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 1977)가 '공상 과학 소설'에 근거한 오락영화로서의 경지를 보여줬다면,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는 경이로운 상상력이 지휘해낸 '우주의 고향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별들의 전쟁"이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나 홀스트(Gustav Theodor Holst)의 웅장하고 감성적인 낭만주의 음악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한편, “우주로의 기나긴 여정”은 차분하고 고요한 교향곡과 기괴한 현대음악으로 인류 진화의 역사에 독특하고도 철학적인 영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상 과학영화'의 장래를 제시한 기원적 작품이자 음악과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 사건이었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암전을 반주하는 음산한 현대음악으로 막을 여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음악은 실상 결정적인 요소로서 영화의 중대한 부분들을 반주한다. 대사가 적어서 이를 덮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긴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감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제작 초부터 영화가 주로 비언어적 체험의 장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서술적 영화의 관례적인 테크닉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그의 영화에서 음악은 특별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음악의 반 이상은 대사의 전 후, 첫마디나 끝마디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전문작곡가들에 의해 특별히 작곡된 영화의 스코어나 노래들을 통상적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기존에 녹음된 클래식음악들을 정교하게 장면에 결합시켜냈을 뿐임에도, 그 방식과 정확성에서 큐브릭 감독은 그 만의 독특한 경험의 장을 제공한다. 특수효과의 창출과 더불어 음악과 음향을 포함한 사운드트랙을 획기적으로 조합해 냄으로써 더욱 주목받았고, 그 명성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영화제작 초에 큐브릭은 할리우드의 신망 있는 작곡가 알렉스 노스(Alex North)에게 영화를 위한 음악작곡을 부탁했다. 이전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60)를 위한 스코어를 작곡한 바 있기에 더욱 그럴 만 했다. 큐브릭은 그러나 최종단계에서 자신이 직접 선곡한 클래식음악들로 영화를 채웠다. 1966년 3월, MGM영화사는 영화의 진행과정에 우려를 표명했는데, 큐브릭은 즉석에서 마련된 클래식악곡들을 장면에 조화시켜낸 것이다.
스튜디오 사장은 큐브릭이 사운드트랙에 들어갈 음악으로 최종 선정한 고전악곡들에 만족해했다. 노스의 스코어는 결과적으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큐브릭은 노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실망이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스는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 필름을 보고서야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렉스 노스의 스코어는 이후 그의 친구와 동료작곡가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의 도움으로 다시 녹음되었고,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음악으로써 또는 비음악적으로써 영상에서 화음을 이루거나 불협화음을 내는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액션 밖에 존재하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때론 숭고하고, 때론 웅대하게 융기하며, 시신경에 진지함과 초월성을 전달한다. 액션을 강조하고 감정을 불러내는 스코어와는 상이하지만, 실로 절묘한 상응이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가장 유명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으로 국내에 유명한 'An der schönen blauen Donau'(On the Beautiful Blue Danube)은 장대하게 펼쳐지는 우주정거장 결합과 달 착륙 장면들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감명 깊은 순간을 제공한다. 도입부에 사용된 리하르트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Also sprach Zarathustra'(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의 주제적 음악으로서 영화에 확고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영화는 또한 리게티(György Ligeti)와 같은 현대음악작곡가를 포함한 클래식거장의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완벽하게 조응하는 영화음악으로서 다시금 각인시킨다.
리하르트와 요한 스트라우스의 악곡들, 그리고 레게티의 레퀴엠(Kyrie 섹션)은 영화의 줄거리 상에서 라이트모티프로 순환하며 역할 한다. 리하르트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의 도입부장면에서 태양, 지구, 달이 나란히 놓일 때와 뒤이어 유인원이 처음으로 동물의 뼈를 이용한 도구적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에 메시지를 던지듯 웅장하게 깔리고, 주인공 바우만(케어 둘리)이 영화의 마지막에 목성 또는 우주행성의 신생아(Star child)로 변형되는 장면에서 재연된다. 자라투스트라는 이와 같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수미상관으로 작용한다. 이는 곧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이후 인간에서 우주아이로 진화의 변신을 의미하는 모티프로서 기능한다. 이 악곡은 원래 철학자 니체(Nietzsche)의 동명저서에서 영감 받은 곡으로서 유인원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초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간결한 대위구실을 한다.
