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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관과 ‘마을만들기운동’
(지역)과의 관계 맺기
-어린이도서관의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마을만들기
김소희 / 어린이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관장
1. 어린이도서관의 등장과 성격- 어린이 책․ 문화운동의 발달
1990년대 초 어린이 책에 대한 관심이 낮고 그나마의 어린이 책도 내용보다는 물량위주의 전집류 출판에 치중해온 기존 출판계에 어린이 책의 전문성을 표방하고 나선 신규출판사들이 진입하면서 우리나라 어린이 책의 수준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들 출판사의 책들이 종전의 책들과 비교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책이라 하면 글이 중요하지 그림이야 대충 끼어 넣으면 되는 정도로 인식했던 우리 출판계에 도전했다. 조잡한 펜화 일색이었던 때와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개성 있는 화법으로 아이들이 드나드는 창작의 세계에서 글과 더불어 삽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로 느끼게 했다. 다음으로 ‘위인전’이라는 말을 ‘인물이야기’로 대체했다. 홀로 특별하고 절대적인 위인에서 꿈이 있고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또 아동물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던 ‘명작동화’라는 제한된 말이 사라지고 대신에 ‘창작동화’ ‘옛이야기’ 등으로 다양하게 독자들과 만났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한 단체가 20여 년에 걸쳐 벌인 어린이 책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평가, 상업성과 흥행성에 끌려가던 출판계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요구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79년 5월에 서울 양서협동조합 어린이 부에서 어린이 책을 연구하는 소모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0년 5월2일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권장하는 뜻으로 제1회 어린이 책(국내 창작동화) 전시회를 열면서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세웠다. 그때는 어린이 책이 세계명작 중심의 외국 동화책(그것도 전집)이 대부분이었다. 창작동화나 단행본 시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이들에게 좋은 우리 책을 주고 싶어도 책이 없었고, 좋은 책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이런 문제들을 깊이 느끼고 있던 몇몇 교사들이 어린이 책을 직접 읽고 토론하여 좋은 책 고르는 일을 시작, 오늘에 이르게 됐다. 1997년 7월4일 사단법인으로 허가를 받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단체로 발돋음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어린이 교육문화 운동을 실천하는 시민단체’임을 조직소개문 서두에서 설명한다.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어린이 책을 연구하여 좋은 책을 골라 권장하며, 어린이 문화를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활동하는 회원으로는 본회에서 활동하는 정회원과 어린이도서연구회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동화읽는어른 모임’ 회원이 있다.
‘동화읽는어른 모임’은 1993년 부평, 광명, 시흥, 노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70여 개 지역에서 100여 모임, 2300여 명이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광역별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전국 동화읽는어른 모임>을 만들었다. ‘동화읽는어른 모임’은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주자”는 주창아래 먼저 어른들이 어린이 책을 읽고, 좋은 어린이 책을 고민하자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다보니 모임의 영역이 지역문화운동으로 바로 확장되었다. 강연회, 그림책 원화 전시회, 인형극, 노래극, 가족신문전시, 좋은 책 바꿔주기, 전통놀이마당, 슬라이드 상영, 그림책 만들기, 좋은 책 보내기, 좋은 책 전시와 여러 문화행사를 ‘지역’을 근거로 벌여온 것이다. 또한 학교 도서관 살리기, 공공 도서관 살리기 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독서 문화 환경’을 바꾸는 일도 하고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와 ‘동화읽는어른’이 내용 있는 주체들을 생산하면서 또 다른 가지를 뻗게 된다. 바로 어린이도서관과 어린이전문서점의 등장이다.
어린이전문서점은 10여 년 전 ‘초방’이 시초가 된다. 초방은 초창기에 지역의 몇몇 곳에 분점을 개설하고 직접 출판사로부터 책을 공급받아 이들 체인점에 화물로 우송하는 번거로움을 담당함으로써 현재의 어린이서점이 뿌리내리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어린이전문서점은 200여 년 전 영국에 생긴 이래로 많은 나라에 정착되었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10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어린이전문서점은 80여 곳에 이른다. <어린이전문서점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2년에서 1996년까지 4년간 50여 곳에 이르다가 1997년에 10곳이 문을 닫았고 2000년 현재까지 30여 곳이 문을 닫고 다시 그 비슷한 숫자가 생겨났다. 이중 5년 이상된 서점은 13곳이며 대부분 2년 미만된 곳이다. 이들 서점의 월평균 매출은 약 400만원 정도라지만 200만원 이하 매출을 갖는 곳이 절반 가까운 40여 곳에 달하고 있다. 계산상으로 하루에 6,000원 하는 책을 열 권 정도 판매하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동네서점들이 월평균 1,000~2,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내는 것에 견준다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여느 서점에서의 주요한(매출의 절반을 담당하는) ‘영리’ 상품인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는다. 입시경쟁에서 경쟁적으로 생산된 참고서가 건강한 어린이 문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상업적인 베스트셀러를 팔지 않는다. 그러면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등에서 권장하고 있는 양서를 선별하여 판매하는 기능을 담당해왔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어린이 관련 단체 모임들과 연대하여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파격적인 할인가격을 내세우며 등장한 인터넷 서점들의 등쌀을 어린이전문서점이 끝내 견딜 수 있겠는가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그러는 중에 어린이들에게 안정적으로 좋은책과 만날 공간이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것이 어린이도서관이다.
1997년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했던 전영순씨에 의해 어린이도서관 ‘파랑새’가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동화읽는어른’과 어린이전문서점의 기반이 이미 있던 일산 등을 중심으로 하나 둘씩 늘었고 현재 전국에 15곳의 어린이도서관이 생겼다.
어린이도서관들은 좋은 어린이 책과 건강한 어린이․가족문화가 정착되는 지역근거지가 되기 위해 1998년 1월12일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주영 이사장은 「어린이도서관운동의 꿈」이라는 글(2000년 4월) “…어린이해방을 위해 앞장선 방정환, 김기전이 중심이 되어 제1회 어린이날(1923년 5월1일) 발표한 선언문을 보면… 우리사회가 77년 전 어린이 운동을 시작했던 그들의 꿈이 아직도 필요하다는 것…제1회 어린이날 선언문 전문에 해당하는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3항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다.… 1999년 5월1일 ‘방정환 탄신 100주년 기념, 제 1회 어린이선언 76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어린이도서연구회,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공동육아연구원 등이 함께 만들어 발표한 ‘새천년 어린이선언’ 중의… 어린이 마음을 거칠게 하는 장난감, 볼 것, 읽을 거리를 멀리 태워 버리자. 대신 꿈을(평화․생명․꿈의 새 날을 여는) 키울 수 있는 좋은 책, 비디오, 영화, 연극, 예술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개념에서의 도서관이다.…”로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를 격려했다.
