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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자유와 평등을 향한 끝없는 여로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2000년)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1. 인권이란 무엇인가
[1]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필수조건
인권(Human Rights)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당연히 갖는 권리’다. 인권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인 권리다. 여기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그냥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은 구체적인 법적 권리로서, 혹은 한 국가나 공동체,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적 질서 속에서 마땅한 도덕적 권리로서 승인됨으로써만 보장되고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2] 인권, 역사적 개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약 200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즉 인권은 일정한 시대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탄생했으며, 여러 시대적․사회적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면서 발전해왔다. 인권은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지배의지의 반영이지만 동시에 인민들의 투쟁에 의해 새로운 외연과 새로운 의미가 쟁취되는 개념인 것이다. 인권은 부단히 그 내포를 확장하는 개념이자 발전하는 개념이다.
[3] 인권의 성격
인권은 이와 같이 ‘역사적인’ 개념이지만 오늘날 대체로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인권의 성격이 존재한다.
*보편성
인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특권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성장해온 인권은 인종, 성, 종교, 장애, 피부색, 사회적 출신, 정치적 의견 또는 사상, 재산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향유되어야 한다.
*기본적․필수적
인권은 필수적이지 않은 권리나 혹은 자격과는 구별되는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란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권리라고 해석된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 원리의 필연적 귀결로서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인권의 보장을 요구할 당연한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인권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국가권력의 자의적 남용을 견제하고 권력행사의 한계를 규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권은 기본적으로 초(超) 실정법적인 권리다.
*상호 의존성
인권의 주체인 인간은 추상적인 개인으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삶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개인이다. 따라서 특정한 개인이나 공동체의 인권은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만큼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호 불가분성
인권은 자유와 평등을 핵심적 가치로 추구한다. 즉 이것은 ‘공포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자유권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일정한 수준에서의 생존을 의미하는 사회권으로 구체화된다. 이 자유권과 사회권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유없는 평등도 평등없는 자유도 인간의 존엄을 가져올 수 없다.
[4] 인권의 목록
인권은 보통 자유권(제1세대의 인권), 사회권(제2세대의 인권) 그리고 ‘집단적 권리’(제3세대의 인권)으로 나뉜다. 1948년에 제정된 세계인권선언 내요에 나타난 자유권과 사회권 목록 및 그 이후에 확립된 집단적 권리의 목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유권 목록
▶인간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안전에 대한 권리(3) ▶노예 기타 자발적 아닌 예속상태로부터의 자유(4) ▶고문 기타 비인간적인 처우․처벌로부터의 자유(5) ▶자의적인 체포․구금․추방으로부터의 자유(9) ▶공정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10) ▶사생활 및 통신에 간섭 받지 않을 권리(12) ▶재산을 소유하고 임의로 박탈당하지 않을 자유(17) ▶사상․양심․종교의 자유(18) ▶의사 표현의 자유(19)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20)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부에 참여할 권리(21) 등등
*사회권 목록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22) ▶일할 수 있는 권리,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23) ▶유급휴가 등 휴식과 여유를 가질 권리(24) ▶건강 및 행복에 필요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25) ▶교육을 받을 권리(26) ▶자신의 지적 창조물을 보호받을 권리(27)
*집단적 권리
2차 세계대전 이후 반 제국주의운동을 반영하는 권리, 집단을 보호하는 권리다. 이들 권리는 현재 생성중인 권리이며, 따라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대성해놓은 문서는 없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에 관한 인민의 자결권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할 권리 ▶자원, 과학기술, 정보, 문화 등 인류 공동의 자산에 공동으로 참가할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평화에 대한 권리 등등.
2. 인권의 역사
[1] 인권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들
인권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준다.
①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인권’을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으며, 양자의 긴장관계 변화에 따라 ‘인권’의 실질적 내용은 변해왔다. 지배세력은 ‘인권’을 가급적 형식적으로 그리고 강제력 없는 ‘강령’으로 취급하려고 해왔다. 한편 피지배세력은 그렇게 형식화되고 유명무실해지려는 ‘인권’을 실질적 권리로 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권리를 계속 받아들임으로써 ‘인권’개념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이런 양자의 힘이 충돌하는 오랜 세월 속에서 빚어져 온 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권’인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헌법이나 조약이나 선언에 항목을 써넣기만 하면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배신 당하면서도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피를 흘렸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권은 거대한 세계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개념이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권의 역사는 끝없는 여로(旅路)이다.
