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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24일 (화) - 아들이 둘, 걱정도 두 배
4월 16일 둘째 아들 선빈이가 태어나 요즘 더욱 분주하다. 이제 막 3 돌이 지난 선우와 놀아주고 태어난 지 한 달 갓 넘은 둘째도 먹이고 씻기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느라 하루해가 짧다.
오늘은 앞 동에 사는 상훈이라는 선우 동갑내기가 엄마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선우가 제 장난감을 잘 안 빌려주려고 해서 싸웠다고 한다. 선우는 지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아빠, 엄마와 같은 어른들하고만 지내 와서 제 또래하고는 잘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아내와 함께 했다. 아이는 아이들끼리 같이 잘 놀아야지 어른이 놀아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놀이방을 보낼까, 유치원이나 유아원에 보낼까도 상의도 해보았다. 아직은 결론을 못 내렸는데 당분간 선우를 지켜보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1994년 5월 25일 (수) - 선빈이의 설사
선빈이가 저녁 6시 이후로 5 번 설사를 했다. 요즘 계속 속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자주 설사를 하니 얼마나 괴로울까. 참 걱정이다. 아마도 엄마 젖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 때 선우를 데리고 럭키수퍼에 가서 남양분유 호프 A를 사왔다. 그 동안은 엄마 젖도 먹이고 남양분야 로얄 A와 남양분유 호프 D를 섞어서도 먹였다. 남양분유 호프 D는 너무 뻑뻑해 잘 빨아먹지를 못한다. 그 분유는 신제품이라는데 아무래도 잘 못 만든 것 같다. 당분간은 호프 D와 엄마 젖은 안 먹이고 호프 A만 먹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설사가 잡히면 좋겠는데.... 선빈이는 10 시쯤 목욕한 후 우유 120cc 먹고 지금은 잘 자고 있다. 선빈이는 선우보다 더 잘 먹어 키우기가 수월한 느낌이다. 둘째다 보니 우리도 좀 더 베테랑 부모가 되어서일까? 사람들 말이 둘째는 첫째보다 키우기가 쉽다고들 하던데 낳기 전에는 정말 그럴까 싶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설사 할 때만 빼고.
1994년 5월 26일 (목) - 선우를 굶기다
선우는 오늘도 저녁을 먹다 말았다. 저녁을 먹는 중에 밥에 섞어 넣은 콩을 골라내려고 하기에 못하게 했더니 안 먹겠다고 심통을 부린다. 먹지 말고 방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한참 시간이 후에 배가 고프다고 한번 말하기는 하던데 나도 마음 독하게 먹고 ‘네 밥까지 아빠가 다 먹어버려서 없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밥하면 그때 먹으라고 했더니 화가 나서 ‘밥 다시 하면 되잖아’ 하며 따진다. 그럴 수 없다고 하고 결국 안 주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눈치를 보니 선우 놈도 ‘이게 아닌데.... 영 겁나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모질게 대한 것이 교육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
선우는 근 두 달간 할머니 댁에 가 있다가 일주일 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선빈이 출산과 아내 산후 조리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그 동안 장모님이 와 계셨다. 할머니 댁에 가 있는 동안 선우는 버릇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모두 제 기분에 맞춰주니 혼자 잘 먹던 밥도 누가 떠먹여 주어야 위세 부리며 몇 숟가락 받아먹는 등, 떼만 늘 대로 늘었다. 그냥 놔두면 습관이 나빠질 것 같아 일부러 내가 좀 엄하게 하고 있다. 효과가 있겠지. 그런데 내 마음이 많이 안 좋다. 자식 밥 굶기는 것이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인지 몰랐다.
선빈이 설사는 오늘 많이 좋아졌다. 어제 밤에 2 번, 오전에도 2 번 설사했는데 오후에는 1 번밖에 똥을 누지 않았고 또 변도 좋아졌다. 내일은 더 좋아질 걸로 기대한다. 어제부터 젖을 안 먹이고 남양분유 호프 A만 먹이고 있는데 역시 모유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 아예 젖을 끊어야겠다. 아내는 선우 때도 젖을 오래 먹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선빈이 목욕도 못 시켰구나. 두 놈에게 시달리다보면 한두 가지는 잊거나 빼먹고 지나가게 된다. 선우에게 동화책 ‘아기 코끼리 덤보’를 읽어주다 보면 선빈이가 깨서 울고, 선빈이를 우유 타서 먹이고 겨우 재우고 나면 또 선우가 플라스틱 토막짜기 장난감을 가져와 같이 놀자고 한다. 두 녀석의 요구를 번갈아 들어주다 보면 하루해가 후딱 간다. 그나마 선우가 선빈이를 해코지하지 않아 다행이다. 똑똑하고 눈치가 있는 녀석이라 무지막지하게 행동하거나 부주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 동생이라고 귀여워하는 것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지금 자정이 넘었다. 둘 다 잠든 후부터가 내 시간이다.
1994년 5월 27일 (금) - 선우와 산책
저녁 먹은 후 선우와 노원역 앞에까지 산책 다녀왔다. 중간에 7단지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다. 그때까지 선우는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내가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엄마는 선빈이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으니까. 한참 뛰어 놀 녀석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으니 답답해서 짜증이 날 것이다. 나간 김에 일부러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왔다. 그랬더니 집에 오자마자 손발 씻고 잠옷 갈아입고 - 물론 내가 다 해주었다 - 11시쯤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 앞으로는 선우를 더 자주 데리고 나가야겠다.
선빈이는 아직도 똥을 자주 눈다. 설사는 아니지만 완전히 좋은 상태도 아닌 것 같다. 빨리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선빈이는 오늘도 목욕을 안 했다. 이틀째 건너뛴다. 아침에 아내가 선빈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 듯하다 해서 오늘은 일부러 안 시켰다. 저녁에 보니 감기는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1994년 5월 30일 (월) - 선우 귀를 후벼주다
오늘 선우 귀에서 귀지 큰 것을 빼냈다. 선우 태어난 이후로 귀를 처음으로 후벼주었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선우 귀에 귀지가 꽉 막혀서 잘 안 들릴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어떡할까, 이비인후과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성냥개비를 칼로 귀이개처럼 깎아서 선우 TV 보는 동안 얌전히 있으라고 이른 후 살살 파주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다. 과연 큰 것이 나오더라. 그렇게 큰 귀지는 처음 봤다. 꼭 소화제 생위단 크기만 했다. 내가 다 속이 시원하다. 파주기를 정말 잘했다.
선빈이 변은 완전히 좋아졌다. 다행이다.
