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원윤씨 시조묘와 홍포서원


홍포서원 유허비
남지체육공원 대형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낙동강 남지유채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대여소” 앞의 남지철교를 건너면 철교 끝 우측에 ‘홍포서원 유허비’가 있다. 홍포서원은 원래 남지철교의 함안군 쪽 입구에 있는 용화산 기슭 능가사 절 앞에 있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고 후손들에 의하여 원래 위치에는 ‘홍포서원유허비’를 보존하고, 홍포서원은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어 있다. 계내 삼거리를 거쳐 칠서공단 첫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하여 공단북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공단북안길로 우회전하면 홍포서원과 시조묘역을 만나게 된다. 약 2.5km로 왕복 5.0km 정도 거리다.

홍포서원 주소 : 경남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1176번지

홍포서원 일주문

홍포서원(鴻浦書院) 대문

홍포서원(鴻浦書院)
일주문을 들어서면 홍포서원(鴻浦書院)을 만나는데 윤환(尹桓) 윤자당(尹子當) 윤지(尹志) 윤석보(尹碩輔) 윤탁연(尹卓然)을 배향하고 있다.
칠원(漆原)은 경남 함안군에 있는 지명이다. 본래 신라의 칠토현(漆吐縣)인데 경덕왕 때 칠제(漆隄)로 고쳐 의안군(義安郡 지금의 창원)에 예속시켰으며, 고려 초에 칠원으로 고쳤고 현종9년(1018년)에 김해에 속하였다. 조선조 선조(宣祖) 때 창원에 속하였다가 광해군(光海君) 때 현(縣)이 되었고 1895년(고종32)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후에 함안군에 병합되었다. 1906년에 칠서면, 칠북면, 칠원면의 이름이 정해졌다.
홍포서원 옆의 홍포사(鴻浦祠) 앞에는 홍포서원에 배향된 5선생의 행적비가 있으며 비석 윗쪽에는 한문으로 그 아래에는 한글 해석문을 함께 기록되어 비문 내용을 읽어 볼 수 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비문을 확인 할 수 있다.

홍포사(鴻浦祠)

홍포사 5선생 행적비에는 6각 비신에 전면에 "5선생 행적비"라 비명을 쓰고 나머지 각면에 5선생 한분 한분의 행적을 상단에는 한문으로 그 아래에는 한글로 해석하여 기록해 놓아 누구라도 선생들의 행적을 쉽게 알수 있게 하였다.

5선생 행적비

諱 자당 행적비문 諱 지 행적비문

諱 석보 행적비문 諱 탁연 행적비문

諱 환 행적비문
5선생 행적비를 지나, 제일 안쪽에 있는 균시문(均視門)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재실로 사용하는 정면 5칸 와가인 상포제(上浦齊)가 있다.

균시문(均視門)
칠원윤씨(漆原尹氏)는 신라 무열왕(武烈王)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낸 윤시영(尹始榮)을 시조로 한다. 시영의 아들 황(璜) 이후의 세계(世界)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에서 호장(戶長)을 지낸 거부(鉅富)를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그 후 17세손 길보(吉甫)가 삼중대광첨의찬성사(三重大匡僉議贊成事)를 역임하였고 귀성군(龜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칠원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本貫)을 칠원(漆原)으로 하였다.

상포제(上浦齊)
제사를 모시는 제실이다. 상포제를 나와 우측 동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면 잘 관리된 묘역이다. 제일 위쪽의 묘가 칠원윤씨 시조 시영의 묘소다.
정경공(貞景公) 저(抵)는 조선이 개국되자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으며 제2차 왕자의 난 때 태종(太宗)을 도와 좌명삼등공신(佐命三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칠원군(漆原君)에 봉해 졌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석보(碩輔)는 호당(湖當)에 뽑혔고 관찰사(觀察使)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청뱍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었다. 현령(縣令) 이(伊)의 아들 탁연(卓然)은 명종(明宗) 때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형조판서(刑曹判書)와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종계변무(宗系辨誣)하여 광국삼등공신으로 칠원군(漆原君)에 봉해 졌다.

시조 시영 묘

시조 시영 비석
중시조(中始祖) 거부(鉅富)의 16세 손 수(秀)가 충렬왕조의 군부판서를 지낸 현조(顯祖)로 공의 아들 길손(吉孫) 전서공 파와 길보(吉甫) 충의공파 그리고 계유(繼柔) 대장군공파 후손이 번창하고 있다. 현재 전서공파는 무후하고 충의공 5자파(충효공파 대언공파 칠성공파 사윤공파 부원군파)와 대장군공파를 함께하여 칠원윤씨6방파로 종기(宗旗)에 표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족보대전1989)

경남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1194-1의 묘역에는 제일 위쪽이 시조 윤시영의 묘이고 중간이 중시조 호장공 거부의 묘소며, 제일 앞이 충의공파 파조 길보의 묘소다.
아들 윤황(尹璜)과 중시조 윤거부 묘소는 경남 함안군 칠북면 검단리에 있다.
"경신보" 상계편에 보면 신라 태종무열왕 때 칠원현에 사는 윤씨 부인이 꿈에 신인으로부터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시영이라 하라는 말을 듣고 지은 이름이라는 설화가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