② 현재와 같은 자유권 중심의 인권체계는 서유럽 근대사회에서 태어났다. 또한 인권체계는 時空을 초월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특정한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회세력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보통 새 시대에 새 법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르는 사회적 요구 → 기존의 실정법에 항거하는 ‘자연법’ 주장 → 혁명 → 현실 변화 → 변화된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실정법 탄생…. 인권의 ‘이상’과 인권의 ‘현실’ 사이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근대 자본제 국가의 성립과 함께 시민혁명의 이데올로기였던 ‘인권’이 실정법제도인 ‘인권’으로서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왜소화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인권 개념은 근대 자본제 국가의 성립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및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인권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1789년,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이었다. <사람 및 시민의 권리선언>은 엄밀하게는 ‘법’이 아니었지만 여러 인권선언 중 전형적인 인권선언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인권’으로 알고 있는 것의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다.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도 이것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권의 역사는 약 200년을 헤아린다고 볼 수 있다.
[2] 前史
‘마그나 카르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 최초의 제도는 영국에서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1215년의 ‘대헌장’(Magna Carta Liberatatum)이다. 대헌장은 성문법에 의해 왕권을 규제한 최초의 문서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모두 63조로 된 ‘대헌장’의 주요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봉신에 대한 불가침영역의 보장
② 봉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일정하고도 적정한 구제절차 보장
③ ‘대표없이 과세없다’는 원칙 승인
④ 법에 의한 왕권의 규제
대헌장 이후, 수없이 배신과 투쟁에 의한 회복을 거듭하면서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의 권리였던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입헌주의적 전통이 수립되어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15, 16, 17세기 경제발전과 ‘인권’의 탄생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속을 전제로 하는 신분제도 하의 여러 관념은 ‘인권’과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자유’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신분적 특권이었다. 인권이 사회의 일반원칙으로서 등장하고 하나의 요구 및 현실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봉건제적 소유관계에 변동이 일어나야 했다. 즉 재산의 획득과 소유에 관한 모든 사람의 권리는 원칙적으로 평등하다는 인식이 반드시 일반화되어야 했다. 15-6세기 특유의 경제발전 (시민계급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그에 따르는 정치상황의 변화 속에서 봉건적 특권계급의 압박과 착취에 시달려온 시민계급은 ‘자유’를 주장하고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시민혁명의 시작이었으며 인간해방의 새로운 단계의 도래였다.
‘초기독점’과 ‘영업의 자유’ (시민혁명의 프로세스)
17세기는 영국 헌정사상 획기적인 시기였다. 그것은 봉건제적 생산양식이 자본제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던 시기였으며, 절대왕조가 무너지고 근대 의회정치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이 세기에 ‘권리청원’(1628), ‘인신보호법’(1679), ‘권리장전’(1689), ‘왕위계승법’(1701) 등이 속속 출현했다.
중세 말 이후 상업 발달로 인한 전기적 자본의 집중은 영국(에리자베스), 프랑스(꼬르베르), 독일(프리드리히대왕)에서 절대왕제와 유착한 ‘초기독점’이라는 경제사적 시대를 만들어냈다. ‘초기독점’의 특징은,
① 중세적․길드적 독점의 극지성을 벗어나 national한 규모로 이루어진 점.