'The Blue Danube'(푸른 다뉴브)는 우주여행 장면들과 종영인물자막에서 두 차례에 걸쳐 복잡하고 장대하게 연주되어 나온다. 처음은 특히 팬암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장면을 반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Jr)의 유명한 비엔나 왈츠 'The Blue Danube'(푸른 다뉴브 강)은 이 상황에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 곡은 분명 뉴턴의 중력과 역학에 의한 불변의 영향 하에서 우주선이 우아하게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주왕복선이 일직선으로 편향할 때 우주정거장은 발레의 피루엣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펜이 공중에 떠 있는 선실의 승무원들이 무중력상태에서 유영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연속해서 전개되는 이 모든 시퀀스는 유인원의 뼈가 우주선으로 변모하는 장면의 연속성에 신호를 보내는 분위기음악으로써, 경쾌하고 안락한 우주여행에 관객들이 편승하도록 돕는다.
영화의 다음 부분은 목성 근처에서 신호를 주는 근원을 향한 우주선의 깊숙한 여정이다.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기내에 탑재한 컴퓨터 할(Hal)의 통제 하에서 수백만 마일을 우주선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사상태에서 여행한다. 그 동안 카메라는 이 상태를 탐사하는 느긋한 여정을 다시 만들어낸다. 음악은 우주의 방대하고 기괴한 공허함을 묘사한다. 지구에서 엄청 멀리 떨어져 우주선 안에 갇혀 있는 승무원의 암울한 고독의 음악적 대위. 여기에 사용된 음악은 미국작곡가 아람 카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발레곡 'Gayane'의 아다지오다.
이 발레춤곡은 또한 유명한 'Sabre dance'(군도)를 포함한다. 영화에서 이 장면을 위해 쓰인 'Gayane Adagio'의 선곡은 전적으로 부합하고, <에일리언>(Alien)시리즈와 같은 이후 다수의 우주 공상 과학영화들에 기준을 제시했다. <에일리언>의 작곡가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는 고독한 우주의 느낌을 악상으로 전환한 이 사운드방식을 차용했고, <에일리언 2>(Aliens)에서 음악을 작곡한 제임스 호너(James Horner)는 한편 이를 거의 복제에 가깝게 빌려왔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음악의 작곡가는 리게티(Gyorgy Ligeti)이다. 그의 기여는 블랙 모노리드와 동반하고 설명할 수 없는 효과들을 창출해내는 분위기를 투영하는 악곡들 중 하나다. 이는 유인원들이 집단 거주하는 태고의 풍경, 달에서 발견된 신비한 유물의 시찰, 낯선 시각적 효과들이 함께한 마지막 부분과 초현실적인 장면들을 포함한다.
리게티의 '레퀴엠'(Requiem)은 세 차례 영상을 반주한다. 처음은 유인원이 도구사용발견을 반주하는 자라투스트라 직전 유인원과 접속한다. 두 번째는 우주선이 달에 접근 착륙해 블랙 모노리드(목성에 강한 전파를 쏘는 검은 돌기둥)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세 번째는 스타게이트로 들어가기 직전 바우만의 목성 주위로 접근할 때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적인 전개에 음산하고 불길한 전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레퀴엠과 함께 이 마지막 시퀀스는 다른 장면에서의 반주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리게티의 'Atmosphères'의 음악으로 직접 이행해 들어가는 것은 바우만이 실제로 스타게이트로 진입할 때 배경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불러낸다. 데이비드 바우만의 천체의 침실에서 블랙 모노리드가 잠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동안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바우만이 '스타-차일드'로 변신하는 장면을 반주하는 자라투스트라에 즉시 선행한다. 'Atmosphères'의 더 짧은 인용은 '자라투스트라'가 웅대하게 울리는 오프닝 크레디트 전 암전을 반주하고 영화의 중반 휴지기 동안 막간의 전주곡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노동수용소에서 생존한 헝가리출신 유대인 작곡가 리게티는 마이크로폴리포니(micropolyphony)이나 리듬과 화음이 없는 음악 탐구자로서 아방가르드계열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Atmosphères'와 같은 음악은 그에 대한 확증이다. 대기를 감도는 공감각적 분위기를 창출한다랄까. 'Lux Aeterna'나 'Eternal Light'에서의 묘한 질감은 무반주의 음에 의해 오로지 나타난다. 리게티의 작품들은 영화의 '틀에 박히지 않는' 환각체험에 더욱 적합한 기괴한 음향효과로 작용한다.
최초의 공상과학영화에 도전한 큐브릭 감독은 가장 미래적인 영화에 클래식음악을 전용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음악철학을 다시금 입증했다. '공상 과학영화'의 개념을 잡아준 영화만큼이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음악 또한 'Sci-Fi 영화음악'의 클래식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경외심을 자아내는 시각적 광휘, 경탄스러운 사운드의 위엄'이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50여년 전에 완성됐다는 그 자체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는 걸작, '클래식'은 진정 이럴 때 쓰는 말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