1994년 5월 31일 (화) - 세숫대야에서 목욕시키기
벌써 자정이 넘었다. 방금 선빈이를 목욕시켰다. 몸이 얼마나 작은지 세숫대야에서도 목욕이 가능하다. 오늘은 시간이 늦고 아빠 엄마도 피곤하여 큰 목욕통을 사용하지 않고 대야에서 약식 목욕을 했다. 세숫대야 2 개에 물을 담아 한 개는 몸을 담가 씻기고 다른 한 개는 머리를 감기면 딱 맞다. 나중에 생각하면 저 조그만 대야에서 어떻게 목욕을 했을까, 싶을 것이다. 4 살 선우만 하더라도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 아내는 선빈이 몸을 닦고 분 바른 후 옷을 입히고 있다. 선빈이도 시원하겠지. 애비 마음이란 것이 아이가 밥을 잘 먹으면 내 배가 부른 것보다 좋고, 아이가 잘 씻으면 내가 목욕한 것보다 더 개운하다. 선빈이는 역시 순둥이다. 배고플 때, 똥 오줌 누었을 때 말고는 울지 않는다.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면 하루 종일 자기만 하는 것이 매우 편안하고 안정된 성격이다.
1994년 6월 1일 (수) - 선우의 성장
선우가 요즘 정말 많이 컸다. 몸도 그렇지만 말과 행동이 이제는 꼭 어린이 같다. 집에서는 떼를 부리기도 하지만 밖에 나가면 말썽도 안 부리고 의젓하게 행동한다. 기특해 죽겠다. 그래서 자꾸 밖에 데리고 다니고 싶다. 그러는 게 저도 엄마, 선빈이와 하루 종일 집안에 있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오늘 선우는 저녁 9시 넘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요즘 낮잠을 안 자고 일찍 잠자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대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난다, 엄마, 아빠보다도 더 일찍. 요즘은 선우를 위해 아침 7시 40분 MBC ‘뽀뽀뽀’, 8시 KBS 1 ‘하나 둘 셋’, 8시 20분 KBS 2 ‘혼자서도 잘해요’를 모두 녹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보다 교육적이어서 선우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걸 매일 보니 선우 행동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녹화해야겠다.
1995년 8월 22일 (화) - 선우를 잃을 뻔하다
그저께 (20일, 일요일) 광주 처갓집에 다녀왔다. 장인, 장모, 둘째 처남 가족, 셋째 처남 가족, 동서 가족, 우리 가족 다 함께 비가 약간 오는 날씨에도 화순을 조금 지난 사평이란 곳의 개울로 물놀이를 갔다. 거기서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 일이 일어났다. 어른 가슴 정도까지 오는 물에서 아이들이 놀고 나는 물 밖에서 선우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튜브를 타고 놀던 선우가 물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은 그리 깊은 곳은 아니며 선우는 튜브만 있으면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너무 잘 노는 아이라 곧 다시 안정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는데, 머리가 몇 번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안 나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선우가 빠진 곳까지 거리가 꽤 멀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선우 근처를 지나고 있는 청년들이 있어 내가 멀리서 ‘거기, 아이! 거기, 아이!’하고 소리를 쳤으며, 그 두 사람은 내 고함소리를 듣고 선우를 물속에 건져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선우를 막 건져 낸 순간이어서 얼른 받아 안았더니 생각보다 크게 다치지도, 놀라지도 않은 상태여서 일단 안심을 하였다. 선우가 물속에 빠져있던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또 선우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가서 살펴보니 그곳에는 바닥에 커다란 토관이 묻혀 있어서 그곳으로 물이 빠져나가느라 물살이 빠르고 다른 곳에 비해 꽤 깊었다. 잘 뚫려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 중간이 돌로 채워져 있어서 만약 선우가 아무도 안 볼 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면 살아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개울가에 앉아 선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면 애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체 잃을 뻔했다. 선우가 그리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선우 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멀리 떨어져 있던 나 혼자만 보았던 것이다. 또 그때 우연히 그 청년들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쳐 우리 선우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 게 그때 놀랬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뒤로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만약 선우가 사고를 당했더라면 어땠을까? 정말 나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선우가 없는 우리 가족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고 나니 왜 그렇게 선우가 더 대견하고 기특하고 예쁘게 보이던지. 괜히 선우를 불러 물에 빠졌을 때 어땠는지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을 뿐만 아니라 선우 얼굴도 쓰다듬어보고 어깨도 주물러보고 하였다. 선우 말이,
“물에 들어가 보니 올챙이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요. 무섭긴 무서웠어요.”
라고 한다. 애고, 딱한 녀석! 아버지가 좀 더 가까이 따라다니며 더 잘 보호했어야만 했는데. 미안하다, 선우야.
그 날 나는 물에서 급하게 뛰어가느라 슬리퍼 두 짝을 다 잃어버렸다. 집까지 맨발로 돌아왔지만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아들이 살았다. 앞으로 8월 20일은 선우가 다시 태어난 두 번째 생일이다. 이번 일이 액땜이기를 바라며 앞으로 선우가 더 튼튼하고 씩씩한 아이,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에서 잘 노는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란다. 정말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을 살려주신 신이시어!
1995년 9월 11일 (월) - 아바! 아바!
선빈이가 갈수록 더 귀엽다. 아주 장난꾸러기이고 고집쟁이인데 그래도 너무나 귀엽다. 사람들을 잘 따르고 명랑하고 씩씩하다. 온종일 밖에 나가자고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어른들이 힘들다. 제대로 하는 말이라고는 ‘엄마’ 한마디뿐인데도 손짓 발짓 몸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아주 잘 전달한다. 말귀도 잘 알아들어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거의 다 이해하는 것 같다.
어제 밤 마산 내려오느라 집을 나서는데 11층 복도에서 ‘아바, 아바’(‘아빠’라는 말) 하고 얼마나 크게 소리 지르던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에 혼자 집을 나서려면 보내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가는 나도 마음이 영 좋지 않다. 이래저래 빨리 이사를 내려와야 할 텐데. 어제 오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추석을 보내고 아버지가 우리 네 식구를 상계동 집까지 태워다 주셨다. 선우는 다시 할머니 댁으로 가겠다고 졸라서 다시 할아버지, 할머니 따라 미아리로 되돌아가고 우리 집에는 아내와 선빈이만 있었다.