이렇듯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로 뻗고 있는 동화읽는어른 모임, 어린이전문서점, 어린이도서관은 좋은 어린이 책과 건강한 어린이 지역문화운동을 이루는 큰나무가 되려한다.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에 속해있고 그 뜻에 동의하는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는 어린이 책과 지역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성동구의 ‘아줌마’주체 5명이 2000년 11월부터 준비모임을 가졌고, 행당동의 2층짜리 상가건물 1층(33평)을 얻어 책장 등 내부 시설을 만들고 1500여권의 어린이 책을 구입해 어린이도서관운용프로그램에 등록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 2001년 3월21일 성동구 문화공보과에 ‘문고’ 등록을 한 뒤 도서관을 개방했고, 2001년 4월7일에 정식 개관했다. 2004년 현재(6월18일) 소장도서는 6600여권으로 늘었고, 회원번호 600번에 이르는 (가족)회원을 맞게 됐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도서관은-여느 어린이도서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정관에 다음의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①유아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좋은책’을 제공한다.
②엄마․아빠가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권해줄 수 있도록 돕는다.
③책을 매개로 같은 지역의 아이들과 그 부모가 서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④건강한 어린이 문화를 고민하고 실험한다.
⑤아이들이 걸어다닐 만큼의 거리에 좋은 어린이도서관이 있는 마을 만들기에 힘쓴다.
⑥학교 도서관과 주민자치센터(동민의집) 마을문고의 질을 높이는데 앞장선다.
2. 어린이도서관운동의 성격
⑴ 어린이도서관운동의 NGO적 성격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책과 어린이문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갖는 이들 단체들은 각각의 내부 혹은 외부 글에서 공공연히 ‘시민단체’임을 주장한다.
예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린이 교육문화운동을 실천하는 시민운동을 강조하고 있고 그 맥락에서 벽지학교에 좋은 책보내기, 도시빈민지역에 좋은 책 알리고 보내기, 학교도서실 살리기, 학급문고 살리기와 같은 운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동화읽는어른 모임’의 대전 유성지역 사례발표를 보면 그 모임의 성격이 드러난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독서문화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동화읽는어른의 일이다. 독서문화환경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입체적으로 갖춰져야 하는데 그 동안 동화읽는어른은 가정에서라는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노력이 중심이었다. …학교에서, 지역사회로의 노력이 서서히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현재 유성구도서관에 이용자들이 많은데 비해 아동열람실이 부족한 느낌이 있으면, 증축하는 문제를 도서관과 유기적으로 협조해서 구청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일들, 또한 힘 없는 기관이어서 늘 예산 순위에서 밀리는 도서관에 여론의 힘을 실어주는 일 등등 할 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매년 두 차례 어린이 대상으로 독서감상문 모집만으로 끝나는 도서관 주간 행사에서 벗어나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도서관이 내용적으로 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화작가를 초청해서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도서관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구청 또는 시에도 한 시민단체로서 활동할 여지를 넓혀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는 동화읽는어른이 뜻을 모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갖가지 정치행위에 참여해 보는 것도 모색할 수 있다.”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도 그 소식지에서 어린이도서관운동의 예를 이렇게 피력한다.
“…어린이들한테 도서관이 얼마나 필요한 시설인지를 정부, 국회, 지방단체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나 공간이 있는가? 없다. 없는 것은 물론 18세 미만은 들어갈 수도 없다. 국회에서 운영하는 국회도서관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나 공간이 있는가? 없다. …어린이는 이 나라 국민으로서 정부나 국회가 운영하는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그 요구의 첫 번째 행동이 바로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를 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는 또 2001년 9월 미국에서의 테러사건 이후 자행되는 전쟁에 반대해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는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 어린이전문서점연합 외에도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한국글쓰기연구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사)공동육아연구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어린이신문굴렁쇠,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등 어린이 교육문화단체들이 만든 연합체이다.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는 “…죄 없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두려움에 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먹고사는 일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땅 위에 있는 목숨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흙과 물이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무섭습니다.…”라며 전쟁반대 성명서를 내고 이후 강연, 교육, 서명운동 등 평화운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비정부단체를 시민사회조직들 중에서도 사회운동, 자발성, 비이윤추구, 민간결사체 즉 “정치권력이 행사되는 국가의 영역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의 영역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 사회적 변화나 개혁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자발적인 결사체”(신광영: 비정부조직과 국가정책)라 할 때 이들 어린이문화운동단체 역시 그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어린이도서관의 소속 지위에서도 NGO를 지향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어린이도서관들은 주로 지자체에 ‘문고’ 등록(어도연의 어린이도서관현황분석표 확인 전체 40개 어린이도서관 중 72.5%)하거나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를 통해 직접 재정지원을 받거나 관련한 지원사업 공모에 참여해 재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에서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사업의 영역을 도서관련 업무 이상의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설’이라는 한계를 넘고 공공의 지위를 얻어 보다 책임감을 갖겠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파랑새어린이도서관도 처음에는 지자체에 파랑새문고로 등록했다. 2002년 문광부로부터 책구입비 200만원, 지자체로부터 행사지원비 3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03년 비영리민간단체(파랑새어린이문고지킴이로 등록)로 등록했다.
도서관 규모가 33평 이상, 소장도서가 1500권 이상, 전문사서 1인 이상 근무 조건이면 특수도서관으로 광역시(서울시)에 등록할 수 있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역시 그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서울시에 등록하지 않고 소재지역인 성동구에 ‘문고’등록했다.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가 ‘지역운동’의 역할을 강조해 개별 어린이도서관들이 소재 지역 구청에 문고등록 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는 2003년 10월, 다시 서울시 문화공보과에 ‘어린이전문도서관 운영․어린이문화사업․교육사업’을 하는 비영리민간단체(고유번호: 206-82-62594)로 등록한 바 있다.
‘진보’를 말하는 어떤 운동조직이든 과거에는 구청 등의 관공서에 대해 갖는 평가는 상당히 배타적이었다. 기득권 세력의 놀이터라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관공서의 일에 대해 원초적인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관공서는 늘 우리가 하는 일을 막는 곳,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할 존재, 그들이 구조적으로 잘못하는 일을 우리가 수공업적으로나마 바르게 해나가고 있다는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라 일컫는 지방자치시대에 우리가 참여할 공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고, 이제 더 이상 관공서는 방치해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으로서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할 곳이라는 인식도 생겼다.
앞서 말했지만 어린이도서관 대부분은 자기지역 구청에 등록하고 있다.
이렇게 지자체에 등록되면서 재정지원을 받는 일도 생겼다.
대전 유성의 동화읽는어른 모임은 1997년 구청의 의식개혁활동비 명목 예산에서 100만원의 지원을 받았고 1998년도 역시 200만원 가량의 예산을 신청했다.
일산의 동녘어린이도서관은 일산시에서 공공근로사업장으로 지정받아 도서관 간사의 활동비를 지원 받았다. 이 일로 어린이도서관 운동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전문 간사가 도서관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한다.
