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중국여행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꿈꾼다.매일.
티베탄 가든 인에 체크인을 하고 방에 가자마자 긴 샤워를 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했다. 세탁기 1회 사용료는
10위안, 방 값이 80위안이었는데...... 중국의 가격체계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잠시 산책을 했다. 샹
그릴라는 리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조용했고, 무엇보다 티벳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티벳에 가본 적은 없지만
TV를 통해서, 갔다온 사람들의 자랑을 통해서 수없이 보고 듣는 과정에서 티벳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낮은 하늘,
푸른 초원, 하얀 사원,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 깃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 뭐 그런 것들......
샹그릴라 고성의 중심지도 리장 고성과 마찬가지로 쓰팡지에다. 쓰팡지에에서 사방으로 골목길이 뻗어나간다. 쓰팡지에에는 꼬
치구이를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나도 냄새에 이끌려 한 노점 앞에
섰다. 테이블 위에 아직 익히지 않은 꼬치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에 원하는 것을 고르면 바로 숯불에 구워준다. 호박, 가지,
파 등등 야채와 두부, 어묵, 닭고기, 양고기, 야크고기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두부
와 버섯만 주문을 했다.
쓰팡지에의 꼬치구이
꼬치를 익히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인 아주머니는 한 손으로는 부채를 부쳐가며 산소를 공급하고, 다른 손으로
는 꼬치가 타지 않도록 열심히 돌려준다. 맛있는 냄새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가는 것을 보니 군침이 절로 난다. 아주머니가 꼬치를
들길래 다 되었는 줄 알고 받으려는 순간, 맙소사. 꼬치는 2~3종류의 액체 소스에 담가졌다가 2~3종류의 가루 향신료들이 뿌려졌
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을 때에는 그렇게 맛있어 보이던 두부와 버섯이 온갖 양념에
찌들어버렸다.
"부야오. 부야오. 부야오. (뿌리지 마세요)"
그래도 다행이 마지막 하이라이트, 매운 양념, 라차이를 뿌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을 여행할 때도 꼬치
구이를 즐겨먹었는데 저 매운 양념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줌마는 팥빙수에 팥을 빼고 주문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며 꼬치를 넘겨주었다. 하나에 1원. 그럴 필요 없는데 10분도 넘게 부채를 부친 아줌마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꼬치를 먹으며 산
책을 좀 더 했다. 내가 우려했던 온갖 소스들은 의외로 맛있었다. 다음에도 뿌려서 먹어야지.
샹그릴라 산책
커피 생각이 나서 티벳 카페라고 적어놓은 가게에 들어갔다. 왠지 수유차나 푸얼차 같은 것을 시켜야 할 것 같았지만 하루 종일
커피를 한 잔 밖에 마시지 않았더니 카페인 생각이 간절하다. 윈난 커피를 시키고 창가에 앉았다. 창 밖에서 앞집 식당 종업원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놀고 있었다. 일렬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을 차례로 뛰어넘는 단순한 놀이인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한참
을 웃어댄다.
처음에는 아가씨들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다.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한참 공부를 해야 할 아
이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저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환한 미소를 보면 하루종일 공부에 찌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
이 안타깝기도 했다. 어떤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저렇게까지 환하게 웃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나름 행
복하게 공부하고 놀았던 것 같은데...... 미래의 내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티벳 카페에서
호텔로 돌아왔더니 바바라가 세탁기에 막 빨래를 넣고 있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빨래를 널려고 하길
래 내가 하겠다고 놔두라고 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종바이예. 알고 보니 바이예는 호텔 사장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방 8개짜리
작은 호텔이라 가족이 다 동원되서 운영을 하는 것 같았다. 바이예는 머뭇거리다가 정원 벤치에 앉아 있던 바바라 옆에 앉았다. 바
바라가 바이예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니?"
"바이예에요"
"예쁜 이름이구나."
"엄마가 지어주셨어요"
"영어를 잘하네. 어디서 배웠니?"
.........................
바이예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니짜이날슈에시잉위?"
"마이 스쿨!"
바바라는 딱 바이예만한 딸이 있다고 했다. 호주에 두고 온지 6개월이 지났다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바이예가 사랑스럽게 느껴
질만도 했다. 바바라는 영어선생님 답게 쉽게쉽게 바이예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중간에 바이예가 알아듣지 못하면 내가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내가 중국어-영어 통역을 하다니!! 초등학교 수준의 대화였지만 그래도 정말 뿌듯했다.