선우는 요즘 살이 쪽 빠져서 얼굴이 반쪽이 됐다. 몸이 허약한 것 같지는 않은데 키 크느라고 그런가, 아니면 ‘텐텐’인가 하는 어린이 영양제를 먹이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중단해서 그런가. 얼굴에 살이 빠지니까 예쁜 모습이 많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살이 포동포동해야 뽀얗고 귀여운데. 다시 그 영양제를 사다 먹여 봐야겠다.
1995년 10월 24일 (화) - 아이들 한 방에 따로 재우기
직장에서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하니 선우가 보일러 컨트롤러에 손을 대서 작동이 안 된단다. 전화기, 오디오, 보일러... 안 만지는 것이 없다. 뭐든지 만져서 망가뜨려놓는다.
그래도 요즘은 처음 마산으로 이사 왔을 때에 비하면 말썽을 덜 부리는 편이다. 오히려 제 방 장난감도 말끔하게 정리하는 등 놀랄 만큼 발전했다.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펼쳐 놓고 위에서 놀기에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 했더니 다시는 하지 않는다. 오디오, 전화기도 만지지 말라고 하니 그 말도 잘 듣는다. 보일러 컨트롤러는 빠뜨리고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인가? 퇴근하면 그것도 손대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다행스럽고 기특한 건 선우, 선빈이가 매우 사이가 좋다는 거다. 둘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선우가 동생을 괴롭히지 않고 잘 데리고 놀기 때문이다. 둘이 같이 뛰고 뒹굴며 별일도 아닌 일에 깔깔대는 걸 보면 부모로서 가슴이 뿌듯하다. 애가 하나였다면 어땠을까? 꽤나 안됐을 것 같다. 둘이니 이렇게 먼 곳으로 이사와도 외로운 줄 모르고 지내는 것이지 만약 혼자였다면 아이도 부모도 모두 힘들었을 게다.
며칠 전부터는 둘을 한 방에서 저희들끼리 재우는데 그것도 하나였으면 못했을 거다. 아이들을 따로 재우면서부터는 밤새 거실에 불을 켜놓는다. 몇 번은 선우가 한밤중에 일어나 우리 방으로 왔다. 모기에 물려 가려워서 깬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일어나 선빈이가 혼자 자고 있는 방으로 가 함께 잤다. 선우는 엄마 옆에서 자고.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선빈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 아내가 놀라서 달려갔다. 얼마나 혼자 울었는지 우리 방으로 데려오니 계속 흐느끼는 것이 꽤 오랫동안 울었나 보다. 마음이 아팠다. 아마 배가 고파서 깼던 모양이다. 아내가 우유를 먹이니 잘 먹고 엄마 옆에서 다시 잠들었다. 새벽에 또 선빈이가 일어나 이번에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저희들 방으로 건너가 거기서 셋이 잤다. 끝인가 했는데 이번에는 선우가 일어나 우리 방으로 와 내 옆에서 잔다. 요즘에는 이렇게 전 가족이 밤새 몇 번씩 방을 옮겨 다니고 있다.
밤중에 선빈이가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아침에 보니 명랑하게 노는 것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방에 혼자 있지 않고 옆에 형이 함께 있으니 덜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도 두 아들은 계속 저희 방에서 따로 재울 생각이다. 내년 1월에는 셋째가 태어날 예정인데 그때를 대비해서 둘이 같이 놀고 같이 자는 습관을 미리 들여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옆에 같이 있어주고 잠든 후에는 거실 불을 켜두고 방문을 열어 놓아 새벽에 깼을 때 언제든지 우리 방으로 올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늘 새벽에는 추울 것 같아 아이들 방문을 닫아 놨더니 문을 못 여는 선빈이가 중간에 깨서 불상사가 일어났다. 어젯밤 추웠던 것도 선우가 보일러 컨트롤러에 손을 대서 그랬던 거다. 지금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아내에게 전화해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지금 직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1995년 10월 29일 (일) - 경남대 가서 놀다
아침 먹고 치우니 오후 2시 다 되어 가까운 경남대에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에 선우에게 어지른 장난감을 다 정리해야 데려간다고 했더니 저도 안 간다고 뻗댄다. 버릇을 고쳐놓으려고 문 닫고 나서는 척 했더니 놀라 울면서 ‘선빈아, 빨리 치워. 아버지 가신단 말이야’ 하며 열심히 치운다. 우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픈 한편 선빈이를 설득해서 같이 치우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경남대에서는 연못가에서 잠자리 2 마리 잡고 거위도 보고 잔디밭에서 축구를 했다. 선빈이는 유모차 속에서 잠이 들었다. 아내가 안내판에서 포스터를 보고는 대학 연극부에서 공연하는 ‘한여름 밤의 꿈’을 보자고 하여 4시 10분부터 연극을 보았다. 아이들이 의외로 얌전하게 있었다. 오히려 내가 졸립고 지루해서 5시 15분쯤 나왔다. 그 후 학교 운동장에서 지하수를 떠서 집으로 돌아왔다.
1995년 11월 13일 (월) - 새로운 양육대책
주말 동안 선우를 많이 야단쳤다. 밥도 잘 안 먹고 집안을 너무 어지를 뿐 아니라 쉬지 않고 별별 걸 다 물으며 계속 말을 시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야단치고 나니 나도 마음이 안 좋다. 주말에 쉰 게 아니라 시달리기만 한 것 같다. 오죽하면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해방감을 다 느꼈겠나?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선우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다. 이제 대책을 새로 세워야겠다.
① 아이들 방은 저희 맘대로 어지르고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허용하자. 아들 방에 장난감을 두니 우리가 매일 밤 방 가득 늘어놓은 장난감을 치우고 잠자리를 펴주느라 정말 힘들었다. 아직 애들 침대가 없다. 차라리 애들 방은 어지른 상태로 놔두고 아이들을 우리 방에서 재우자.
②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 거실에 나와서 자자. 그러면 밤마다 아이들 방을 안 치워도 되니 ‘장난감 치워라, 치워라’ 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도 없어질 것이다.
→ 상계동에 방이 두 개 밖에 없을 때 아이들이 거실 한 가득 장난감을 어질러도 하루 몇 번 씩 치우며 살지 않았던가? 아이들 방을 침실이 아니라 놀이방으로만 사용하면 낮에 맘대로 놀며 어질러도 밤에 치우지 않아도 되니 우리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아직은 아이들도 우리와 한 방에서 자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 거실로 나와서 따로 자자.
③ 목욕은 날을 정해 내가 아들들과 함께 한다. 아이들은 목욕을 핑계로 주로 물놀이를 한다. 아들 목욕은 내 담당이니 앞으로 일주일에 2 번 이상 함께 목욕하겠다. 화요일과 토요일을 생각하고 있다.