② 매점(買占)독점이자 소생산자들에 대한 상업자본의 지배라는 점
③ 전기적 자본 본래의 활동분야인 원격지상업에 있어 전형적으로 형성된 점
(소금, 유리, 비누, 화약, 종이, 무기, 그리, 놋 등등)
④ 주인공은 산업자본가가 아닌 특권적 政商 혹은 寵臣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비 산업적 독점형태는 “근대적 산업의 자유=경제적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신흥사업자본에 저항에 의해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자생적 산업자본의 성장이 national한 절대주의의 경제적 규제에 national하게 항거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었다. 즉 17세기 반 독점운동은 단순히 ‘초기독점’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기독점’을 지탱하는 권력기반(절대왕조)에 대한 권력투쟁이었다. 이것은 국왕과 의회 사이의 항쟁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17세기 영국의 이와같은 저항은 구체적으로는 “신민의 자유에 반하는” 혹은 “영업의 자유에 반하는”이라는 용어로써 독점을 비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현대를 사는 우리가 “위헌” 혹은 “인권침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초기독점’은 ‘명예혁명’을 획기로 하여 최종적으로 해체되었으며 ‘영업의 자유=경제적 자유’가 지구상에 성립하게 된다. 이와같이 영국 시민혁명기의 ‘인권’ 성립은 국가권력과 그 지배를 받는 인민과의 대항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자연권’ 사상이나 ‘사회계약설’이 “영업의 자유”를 외치는 신흥산업자본가들에게 더없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3] 제1세대의 인권(자유권)
자유권 중심의 인권개념
근대 시민혁명 직후에 확립된 인권으로서 공통된 성격은 국가의 부작위[不作爲]를 요구하는 무형적인 권리라는 점이다. 애초에 신체의 자유, 정신활동의 자유 등이 조항은 있었으나 그 시대에 가장 강조된 것은 경제활동의 자유, 즉 재산권, 노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이었다. ‘평등’의 개념은 있었으나 이것은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게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였다.
자유권적 인권의 탄생-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
근대 시민혁명의 슬로건이 ‘자유’ ‘평등’ ‘박애’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유롭고 평등하다. 이것이 근대 시민사회의 전제였으며, 이런 전제는 개개인이 상품을 교환하는 평등한 주체라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전제와 조응하는 것이다. 중세 이전 사회구성체의 여러 이해관계를 표시하는 ‘계급’이라는 개념은 ‘신분’이라는 개념과 결합되고 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형식적으로 ‘법 앞에 평등’인 자각적․주체적 인간을 전제로 하여 그 형식을 통함으로써 비로소 계급적 이해가 관철된다. 이리하여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보편적(“모든 사람”) 인권을 선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배신 당한 ‘자유․평등’의 꿈
봉건체제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시민혁명이 이루어낸 ‘자유’ ‘평등’의 이념은 분명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외침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주도했던 시민계급의 주된 관심사가 자본주의 확립과 발전에 필요한 소유권과 경제활동의 보장에 있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산업자본의 지배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평등’의 내용이 형식화(‘법 앞의 평등’) 됨과 동시에 ‘자유’의 내용은 변질된다. 즉 사상․표현․신체 등 정치적 ‘자유’는 하위규범에 의하여 엄하게 제약되고 경제활동 및 재산의 ‘자유’는 한결같이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적 ‘합리성’)
근대시민혁명은 자본주의의 전개를 확보하는 사회혁명이었으며, 근대 시민헌법은 그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분명 인간해방의 새로운 단계였지만 “착취사회 내부에서의 진보일 뿐”(Karl Marx)이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부한 속성을 가진 ‘인간’이 해방된 것이 아니라 ‘노동력(상품) 소유자로서의 인간’만이 해방된 것이다.
‘보편적 인권’은 없다?
봉건적 특권이 특정한 신분을 전제로 했던 것과는 달리,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생겨난 ‘인권’의 두드러진 구조적 특징은 그 형식의 고매한 추상성․보편성이다. 이것은 권리주체의 超계급적 표현에 무엇보다 잘 드러나 있다. 즉 “누구나 …” 혹은“무든 사람은…” 등등. 그러나 이런 보편적 표현형식은 실질적으로 계급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기커녕 오히려 시민사회 내부의 경제적 약육강식과 인간소외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면서 인권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형해화 시켜왔던 것이다.
현대 ‘인권’ 개념의 뿌리
이렇게 왜소해진 ‘인권’은 서유럽 사회에서 제도로서 정착되어갔고 약간의 변형 (프로그램규정으로서의 약간의 사회권 조항 추가)을 겪은 후 기본적으로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흔히 ‘인권’으로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인권체계인 것이다. 이런 ‘인권’개념에는 첫째로, “‘인권’의 길을 가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인식과 둘째로 “자유와 평등이란 어차피 현실의 것이 아니며, 인류사회의 ‘강령’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체념, 그리고 셋째로 “‘자유권이 진짜 인권이다.”라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제2세대의 인권 (사회권)
사회권이란 무엇인가?
