터 터를 잘 못 잡았다느니, 부실 공사할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느니, 나에게 시간과 돈만 주면 이전보다 더 튼튼한 집으로 다시 지어주겠다느니 하는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야속한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시급한 비상조치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매번 비상조치로만 때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체벌은 학생들을 교실에 억지로 잡아두고 꼼짝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들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올바른 체벌이라도 학교 붕괴를 현상적으로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을 뿐 학생들의 참된 학습을 조장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단지 응급조치일 뿐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내가 은근히 바라건대는,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대며 관심을 갖게 된 이 기회에, 단지 교실의 갈라진 틈만 일시적으로 매워서 그냥 저냥 외형만 유지하게 하는 미봉책만을 강구할 것이 아니라, 앞에서 들어보았던 우리 학생들의 불만과 고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개혁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학교는 억지로 가야만 하는 곳이고 교실은 체벌이 무서워 할 수 없이 침묵 속에 잡혀있어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하루하루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쳐나가는 참된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 당위가 아닌가? 선행연구자들의 ‘한국 교육발전 종합방안’은 우리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 붕괴’라는 위기가 오히려 우리 교육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시발점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참고 문헌
김정자(1999), ‘일본의 학급붕괴와 대응 방안’, 학교붕괴 실태 및 대책 연구(윤철경), 한국 청소년개발원.
경향신문, 1999. 5. 7. 기사.
경향신문, 1999. 5. 9. 기사.
문화방송(2000), MBC 청소년 백서 2000.
시사저널, 1999. 9.23. 기사.
신동아, 1999. 3월호 기사.
심성보(1999), ‘교육개혁의 오류와 교실붕괴의 공동체적 극복’,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 가: 학교붕괴의 원인과 진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천위원회 토론회.
옥선화,정민자(1992), 결혼과 가족. 서울:하우.
윤정일(1999), 학교교육 붕괴의 종합 진단과 대책,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 주최, 한국교 원단체총연합회 주관 토론회.
윤철경(1999), 학교붕괴 실태 및 대책 연구, 한국청소년개발원.
임연기(1998), 교육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 한국교육개발원.
전종호(1999), ‘학교붕괴 현상에 대한 교육주체의 의식 조사 연구’,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학교붕괴의 원인과 진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천위원회 토론회.
조선일보, 1996. 8.28. 기사.
조선일보, 1996.12. 3. 기사.
조선일보, 1998.12.25. 기사.
조선일보, 1999. 1,27. 기사.
조선일보, 1999. 8.23. - 8.31. 기사.
조선일보, 2000. 3.13. 기사.
주간조선, 1999. 2.24. 기사.
중앙일보, 1998.12.17. 기사.
중앙일보, 1998.12.18. 기사.
중앙일보, 1999. 1.17. 기사.
중앙일보, 1999. 3.30. 기사.
한겨레신문, 1998.11. 2. 기사.
한겨레신문, 1998.12.16. 기사.
한겨레신문, 1998.12.24. 기사.
한겨레신문, 1999.10.31. 기사.
한겨레신문, 2000. 2. 2. 기사.
http://myhome.hananet.net/~phoenix77
http://webtutor.shinbiro.com
http://www.moe.go.kr
http://www.skyangel.co.kr
첫댓글 교수님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