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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사진(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4737&cid=46720&categoryId=46846 |
작품명(제작년도, 작품크기, 표현재료 및 방법) | 아를의 반 고흐의 방(1889년, 73 x 91 cm, 캔버스에 유채) |
작가이름(출생년도~사망년도(생존시 생략)) | 빈센트 반 고흐(1853년~1890년) |
작가의 생애 |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화가로, 프로트 즌델트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사망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9~1876년 화상 구필의 조수로 헤이그, 런던, 파리에서 일하고 이어서 영국에서 학교교사,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에서 전도사의 일을 보고, 1880년 화가에 뜻을 두었다. 그때까지 짝사랑에 그친 몇번의 연애를 경험했다. 1885년까지 주로 부친의 재임지인 누넨에서 제작활동을 했다. 당시의 대표작 『감자를 먹는 사람들』(1885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가 특징적이었다. 1886~1888년 파리에서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1888년 봄 아를르에 가서, 이상할 정도로 꼼꼼한 필촉(筆觸)과 타는 듯한 색채에 의해 반 고흐 특유의 화풍을 전개시킨다. 주작품은 『해바라기』, 『아를르의 침실』, 『의사 가셰의 초상』 등이 있다.
1888년 가을, 아를르에서 고갱과의 공동생활중 병의 발작에 의해서 자기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 계속되는 생 레미 시대에도 입퇴원의 생활을 되풀이한다. 1890년 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했으나 같은 해 7월 권총으로 자살했다.
병때문인 자기응시가 자화상의 다작과 관련되며, 그것도 불가능한 때에는 자주 밀레나 들라크루아의 모사를 했다. 생전에는 의사 가셰나 시냐크 등,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평가되었다. 동생 테오 및 기타사람에게 보낸 방대한 양의 편지는 서간문학으로서 중요하다.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등에 주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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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주제 및 설명 (작품의 정보, 의미, 의도) | 반 고흐는 《반 고흐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세 작품을 그렸다. 가장 오래된 버전은 1888년 10월 중순에 아를에서 그려진 것으로, 반 고흐가 ‘남프랑스 아틀리에’라는 예술가 공동체 구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고갱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기이다. 반 고흐는 10월 17일 고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인의 전반적인 회화 구성에 대해 묘사하며 자신은 공간을 기묘하게 변형시켜 모티프에 적용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갱과 반 고흐의 만남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 반 고흐는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일어난 홍수로 인해 작업실에 방치해 두었던 최초의 《반 고흐의 방》 일부가 손상되었다. 이 최초의 작품은 현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889년에 생레미 요양원에서 나온 그는 같은 주제로 두 점의 작품을 더 그렸다.
이중 하나는 원본과 동일한 크기로 현재 시카고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어머니와 여동생 윌을 위해 그린 나머지 하나는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친구이자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신집의 554번째 편지에서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색채의 상징주의를 이용하여 고요함을 표현하고, 방의 간결하고 단순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흐린 남보라색 벽과 금이 가고 생기 없어 보이는 붉은색 바닥, 적색 느낌이 감도는 노랑색 의자와 침대, 매우 밝은 연두색 베개와 침대 시트, 진한 빨강의 침대 커버, 오렌지색 사이드 테이블, 푸른색 대야, 녹색 창문과 같은 다양한 색조를 통해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색조를 표현하기 위해 일본풍 채색 비단의 모티프와 판화 기법을 참고했지만, 실상은 본인이 의도했던 일본식 단순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이 작품의 세 가지 버전에서는 문, 창문, 의자, 침대 같은 주요요소가 모두 동일한 위치에 그려졌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가장 쉽게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은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들로서, 특히 캔버스 프레임 바로 아래에 있는 초상화 두 개와 침대 머리맡 위에 걸린 풍경화에 변화를 주었다. 여인의 초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 옆에 있는 초상화의 경우 인물의 특징으로 보아 반 고흐 자신의 초상을 그려 넣은 것처럼 보인다.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 인물의 수염과 붉은색 머리카락, V자 네크라인의 옷으로 미루어 보아 1889년 9월에 생레미에서 그린 자화상인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서는 머리의 위치, 깨끗하게 면도된 얼굴, 차이나 칼라의 상의로 보아 동일 시기에 그려진 또 다른 자화상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자화상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성했으면서, 작품 속에는 왜 다른 모습으로 그렸는지, 그리고 거의 유사한 두 점의 작품에 왜 이 자화상들을 그려 넣었는지 그 이유는 불가사의다. 또한 1889년 9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주제로 그린 《피에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반 고흐의 자화상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앞선 의문과 일맥상통하며,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를의 반 고흐의 방 [Van Gogh's Bedroom at Arles] - 빈센트 반 고흐 (The Bridge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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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평가하기 (자신의 생각, 현재 이 작품의 의미 작성) |
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두껍고 거칠게 발린 갈렬한 색채의 대비에 중점을 두었고 보색 대비를 두드러지게 사용했다. 원근법도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아 사물이 약간 위로 솟아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 그는 단순화를 통해 단순한 실내와 눈부신 색채가 휴식과 수면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것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온을 느낄 수 있게하고 또한 침대, 바닥, 벽면에 녹빛과 다크블루가 감돌며 고흐의 특유의 우울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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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과 비교 (영향을 받은 작품, 대비되는 작품, 영향을 준 작품,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같은 양식의 작품 중 택 1) | 두 작품의 공통점은 보색대비를 이용한 그림인 것이다 아를의 반 고흐의 방에서는 이 그림에서도 밤하늘을 진한 남색으로 칠하고 진한 남색 위에 노란색으로 별과 달을 칠해서 더욱 생생하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다른점은 |