목욕할 때 애들이 장난감을 많이 들고 오는 것도 고치도록 하자. 이제까지는 목욕할 때 마다 먼저 선우가 탕 속에 자동차와 블럭을 통째로 퍼 넣어 사람이 들어갈 자리도 없고 또 몸에 배겨 짜증이 났다. 목욕 후에는 치우는 것도 힘들 뿐 아니라 장난감 속에 들어간 물이 계속 세어 나와 방바닥을 적시는 것도 문제였다. 앞으로는 선우를 설득해서 장난감은 3∼4 개만 가져오게 하자.
④ 아이들과 집 앞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자주 하자.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매우 좋아한다. 내 보기에 모래 놀이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은 것 같다. 한 동안 날씨가 추워 밖에 안 나갔는데 앞으로는 멀리 가는 것보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자주 해야겠다.
⑤ 아이들에게 KBS 1에서 아침 8시부터 20분 간 방영하는 ‘하나 둘 셋’과 KBS 2에서 8시 25분부터 20분 간 하는 ‘혼자서도 잘해요’를 매일 녹화하여 보여주자. 아이들은 비디오테이프 보는 시간이 많은데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해서 보니 재미도 없고 교육적으로도 안 좋은 것 같다. 그 두 개 프로는 교육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것이니 미리 예약 녹화를 해서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그걸 보게 해야겠다.
⑥ 주말에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오전 일찍부터 움직이자. 아무 생각 없이 뒹굴다가 오후 늦게야 아무 데나 가보자고 나서니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쌓이기만 한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자주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자. 하다못해 인근 경남대 운동장에 가서 축구라도 하자.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풀릴 것이다.
⑦ 아이들에 대해 지나게 걱정하고 관여하지는 말자. 선우는 특히 예민하고 의존적인 성격이다. 앞으로의 자립을 생각하면 과보호는 결코 좋지 않다.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게 훈육하자. 옛말대로 자애로우면서도 엄한 부모가 되자.
⑧ 그러려면 내가 먼저 생활 리듬을 만들어야겠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과 놀 때는 재미있게 놀고 글 쓸 때는 성실하게 쓰는, 그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
⑨ 날씨가 좀 춥더라도 아이들과 밖에서 노는 일을 꺼리지 말자. 조금만 추우면 내가 먼저 움츠리며 집안에서만 뒹굴었는데 앞으로는 용기를 내 아이들과 밖으로 뛰어나가자.
이 계획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아내의 생각과 바람도 반영하도록 하자.
1995년 12월 19일 (화) - 우리 집은 남해콘도!
퇴근하니 아내가 누워있다. 귀가하면서 사들고 간 식빵에 버터 발라 대령하고 아이들에게는 딸기잼을 발라 먹였다. 집안은 정신없이 어지럽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한다.
그러나 곧 이렇게 생각을 바꿔 먹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화낼 이유가 뭐가 있나? 우리 집처럼 전망 좋은 집이 어디 있겠나? 바닷가의 콘도 같지 않은가? 지금은 짜증낼 때가 아니라 즐길 때다. 아이들은 즐겁게 잘 놀고 있다. 아무런 부족함을 모른다. 좀 지저분한들 대순가! 나중에 슬슬 치우면 되지. 지금 여기는 남해콘도고 창밖의 바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래, 여유를 갖고 즐기자. 아이들과 신나게 놀자. 귀여운 내 새끼들.’
이렇게 마음먹으니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행복해진다. 그래, 그렇게 마음먹자.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부터는 뭐라도 좀 써봐야겠다. 특히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여주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과 행동들을 많이 기록해야겠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이 시절이 얼마나 그리울 것이며 글로 써놓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쉽겠는가?
요즘 선우는 아주 의젓해져서 유치원에 잘 다니고 동생들도 잘 보살핀다. 기특하다. 선빈이는 한참 말을 배우고 있으며 선형이도 점차 똘똘해져서 엄마 아빠 얼굴 보면서 잘 웃고 낯가림도 슬슬 시작하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힘들지만 덕분에 아이들 모두 예쁘게 자라주고 있다. 아내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참 편안하다’고 말한다.
1996년 7월 2일 (화) - 선우 따라하는 선빈이
얼마 전부터 선빈이는 형 - 선빈이는 선우를 ‘녠녜’라고 부른다. ‘형님’이란 뜻. 형님 발음이 어려워 돌 지난 후부터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다. - 이 하는 대로 모든 행동을 따라한다. 선우가 누워서 TV 보면 저도 누워서 TV 보고, 세수하러 가면 따라가서 같이 씻고, 선우가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면 저도 뒤따라가면서 소리 지르고.... 그러다가 뒤돌아 뛰어오는 선우와 부딪혀서 뒤로 넘어져 울기도 하고.
선우가 유치원에서 배운 태권도를 집에서 시범 보일 때는 옆에서 선빈이가 더 열심이다. 형님이 주먹을 내지르며 ‘태권’, ‘태권도’ 하면 ‘애껀’, ‘애껀도’라고 따라하고, 발차기하면서 ‘야!’ 하고 소리치면 저도 야무지게 ‘야!’ 하면서 발을 뻗는다. ‘야’ 소리는 선빈이가 더 크다.
선빈이에게 선우 형님은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다. 선우가 제 말을 안 들어주거나 괴롭히면 울면서 형에게는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만만한 아빠에게 화풀이를 한다. 형한테 시달림을 받고서는 애꿎게도 내 팔을 물거나 때리려고 한다. 그야말로 한강에서 뺨맞고 동대문에 가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우리 애들은 그래도 함께 잘 노는 편이다. 형은 동생을 잘 데리고 놀고 동생은 형을 잘 따른다. 놀이터 같은 곳에서 다른 아이가 선빈이를 괴롭히려고 하면 선우가 정의의 사도처럼 짠하고 나타나 동생을 막아준다. 그런 모습은 부모를 흐뭇하게 한다.
그런 걸 보면 첫째를 잘 키우면 동생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96년 7월 4일 (목) - 선빈이 바지 입기
선빈이는 생후 1년 반쯤부터 대소변을 혼자 보는데 용변 후에는 한 손으로 바지 중간을 잡고 끌어올린다. 그러다 보면 윗부분은 제대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 바짓단은 너무 높게 깡총하게 끌려올라간 꼴이 된다. 내가 ‘바지 다시 잘 추켜 입어야지’ 하면 두 손으로 또 중간을 잡고 발뒤꿈치까지 들면서 용을 써가며 끌어올린다. 그래봐야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자꾸 해보라 하게 된다.