"킴. 난 한자가 정말 재미있어. 山자 있자나. 이거 정말 산 같이 생긴거 있지"
"너네 방 앞에 뭐라고 써있는지 봤어?"
"앗! 山자가 적혀있네. 그 앞에는 뭐야?"
"雪 Snow. 너네 방은 설산이야"
"와우! 판타스틱! 이 호텔 정말 최고야!"
"그럼. 내 방은 月亮 . 달빛이야"
"킴. 그 로맨틱한 방에서 혼자 머무는거야?"
"........."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좀 놔두시길. 잠시 후에 마이클이 나왔다. 마이클이 티벳 식당에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아까 꼬치를 사먹어서 그런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 늦게 길거리 음식을 사먹겠
다고 했더니 조금 섭섭해 하는 눈치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I hope to.. but..., Sorry.. but...., love to.. but...., 등등 좀 예의를 차
려서 말을 해야하는데, 평소 한국말도 직설적으로 하는 나한테는 이게 잘 튀어나오지 않는다. 내가 너무 단박에 거절한 것 같았
다. 고산병 때문에 오늘은 저녁을 먹지 않을 생각이라고, 내일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그제서야 다시 그들의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둘은 식당에 가고 나는 다시 고성을 헤맸다.
샹그릴라 고성 산책
샹그릴라 고성은 정말 작아서 길을 헤매고 싶어도 헤맬 수가 없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지나갔던 길을 계속 다시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을 계속해서 또 만난다. 그들도 나처럼 그냥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몇 번을 같은 곳을 걸
어도 지겹지 않다. 다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걷는 것이 심심하면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구경을
한다. 말에 매다는 종, 티벳 전통 칼, 운남 차, 아웃도어 용품, 티벳 종교 용품, 등등 구경할 것 천지다.
다리가 아플만큼 걸었는데도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 배가 고파서 잠을 못자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될 것 같아 뭐라
도 먹기로 했다. 다시 쓰팡지에에 가서 아까 갔던 노점으로 갔다. 내가 아까 '부야오'를 다급하게 외쳐서 그런지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서 와요. 또 왔네요"
"이번에는 저녁이에요."
"이거는 안넣을거지?
"당연하죠."
아까 먹었던 두부 버섯을 다시 주문하고, 이번에는 피망, 닭고기, 호박, 가지도 주문했다. 꼬치가 익는 동안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
에 맥주를 사러 갔다. 나는 300ml면 충분한데 운남성에서는 작은 병이나 캔맥주를 찾기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500ml짜리 따리
맥주를 샀다. 노점 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주머니가 완성된 꼬치를 가져다 줬다. 아~ 맛있겠다.
내 저녁. 소금 그만 좀 뿌려요 T.T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노점상이 하나둘 철수를 하기 시작한다. 아직 6시 반 밖에 안되었는데, 야식
장사는 안하나보다. 빨리 사먹길 잘했다. 노점이 다 정리가 되고 결국 나도 테이블에서 쫓겨났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근
처에 있는 문 닫은 가게 앞에 가서 앉길래 나도 그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노점상들이 문을 다 닫았는데 사람들은 광장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뭐지? 오늘 무
슨 날인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광장에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강강수
월레 대형으로 둥글게 늘어섰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천천히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각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율동을 함께 한다.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을 보니 한두번 해본 것 같지가 않다. 사람들이 더 모여서 원은 점점 커지고, 거리를 방황하던 관광객들이 하나둘 모
여들었다. 마이클과 바바라도, 댄과 로라도 만났다. 샹그릴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녁 때 이곳에서 만나게 되나보다. 음악
은 점점 빨라지고 춤도 점점 흥겨워진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하나 둘 원에 뛰어든다.
이스탄불 여행을 할 때 그냥 호기심에 페리를 타고 아시아 쪽에 건너 갔다가 주민들이 이렇게 모여서 춤을 추는 것을 본 적이 있
다. (이스탄불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페리로 20분이면 건널 수 있다) 카라데니즈 혼이라는 춤이었는
데, 어깨동무를 한 채 스텝만 바꿔가며 빙빙 도는 간단한 춤이였다. 나도 옆에 있던 대학생에게 배워서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그
때 생각이 나서 나도 얼른 원에 뛰어들었다.