중랑구의 파랑새어린이도서관은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정기문화행사를 위해 중랑구청으로부터 4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영수증 처리문제 등의 번거로움은 컸지만 사업내용에서의 간섭은 없었고 프로그램 또한 도서관의 계획대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후로도 구청에 의해 사업의 독립성이 훼손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린이도서관협의회>의 사업내용이 ‘건강한 문화’여서인지 관공서도 그리 큰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린이도서관협의회>는 이제 보다 적극적인 표현으로 지역 어린이문화운동을 요구할 때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만 해도 2002년부터 지역 마을문고와 학교운영위원회, 성동구의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와 변화를 요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부분은 어린이도서관운동이 국가기관이나 기업, 타 단체와의 관계에서 어떤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지와도 연관된다.
국가부분의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 지자체의 마을문고, 기업부문의 사설도서관의 실태를 보는 것으로 우선 답이 될 것 같다.
-학교도서관
미국의 교육통계국이 1993~1994학년도에 공립학교도서관 미디어센터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모든 학교의 97% 이상이 학교도서관 미디어센터를 갖추고 있고 사서교사는 학생 수에 비례해 배치하고 있다. 학생 수 700~1000명의 초등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 1명, 보조원 1명 정도가 배치되어 있고, 학생 수 700~1000명의 중등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 2명, 보조원 2명 정도가 배치되어 있다.
일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를 각각 2명씩 배치하고 고등학교에는 약 4명씩 배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는 아예 공공도서관법을 정해 모든 초등학교는 학교도서관을 설립해야 하고, 공공도서관과 협력을 해야 한다. 학교도서관의 일상운영은 도서관담당교사나 사서가 담당한다.
교육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도서관 혹은 도서실이라 이름 붙은 학교도서관은 8936개나 되지만 사서교사의 수는 고작 164명 뿐이다. 양호교사를 배치한 학교가 6112개교인 것에 비하면 무척 열악하다. 도서관 관련예산은 현실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 준다. 초등학교가 학생 1인당 928원, 중학교가 1015원, 고등학교가 2007원인데 요즘 아이들이 읽는 단행본 한 권 값을 6000원으로보면 학생 한 명에게 단행본 한 권 사줄 수 없는 금액인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의 학교들이 당장 수업하기에도 교실이 모자라는 실정이라며 도서관(실)은 ‘계획’으로만 두고 있을 뿐이다.
학교마다 양호교사가 있는 것처럼 학교도서실에도 전문사서교사가 있어야 한다.
서울 목동의 한 초등학교는 도서실 담당교사가 어린이 책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면서 학교도서관이 놀랍게 변화했다. 자료의 전산화와 좋은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 선생님과 함께 도서실을 돕는 학부모들…, 교사 한 사람의 열린 생각이 2천여명의 어린이들의 독서환경을 바꿀 수 있었던 예라 한다.
-공공도서관
서울의 1/5도 안 되는 인구를 가진 프랑스 파리는 20개 구 전체에 62개의 작은 도서관이 자료를 특화시켜 작은 도서관과 큰 규모의 도서관으로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다. 생활수준이 낮은 지역에 공공도서관을 더 많이 설치한다. 공공도서관이 지식과 정보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역할을 통해서 사회의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미국의 경우는 인구 20만의 매디슨 시 공공도서관의 경우 1개 중앙관과 7개의 분관을 가지고 있으며 시민의 53%가 도서대출카드를 발급받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개관시간도 1주일에 3일 정도는 오후 9시까지 열어서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한다. 또 미국전역에서는 3.2㎞마다 공공도서관이 인체의 실핏줄처럼 퍼져 있어서 단순히 통계 숫자상의 문화시설 정도가 아니라 미국교육의 터전인 동시에 주민들의 실생활 편의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다 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이 미국 사회의 신경조직으로 일컬어져도 무방한 실정이다. 이러한 도서관을 근간으로 이제 국가적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여 전세계 정보망을 장악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 12만 명당 한 개의 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선진국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서울의 경우는 인구 47만 명당 1개 도서관이 있다. 그것도 25개 구 중 15개 구에 22개 공공도서관이 있고 10개 구에는 그 조차 없는 열악한 실정이다. 그나마 있는 공공도서관에 어린이열람실이 없는 곳도 절반이 된다.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 실 사서들의 순환근무를 어린이 실 전담근무로 바꾸어야 한다. 어린이 독서의 중요성을 열정적으로 믿어온 능숙하고 자발적인 전문사서가 필요하다. 사서는 정보 탐색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린이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소장도서의 질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 기획과 지역민의 참여도 사서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다.
-마을문고
기존 동사무소가 동사무소를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한다며 ‘주민자치센터’ ‘동민의집’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동민의 집에 마을문고가 생겼다. 사설 어린이도서관들이 공간(월세부담)문제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것에 비해 좋은 조건이다. 또 마을문고는 지역유지 중심의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쓰면 좋은 도서관이 될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 등의 주변기기를 갖추고 있으며 주민들이 무료로 도서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집에서 가장 가깝고, 무료 이용할 수 있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좋은 조건에 좋은 책만 갖출 수 있다면 마을문고 역할 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 좋은 조건에도 “마을문고에 가면 볼 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성동구 송정동 마을문고 한 운영위원은 “문고의 예산은 책구입비와 일반 운영비인데, 일반운영비는 운영위원들이 내는 회비로 충당하고, 책구입비는 구청에서 분기별로 30만원씩 지급된다”고 했다. 문고의 1년 책 구입비는 120만원인 셈이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의 한달 신간 구입비가 평균 50만원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예산이 적은데다 책을 분기별로 구입하다보니 신간을 갖추기가 어렵고, 그나마 어린이책 뿐만 아니라 성인, 청소년 등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구입해야 하니 주민의 요구에 미칠 수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는 자치단체의 장을 뽑을 때 도서관 건립이 공약으로 제시되고, 사람들이 집을 살 때 도서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기준의 하나로 삼기도해서 도서관이 없는 자치구에서는 도서관 건설 요구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문고와 이동도서관 확대는 거의 주민운동으로 추진되고 있고 주민들은 예외 없이 도서관협의회를 설치하고 지자체들은 매년 도서관백서를 발행해 평가를 받으면서 도서관운동에 전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나라만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동사무소에 있는 마을문고를 활성화하고 학교도서실만 잘 살려 나가도 좋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인구 50여만 명의 서울 양천구는 목동도서관을 중심으로 20개 동사무소에 마을 도서방 시설을 개선하고 도서를 확충해서 새롭게 정비했다. 한 개의 큰 도서관과 20개의 작지만 알찬 도서관이 생기는 것이다. 구 예산을 지원받은 도서방들이 어린이 책을 구입하는데 <어린이도서연구회> 목록을 기본으로 했다고 한다.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는 2003년 <청와대브리핑>과 지역신문인 <성동저널>을 통해 ‘동민의 집 마을문고를 어린이도서관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계속해왔다(별첨 자료 참고). 이를 구청에서 부분 수용해 성동구청장은 4개동 동민의집 마을문고를 어린이도서관으로 ‘형식’을 바꾸었다. 그 공간이 어린이도서관으로 재대로 자리잡자면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와 같은 어린이도서관운동을 꿈꾸는 곳들이 그 내용을 채우는데 지원해야 한다.