이 권리에 특징적인 것은 분배정의가 실현되기 위하여 국가에 작위[作爲]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유형의 가치에 대한 요구이기 때문에 자원의 배분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권의 탄생
근대적 인권 이념의 기초를 이룬 ‘豫定調和’적인 발상은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가진 자에게는 더욱 유리하게, 가난한 자에게는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여 몸서리쳐지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인간적 노동조건, 실업과 저임금으로 인한 빈곤, 아동노동․빈곤․질병․열악한 노동조건에 따른 평균수명의 저하, 문맹(文盲), 범죄의 증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인간소외의 현실에 대하여 실질적인 생존권을 확립하려는 격렬한 투쟁은 있었고 이것을 체제내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권’이라는 권리 체계가 탄생한 중요한 원인은 무원칙한 노동착취에서 오는 노동력의 피폐현상을 피함으로써 자본의 재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권의 보장 그 자체는 反자본주의적이 아님은 물론, 현대에 있어서 안정된 최대이윤을 위하여 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사회권은 현실의 사회에 있어서 구체적인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권리주체로 하고 있다. 이들 권리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며,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시몽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후 혁명투쟁과 사회복지운동으로써 다양하게 추진되어온 사회주의의 전통에 주로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6월사건 (1848년)과 파리 꼼뮨(1871년)을 통해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자신의 계급적 이해[利害]를 자각해간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우리가 오늘날 사회권을 ‘인권’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사회권의 발전
1870년대에 서유럽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한 사회정책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체제수호적 정책이었다. 즉 1870년대에 전 유럽을 휩쓴 불황, 그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 사회주의사상의 급속한 확산의 결과 한편으로는 가혹한 단속과 처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사회정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의 확산에 대한 대책으로서 후발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치안대책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후자의 경우가 현대 복지국가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바이마르 헌법
사회권은 두 갈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과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이 그것이다. 러시아혁명은 사회권의 사회주의적 대안이었으며, 자본주의국가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을 처음으로 헌법에 보장한 ‘바이마르 헌법’은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을 구체화했다. ‘바이마르 헌법’은 러시아혁명 후 독일 좌파가 11월혁명에 실패하자 사회민주당 우파와 여러 부르조아 정당의 연합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인 ‘생존권’은 다음과 같다. (제5장 [경제생활] 제151조)
“경제생활의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이름에 값하는 생활을 보장할 목적을 갖는 정의의 원칙에 적합해야 한다. 이 범위 내에서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확보되어야 한다”
이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인정하되 쟁의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동의 윤리적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쟁의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사회권, 그 기망과 희망
이 새로운 권리는 19세기부터 큰 힘을 떨쳤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자본주의국가 내에서 서서히 확산되어갔지만 그것은 물론 완전한 인간의 ‘복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자본주의국가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은 구체화되었지만 소외된 민중들의 ‘생존권 찾기’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바이마르헌법’의 생존권은 ‘권리’로서 승인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규정’으로서 해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이상을 드높이 외치는 많은 현대국가에서도 여전히 인권 개념의 중심은 전통적인 자유권이며, 사회권(생존권)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 인권체계란 결국 여전히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의 재생산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바로 그 인권체계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현대 복지사회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국가들과의 냉전구조 속에서 발전한 사회이며, 그것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경제적 패권 하에서의 서방 나라들의 ‘평화의 처방전’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에 의한 복지국가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사회권’이라는 것은 상당히 기만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실질적인 평등권을 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회권의 보장으로써 우리는 서구 근대사회의 역사적 제약을 지니고 있는 인권체계를 ‘지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권체계를 ‘지양’할 역사적 전망이 쉽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조건에서 인권운동으로서 사회권의 실질적 권리화를 위한 노력은 현시점의 최대의 과제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자유주의’의 횡포를 떠받치고 있는 ‘자유권’ 중심의 전통적 인권개념에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거의 유일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권을 실효성 있는 인권으로 재창조하는 일, 이것은 21세기에 인권의 역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5] 새로운 도전, 제3세대 인권의 등장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또한 이전 시대의 인권의 개념이 서구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남성․자본가계급의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는 자각(自覺)이 성장하였는데, 이러한 자각의 주체들은 바로 직․간접적 식민지배하에 있던 제3세계 국가들과 여성, 유색인종, 소수민족 등이었다. 이들은 민족해방운동(자결권 확보운동), 흑인민권운동, 페미니즘운동 등의 사회운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승인과 보편적 권리의 보장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이들의 정치적 요구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 이른바 집단권이라고 불리는 제3세대 인권이다.
