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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 교회 목사들은 현재적 부활에는 관심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으므로 언젠가 신도들도 죽고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활은 죽은 후에 육체적 부활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살아 생전에 부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육체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죽은 시신을 냉동해서 보관하여 언젠가 소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다.
부활과 소생은 엄연히 다르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여러 번 살리셨다.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렸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으며,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바울이나 베드로 역시 죽은 자를 일으킨 예도 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은 영생의 몸이 아니라, 흙에서 온 육체이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셨으므로 그것을 부활로 생각할지 모르나, 부활은 육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다.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후에는 천사와 같다 라고 말씀하셨다. 천사는 사람의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16-18절에서는 씨를 비유하면서 씨는 땅에 떨어지면 죽지만,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있으므로 생명이 형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씨 속에는 떡잎 모양의 생명이 있다. 사람으로 말을 하자면, 영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에서 살리는 주체는 성령이고, 살리는 대상은 죽어있던 영이다. 그래서 씨 속의 생명은 영이나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이라는 형체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영의 몸을 입으므로 부활이라는 영광체로 태어난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49-50절에서 썩을 몸은 하늘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을 한다.『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영의 몸은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몸이며, 그리스도의 옷이며,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신령한 몸이다. 변신하고, 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영생하는 몸이다. 육의 몸이 변하여 영의 몸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새창조라고 한다. 부활은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보혈만 강조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활이 빠진 교회는 반쪽짜리 복음이 된다. 그래서 성경대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목사들이 성경 대로 살지 않으면서, 신도들에게 성경대로 살자고 말을 하는 격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와 죽은 후에 부활될 것이라고 믿는 자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천국)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현재가 아니라, 미래 어느날(종말)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따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여전히 신봉한다. 심지어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다. 마치 세분의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현재적 그리스도의 재림도 없으며, 심령 속의 천국도 없으며, 심령 속의 천년왕국도 없으며, 심령 속의 생명책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 승천한 것도 믿지 못할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3절의 말씀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육에서 영으로 바뀌었으며, 육의 정체성은 죽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보좌에도 있으며, 성도의 심령 속에도 계신다. 따라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의 하나님 안에, 그리고 심령 속에도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들이 성경대로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한다. 부활은 이전의 것은 사라지고, 새창조물이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12장 18-23절『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여기에서 사두개인들이 생각하는 부활은 육체가 죽은(네크론) 후에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을 오해했다고 말씀하신다. 12장 25절에서『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ὅταν γὰρ ἐκ νεκρῶν ἀναστῶσιν οὔτε γαμοῦσιν οὔτε γαμίζονται, ἀλλ’ εἰσὶν ὡς ἄγγελοι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여기에서 헬라어 『ὅταν(~때에) γὰρ(전치사) ἐκ(~으로 부터) νεκρῶν(죽음) ἀναστῶσιν(일어나다)』다시 번역하면, 『그들이 죽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때』라고 번역된다.
죽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때와 한글 개역개정의 “살아날 때”와는 다른 의미다. 살아난다 라고 번역을 하므로 마치 죽었던 육체가 소생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죽었던 사람의 몸이 소생되면 사람으로 있는 것이지,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었던 자는 사람이다. 죽은 육체가 부활하였다면 부활한 몸은 사람의 몸인가 천사인가? 예수님이『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을 하셨다. 죽었던 육체가 살아있는 육체로 부활하면 천사와 같이 되는 것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는 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은 육체가 살아난다고 믿는 자는 예수님의 하신 말을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12장 26-27절에서『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죽은 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을 하신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육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사두개인은 육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예수님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몸은 어떤 몸인가? 신비스럽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몸이라는 것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도는 알고 있다. 변신이 가능하고, 시공간을 뚫고 나타나시는 영생의 몸이다. 이러한 영화로운 몸은 부모로 부터 받은 육체로부터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활은 하늘로부터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 첫째는 예수를 믿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죽어서 천국간다는 비전을 가지는 그런 믿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런 믿음을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육적인 자아가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에 대하여 죄인은 맞는 것 같고 그래서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한 것과 같이, 육적 고난이 다가오면 예수를 부인할 수 있는 믿음이다.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그리고 율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율법 아래 있는 믿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그래서 물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만, 그 이상은 아닌 것이다.