1996년 7월 5일 (금) - 해적놀이, 악어놀이
선우는 요즘 ‘해적 놀이’를 즐긴다. 애비라고 나를 꼭 ‘일 대장’을 시켜준다. 선우 자신은 ‘이 대장’이고 선빈이는 ‘삼 대장’이란다. 엄마도 참여시킬 때는 ‘이 대장’도 엄마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삼 대장’으로 스스로 강등한다. 선빈이는 물론 자동적으로 한 단계 더 떨어진다. 선빈이는 아직 서열을 이해 못하므로 항의 같은 건 없다. ‘해적 놀이’라고 별 건 없다. 놀이터에서 일 대장이 앞장서서 걸어가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상의 해적과 칼싸움을 하는 척만 하면 된다. 이 대장, 삼 대장, 사 대장은 뒤를 따르다가 같이 싸운다.
선우는 미끄럼틀에서 하는 ‘악어’나 ‘상어’ 놀이도 즐긴다. 저는 밑에 있고 나는 선빈이를 안고 미끄럼틀 위의 발판에 올라간다. 내가 위에서 ‘야, 악어 씨!’ 하고 부르면 선우는 미끄럼판 위를 맨발로 올라와 내가 있는 곳 바로 아래까지 와서 ‘우왁’ 하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으악’ 하면서 놀라는 척 뒤로 물러서고 저는 다시 미끄럼틀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선빈이도 그 놀이를 좋아하는데 형님이 연기하는 악어가 너무 무서워 나에게 찰싹 안겨 붙는다. 악어가 올라올수록 긴장이 점점 심해지고 악어가 ‘우왁’하면 몸을 나에게 더 바짝 붙이면서도 깔깔깔깔, 아주 자지러진다. 아이들은 신기한 게, 재미있는 것도 한두 번일 텐데 똑 같은 걸 5번이고 10번이고 계속 반복할 뿐만 아니라 반응도 매번 똑같다. 비디오테이프도 똑 같은 걸 10번, 20번, 30번을 보고 또 본다. 매번 집중해서 보면서 똑 같은 장면에서 똑같이 웃는다. 꽤나 싱거운 녀석들이다.
1996년 7월 6일 (토) - 기려고 하는 선형이
선형이는 여전히 얌전하다. 나만 보면 잘 웃는다. 한 달쯤 전부터는 엄지손가락을 빤다. 특히 잠들기 전에 많이 빤다. 아내 말로는 선우, 선빈이도 그만할 때 그랬단다. 선우 때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조금 있느니 안 하더라며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아이를 3 명 째 키우니 조금은 베테랑 느낌이 난다.
또 얼마 전부터는 아빠, 엄마를 보면 기분 좋다고 무슨 소린가를 지른다. 이제까지 울 때 말고는 소리를 낸 적이 없다. 웃을 때도 소리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더니 이제는 제법 소리를 낸다. 꽤 큰 소린데 글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요 며칠 간은 기려고 노력 중이다. 아내 말로는 조금 긴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뒹굴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수준이다. 요 위에 눕혀놓으면 조금 후에는 벌써 내려와 다른 곳에 가 엎드려있다. 그렇게 이동을 한다. 며칠 후에는 길 것 같다.
아직 보행기를 태우지 않았는데 아내 말이 이제 태울 때가 되었단다. 창고에서 꺼내야겠다.
1996년 7월 8일 (월) - 아이들의 언어발달
선우는 한글을 한 자, 한 자 배워나가고 있다. 어제 지리산 대원사 계곡 다녀오는 길에 도로변의 꽤 많은 글자를 읽었다. 도로공사의 ‘공사’, 경상남도의 ‘경상O도’ 같은 것. 집에서는 가르친 적이 없는데 유치원에서 배운 걸까? 친구들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면서 한 자 한 자 읽기 시작한 것이 한두 달 전이다. 재미있는지 아는 글자만 눈에 보이면 큰 소리로 읽는 것이 조만간 한글을 깨칠 것 같다. 까막눈이 눈을 떠가고 있다.
선빈이는 입이 떨어지고 있다. 갑자기 말이 되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벙어리 손짓발짓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의사소통이 곧잘 된다. 선빈이의 말솜씨는 이렇다.
‘아저씨가 이 놈 해’ → ‘아치치, 이 몸 해’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가 제 장난감을 만지려하여 겁을 줄 때)
‘아기 웃어’ → ‘아기 우쳐’
(선형이가 웃는 것을 보고)
‘안 놀아’ → ‘안 노아’
(엄마한테 화가 나서 엄마하고 안 논다고 위협할 때)
‘읽어’ → ‘일커’
(엄마에게 책을 읽어 달라면서)
‘잠깐’ → ‘간깜’
(내가 일하러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 할 때 잠깐 멈춰 저를 보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앉아’ → ‘아차’
‘일어 서’ → ‘일어 처’
1996년 7월 9일 (화) - 선빈이의 성격
선빈이는 선형이를 좋아하는 건지 뭔지 누워있는 선형이가 곁에 엎드려 얼굴을 만지기도 하고 발로 툭툭 밀기도 하고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선형이는 귀찮아 얼굴을 찡그리다가 결국 울어버린다. 내가 가서 선형이를 안으면 큰 목소리로 ‘내꺼야, 이리 조’ 하며 아기를 내려놓으라 한다. 선형이가 제 것이라는 거다. 건방진 놈! 선형이가 어찌 제 것인가?
선빈이는 또 요즘 뭐든 혼자 하겠다고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내가 바지를 기껏 입혀놓으면 기어코 벗어서 제가 다시 입는다. 바지 가랑이에 발도 제대로 못 넣으면서 끝까지 혼자 하겠단다. 시간이 급할 때는 보는 우리가 속이 타고 안달이 난다.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는 타고 나나 보다.
선빈이는 또 깔끔하다고 할까, 강박적이라 할까, 그런 특성이 있다. 선우하고는 다른 점이다. 서랍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는 항상 다시 꼭 닫고, 우유를 마신 후에도 팩 주둥이를 원래 있던 대로 닫아 놓는다. 선우는 그만할 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6년 7월 13일 (토) - 아이들 열병으로 병원 가다
선우, 선빈, 선형이가 돌아가며 몸에 열이 나고 열꽃이 피어 걱정이다. 먼저 선우가 감기 기운이 있는 듯 했는데 곧 괜찮아지고 지난 주 수요일부터는 선빈이가 열이 높고 온몸에 열꽃이 피더니 곧 선형이도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선우가 먼저 감기 걸렸다가 괜찮아지고 나면 곧 동생들이 더 심하게 앓고 고생하는 건 매번 그렇다. 약국에서 약 - 부루펜 시럽, 서스펜 좌약 - 을 사먹이다가 결국 오늘 오전 파티마 병원에 가서 선빈, 선형이 둘 다 주사를 맞고 왔다. 그 병원은 환자가 많아 대기 시간은 긴데 정작 진료는 채 1 분도 안 한다. 너무 불성실하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약도 바뀌어 있어 불신만 커진다.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앓고 몸이 안 좋아 징징대니 나도 아내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몹시 피곤하다. 자식 키우는 부모들이 다 그렇지.