제3세대 인권은 여성에 대한 성적 차별과 인종차별, 신생독립국가를 위주로 구성된 제3세계와 중심부 국가들 간의 빈부격차(남북문제), 국제무기경쟁과 핵전쟁의 위협, 그리고 생태위기 등의 국제문제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나온 인권의 새로운 목록이다. 이 새로운 권리들은 1, 2세대 인권과는 달리 국가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 혹은 연대의 권리라는 점에서도 이전 세대의 인권과 구분된다. 제3세대 인권은 아직까지 체계적인 인권의 한 분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지만, 국제정치와 경제, 문화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논쟁을 통해 확립되어 가고 있다.
인권의 역사는 ‘끝없는 여로’이다. 그것은 첫째로 과거에 당연지사로 인식되어온 일들의 정당성에 회의가 일고 그것을 부정하는 가운데 새로운 권리의식이 발생하는 까닭이요, 둘째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자유나 생존에 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권리 외에 장애인의 권리, 프라이버시의 권리, 알 권리, 아동의 권리, 동성애자의 권리 등등 많은 권리가 2차대전 이후에 크게 부각되었다.
3 현대의 인권과 ‘세계인권선언’
[1] 세계인권선언
UN 결성 이후, 특히 1970년대부터 인권의 국제화는 필연적 추세가 되었다. 이런 추세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이다.
성립과정
1946년에 UN이 발족하자 'UN헌장‘에 언급된 ’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하여 막바로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가 설치되었다. 이는 ’UN헌장‘ 68조에서 예정되어 있던 기관이다.
인권위원회는 자신의 임무를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시키기로 결정했다. 즉,
① 인권의 내용을 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권선언
(International Declaration of HR)
② 구속력 있는 조약 형식을 취한 국제인권규약
(International Covenants on HR)
③ 국제인권규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실시조치
(measures of implementation)
이 중 ①이 바로 ‘세계인권선언’으로서 1948년에 채택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도 ③ 단계는 진행중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 소련을 비롯한 당시 사회주의 6개국은 이 ‘세계인권선언’의 의의를 일정하게 평가하면서도 “불충분한 것”이라는 이유로 기권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①파시즘 반대를 명기하지 않았다. ②민죽자결권을 명기하지 않았다. ③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충분하지 않다. ④사적 소유권을 인권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
1-2조는 다른 조문들의 기초를 이룬다. 3-21조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22-27조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으며, 28-30조는 모든 권리의 향유에 관한 일반규정으로 되어 있다. ‘선언’ 전체의 구성을 보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군(群)에 일정하게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압도적 비중을 둔 이 ‘선언’은 여전히 서유럽 자본주의국가형 인권체계를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의 의의
‘세계인권선언’은 어디까지나 ‘선언’에 머무는 것이며, 직접 “준수해야 할 법”은 아니다. 따라서 조약처럼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국제 관습법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적어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정부들을 도의적으로 구속하고 있다. 즉 ‘세계인권선언’은 그 존재 자체로서 이후에 UN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인류의 인권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을 견인해왔던 것이다.
[2] ‘세계인권선언’ 이후의 전개- 실질적 인권보장을 위한 노력
*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던 UN총회 1948년 회기에서 경제사회이사회는 인권위원회에 ‘조약 형식을 취한 국제인권규약'과 ’국제인권규약상 인권의 보장을 담보하기 위한 실시조치‘의 초안을 최우선 사항으로서 준비할 것을 요청했다.
이리하여 1966년에는 UN총회에서 드디어 두 가지의 역사적인 인권조약들이 채택되기에 이른다.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사회권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시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자유권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이 그것이다. 이 조약들은 10년 후인 1976년에 발효되었으며, 인류는 인권신장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제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은 ‘단순한 약속’을 넘어 가입 당사국들에게 이행 의무를 지우는 ‘계약’으로서 결실되었다.