이런 예처럼 마을문고가 작지만 좋은 책으로 집약된 알찬 도서관으로 자리잡고 난 이후 과제는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이다. 그 운영의 실체가 자발적인 마을 주민들일(여의도 동사무소 마을도서실) 경우 전망은 더욱 밝다. 준비된 주민들이 있을 때 지자체도 함께 열릴 것이다.
-기업소유 도서관
출판사로 시작한 회사가 물․음료수까지 팔면서 이젠 그룹으로 명칭을 바꾸고 더 다양한 사업에 손 뻗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대한민국 가정 몇 세대중 한 가정은 그 회사의 전집을 한 질씩은 들여놨고 수만 명의 방문판매 주부들은 숱하게 남의 집 문턱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 회사가 만들어 기증했다는 어린이 전문도서관이나 어린이를 위한 어떤 시설도 없다. 다른 분야의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으로는 <에스콰이어>재단의 ‘인표도서관’이 유일하다.
1990년 상계동 북부종합사회복지관에 처음 생긴 ‘인표도서관’은 전국 15곳, 해외에 8곳으로 늘었다. 대부분 사회복지관에 그 공간을 두고 있어 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의 이용이 많다. 해외지부도 연길, 용정 등 조선족이 많이 사는, 책 문화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어린이 문화 향상의 몫을 잘 감당하고 있다. 시설과 구비 도서의 내용도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23곳이나 되는 지부 도서관에 책을 공급하다보니 구비도서의 양이 부족하다. 소장도서 양으로 볼 때 사설 어린이도서관보다 못한 상황이다. 책이 부족하다보니 밖으로 대출해가서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과정에서 회사의 사원을 대폭 줄였지만 도서관의 인력과 재정을 줄이지 않아 어린이문화단체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린이도서관운동은 ‘선진적인’ 엄마가 동화연구․비평을 열심히 하면서 ‘선택받은’(의식있는 엄마를 만난) 내 아이 손에 좋은 책을 들려주는데 만족하려고 시작된 운동이 아니다. 겨레의 아이, 세상의 아이들이 좋은 책을 통해 꿈을 키우도록 먼저 생각한 어른들이 지금은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세계 여러나라의 도서관들이 이용주민의 접근성, 편의성, 효율성에 목표를 두고 삶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 있다고 한다.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캐나다의 한 도시의 경우는 백화점 안에까지 공공도서관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도서관을 하나의 건물로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하고 시민 모두에게 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기본자세를 갖고 특히 대출과 아동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공공도서관이 권위적인 운영을 벗고 시민의 삶에 닿게 운영되고, 아이들의 주요생활근거지인 학교의 도서관이 제 몫을 하고, 엄마와 아이가 걸어서다닐 만큼의 자리에 있는 마을문고의 질이 높아지면 <어린이작은도서관협의회>와 그 소속의 도서관들의 소명은 다한 것일까?
아마 지역공동체를 완성하자는 또다른 과제(물론 동시적으로 진행될 일이겠지만)를 맞을 것이다.
⑵ 어린이도서관운동의 ‘마을 만들기 운동’적 성격
어린이도서관운동은 생활근거지(공간)로부터의 요구이다. 운동의 발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정한 순간부터 소속된 지역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어린이도서관의 ‘어린이’는 스스로 주거지를 선택해 이동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어린이도서관은 그 어린이들을 위해 생활근거지에 대한 변화(개선, 개혁)를 주도하게 된다.
① 마을 만들기 운동의 개념
마을 만들기란?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주민운동이라 할 수 있다.
참여연대가 주도해온 ‘아파트 공동체 운동’과 ‘아파트 시민학교’를 비롯해, 각 지역 YMCA가 주민들과 함께 전개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운동’과 ‘마을학교 개최’, 녹색연합의 ‘생태마을학교’, 양천구의 ‘자원봉사 마을운동(V-TOWN)’을 비롯해, ‘녹색아파트 만들기’, ‘녹색가게’, ‘민회(民會)’, ‘지역 만들기’, ‘생활협동공동체 운동’, ‘마을축제’ 등 다양한 활동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지역에서 전개되는 활동 이외에도 이러한 활동들의 연대와 교류 및 지원을 위해 시민단체, 전문가, 지역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만든 연구모임도 많이 늘었는데, ‘마을과 사람을 생각하는 모임(녹색교통운동과 지역 활동가들)’, ‘마을만들기 연구모임(도시연대)’, ‘도시공동체운동의 이념을 모색하는 모임(참여연대)’, ‘마을 가꾸기 연구모임(녹색연합)’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는 주민활동과 이를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확산되어 가면서, 이러한 활동들을 통틀어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가 논란이 되어왔다. 이러한 명칭들로는 그 동안 ‘지역 만들기’, ‘동네 가꾸기’, ‘마을 가꾸기’, ‘마을 만들기’ 등이 혼용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전문가와 시민운동 및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마을 만들기’라는 용어로 모아지고 있는 추세다.
지역 만들기인가, 마을 만들기인가?
‘지역 만들기’ 또는 ‘지역운동’이란 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YMCA가 ‘21세기 지역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역 만들기’란 말에는,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그 동안의 광역적이고, 전국적인 차원의 정치투쟁 위주 시민운동에서 벗어나 지방과 지역으로 시민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선회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지역 만들기’란 말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시민운동의 방향전환을 상징하는 말처럼 사용되었던 게 사실이지만, 생활환경에 관심을 갖는 주민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많다. 특히 ‘지역’이라는 단어가 ‘전국’ 또는 ‘중앙’의 상대개념으로 쓰이기는 하나, 때로는 ‘도시’보다도 더 큰 공간범위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어, 일상 생활환경의 문제를 다루는 주민활동의 대상이나 범위를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적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인가, 마을인가?
생활환경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주민들의 활동을 지칭하는 말로 그 동안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동네 가꾸기’, ‘마을 가꾸기’, ‘마을 만들기’ 세 가지다. 이 가운데 ‘가꾸기’와 ‘만들기’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고, 먼저 ‘동네’와 ‘마을’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살펴보자.
‘동네’란 말은 주로 여러 집이 이웃하여 살아가는 동네(마을)의 물리적 범위를 지칭하고 있는 반면, ‘마을’은 물리적 범위만을 뜻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 또는 ‘마을 공동체’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또한 ‘동네’란 말이 주로 이웃해 살아가는 주거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에 반해, ‘마을’이란 말은 ‘직장마을’, ‘컴마을’, ‘영화마을’ 등의 용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거공동체 이외에도 직업, 종교, 취미를 공유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關係網) 또는 커뮤니케이션 그룹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주거지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고, 물리적 환경개선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 이루기와 문화 만들기까지를 담고 있는 주민 주도의 생활환경 개선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제한적인 의미를 갖는 ‘동네’보다는 ‘마을’이란 말이 훨씬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 가꾸기인가, 마을 만들기인가?