샹그릴라에서 추는 춤은 훨씬 복잡했다. 노래마다 율동이 다 달랐고, 팔과 다리를 모두 쓰며, 도는 동작도 많았다. 게다가 그냥 빙
글빙글 도는 것이 아니라 원이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했다. 나 같은 몸치가 잠깐 배워서 같이 즐기기에는 무리였다. 한 시간
정도 헤매다가 광장을 빠져나왔다.
다 함께 춤을
거리를 쏘다니다가 커피 생각이 나서 'Always in Spring'이라는 예쁜 카페에 갔다. 메뉴에 카푸치노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얼
른 주문하고 한켠에 꽃혀 있는 책들을 구경했다. 눈에 확 띄는 책이 있었는데, '云南(윈난)'이라고 적혀 있는 Lonely Planet. 잉?
중국어판 론리 플래닛이 있는거야? 그것도 영어로도 없는 운남성 버전이?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구경을 했다. 번역본이 아니라 중
국 작가가 직접 쓴 책이었다. 중국인이 쓴 론리플래닛은 어떤지 궁금했지만 중국어 독해 실력은 유치원생 수준이라 거의 읽지 못
했다. 아쉽다.
여친님께 엽서를 쓰고 알바생의 영어 실습 상대를 잠시 해줬다. 카페에는 WIFI도 있었다. 샹그릴라에서 카푸치노와 WIFI라니. 별
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3일 동안 인터넷을 안했더니 이것저것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여행 카
페에도 들어가보고 블로그에 현장 생중계 자랑도 조금 했다. 주식 시세는 안 보는 편이 좋을 뻔 했다. 하늘 바로 아래 히말라야 산
맥에 자리잡은 마을, 광장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춤추는 마을에서, 인터넷으로 떨어진 주식을 보며 안타까워 하다니.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Always in Spring. 일주일만에 마시는 내사랑 카푸치노
카페를 나와 다시 거리를 쏘다녔다. 쓰팡지에에서 음악 소리가 나서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아직도 춤을 추고 있었다. 시작한지 2시
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얼른 뛰어가봤는데 아직도였다. 사람은 아까보다 훨씬 늘어 있었다. 원 하나로는 부족해 동심원 세 개를 그
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다 익히고 신나게 추고 있는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아, 나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배울걸. 늦었
지만 얼른 들어가서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춤판은 그 후로도 2시간 넘게 계속되다가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왠만큼 몸에 익으려니까 끝난다. 아쉽다. 온 몸에 땀이 나서
근처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못추는 춤을 몇 시간 췄더니 배가 고파 감자튀김도 시켰다. 오랜만에 땀흘리고 맥
주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테라스 앞을 혼자 지나가던 중국인이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길래 장난을 쳤다
"환잉광린 (환영합니다)"
"하하. 같이 앉아도 돼요?"
그녀의 이름은 또 에린. 뭐야 중국인들은 다 에린이야? 에린은 망고 쥬스를 시켰다. 나와는 달리 품격있는(?) 영어를 구사한다 싶
었는데 유명 컨설팅 업체 D사 베이징 지사에 다닌단다. 지금은 회사에서 단체로 한 달 동안 운남성에 영어 교육 봉사활동을 나와
있다고. 해외 기업이 중국에서 장사를 한다는게 역시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D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에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가씨 완전 수다쟁이였다. 말이 끊이지 않았다. 아, 괜히 말 걸었나.
"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음이 맞는 회사 동료 두 명과 방금 샹그릴라로 날아왔어. 두 명은 피곤해서 쉰다길래 나 혼자 나왔지. 내일
은 미셸, 제니퍼와 국립공원에 갈거야. 아 참, 호텔에서 대만 사람도 한 명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어"
"비타하이, 슈두하이 국립공원을 말하는거야? 나도 내일이나 모레 거기 가려고 했는데"
"그럼 우리랑 같이 가자! 너 혼자 가면 얼마인지 알아?"
"너네 네명이자나 한 차 다 찼네"
"아니야 우리 봉고차 빌렸어. 다섯 명은 충분히 타지"
"친구들한테 물어봐야 하는거 아냐?"
"아냐, 많이 갈수록 재미있지. 쓰팡지에에서 8시. 공원에서 점심 먹을건 각자 사와야해"
"그래 그럼 내일 봐"
고성에 밤이 찾아왔지만
밤이 깊도록 다같이 댄스. 댄스.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