* 인권문제는 원래 각국의 소관사항이었다. 즉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들먹이는 행위는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이라는 국제관습법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한 ‘인권보장’의 역사는 다시 여러 국제조약의 탄생으로 짧은 시간에 숨 가쁜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국제적 인권보장의 역사 중에서 진정 획기적인 일은 인권을 현실화 시키려는 의지가 반영된 여러 가지 실시조치들이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인권침해사건에 대하여 개인 및 민간단체가 UN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까지도 포함된다.
1970년대 이후 많은 국제인권조약들이 생겨났으며(여성차별 철폐, 인종차별 철폐, 고문 금지, 아동의 권리, 아파르트헤이트 금지, 난민의 지위, 이주노동자의 권리 등등), 이들 조약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여러 위원회도 설치되었다.
이 밖에도, 조약에 의거하는 것은 아니나, “중대하고도 되풀이되는 인권침해”에 관한 제소를 접수하는 ‘1503 절차’, UN과 독립된 전문기구인 ILO와 UNESCO 등의 제소절차가 인권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3] 새로운 ‘인권’ 개념을 위하여
추상적․보편적․超계급적 형식을 취했던 ‘인권’은 사회조건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해석을 가능케 했으며, 새로운 의미를 가진 ‘자유’․‘평등’으로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외연을 넓혀올 수 있었다.
전통적 ‘인권’의 추상적․보편적․超계급적 형식은 따라서 ‘인권’이란 말에 비교적 유연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현실의 경제적․사회적 힘관계를 고려에 넣지 않고 ‘인권’ 그 자체로서 생각할 때 (즉 ‘인권’이 ‘물신화’할 때) ‘인권’은 현실을 떠난 허황된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현실의 경제적․사회적 힘관계를 적극적․실질적으로 고려에 넣고 ‘인권’을 생각할 때 ‘인권’은 현실을 반영한 정직한 개념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회조건에 적응해 가는 ‘인권’의 모습에 우리는 ‘인권’이 우리의 노력으로 어느 날엔가 진정하게 인간을 소외에서 해방해주기 위한 보편성을 갖는 인권으로서 거듭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인권’을 생각하는 기준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차원으로 내려가서 설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직한’ 인권개념을 도출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 차원, 그것은 ‘생존할 권리’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혹은 부차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관념적 사변은 정직한 인권개념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권옹호’는 사실은 단순히 사회적․제도적으로 확립된 인권제도의 옹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법칙에 규정된 인간의 본원적이고도 자연적 욕구인 생존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하는 한 이러저러한 제도적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생존권을 확보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자유권을 비롯한 여타 모든 권리군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런 ‘인권’개념의 구조를 세울 때 그 ‘인권’은 기망이 아닌 희망일 수가 있다.
4. 한국의 인권운동
70년대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유신’ 이전에는 구속된 몇몇 명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운동 외에 인권운동이라고 할만한 조직적인 활동은 없었다. 그러니까 한국 인권운동은 군사정권의 인권탄압과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박정희 정권이 본격적인 독재체제로 들어간 이른바 ‘유신’을 계기로 ‘민청학련사건’, ‘2차 인혁당사건’을 비롯해 ‘긴급조치 9호’로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들에 대한 석방 및 지원운동을 중심으로 활발한 운동으로 성장해갔다.
*민청학련사건만 해도 연루자 1024명, 구속자 203명, 1심 사형 9명, 1심 무기 21명이라는 규모였다.
70년대 초에 몇몇 선구적인 인권변호사들의 활동이 드두러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결성되었지만 이내 와해되어벼렸다. 1974년에는 NCC인권위원회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각각 출범하여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인권운동사에 길이 기록될 중요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한국에 들어와 있던 외국 선교사들의 활약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남발되는 박정희의 ‘긴급조치령’으로 늘어나는 구속자에 비례해서 구속자 가족들의 운동은 활발해져갔다.