‘가꾸기’란 말은 있는 것을 더 좋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보살피고, 매만진다는 뜻이 강한 반면, ‘만들기’란 말에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거나 무언가를 새롭게 이루어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마을 가꾸기’란 말을 쓸 경우 마을의 물리적 환경을 정비하거나 개선한다는 등의 하드웨어적 의미에 국한되기 쉽고, 겉모습의 치장이나 장식과 같은 소극적인 의미가 강한 반면, ‘마을 만들기’란 말은 마을 환경의 물리적 개선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등의 소프트웨어적 의미까지 함께 포괄하고 있다.
특히, 커뮤니티가 붕괴되고 이웃과의 관계마저 단절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마을 가꾸기’보다는 ‘마을 만들기’란 말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생활환경의 문제를 주민들이 함께 해결함으로써 마을환경의 개선과 주민공동체의 복원을 동시에 꾀하는 주민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마을 가꾸기’보다는 ‘마을 만들기’가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활환경 개선에 스스로 나서는 주민들의 활동을 지칭하기에는 ‘마을 만들기’란 말이 가장 적합하긴 하나, 일본어 ‘마찌즈쿠리(まちづくり)’를 직역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아직은 그다지 친숙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이 종종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친숙한 용어인 ‘동네 가꾸기’나 ‘마을 가꾸기’란 말로 대체하는 것은 말의 뜻이나 의미가 갖는 한계가 분명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친숙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이란 단어가 뜻하는 것은 여러 가지다. 첫째는 우리들의 일상 생활환경을 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를 비롯해 일터와 쉼터, 또는 자주 들르는 장소나 오고가는 거리를 모두 포함한다. ‘마을’이란 말에는 물리적 측면의 ‘생활환경’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생활환경을 공유하는 ‘마을 사람들(주민, 시민, 이용자)’과 이들이 이루고 만들어내는 ‘마을 공동체’와 ‘마을 문화’와 같은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만들기’란 말이 뜻하는 바도 다채롭다. 새로운 공간이나, 장소, 시설물 을 만들어내는 일, 생활환경을 잘 살피고 가꾸는 일, 이웃과의 친교를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 참여와 실천을 통해 건강한 주민(시민)으로 자라고, 배우고, 새롭게 태어나는 일 등의 의미가 함께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을 만들기’란 말이 뜻하는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을 만들기는 ‘삶터 가꾸기’다.
마을 만들기는 마을삶터(생활환경)를 주민들(시민, 이용자)이 스스로 나서서 가꾸어 가는 일이다. 생활하는 데 고통과 불편을 주는 생활환경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개선하며, 주민의 편의를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공용공간이나 시설, 장소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마을 만들기는 ‘공동체 이루기’다.
마을 만들기는 마을공동체(주민조직)를 이루는 일이다. 공유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하며,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단절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의사소통의 경로와 활동체계를 만들며, 주민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일이다.
마을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다.
마을 만들기는 책임감 있고 자격 있는 건강한 마을사람(주민, 시민)을 기르는 일이다. 개인공간에만 집착하던 개개인들이 공유공간에 관심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학습하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주민으로, 민주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② 마을 만들기 운동의 유형들
‘마을 만들기’란 주민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①새로운 공간이나 장소, 시설물을 만들어내는 일
②일상 생활환경(마을의 삶터, 주거환경, 공동의 장소) 중 주민들에게 고통과 불편을 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개선하며 가꾸어 나가는 일
③지역주민들이 유기적인 결합과 자발적 참여 속에 지역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④이웃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마을공동체(주민조직)를 만드는 일
⑤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 사람들에 대한 탐구와 관심 속에 마을의 뿌리를 찾고, 공동체성을 확인하여 마을을 사랑하고(향토애), 주민의식을 강화하며 마을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며
⑥마을에 대한 사랑과 헌신, 발전을 선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강한 마을 사람을 기르는 일 등이 ‘마을 만들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마을 만들기’를 통하여 개인과 지역공동체는 자기 확신과 성숙의 기회를 가지게 되며, 각 주민들의 자기 확신과 성숙의 과정을 통하여 개인과 마을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가치와 목표를 재발견하게 되며, 주민간의 가치변화와 지역사회의 관계 변화가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마을 만들기’는 궁극적으로 <마을 공동체 회복>을 통하여 주민 스스로에 의한 주민자치와 주민에 의한 지역관리 시스템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이다.
③ 마을 만들기 운동의 이론적 배경
일상생활세계론
일상세계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삶의 세계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가는 세계이며 그렇기에 별다른 관심이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생활세계이다. 그러나 누구든 이 일상세계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가는 삶의 연속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진부하게 조차 여겨지는 이 일상적 생활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기반이며,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재생산하는 행위과정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다양한 행위의 고리로 연결된 일상세계는 모든 삶의 에너지가 지향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국가 자유 정의 혁명 계급 그리고 진보 등 이른바 거대한 개념들이나 거시적인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일상생활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하며, 일상생활에서 분출되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일상은 실천이며 일상세계는 바로 실천의 세계인 것이다.
비판이론가들의 일상세계에 대한 논의는 자본주의 위기가 총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판이론가들은 비록 현실사회주의가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서긴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본주의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 위기 상황이 체제이행의 잠재력을 담고 있다는 진보관을 곧추세우고 있다.
오늘날처럼 위기를 심하게 경험하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경제위기, 통화위기, 정통성 위기와 정당성 위기, 복지국가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정당의 위기, 체제위기, 환경위기, 에너지 위기 등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위기란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위기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우리들의 건강, 생활태도, 환경의 질, 사회적인 관계, 경제, 기술, 그리고 정치와 같은 우리들의 삶의 여러 측면을 엄습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도 시급한 위기이다. (최종욱 「현대의 위기와 ‘위험사회’의 현상학」, 최종욱 외, 『현대의 위기와 새로운 사회운동』 문원 1994, 11-12쪽)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축적과정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한국사회의 곳곳에 이런 ‘위기’의 잠재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사회가 어느정도의 실질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전반이 보수화의 물결에 휩싸여 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정치의 역학이 여전히 기득권세력 층들과의 제휴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야흐로 대량소비의 시대를 맞이하여 탈 정치화의 주역들인 ‘대중’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민족, 평등, 통일, 계급 등의 모순과 갈등을 슬며시 덮어버리고 있고, 더 많은 물질적 풍요와 더많은 생활의 욕구를 외치고 있는 대중들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군의 학자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그들 주장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마르크스주의 이론상에 상당한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른바 진보진영은 새로운 시각과 운동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중 두드러진 대안이 시민사회와 신사회운동에 관련된 것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라는 담론이 글자 그대로 시민권을 획득한 것은 불과 몇 해전의 일이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시민’이라는 용어는 민중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에 비해 매우 보수적이고 ‘정태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에 와서 그 개념이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진영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론자들은 시민사회 자체가 다원사회임을 인정하고 따라서 사회운동 역시 하나의 주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다양한 주체들이 다양한 이슈들을 쟁점으로 새로운 사회운동을 전개할 것으로 주문한다. 물론 신사회운동론의 내용이나 전략, 주장들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최근의 환경운동이나 여성, 주택 들과 관련된 사회운동들은 새로운 실천의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처럼 시민사회론과 새로운 운동, 예컨대 환경, 주택, 소비, 여성, 인권 등을 지향한 운동들과 함께 생활세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정도 생겨나긴 했지만 그러나 일상과 일상세계 그 자체는 우리 학계의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특히 국가 계급 혁명 노동 등 거시개념에 집착해 있던 학군에서는 일상이나 일상세계는 무관심의 대상이었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주제이기까지 했다.