1996년 7월 14일 (일) - 폐교에서 콩벌레를 잡다
오늘은 아이들 상태가 좀 좋아져서 폐교된 태봉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았다. 밥과 라면도 끓여먹었다. 아이들이 놀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 넓은 운동장에 아이들을 풀어 놓으니 차 걱정, 다칠 걱정이 없다.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지 놀거리를 만들어 논다. 선우가 뛰면 선빈이도 뒤따라 뛰면서 더 신나 한다. 그러다가 선빈이는 꼭 넘어져 옷을 버리고 손이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울지 않고 바로 일어나 손을 툭툭 털고는 또 뛴다.
선우는 쥐며느리를 많이 잡았다. ‘콩벌레’라 부르기에 이유를 물으니 손으로 잡으면 콩처럼 되기 때문이란다. 선우 손바닥 위의 쥐며느리를 보니 정말 몸을 도르르 만 것이 꼭 콩 같다. 나도 처음 본다. 이제는 선우에게 배울 게 생기기 시작한다. 선우는 서울 살 때와는 다른 경험을 많이 한다. 벌레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 내 눈에도 징그러운 쥐며느리를 귀엽다는 듯이 스스럼없이 손으로 잡는다. 송충이도 나뭇가지로 들고 다닌다. 선빈이도 따라한다. 이런 게 산 교육 아니겠나.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들이다. 어른들은 놀러간다고 하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별미 맛보는 것만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새로운 놀거리를 찾아낸다. 개미집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싸우는 개미를 응원한다. 길거리의 풀 한 포기도 신기해하면서 민들레를 꺾어서 솜털 같은 씨를 ‘후’ 불어서 하늘로 날리고 강아지풀만 보면 뽑아서 나에게 눈감으라 하고는 코를 간지른다. 덕분에 나도 무심히 지나다니던 길에서 ‘아, 여기에 이런 풀이 나고 꽃이 피는구나.’ 알게 되고 새삼 감탄하기도 한다.
아내는 밭농사에 정신을 다 뺏겼다. 스스로도 ‘밭바람’이 났다고 자백한다. 자나 깨나 밭 생각 밖에 안 난단다. 아이 셋을 모두 데리고 나가 집 앞의 밭 같지도 않은 매립지터 - 우리 집은 마산 서항 앞, 바다를 매립한 곳에 있다. - 에서 호미로 땅을 판다. 선우, 선빈이는 땅바닥에 뒹굴고 선형이는 유모차에 앉아있다.
‘친척 친구 하나 없는 곳에 내려와 이런 일에라도 재미를 붙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바람치고는 그나마 좋은 바람이 났네. 외도 바람, 춤바람, 쇼핑 바람보다야 백번 낫지. 아이들도 흙바닥에서 뒹구니 그것도 지방에 사는 특권 아닌가?’
나는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내 요구대로 말뚝도 박아주고 울타리도 쳐준다. 그런 덕에 싱싱한 무공해 고추도 벌써 20개 쯤 따먹었다. 맛은 끝내준다.
1996년 7월 17일 (수) - 엄마 밭바람에 아이들이 고생
퇴근하니 집에 아무도 없다. 밖을 내다보니 아내는 역시 공터 구석의 새로 맡은 땅에 쪼그리고 앉아 밭을 일구는 중이다. 아이들이 아직 열이 있는데도 바람 부는 날에 밖으로 데리고 나간 아내가 못마땅하다. 밭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지만 차를 몰고 그 곁으로 갔다. 선형이가 마침 깨서 울기에 아내에게 호통을 쳐서 빨리 차 안으로 안고 들어가라 하고는 호미를 빼앗아 내가 대신 일을 했다. 30분쯤 호미질을 하니 손에 물집이 3 ∼ 4개 잡히고 얼굴이 땀범벅이다. 안경에도 땀이 묻고 김이 서려 앞이 잘 안 보인다. 내가 일을 많이 해줘야 아내 일이 줄고 그래야 밭에 나가고 싶은 조급증도 줄 것이며 또 그래야 아이들이 엄마에게 이끌려 밖에서 고생하는 일도 줄 것이다. 아이들이 흙에서 노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몸이 건강할 때 얘기지 요즘처럼 감기 걸리고 열날 때는 큰 병 얻기 십상이다.
어제는 선우가 유치원에서 다시 열이 나 점심밥도 토하고 누워있었다지 않나. 선빈이는 열이 내리고 전반적으로 좋아진 반면 선우가 다시 고열이 나고 선형이도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콧물도 나는 상태다.
1996년 7월 20일 (토) - 선빈이 밥 먹이기
부모는 으레 내가 잘 먹는 것보다 아이가 잘 먹어야 배가 부른 법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 보려고 갖은 방법을 다 쓰기 마련이고. 아마 많은 부모들도 이 방법을 써 보았으리라. 아이 코 앞에서 마치 이 밥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양 한 숟가락 자신의 입에 넣고는 맛있게 먹는 척 하며 입으로 ‘아이 맛있다, 아이 맛있어!’를 연발하는 방법.
나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선빈이가 한 행동.
저도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푼다. 나는 속으로 ‘그래 그래 잘 한다. 성공이구나! 이 정도면 아빠 연극 솜씨도 보통이 아니지.’ 하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 숟가락이 제 입으로 안 들어가고 내 입으로 온다.
마치 이런 표정으로.
‘아빠, 밥이 그렇게 맛있어요? 그럼 내 밥까지 다 드세요. 내가 먹여 드릴게요. 나 착하죠?’
그래 효자 났다. 아빠가 네 밥 얻어먹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겠다! 내가 못 살아!
1996년 7월 30일 (화) - 선우의 박쥐 놀이
장마가 일주일 전쯤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갈수록 더 심해진다. 밖에 나가면 마치 화염방사기로 지지는 것 같다. 선풍기를 틀지만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선풍기 바람조차 열풍이다. 참으로 대단한 날씨다.