80년대
‘광주’와 함께 시작된 80년대 초반은 전주환의 암흑통치에 눌려 민주화운동은 잠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운동의 힘은 각계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1985년부터 여러 가지 인권단체가 태동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활동을 시작했다. 독재타도의 구호는 “민주회복”과 “인권”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987년 6월의 대항쟁을 거쳐 민족운동․민중운동의 활동공간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면서 여러 가지 대중조직 (전노협, 전교조, 전대협, 전농 등등)이 생겨 사람들은 이제 “인권”이라는 구호를 외치지 않게 된다. 좁은 의미의 ‘인권운동’은 이제 몇 년동안의 침체기에 접어든다.
90년대
90년대는 세계사적으로는 소련․동유럽의 붕괴라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서방으로부터 계속 ‘인권공세’를 받고 무너진 소련, 과거에는 인권을 “부르주아지에 의한 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허위표상”이라고까지 비난했던 러시아에서 <사람의 권리 및 자유선언>(1991년)이 제정되기에 이른 것은 세계사에서의 ‘인권’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동서대립의 소멸로 서구 선진국이 자신의 동맹국인 도상국의 인권억압을 지지하고 두둔할 이유가 없어진 것도 지구에 ‘인권의 세기’로 진입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993년에 비엔나에서 UN 세계인권대회가 열렸다. 이것은 30년만의 세계인권대회였으며 우리 인권단체들(9개 단체)이 ‘세계인권대회 공대위’를 결성하여 대거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은 침체에 빠졌던 인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 반독재투쟁만을 했던 우리 인권단체들은 이 대회를 계기로 인권의 국제성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1994년에는 한국인권단체협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소련․동구의 붕괴로 거대담론을 잃은 민중운동은 90년대 초반부터 여러 가지 구체적인 주제에 매달리면서 세분화된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데 그런 운동들이 90년대 후반에 와서 ‘인권운동’이라는 공통분모를 의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인권운동은 군사독재시기 시민권 구현투쟁에 그 뿌리를 둔 단체들과 90년대 이후에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단체들을 아우른 힘있는 운동으로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인권단체들
* 종교관련단체- 여러 종교단체에 소속된 인권위원회/ 성직자단체 /평신도 단체 등
* 피해자단체--- 유가족협의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장애인 관련단체/ 고엽제피해자/ 삼청교육대 등
* 지원단체----- 정신대/ 외국인 노동자/ 민가협 등 양심수 지원/ 기지촌 여성 지원 등
* 노동-------- 각종 노동상담소/ 노동인권회관 등
* 여성-------- 여성의 전화연합/ 성폭력상담소/ 여성을 위한 쉼터/ 여성민우회 등
* 국제-------- 국제민주연대/ 나와 우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좋은 벗들 등
* 환경-------- 환경련/ 녹색연합 등
* 반 폭력------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 인권실천시민연대
* 아동---------청소년단체들
* 인권교육-----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
* 사회권------- 주거권운동 / 철거 반대운동 /각종 빈민운동
* 법률구조,정책- 민변, 법률소비자연맹
* 학술단체----- 민주법연/ 성공회대 평화인권센타
* 지역--------- 부산인권센타/ 광주 인권지기/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등
* 종합--------- 인권운동사랑방
* 시민운동------ 참여연대, YMCA, 경실련, 흥사단 청소년
* 각종 공대위--- 5,18 공대위, 전신대, 전자주민카드, 국가보안법, 에바다, 국가인권기구 등
* 기타----------(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 북한인권개선운동본부, )
한국인권운동의 과제
*과거청산 : 양심수 석방 및 수배해제 / 조작간첩, 고문, 의문사 등 진상규명 / 과거 대량학살 사건
*억압기구(안기부, 경찰, 검찰, 법원 등)의 개혁
*사법제도 개혁 : 형사소송법 개정 / 행형법 개정 / 도청 및 검열 전면 폐지 / 사형제도 폐지 등
*사상․양심과 표현의 자유 : 국가보안법 / 사상전향제도 / 보안관찰법 / 사전겸열 폐지 / 집회 시위 *감시․통제제도의 완화 혹은 철폐 : 불심검문 / 도․감청 / 사찰 / 총기사용
*사회권의 확대 및 여성의 권리 : 노동자의 권리 확대 / 사회복지의 확대 / 호주제도 페지와 남녀평등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및 인권교육의 본격적인 전개
*아동의 권리 구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