한편, 한국사회일각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 포드즘, 포스트마르크시즘 등 이름바 ‘포스티즘’의 열기가 한쪽에서 강력히 분출되고 있다. 부정하든 부정을 하지 않든, 시민사회론이나 신사회운동론 역시 그런 사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대이론, 총체성, 계급혁명과 투쟁, 자유, 정의, 진리 등 ‘큰 이야기’보다는 부분(국지성)과 다양성, 혹은 상대성 등 ‘작은 이야기’를 강조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조가 신사회운동을 옹호하는 하나의 철학적 배경이 되고 있다.(예: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들 논의들이 현대 한국사회의 발전 방향과 실천방향을 모색하고 연구영역의 지평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잇다. 그 논의들은 한국사회의 총체적 구조를 조망해 보는데 이론적 통찰력과 유의미한 실천적 전략을 제시해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의 주거, 환경 등 생활상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운동(론)은 분명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 하나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일상생활연구가 주목을 받아야 하는 까닭은 학문이 더 이상 일부 학자들이나 운동가들의 학문적 혹은 전략적 담론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학문의 궁극적 지향점은 세인들의 삶이다. 세계는 바로 ‘별다른 의식 없이’ ‘그러나 때때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세인들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 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 곧 생활세계가 시민사회 국가 ‘자본’활동의 구조적 조건이다. 그들의 생활세계와 일상적 삶이 없다면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세계에서의 일상은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삶의 형태이며, 그 세계는 ‘당연시’되면서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세계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시’되기 때문에 국가와 자본행태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고 있지 못하였던 ‘실체’이다. 그러나 일상세계는 바로 모든 이론과 실천이 지향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 생활속에서 태어나고 살며,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생산한다. 일상생활은 너무나 ‘진부하고 사소로운 것’들의 순환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수적이다. 그렇게 때문에 역설적으로 진보성을 되찾는 곳도, 되찾아야 할 곳도 바로 일상생활공간이다. 생활정치는 일상생활의 세계에서 그 진보성을 부활시키는 포괄적 정치이다. 일상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거대한 ‘자본’과 ‘국가’의 힘으로부터, 대면적인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권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억압적 전통에 대항하는 정치이다. 우리가 지향할 마지막 종착역은 일상생활세계인 것이다.
생활정치론
일상생활의 정치란 바로 생활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폭력에 대해 저항하는 정치이다. 국가와 자본의 거시적 폭력뿐 아니라 전통과 일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권력에 대해 ‘성찰적 인식’을 통해 대항하고 새로운 규범체계와 조직을 만들어나가는 운동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의 정치는 국가에 의해 점차 관료화되고 자본에 의해 더욱 조직화되는, 그리고 억압적 전통에 의해 무기력해지는 일상생활의 보수성을 극복하는 진보적 정치이다.
“좁은 의미의 정치개념이 국가의 통치영역에서 벌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말한다면 넓은 의미의 정치란 생활상의 이해관계나 가치문제의 충돌이 있을 때 벌어지는 토론이나 갈등해결을 위한 모든 형태의 의사결정을 말한다. 생활의 정치에서 정치란 이 두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그 정치의 행위는 개개인의 삶 그 자체의 과정일 수도 있고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참여를 통한 사회운동의 형식을 띨 수도 있다.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다양한 생활상의 이슈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은 생활정치의 중요한 전략적 과정이다. 서구 선진자본주의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행정체계가 비대해지면서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영역이 좁아들고 그 자율적 영역이 침탈되는 현상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생활세계에서의 자율적인 공공성의 회복, 새로운 사회운동 등의 대안들을 제시하게 되었다.
하버마스는 새로운 사회운동이란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저지하고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세계를 방어하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운동은 기존의 노동운동과 성격을 달리하는 환경(녹색)운동, 반핵운동, 여성, 인종, 소수집단 운동, 대안운동 등이다. 국가에 대항하는 지역운동, 반기술관료주의운동들도 새로운 사회운동의 양상들이다.
새로운 운동은 또한 신체적 조건이나 생활세계의 물리적 환경, 문화운동 등 매우 광범위한 차원에서 진행된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중심적인 이슈는 1)신체, 건강 성적인 정체성 등과 같은 (신체적 영역) 행위공간, 혹은 생활세계 2) 이웃, 도시 물리적 환경 3)문화적, 인종적, 민족적, 언어적 유산과 정체성 4)삶의 자연적 조건들과 인류의 생존 등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이 취하는 행위양식은 매우 비공식적이고 독특하며 불연속적이고, 상황적 맥락에 민감하고 평등주의적이다.” 또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생산의 물질적 구조를 재소유하기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발전에 대한 집합적 통제, 다시 말해 개인의 일상적 존재에서의 시간, 공간, 대인관계의 재소유를 위해서도 싸우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활정치는 삶의 존재기반을 성찰해보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도덕적이고 실존적인 문제가 ‘삶의 정치’에 포함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운동은 “따라서 생활체계 자체의 재정치화이며 그것은 더 이상 계급행동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발전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사회적 범주와 집단들의 행동표현이다.”
생활정치는 매일매일의 일상세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많은 모순과 갈등을 생활구성원 스스로가 해결해나가고 그 존재성을 회복하려는 총체적이며 포괄적인 삶의 정치인 것이다. (정수복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여민주주의』)
다시 말하지만 일상세계란 사소롭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다양한 행위들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그러나 일상세계는 우리의 존재기반을 이루며,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생산하는 생활공간이다.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일들 속에 국가와 자본, 전통의 권력들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이들 세력은 보다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담론의 생활세계를 왜소화시킨다. 생활정치란 생활상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을 생활인들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 해결해나가고 삶의 질과 존재성을 찾아가는 저항의 정치이며, 진보의 정치이다. 생활정치는 평등 자유 억압 해방 등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활상에서 경험하고 부딪히는 다양한 물적, 문화적, 제도적 사건들로부터 출발한다.
