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전분을 알칼리 용액에 담그어 두거나 물에 풀어 열을 가했을 때 그 이중결정성을 잃으면서 풀어져서 풀처럼 되는 현상을 호화라고 한다. 우리가 쌀로 밥을 짓거나 쌀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을 때 점착성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이 전분을 구성하고 있는 아밀로펙틴의 호화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전분은 X선회절(回折)에 의해 이중결정구조의 회절도형을 나타내므로 베타(β)-전분이라 일컫는데, 호화가 되면 결정구조를 잃어버린 회절도형을 나타내어 알파(α)-전분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호화를 알파(α)화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분입자가 물이 충분한 조건에서 호화시키면 부피가 약 60배 정도로 팽창된다고 한다. 쌀전분립자가 수분을 충분히 포지하여 호화된 모양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마치 수세미처럼 보이는 미세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품종에 따라서 쌀 전분의 호화가 시작되는 온도에 차이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칼리 용액 침지처리에 따른 붕괴양상이나 아밀로그래프 및 시차주사열분석기(Differential scanning calorimetry : DSC)를 이용하여 알아낼 수가 있다. 쌀을 1.4~1.7% 수산화칼륨(KOH) 용액에 침지하여 30℃에서 23시간 정도 두면 어떤 쌀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에 호화가 잘되는 것은 쌀알이 완전히 풀어져서 형체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버리며, 중간 정도의 호화특성을 나타내는 쌀도 있다.
이러한 묽은 알칼리 용액에 대한 붕괴 정도는 쌀에 물을 붓고 열을 가하여 익힐 때에 호화가 잘되는 성질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전분의 이중결정성 구조의 조밀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묽은 알칼리 용액에 의한 붕괴반응 양상은 품종에 따라서 쌀과 전분이 거의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쌀의 알칼리붕괴도는 품종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지만 미미하기는 하지만 환경의 영향도 받는다. 벼알이 여무는 기간 중에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 등숙된 쌀알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등숙된 쌀에 비해서 약간 덜 붕괴되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러한 쌀 전분의 알칼리 용액에 의한 붕괴 정도는 산(酸)용액에 의한 분해속도와도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어 알칼리 용액에 잘 붕괴되는 쌀이 산용액에도 빨리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의 호화는 특히 쌀알 바깥층의 전분입자를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입자의 영향을 받으며, 또한 쌀이 묵어서 지질이 산화되어 글리세린과 지방산으로 유리되면서 유리된 지방산이 전분입자 속으로 스며들게 되면 글루코스 분자로 연결된 사슬의 나선구조 속에 자리 잡게 됨으로써 호화를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은 쌀이 햅쌀에 비해서 또는 찧은지 오래된 쌀이 갓 찧은 쌀에 비해서 밥의 탄력이나 찰기가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호화와 관련된 내적변화에 기인된 것이다.
쌀알이나 쌀가루 또는 전분을 물과 열을 가하여 호화시킨 다음 식혀두면 점차 굳어지는 현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노화라고 한다. 이는 전분입자를 구성하고 있는 아밀로펙틴이나 아밀로스분자가 수분입자를 포집하여 호화된 상태에서 열에너지를 잃게 되면 점차 주변 공간으로 수분입자가 일탈하는 현상을 나타냄으로써 자기들끼리 엉켜 붙어서 굳어지는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분의 노화현상을 베타(β)화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호화된 전분을 방치해 두면 어떤 지지체(支持體)에 붙잡혀 있지 않으면 안정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진 아밀로스가 식으면서 내부에너지를 잃게 되면, 다시 아밀로스가 식으면서 내분에너지를 잃게 되면, 다시 아밀로스끼리 서로 모여 엉켜 붙어서 원래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재배열하여 어떤 결정성을 나타내게 되며, 이 경우 필요 없게 된 물은 풀덩어리 밖으로 빠져 나가 떠 있는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호화전분의 노화특성은 아밀로그래프에서 호화 젤을 냉각시켰을 때 점도가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정도를 나타내는 응징(consistency)점도나 호응집성(gel consistency)검정에서 호화․냉각시킨 젤이 흘러가 길이와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쌀이 대개 호화․냉각시킨 젤이 빨리 굳어서 잘 흘러가지 못하는 특성을 나타내지만, 고 아밀로스 쌀 중에서 품종에 따라서는 이러한 호화․냉각시킨 젤이 어느 정도 잘 흘러가는 성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노화에 의한 재배열하여 굳어진 전분은 생전분(β-전분)과 같인 X선회절에 의해 미결정이 존재하는 회절도형을 나타내지만, 생전분과 같은 굴곡이 강한 도형이 아니고 구조적으로 생전분과 같은 모양으로 되돌아 간 상태가 아니므로 β′-전분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떡이나 밥을 저온에 장시간 방치해 두면 전분의 노화에 의해 굳어져서 식미가 떨어지고 소화성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 품종이나 조리가공된 식품형태 또는 보관조건에 따라 노화되는 정도가 달라지는데 이러한 노화정도는 텍스쳐(texture)분석기에 의한 경도(硬度)변화나 베타-아밀라제-플루라나제(β-amylase-pulluanase ; BAP)법 또는 알파-아밀라제-아이오다인(α-amylase-iodine)법에 의한 호화도로써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전분의 노화는 수분 30~60%, 온도0℃에서 급속하게 진행되며 전기보온밥솥(70℃)에서도 느리기는 하지만 역시 노화가 진행된다. 전분식품을 장시간 보관할 경우 가능한 한 노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려면 냉동저장시키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경우 될 수 있는 데로 급속하게 냉동시키고 급속하게 해동시키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전기보온밥솥에 보존할 경우 짧은 시간 동안은 노화를 억제시켜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지만, 장시간 보존해 두면 밥에 함유되어 있는 아미노산과 당이 반응하여 메라노이진이라고 불리는 갈변물질을 생성하기 때문에 밥이 갈변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 경우 색깔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냄새와 맛, 질감이 변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식미가 나빠지고 영양적인 손실도 크며 소화성도 떨어지게 된다. 밥은 전기보온밥솥에 5시간 이상 두지 말아야 하며 냉고에 보관할 경우에도 이틀을 넘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노화된 떡이나 밥을 다시 찌거나 전자레인지로 덥히게 되면 다시 β′-전분이 주변 틈새로 갇혀 있는 여기(勵起)된 물분자의 영향을 받아 수분을 포집하면서 호화 팽창되어 본래의 탄력감과 찰기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최해춘. 1996. 쌀을 알자. 신구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