둘째, 하늘로 부터 나는 믿음이다. 즉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다.
로마서 6장 3-5절의 말씀은 물세례가 아니라 일반 세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부활한 자가 되려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세례의식으로 표현하는데, 물세례와 불세례이다.
로마서 6장 6-7절의 말씀은 물세례를 설명하고 있다.『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그래서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죄의 몸이 죽는 것을 설명한다.
로마서 6장 3-5절은 세례 즉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설명하는데, 죽는 것은 물세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세례도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물세례를 받고 불세례를 모르는 자는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것이다. 성소의 마당에서 희생제사를 드린 자일 뿐인 것이다. 동물의 피가 죄인의 죄를 대신하였듯이, 예수의 피가 신자의 죄를 대속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도는 성소의 마당만 밟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하는 계시될 믿음이란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나는 자의 믿음이다. 이를 성령세례라고 하는데, 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예수님이 삼년 동안 하신 것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온 것이다. 불세례는 심판을 의미한다. 불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심판)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과 같이 그렇게 심판받을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
불세례를 받은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곧 부활이다. 일반적으로 거듭남이라고 말을 하는데, 성경에는 거듭남이라는 용어가 없다. 요한복음 3장 5절을 헬라어로 보면, 『ἀπεκρίθη Ἰησοῦ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σοι, ἐὰν μή τις γεννηθῇ ἐξ ὕδατο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οὐ δύναται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휘다토스ὕδατος)과 성령(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으로(엑스ἐξ) 나지(겐네데 γεννηθῇ)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개역개정)
겐네데는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나다 라는 말은 영어로 again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렇게 되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고, 그 죽은 육체가 언제가 부활한다는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번역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 전하는 목사들의 책임이다. 부활은 이전의 육적인 몸(옛혼)은 죽고, 새로운 영의 몸(새혼)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body)는 부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는 죽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성경(베드로전서 1장 9절)은 그래서 혼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여기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것은 헬라어로 보면 프슈케(혼)이다.계시되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받는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을 때 받는다. 제사장 임명식에서 제사장이 제사장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이전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성령세례이다. 새로운 옷이 부활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 세례에 대해 말하는데, 죽고 부활하는 말을 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하나님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다는 것이다. 이는 육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과 관계되는 말이다.예수님이 죽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므로 믿음도 하늘의 계시를 받은 믿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대부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요한복음 20장 22-23절에서『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성령은 엄밀히 불세례에 해당된다. 제자들은 부활의 몸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죄의 몸(옛혼)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옛혼을 태워버리고 영의 몸(새혼)으로 갈아입는 순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즉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생명으로 만드신다.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난 뒤에 죄의 문제를 언급하셨다. 부활의 몸은 죄가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전하며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죄가 사해짐을 전하라는 말이다.
부활한 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법으로 인도받는 존재들이다.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숨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숨을 불어넣으므로 혼의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퓌시)이 되니라』번역의 오류이다. 네피쉬는 생령이 아니라 혼이다. 첫사람의 혼은 죽어야 할 생명을 의미하지만, 예수님이 제자에게 숨을 불어 넣는 것은 새로운 혼 즉 부활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종말 때 예수님이 언젠가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은 죽어서 육체가 부활할 것도 믿는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만 예수님이 심령 속의 성전으로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후에는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세상 모든 자에게 임하실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심판의 주로 재림하여 오시지만, 성령의 법에 있는 부활한 성도에게는 현재적으로 심령 속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 심령 속에서 천국 혼인잔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재림하여 들어올 때, 성도에게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게 계시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때 성도에게 임하는 성전을 천국(셋째하늘,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나라와 달리 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므로 천국을 사람들에게 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받아드리기 때문에, 마태가 복음서를 쓸 때 하늘나라(천국)라는 말로 사용했다는 목사들의 말을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믿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