근대화의 산물이고 근대성의 이면인 일상생활은 다양한 계급 계층 세대집단들의 복합적인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근대화의 과정은 곧 ‘균등화’와 ‘차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일상적 삶의 내용이 균일하게 진행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계급, 세대, 그리고 지역에 따라 차별화가 발생한다. 생활정치의 현실적 동원전략을 위해서는 바로 일상생활의 ‘공간적 조건’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상적 삶이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것인 만큼 생활정치의 현장은 일차적으로 그가 속해있는 시간, 공간의 장소이다. 물리적 토대나 문화양식이 공간적으로 차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균일한 것은 아니다. 공간적 조건은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내용을 규정한다. 특히 환경․교통․주택․공공시설 등을 둘러싼 일상생활상의 갈등은 특정한 공간의 조건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상생활의 정치가 이런 공간적으로 차별화 된 생활상의 문제들을 생활인들 스스로의 참여에 의해 해결해간다고 하는 점에서 일상생활의 정치는 지역정치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지역은 시간과 공간의 축을 따라 일상적 행위 속에 형성되는 물리적, 사회적 영역으로서 인간의 상호작용이 가장 선명하고 빈도 높게 일어나는 생활현장이다. 지역정치의 근본원인은 ‘풀뿌리들의 주체적 참여와 책임’이다.
④ 사회운동사적 배경
시민운동의 변화와 마을만들기: 도시빈민운동-주민운동-지역운동-마을 만들기 운동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민주화’를 기치로 한 전국차원의 정치투쟁 위주였던 시민운동은 문민정부 출범과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단위의 생활환경 개선운동 위주로 운동의 방향과 내용이 점차 바뀌고 있는 추세다. 특히 1999년은 마을 만들기를 비롯한 시민의 일상 생활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시민단체의 활동과 사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해였다.
오래 전부터 보행권 회복운동과 보행조례 제정운동을 주도했던 ‘도시연대(걷고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는 1999년 3월과 6월에 ‘걷고싶은 도시 만들기와 주민참여 워크숍’을 두 차례 개최한 바 있고, 1999년 11월에는 기존의 인사모(인사동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활동을 확대하여 서울YMCA, 조계사,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 등과 함께 ‘종로연대’를 결성한 뒤 인사동을 비롯한 북촌지역 마을 만들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주도해온 ‘참여연대’는 1999년 8월에 ‘아파트 공동체 운동 전국 활동가 워크숍’을 개최하여 각 지역에서 전개되어온 운동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녹색교통운동과 각 지역 활동가 및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마사모(마을과 사람을 생각하는 모임)’에서도 1999년 12월에 ‘99년도 마을 만들기 워크숍’을 열어 한 해 동안 각 지역에서 진행되어온 마을 만들기 사례를 공동평가하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였다. 이 밖에 한국도시연구소, YMCA, 경실련, 녹색연합 등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금년에 이와 유사한 활동과 행사를 활발히 벌여왔다.
이처럼 시민운동의 성격이 지역단위, 생활환경 개선운동으로 눈에 뜨게 바뀌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시민운동의 궁극적 목적이 시민의 힘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거대 이슈 중심의 광역적이고 전국적인 차원의 운동보다는, 지역에 밀착하여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환경 이슈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오히려 효과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라는 자각과 공감대가 최근 시민운동 전반에 확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민주화 달성과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시민운동이 최근 유행처럼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현상은 마을 만들기의 비전을 밝게 해준다. 지역에서 주민과 함께 마을 만들기 활동을 직접 벌이거나 주민을 돕는 역할 이외에도, 각 지역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교류하고 연계하는 데에도 시민운동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마을 만들기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주민과 행정 사이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조정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마을 만들기
“지방자치의 본질이 바로 마을 만들기에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마을 만들기와 지방자치는 서로 깊게 맞물려있다. 마을 만들기가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만들어 가는 활동을 지칭한다면, 이 것이 바로 ‘주민자치(住民自治)’이고 ‘삶터자치’이며 지방자치의 본질을 앞당겨 구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직접 선출하는 일 정도로 지방자치를 이해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국가주도, 중앙집권적 관주도 행정에 길들여져 온 주민들은 사실상 자주, 자립정신이 강하지 못하고 갑자기 주어진 자치시대가 낯선 측면도 없지 않다. 지방행정 역시 새로운 시대상황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시대의 삶터 만들기를 주도했던 두 주체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었다. 이제 자치시대를 맞아 이들을 대신해서 삶터 가꾸기를 주도할 새로운 주체는 다름 아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일부터 세세한 도시정비사업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는 온통 행정의 몫이자 권한이었고, 주민들은 입안이나 결정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왔다. 이제 자치시대를 맞아 주민들은 과거의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 삶터는 우리 손으로’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생활공간에서부터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하며, 행정 역시 지금까지의 관행과 마인드에서 벗어나고,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여 주민본위, 주민발의, 주민주도형 자치행정을 본격적으로 펼쳐야 할 시점이다.
34년만에 다시 맞은 지방자치 시대는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지고 길들여진 병든 삶터와 우리들의 삶을 함께 치유함으로써, 건강하고 건전한 삶과 삶터를 새롭게 구축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시작되고 확산되어 가는 계기와 출발점을 ‘마을 만들기’에서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주민의식 변화와 마을 만들기
마을 만들기를 발의하고 이끌어 갈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체는 역시 주민이다. 마을 만들기가 ‘우리 삶터를 우리 손으로’ 가꾸어 가는 일이라면, 마을 만들기는 삶터의 문제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자각과 발견에서부터 시작되고 삶터를 공유하는 이웃들과의 공동노력과 실천을 통해 지속되고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만들기의 성패는 주민의식과 실천에 달려있다.
우리의 삶터가 급격한 변화과정을 겪었던 지난 30여년 동안 주민들은 그저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삶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은 오로지 국가와 행정 그리고 전문가들의 몫으로 여기고, 그저 주어진 삶터에서 체념하듯 살아온 것이다. 이런 한편 주민들은 경제적 가치만을 우선시 했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주택이나 주거환경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밖에 보지 못했고, 숱하게 옮겨다니는 유동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 집이든 우리 동네든 잠시 살다가 언제고 떠날 곳으로만 여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웃과의 관계는 더욱 단절되고 주거공동체 역시 급속히 와해되었으며, 집밖의 공유공간에는 지나치게 무관심하면서 집안의 사유공간 가꾸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집단병리현상이 만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집 앞 골목길과 통학로에서 거리와 마을공간, 도시공간에 이르기까지 주인을 잃은 우리들의 삶터는 더욱 황폐해졌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또한 더욱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희망의 싹이 조금씩 움트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주민들이 나서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는 다채로운 노력들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가 도래하면 생활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삶의 편의와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관심과 활동이 크게 늘어난다고들 한다. 우리도 어느덧 고소득 시대에 접어들어서인지, 아니면 지방자치 시대를 맞은 탓 때문인지 분명 이러한 변화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주택을 재산가치로만 바라보던 광란의 시대가 어느 정도 지나가면서 주거환경의 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자녀의 교육여건과 통학환경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으며, 주부들의 여가와 휴식, 문화, 사회교육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되면서, 이를 주민조직 차원에서 해결해 보려는 시도들이 마을 만들기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개개인 차원의 삶의 질에 대한 희구와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의 증대가 서로 맞물리면서 이것이 자연스럽게 마을 만들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생활환경에 대한 주민의 자각과 의식의 변화는 마을 만들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단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변화의 징후가 뚜렷하지 못할뿐더러, 의식의 변화가 곧바로 실천과 성취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기도 곤란하다. 따라서 이러한 희망의 싹을 더욱 키우고 확산시키려는 노력과 더불어 주민주도의 마을 만들기를 행정과 전문계, 시민운동이 함께 지원하는 전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전문계의 변화와 마을 만들기
도시계획, 건축, 조경, 교통, 도시설계 등 생활환경을 다루는 전문분야에서도 최근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러한 움직임은 크게 ‘전문가들의 시민운동 참여’, ‘주민 위주의 전문가 역할 확대’, ‘전문가들의 주민운동 지원 및 지역활동 참여’ 등으로 요약된다.