이 더위에 선우는 큰 천을 머리 위까지 온몸에 두르고 책상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박쥐 놀이’를 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았던 박쥐 모습을 흉내 내는 거다. 책상 위에서 앉은 게 위험해 보여 내가 말했다.
‘박쥐야, 밑으로 내려와서 벌레 잡아라.’
선우는 ‘찍찍찍, 알았어요.’ 하며 바로 내려왔다.
만약 내가 ‘빨리 내려와. 왜 그렇게 위험한 장난을 해?’라고 말했다면 저도 기분이 상해 말을 안 들었을 거다.
1997년 7월 25일 (금) - 선빈이를 때려주다
선빈이는 세 아이 중 엄마와 제일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고집도 세서 엄마가 집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나에게 엄마를 따라가자고 조르면서 울기 시작하고, 그게 몇 시간이고 계속된다. 그래서 아내는 잠시도 편하게 밖에 나갈 수 없고, 나에게 맡겨놓고 나간 동안에는 내가 몹시 힘들다.
며칠 전에도 아내가 나가자마자 또 선빈이가 울기에 마음 모질게 먹고 긴 구두 주걱으로 몇 대 아프게 때려주었다. 버릇 고치려고 작정을 했다. 처음 맞을 때는 반항하던 놈이 몇 대 더 맞으니까 아프고 무섭던지 억지로 울음을 참는다. 엄마가 돌아오니 서러움에 바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때린다.
그 이후로 선빈이가 달라졌다. 그런 행동이 전혀 안 나타나고 있다. 매의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한 번 때려주니까 이제는 엄마가 나가더라도 잘 갔다 오시라 인사하면서 아빠와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실제로도 울지 않고 잘 기다린다. 요즘은 그 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은 없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편하게 나갔다 올 수 있고 나도 아내 없을 때 큰 힘 들이지 않고 돌보고 있다.
1997년 9월 23일 (화) - 바다쓰기, 받아쓰기
우리는 선우에게 한글을 가르친 적이 없다. 한글 비디오테이프(ㄱ,ㄴ,ㄷ,ㄹ, 가,나,다,라를 가르치는 것)를 몇 개 사다 주었을 뿐이다. 지금 몇 자 더듬더듬 읽기는 하는데 쓸 줄 아는 건 제 이름뿐이다. 그것도 거의 그리는 수준이다.
2학기 개학 후 얼마 안 되어 유치원 다녀온 선우가 말했다.
“엄마, 내일부터 유치원에서 바다쓰기를 한대요. 바다를 어떻게 쓰지?”
그래서 아내가 설명을 해 주었단다.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 우리 집은 창밖으로 바로 바다가 보인다. - ‘받아쓰기’의 ‘받아’는 저 바다가 아니라 선생님을 불러주시는 말을 듣고 그대로 종이에 쓰는 것이라고. 그랬더니 선우는 황당한 얼굴로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란다. 그 뒤로 오늘까지 유치원에서 받아쓰기한 종이를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우리도 그에 관해 더 이야기하지도 않아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볼 것도 없이 0점일 테지.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글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 정상인데 초등학교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유치원에서 미리 가르치고, 유치원에서 가르치니 엄마들은 집에서 또 더 먼저 가르친다. 우리 아파트의 선우 동갑내기들은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학습지를 한다, 학원을 다닌다 하여 오래 전부터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기교육, 선행학습이라 하여 몇 단계씩 앞당겨 가르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여전히 잘 알고 있는지 그저 확인하기 위한 곳일 뿐인가?
너무 이른 조기교육은 초독서증(超讀書症, hyperlexia)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한글은 물론 영어까지 줄줄 읽는 유아가 사람과 대화는 전혀 못하는 특이한 병이다. 검사해보면 낱말의 뜻을 전혀 모른다. 그럼 책은 어떻게 읽냐고? 읽는 요령만 훈련 받은 건데 의미를 모르므로 앵무새와 다를 게 없다. 제 아이들이 그렇다는 걸 정작 부모들은 모른다. 이런 아이들은 사람들을 피해 혼자만의 세계로 도피하려고 해 자폐증 증상까지 보이게 된다. 어린 것이 얼마나 괴로우면 그렇겠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면서 시간을 보내니 그 동안 무엇이라도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른들 눈에는 그저 허송으로만 놀이 시간이 유아의 성장 발달에 꼭 필요한 거라면 어쩔 건가? 유아기에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는 아동, 청소년, 성인으로 자라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장애를 보인다면?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글 읽고 쓰는 건 초등학교 들어가면 유치원 때보다 훨씬 빠르게 배울 수 있지만 짧은 유아기는 지나고 나면 되돌아가 만회할 수 없으므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아동기가 유아기보다 더 의미 있는가?
청소년의 삶이 아동의 삶보다 더 가치로운가?
성인이 되면 청소년 시절보다 더 행복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안 그래도 빨리 가서 억울한 세월, 뭣 하러 몇 단계 앞당기면서까지 아이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가!
아동에게는 학습을, 유아에게는 놀이를!
아동의 것은 아동에게로, 유아의 것은 유아에게로!
1997년 10월 22일 (수) - 아들들과 첫 목욕
요즘 내가 몹시 피곤하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래서 오늘 일찍 일을 마친 김에 혼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었다. 그랬는데 막상 나서려 하니 그것도 내키지가 않았다. 날씨도 흐리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떠오르지 않고.
집으로 전화했더니 아내가 ‘그러면 아이들과 온천에나 다녀오시던가’ 하는 거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웬 온천장?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도 마땅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아내 말대로 하기로 했다.
처음엔 나와 아들들만 가려고 했는데 아내와 딸까지 따라나서 결국 전 가족이 갔다. 양촌 온천에 갔는데 동네 목욕탕보다 훨씬 넓었다. 어른 2300원, 아이들 11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아이들과 대중목욕탕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들들은 온수 탕에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다리만 잠깐 담갔다가 얼른 뺐다. 나에게는 별로 뜨겁지 않은데 아이들은 너무 뜨겁다고 난리다. 불현듯 나 어렸을 때 아버지와 목욕탕에 갔던 게 생각났다. 그때도 꼭 그랬었지.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든 나를 탕 속에 들어오게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쓰셨다. 나도 어느 새 아비가 되어 아이들을 탕 속에 넣기 위해 별 별 소리를 다 하고 있다.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탕으로 갔다. 선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잘 놀았다. 선빈이는 이번에는 너무 차갑다고 또 못 들어온다. 냉탕은 더 넓고 사람도 없다. 나는 수영을 하고 큰 놈은 내 손을 잡고 물장구를 쳤다. 작은 놈은 그걸 보고 부러워했으나 결국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가 한증탕에 들어가자 아들들이 따라 들어오려다가 너무 뜨겁다며 바로 다 도망 나가서는 유리문 밖에 붙어서서 빨리 나오라고 성화다. 결국 내 원하는 만큼 있지 못하고 급히 나왔다.
끝으로 아이들 머리 2 번씩 감기고 몸에도 비누칠 2 번씩 해준 후 내 등에도 비누칠을 시킨 다음에 샤워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와 선형이는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형이는 아예 목욕탕에 안 들어가겠다고 때를 써서 아내가 애먹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선형이 샤워 한번 시키고 아내도 샤워 한 번만 하고 나왔단다.
아내가 아들들을 보더니 ‘우리 아들들 인물이 훤해졌다.’ 하며 좋아한다. 막 차 타고 출발하려는데 아내가 작은 아들 외투가 없는 걸 발견해서 내가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찾아왔다. 오는 길에 진동 ‘소머리곰탕’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아이들이 존댓말 하는 걸 보고는 ‘아빠가 잘 가르쳤나, 엄마가 잘 하셔서 그런가,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았네요.’ 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 말 때문에 아이들이 흘린 밥알과 어지른 걸 우리 부부가 더 열심히 치우고 닦고 나왔다.
1997년 10월 23일 (목) - 사이좋은 선빈이와 선형이
갈수록 애들이 예뻐 죽겠다.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니 부모로서 그보다 더 흐뭇한 게 없다. 전에는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줄 몰랐는데 요즘 들어 더 그렇게 느낀다. 내가 더 나이 먹어 그런가? 어쨌거나 기분은 좋다.
선빈이와 선형이는 사이가 매우 좋다. 선빈이도 동생을 좋아하고 선형이도 오빠를 따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치 몇 년 간 헤어졌다 만난 것처럼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리면서 반가워한다. 하루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선빈이는 성격이 좋아서 선형이만이 아니라 사촌 동생인 선욱이도 잘 데리고 논다. 아직 네 돌도 안 돼 저도 아직 아기 티를 못 벗은 녀석이 1년 몇 개월밖에 터울이 안 나 몸집은 저와 별 차이 없는 동생들을 귀엽다며 어르고 달래가면서 분위기를 잘 맞춰준다. 그러니 선형이, 선욱이가 선빈이를 참 좋아한다.
선빈이는 키는 작은데 꽤 야무지다.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어른들에게는 항상 존댓말을 한다. 선우, 선빈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자식 교육 잘 시켰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선우도 그만할 때부터 존댓말을 했는데 꼭 형을 닮았다. 말투까지 꼭 형이 하던 그대로다.
선형이는 또 얼마나 예쁜지! 솔직히 말해서 얼굴은 그리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 갈수록 더 예뻐지고 있어 곧 미인이 될 것이다. 하는 행동은 정말 귀엽고 대견하다. 생전 징징대는 일이 없다. 항상 웃는다. 우리는 선형이를 ‘명랑․쾌활․용감․씩씩’이라고 부른다. 이는 앞쪽 윗니 4개, 앞쪽 아랫니 3개 - 나머지 1개는 최근 약간 솟고 있다 - 가 났다. 어금니는 며칠 전 위쪽 2개가 잇몸을 뚫고 나오는 걸 우연히 발견하였다. 매우 늦은 편이다. 그래도 먹을 것은 다 먹는다. 고기도 손으로 집어다가 씹는지 마는지 우물우물 하며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 또 많이도 먹는다.
선형이가 말을 알아듣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다. 쓰레기통에 넣으라는 등의 심부름도 진즉부터 잘 하고 있다. 말하는 건 아직 아니다. ‘엄마, 아빠’ 외의 다른 말은 거의 못한다. hearing은 되는데 speaking이 안 되는 거다. 뭐라고 큰소리를 많이 내는데 우리가 못 알아듣는 게 문제다. 희한한 건 그런 선형이의 의사를 선빈이가 가장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중간에서 통역사 역할을 한다. 저도 그런 수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선형이는 말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의사소통은 다 한다. 예컨대 똥 누고 싶으면 ‘꽁, 꽁’ 해가며 기저귀를 풀어 달라 해서 아기 변기에 앉아 혼자 예쁘게 눈다.
1997년 12월 13일 (토) - 배꼽 만지는 선형이
선형이는 아직도 우유를 먹는데 그때마다 꼭 제 배꼽을 만진다. 다른 때는 안 그러는데 우유 먹을 때만 그런다. 누워서 오른 손으로는 우유병을 잡고 왼손으로는 웃옷을 주섬주섬 걷어 올리고는 배꼽을 조물락거린다. 참 희한한 버릇도 다 있다. 언제부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1997년 12월 15일 (월) - 사교육비 첫 지출
요즘 선우는 유치원 끝난 후 바로 수영장으로 갔다가 4시 10분쯤 집에 온다. 수요일 빼고 월, 화, 목, 금에 간다. 11월 25일부터 시작했다. 수영하는 친구가 있는지 저도 하게 해달라고 해서 허락했다. 선우는 아기 때부터 워낙 물놀이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잘 다닌다. 요즘은 제법 물에 뜰 줄도 아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는 선우 수영장 가는 것이 유치원 교육비 외에 첫 사교육비 지출이다. 우리는 아이가 하게 해달라고 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먼저 시키지 않는다.
선우 말이 ‘수영 끝난 다음에 조금 더 크면 태권도 하게 해 주세요’ 한다. ‘그러자’ 했다.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는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제가 요구할 때 하게 하면 내적 동기가 높으니 효과도 높으리라. 그러니 부모가 먼저 나서서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필요가 없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집안에 계속 있는 것이 귀찮아 집밖으로 내보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면.
1997년 12월 16일 (화) - 인기짱 김선우
요즘 선우는 점점 더 골목대장이 되어가고 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선우가 수영장에서 올 때쯤이면 벌써 또래 아이들 3∼4 명이 선우와 놀려고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기다린단다. 그렇게 된 데에는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맘대로 놀 수 있도록 허락하고 어지르는 걸 허용하는 엄마 덕이 가장 클 테고, 컴퓨터 게임, 장난감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감이 많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일 게다.
얼마 전에는 올 초에 큰 돈 들여 새로 마련한 컴퓨터가 망가져 버리는 일이 생겼다. 속이 안 상한 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 조작을 잘 하는데 다른 집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켰다 껐다’를 반복해서 그리 된 것이다. 학교 컴퓨터 가게에 AS를 맡기니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란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