전문가들의 시민운동 참여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지역단위 일상 생활환경 개선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전문가 참여는 현격히 늘고 있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도시연대, 녹색교통운동, 참여연대 등이 전개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과 사업에 많은 도시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시민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압축성장기의 전문가 역할이 주로 관에서 일을 받아 하거나, 위원회 참여와 같은 ‘관변활동’ 위주였던 점에 비추어볼 때, 많은 전문가들이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주민 편에 서서 주민위주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계획이나 설계과정에 주민을 적극 참여시키고, 주민들의 입장과 눈높이를 존중하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의 이른바 ‘주민참여형 프로젝트’ 사례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이 주민운동을 적극 지원하거나 주민의 입장으로 돌아가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조금씩 늘고 있다. 부산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3월에 개설한 ‘21세기 주민자치, 시민운동 지도자 전문과정’이 좋은 예다. 1992년부터 ‘금샘마을’의 주민운동을 이끌어온 부산대학교 황한식 교수의 주관으로 개설된 주민운동 지도자 과정에는 지역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전문가, 공무원, 주민대표, 일반시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그 동안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나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거나 활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고, 특히 전문가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마을 만들기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여성건축가협회에서 주도했던 몇 가지 행사들도 전문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함께 하는 주거환경, 아름다운 우리 마을’이라는 주제 하에 1999년 6월에 여성건축가협회와 한국불교환경교육원 공동주최로 ‘건축과 주민운동의 만남 워크숍’이 개최되었고, ‘내가 만든 우리 마을 콘테스트’가 주부 글짓기, 어린이 그림 그리기, 가족단위 사진 및 비디오 콘테스트로 나뉘어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다. 행사의 성과 여부를 떠나서 건축계가 주민운동과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마당을 마련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전문계는 시민운동과 더불어 주민주도의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고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또 하나의 주체로 볼 수 있다. 아직은 마을 만들기에 대한 전문계의 참여와 역할이 크진 않지만,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어린이도서관의 지역사회를 위한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
⑴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
“도서관은 빈민의 대학이다. 도서관은 빈민의 지적 생명선이다.”
『도서관을 통한 지역사회프로그램』(카렌M. 벤추렐라, 2002, 한울)은 강조한다.
어떤 도서관이 되었든 도서관이 봉사대상으로 삼는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모든 계획에 앞서 수행되어야 할 중요한 작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리건카운티 공공도서관은 그 지역의 버림받은 아이들-선에 눈을 뜨기 전에 너무나 많은 살인, 성폭행, 구타, 언어폭력과 정신적 학대, 강도, 사기, 마약에 중독된 가정․부모․지역사회, 총과 두목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게 되고 그들의 유일한 생각은 “내가 25살이 될 수 있을까”라는 아이들-을 위한 가장 큰 임시보호소인 오렌지우드 아동의 집에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주일에 한번 커다란 가방에 책을 가득 담고 유아들을 방문해 큰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아기 리터러시 모임’이 그것이다. 또한 아기를 가진 10대들을 위해, 그 어린 부모들이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시작’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덴버 공공도서관 역시 홈리스 어린이나 공공보호시설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대외봉사 프로그램을 중요시한다. 저소득층 자녀의 보육시설과 어린이 병원의 종양학 병동을 방문하는 자원봉사자 활동(큰소리로 읽어주기)을 운영한다. 각 봉사자는 10주동안 한 반을 담당한다.
한편 민간단체인 ‘포스 월드 무브먼트’의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가려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을 찾아간다.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을 찾아가 거리에 책을 풀고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이 거리도서관은 빈민지역 아이들에게 읽는법과 쓰는 법까지 가르쳐 주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벌써 15년 넘게 계속되었다. ‘거리도서관’이 가난한 이웃을 찾아 가 이상적으로 일단 배움의 씨가 한번 뿌려지면 공공도서관 같은 중요한 협력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갔다. 결국 가난한 도서관이 뿌린 씨앗이 공공도서관에 의해 성장할 것이다. 거리의 도서관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도서관과 기존의 민간단체가 연대할 수 있는 예가 될 것 같다.
⑵ 어린이도서관의 마을 만들기 운동 사례
아이들과 함께 큰맘 먹고 도서관에 행차했다가 맘 편히 책을 들춰보지도 못한채 아이들이 무슨 사고치지 않을까, 혹은 아이들을 잃어버릴까봐 단속만 하다가 돌아온 경험이 엄마들에게 흔히 있다.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도 ‘쉿! 조용조용-’하라는 무언의 압력아래 숨막히게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일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엄마가 아이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 또한 책만 보게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독서신문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고 창작놀이를 할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프로그램 방에서 비디오를 볼 수도 있다.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가깝고 또 즐겁게 책과 만나는 공간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어린이도서관의 기본 되는 사업이다.
그밖에 어린이도서관들이 지역사회와 관련해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보자.
우리마을 꿈터 도서관
-마을학교: 글쓰기, 택견, 생태교실 등의 강좌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와 함께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운동에 참여
이야기밥 도서관
-구로 생협과 함께 학부모 강좌
-5월 동화축제
경기 느티나무 도서관
-지역 내 단체들과 협력망 형성, 연대활동
-자원활동가 교육
-방과후교실
-청소년 목요클럽
-초등학생 독서동아리 <책또래>
-마을축제와 음악회
-아동서비스의 진로와 과제를 모색하는 연구활동 및 매뉴얼 작성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품앗이 방과후 <뚱딴지>
-책 프로젝트 유아프로그램 <느리미집>
-열린 교육마당 <반디학교>
-책읽는엄마 모임 <크레파스> <마녀스프> <딱정벌레> <호두세알>
-도서관의 자원봉사활동 모임 <다미>
-토요 이야기방
-현장체험교실
-엄마를 위한 정기강좌
-이웃과 어울리는 잔치마당 <나랑같이 놀자>(2001년부터)
-학급문고살리기운동(2002년부터)
-주민자체센터 새마을문고를 어린이도서관으로(2003년부터)
-학교도서관 운영위원회(명예교사회)와의 간담회(2004년 2학기 예정 사업)
4. 몇가지 고민할 것들
-도서관 본래기능을 유지하면서
-재정문제를 늘 극복해야 하면서
-프로그램에서 상업적 기관과의 비교우위를 가지면서
-전문사서와 지역운동의 개념이 있는 ‘활동가’를 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